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3화
곱게 틀어 올려 묶었던 사라의 옅은 갈색 머리칼이 바람에 풀어져 나풀거렸다.
뻥 뚫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둘러싸인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아름답게 반짝였다.
암브로시아의 사용인들은 그 광경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
“…….”
제국에서, 아니, 대륙에서도 마법사는 아주 희귀한 존재였다.
마법사들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족속들이며, 마탑을 세워 그 안에 은둔해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니 성격은 하나같이 다 괴팍하고 더러우며 미친 광기의 집단이었다.
그러나 갖고 있는 능력이 어마어마한 탓에 마법사가 자리 잡은 땅에는 무궁한 영화가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다.
그 능력이 탐이 난 이들이 그들을 찾으려 해도 마탑의 위치는 그 누구도 몰랐다. 어느 대륙의 위대한 황제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마법사란 그런 존재였다.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황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대단한 존재.
“암브로시아 공작가에, 마법사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사용인들의 말을 뒤로하고 사라는 클로드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천천히 집요한 시선으로 아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암브로시아 공작가 특유의 눈부신 백금발이 눈물 젖은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놀라서 커다래진 아이의 눈동자는 사랑스러운 디엘린을 닮은 녹안이었다.
아이의 모습에서 어린 날 친우의 모습을 발견한 사라는 가슴이 뻐근해졌다.
‘너무 예뻐…….’
저 처량한 강아지 같은 공자가 먼 훗날 제국을 멸망시킬 흑막이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6살의 클로드 암브로시아는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천사였다. 그녀의 상상보다도 더.
“후후.”
사라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맺혔다.
사라는 클로드의 그 맑고 아름다운 녹안을 마주하자마자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내밀며 아주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첫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암브로시아 공자? 오늘부터 공자의 유모이자, 가정 교사가 될 사라 밀런이라고 합니다.”
친구인 디엘린을 닮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늘 그녀를 괴롭혔던 죄악감이 고개를 들었다.
사라의 기억은 클로드의 유모가 되기로 결심했던 밤으로 날아갔다.
* * *
그날은 천둥이 요란하게 치고 비바람이 거칠게 몰아치던 밤이었다.
“안 돼, 안 돼…….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야 해. 제발, 제발!”
사라는 머리를 거칠게 쥐어뜯고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울부짖었다.
“내용을 수정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는데…….”
허망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엔 절망이 뚝뚝 묻어났다.
그녀에게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그녀가 마법사라는 것보다 더 엄청나고 절대 이해받지 못할 비밀이.
“왜 박혜연의 몸으로 깨어날 수 없게 된 거야!”
제국의 유서 깊은 백작 가문 영애인 사라 밀런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이었던 박혜연이기도 하다는 것.
그것이 그녀가 가진 비밀이었다.
그녀는 하나의 영혼으로 두 사람의 삶을 동시에 사는 사람이었다.
“박혜연의 몸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적은 없었어……. 분명 뭔가가 잘못된 거야.”
두 개의 몸을 오고 가는 타이밍은 그녀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한쪽 몸이 죽어 버리지 않는 이상 이렇게 다른 쪽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직도 박혜연과 사라 밀런의 영혼이 이어져 있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박혜연의 몸으로 교통사고가 났을 때 무언가 영혼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지만 끊어질 듯 말 듯 한 끈은 분명 이어져 있었다.
“돌아갈 수 있어. 돌아가서 소설을 수정하면 돼. 디엘린이, 디엘린이 이렇게 미쳐 버리게 둘 수는……. 아아!”
사라는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 보는 무기력함에 이성을 잃고 눈물을 쏟아 냈다.
“이 힘이 다 무슨 소용이야…….”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가 강한 마력을 타고났음을 깨달았다.
영혼이 붕괴될 정도로 강력한 힘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제 영혼을 둘로 나누어 다른 차원의 경계로 내던졌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는 박혜연이, 크롬벨 제국에서는 사라 밀런이 태어났다.
사라 밀런은 잠이 들면 박혜연의 몸으로 깨어났다.
박혜연의 몸으로 살아가다가 어느 날 문득 잠이 들면 다시 사라 밀런의 몸으로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오랜 시간 박혜연과 사라 밀런의 삶을 살았어도 각자의 세상에서는 겨우 하루가 흘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는 남들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살아오며 두 가지 삶을 잘 조율했다.
강력한 마력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사라 밀런과는 달리,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 능력이 있었던 박혜연이 사라 밀런이 살고 있는 세상의 미래를 보기 전까지는.
정말 평화로운 삶이었다.
똑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에 사라는 깊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들어오렴.”
“저어, 아가씨.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 시간에 누가 기별도 없이.”
“디엘린 암브로시아 공작 부인이십니다.”
사용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 묵직하게 사라의 심장을 찍어 눌렀다.
창밖에는 아직도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이 궂은 날씨를 뚫고 부단히 마부를 재촉해 달려왔을 그녀의 친우.
박혜연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가 사라 밀런을 찾아왔다.
“……응접실로 안내하렴.”
“세안을 도와드릴까요?”
“그래.”
사라는 사용인들의 능숙한 시중을 받으며 이 모든 일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생각했다.
이 제국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은 그녀에게 무궁한 영광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힘의 한계를 모른다는 것이 이토록 예상치 못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은 거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녀가 ‘예지’를 통해 본 미래에서 이 아름다운 제국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 미래에서 사라는 힘을 숨기고 은둔하여 조용히 제자를 육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세상의 균형이 어그러지게 될 것을 염려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난 후에야 나는 제자들과 세상을 구하려고 하겠지.’
사라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속상한 마음에 박혜연으로 깨어 있을 때 미리 엿본 대륙의 미래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대마법사의 구원 없이도 현명하고 지혜롭게 이겨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고 싶었다.
당시 유행하던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클리셰처럼 이 세상의 모든 절망을 끌어안은 남자가,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끌어안은 여자에게 구원받는 이야기.
그래서 결국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 평화를 되찾는 이야기.
‘어둠의 꽃’.
이 소설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가 쓴 소설이었다.
* * *
“……가자.”
사라는 이내 천천히 일어나 응접실로 향했다.
이제 그녀가 저지른 첫 번째 죄와 마주해야 할 시간이었다.
응접실의 문이 열리고 초조하게 부채를 쥐어뜯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사라는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에 잠시 눈을 감았다.
“공작 부인.”
천천히 여자에게 다가간 사라가 무릎을 굽히며 예를 표했다.
“오, 사라. 제발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 그러지 말아 달라고 항상 부탁했잖아.”
암브로시아 공작 부인이자 사라의 오랜 친우인 디엘린은 빠르게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사라가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에 디엘린은 그녀의 두 손을 꼭 잡고 흔들며 입을 열었다.
“사라, 내 소중한 친구. 너는 내 편이지? 그렇지? 날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다고 했잖아. 응? 제발 날 좀 도와줘, 사라!”
“……공작 부인.”
“날 그렇게 부르지 마!”
디엘린은 경기를 일으키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가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더니 사라를 비난했다.
“날 그렇게 부르지 말란 말이야. 너만은, 너만은 내게 그래 줄 수 있잖아.”
“그래, 디엘린.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사라가 다정히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조금 진정한 디엘린은 심호흡을 했다.
천천히 이성을 차리는 디엘린의 모습을 보며 사라는 지금 그녀가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난 공작과의 약속을 지켰어. 이제 휘겔을 찾으러 갈 거야. 나와 휘겔의 아이를 포기하더라도!”
“디엘린!”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너는 모를 거야. 하지만 나는 이럴 수밖에 없어. 암브로시아에는 후계자가 필요했고, 나는 곧 출산할 거야. 그럼 떠날 수 있게 되겠지.”
“너와 휘겔의 아이를 에단 암브로시아의 자식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만약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암브로시아 공작 부인인 나와 암브로시아 공작가의 차남인 휘겔의 아이야! 정통성 있는 부인에게서 암브로시아의 피가 흐르는 아이가 태어난 건데. 뭐가 문제겠어. 응?”
디엘린의 눈동자에는 이제 광기까지 엿보였다.
“할 수 있어. 공작도 아이를 두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면……, 모든 걸 눈감아 주기로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