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2화
그 하찮고도 치기 어린 모습에 사라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어느새 그녀의 온화한 얼굴은 온도가 내려간 것처럼 서늘해져 있었다.
“오직 사라 밀런만이 소백작으로 인정받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아뢰세요.”
그 말에 메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며 꿀꺽, 침을 삼켰다.
사라가 예상했던 것보다 메이의 담은 아주 작았다. 금방 기가 죽어 떨리는 눈동자를 감추려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메이 첸블런.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겐 한없이 강해지는 어리석은 것.’
사라는 소설 ‘어둠의 꽃’에 나오는 메이 첸블런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클로드 님을 사랑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숨 쉬는 것보다 더 간단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클로드 님을 어떻게 진심으로 사랑하겠어요.’
‘유모이신 사라 님도 그렇게 죽이셨잖아요?’
이렇게 속삭이며 클로드가 더 깊은 절망에 빠지도록 부추기는 엑스트라가 바로 그녀였으니까.
그런 메이를 상대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압도적인 힘의 논리로 눌러 주는 것이었다. 그래야 감히 어떻게 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
사라는 허리를 숙여 메이와 눈을 맞추었다.
“……간단한 수업을 하나 하도록 하죠.”
짙은 푸른색 눈동자로 그녀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오만했으나, 한편으로는 지독히 잘 어울렸다.
사라의 박력에 메이는 저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
“자아, 따라 하세요. 메이 양.”
사라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낯선 단어를 알려 주는 것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밀런, 소백작님.”
“……!”
더 이상 붉어질 것도 없다고 여겼던 메이의 얼굴이 이젠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사라는 생글생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서.”
그녀의 두 눈이 시린 빛을 받아 번뜩이며 일렁였다.
사라에게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기백에 메이는 자신도 모르게 토해 내듯이 그녀의 말을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미, 밀런 소백작님…….”
그와 동시에 메이는 확 인상을 찌푸리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잘하셨습니다.”
사라는 다정히 웃으며 메이를 칭찬하고는 볼일은 전부 마쳤다는 듯 무심히 시선을 돌려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
“…….”
옆구리에 지팡이를 끼고 양손에 곱게 낀 실크 장갑을 하나하나 벗으며 클로드의 방으로 걸어가는 사라를 보며, 공작가의 사용인들은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메이 양의 배려는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클로드 암브로시아 공자는 제 소관이니까요.”
예상치 못한 클로드의 거부에 충격에 빠져 있던 사라는 메이가 심기를 건드려 준 덕에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라는 굳게 닫힌 클로드의 방문 앞에 서고 나서야 완전하게 깨달았다.
‘어둠의 꽃에 적힌 대로 이 세상이 움직이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잖아. 이제 와 조금 바뀌었다고 해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아.’
그녀에겐 클로드의 친모인 디엘린과 나눈 맹약이 있었다.
공작 부인이었던 디엘린 암브로시아는 클로드의 친모가 맞았지만, 현 공작인 에단 암브로시아는 클로드의 친부가 아니었다.
클로드의 친부는 공작이 아닌 그의 남동생, 휘겔 암브로시아였다.
‘휘겔에게 갈 거야. 그리고 두 번 다시 크롬벨 제국에 돌아오지 않을 거야. 아이에게도 내가 죽었다고 해 줘. 죽느니만 못한 어미 따윈 잊어버리고 부디 행복하게 살라고. 그러니 네가 도와줘, 사라.’
‘사라 밀런의 영혼을 걸고 맹세할게. 네 아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내 모든 걸 바치겠어.’
사라는 그 맹세를 지켜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
조카를 제 아들이라 공표한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은 누구보다도 정성껏 클로드를 돌봤다.
하지만 이맘때쯤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보호자의 마음을 알아차린다.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이 은연중에 자신을 피한다는 것.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쥐여 주지만 부모의 ‘애정’만큼은 주지 않는다는 걸.
아이는 그것을 너무나 일찍 깨닫게 됐을 것이다.
문 앞에서 더욱 선명하게 흘러나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사라는 안타까움에 숨을 삼켰다.
모친이 자신을 낳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는 아이가 가지고 있을 상처를 어떻게 하면 감싸 줄 수 있을까.
사라는 그것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어둠의 꽃이 바라는 대로 할 순 없지.”
사라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중얼거리며 방문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클로드의 첫 번째 불행은, 스스로를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며 혐오하게 된 것이다.
끝없는 자기혐오를 통해 비틀리고, 또 비틀리고. 종국에는 스스로가 불행한 만큼 모든 것을 다 부수어 버리고 싶어서.
저주받은 암브로시아의 힘에 억압되고 싶지 않아서.
클로드는 이 제국을 멸망으로 이끄는 흑막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둠의 꽃에서 클로드의 유모인 나는 죽고 말아. 하지만 어둠의 꽃의 사라 밀런과 나는 달라.’
비장함이 가득한 사라의 얼굴을 보며 사용인들은 눈치껏 뒤로 물러섰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오직 메이뿐이었다. 그녀는 빠르게 다가와 사라를 제지하려 했다.
“소용없을 텐데요! 클로드 님은 제가 하는 말만 들으시니까 그냥 저한테……!”
“쉿.”
사라는 제 앞을 막아서는 메이를 보며 검지를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러곤 생긋 웃어 보이자 메이가 몸을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결국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휙 돌렸다.
어디 한번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라는 태도였다.
사라는 그제야 누구의 방해도 없이 클로드의 방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암브로시아 공자,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가! 저리 가!”
낯선 목소리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음에도 변하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한 짜증마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이대로는 아이를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잘 알고 있었다. 사용인들 얼굴에 짙은 체념이 떠올랐다.
하지만 사라의 얼굴엔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사실 이럴 때를 대비해 그녀는 공작가의 가주인 에단 암브로시아에게 미리 확답받아 놓은 것이 있었다.
[하나, 클로드 암브로시아의 교육은 모두 사라 밀런에게 맡길 것.둘, 그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행위는 암브로시아 공작이 책임지며, 적극적으로 협조하되 간섭하지 않을 것.
셋. 사라 밀런을 전적으로 믿을 것.]
이 말도 안 되고 기가 막힌 일방적인 조건을 에단 암브로시아는 받아들였다.
그래서 사라는 그녀의 뜻대로 밀고 나가기로 결심했다.
클로드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앞으로 열심히 치근덕거리면 된다. 클로드가 그녀를 거부하면, 쳐들어가면 그만이라는 뜻이었다.
‘막힌 건 뚫어 버려야 제맛이지!’
암브로시아 공작이 사라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더라면 절대 위의 조건을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사라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클로드 님?”
“왜!”
“허락하셨다고 믿고 들어가겠습니다. 문 근처에 있다면 잠시 멀찍이 떨어져 있도록 하세요.”
“우응……?”
분명 거부를 했는데, 허락을 했단다.
의아한 듯 클로드의 목소리가 웅얼거리며 뭉개졌다.
사라는 잠시 문 뒤의 기척을 살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력을 흘려보내 확인해 보니 침대에 엎드려 고개를 처박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아주 좋아.”
사라는 그대로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끝에서 그녀의 눈동자와 닮은 청색 마력이 흘러나와 문 앞에 작은 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사라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메이와 사용인들의 눈이 경악으로 커다래졌다.
그 얼굴들을 뒤로하고 사라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콰아아아아아앙!!
따악,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육중하고도 튼튼한 방문이 종이짝 날아가듯 가볍게 날아갔다.
문짝은 유리창을 뚫고 날아가 공작가 정원 한구석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처박혔다.
“……!”
침대에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울던 클로드가 화들짝 놀라 뻥 뚫린 자신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조막만 한 귀여운 얼굴에 오동통한 뺨을 타고 미처 닦지 못한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사용인들은 물론이요, 클로드까지 놀라 굳어 있는 와중에 오직 사라만이 홀로 여유 있게 웃으며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도움이 없다면 클로드의 방으로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을 거라며 자신했던 메이가 입을 뻥긋거리며 사라의 뒷모습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마, 마법사……!”
탄성처럼 내뱉어진 수식어가 사라의 뒤로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