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
001 이것이 현실
띠룽, 띠룽, 띠루룽.
에휴 씨댕. 욕이 절로 나온다. 보나마나 자재 없다고 지랄하는 전화가 분명하다. 수신 거부 누르고 싶다.
“여보세요.”
“지 과장! 열둘에 오십인가? 이거? 이거 없어!”
“부장님, 잘 찾아보세요. 제가 어제 다 확인하고 퇴근했어요.”
“아니, 없는 걸 어떡하라고! 지금 볼트 없어서 다 손 놓게 생겼는데 어떻게 할 거야?”
“볼트 갖다 둔 자리에 있다니까요. 제가 어제 두 봉지 있는 것 확인했어요.”
“아니, 시방 지금 내가 있는 걸 없다고 한다는 거야 뭐야! 암튼 난 분명히 얘기했어. 이거 없으면 일 못하니까 지 과장이 책임져!”
“휴우. 알았어요. 지금 갈게요.”
이놈의 회사는 주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낮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대는 저놈이야 주말에 나오면 주말 수당이라도 받지. 아오 짜증 나.
오랜만에 늦잠 좀 자려고 했더니 아침부터 울려 대는 전화에 짜증이 한가득 솟아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왕좌의 게임 보지 말걸. 시즌 완결될 때까지 꾹 참았다가 어제 맘먹고 몰아 봤더니만 피로가 안 풀리네. 스타니스 트루킹!
대충 세수랑 양치만 하고 ‘츄리닝’ 복장 그대로 차에 탔다. 그깟 개당 백 얼마밖에 안 하는 볼트 때문에 토요일에 출근을 해야 한다니, 머리가 부글부글 뜨거워졌다.
시동을 걸자마자 창문을 내리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너만이 날 위로해 주는구나. 쓰읍 후우.
주말이라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는다. 남들은 늦잠 자거나 외곽으로 놀러 나갔을 것이다. 부럽다, 부러워.
“에이, 씨댕.”
잠시 멍 때리다가 담뱃재가 바지에 떨어졌다. 열린 창문을 타고 들어온 바람으로 재가 바지에 떨어지기 무섭게 여기저기 휘날린다. 거금 350만 원을 주고 산 말티즈가 더러워지다니!
차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서울이야 워낙 지하철, 버스가 잘돼 있어서 차가 없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관심이 없다기보다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이 회사는 차 없이는 출퇴근이 불가능했다. 공장 몰려 있는 곳들이 다 그렇지만, 대중교통이 엉망이다. 버스는 배차 시간이 하세월이고, 그마저도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결국 없는 돈으로 중고차 하나 장만할 수밖에 없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차에 관심 가져 봐야 중고로 아방떼 아니면 말티즈 정도이다.
그 이상은 지금 수준으로는 벅차다. 지금도 한 달에 20만 원은 족히 나오는 기름 값에 벌벌 떨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나는 차에 관심이 없다며 스스로를 세뇌한 것이다. 이 불우한 삶.
언젠가는 이런 삶에서 졸업하고 말리라. 지금이야 아무것도 없는, 미래도 안 보이는 하꼬방 월급쟁이지만, 꿈만큼은 거창하고 꿔야 한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야. 내가 또 로또라도 맞고 대박이 날 수도 있는 것이지!
그렇게 20분을 달려 공장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8분 정도 빨리 도착했다.
“어~ 지 과장 왔어?”
김진현 부장이 웃으면서 반겨 준다. 김 부장이 환하게 웃는 것이 어째 예감이 좋지 않다.
“찾아보니까 요 밑에 있었네.”
때려도 분명히 정당방위가 될 것이다. 늦잠 자지 못한 손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여기 오는 데 들어간 시간과 기름 값, 말티즈에 떨어진 담뱃재를 생각하면 피해 보상 셈치고 한 방 갈겨야 한다.
“하아. 제가 분명히 있다고 했잖아요.”
“아니, 우리가 찾기 쉽게 해 놔야지. 안 그래도 바쁜데 언제 이거 찾으러 다니겠어!”
우미옥 주임이 쏘아 댄다. 내 잘못이란다. 나 원 참.
“우 여사 됐어. 찾았으면 됐지 뭐.”
둘의 티키타카가 예술이다. 둘 다 감전돼서 안 떨어지게 꼭 붙어 버려라.
한두 번이 아니다.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이젠 그러려니 한다.
사장한테도 몇 번을 얘기했다.
“사장님, 자재가 제자리에 보관돼 있으면 제가 야간이고 주말이고 여기 안 붙어 있어도 되지 않습니까? 아주 밤이고 낮이고 뭐가 없다 뭐가 없다, 제가 퇴근을 못합니다.”
“고생이 많네요. 다 같이 모여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세요. 저도 나름대로 고민해 볼게요.”
뭔가 해 줄 것 같은 표정이지만, 나오는 말은 뻔하다. 알아서 해결하란 뜻이다.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결국 나만 불평불만 많은 직원으로 찍힐 뿐이다.
나도 너처럼 부모 잘 만나서 사장입네, 으스대고 싶다.
“그런데요, 자재 관리면 현장에서 생산이 멈추지 않도록 제때 자재를 공급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현장에서 자꾸 그런다는 것은 지 과장님 일하는 방식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닙니까?”
말투 자체는 한없이 공손하다. 늘 경어로 얘기하며 온화한 사람인 양 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아주 싸가지 없음이 묻어난다.
결론은 알아서 하되, 너 일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니 그만 와서 징징거리란 뜻이다.
회사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아주 좋아, 최고야 아주!
* * *
“부장님 다 됐죠? 전 들어갑니다.”
“이왕 왔는데 밥이나 먹고 가. 여기까지 왔는데 밥은 먹고 가야지.”
전화 받고 집에서 나온 순간 예감했다. 오늘 점심은 기름밥이구나. 결국 5시까지 변압기 80대 뚜껑을 씌우고 볼트를 채웠다.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손아귀가 얼얼했다.
“다들 고생했어. 내일은 일 안 하니까 푸욱 쉬라고.”
“고생하셨습니다. 모레 뵙겠습니다.”
맘에도 없는 인사를 나누고 잽싸게 집으로 왔다. 놀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차 행렬과 맞물리면서 도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아휴, 짜증 나! 주말에 일하는 것 자체가 짜증인데 길까지 막히면 머리가 찜통이 된다. 담배를 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이 회사 다니면서부터 담배가 꽤 늘었다. 내가 알기론 고도로 발달된 현대 문명에서 스트레스엔 담배만 한 것이 없다. 마이 소울 프렌드!
띠링.
핸드폰에서 울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제는 핸드폰만 봐도 기겁할 정도다. 이것도 병이야 병.
다행히 문자였다. 운전 중에 핸드폰 보면 안 된다고 하지만, 궁금한 것은 참기 어려운 것이 사람 마음 아닌가!
[Web발신] 행복을 전하는 한국통운 택배입니다. 지정수 고객님께 배송 예정인 상품이 수취 거부로 반송됐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해당 링크를 통해 확인 부탁드립니다.뭐지? 택배 올 게 없는데? 링크를 눌렀다. 확인되지 않은 링크는 위험하니 어쩌니 하는 경고문은 늘 그렇듯 무시했다. 본인 인증을 위한 어플을 설치하란다. 더럽게 귀찮게 하는구만. 그래도 누가 뭘 보냈는지에 대한 궁금함은 귀찮음을 이겨 냈다.
빠방.
신호가 바뀐 지도 모르고 있었다니……. 조금만 더 머뭇거렸으면 뒤차에서 미사일이 발사됐을 것이다.
다음 신호에 가서야 반송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고객에게 반송된 물품이 없단다. 에라잇, 아름다운 놈들!
그럼 그렇지. 누가 나한테 택배를 보내? 보낼 것이 있다면 작년에 헤어진 여자 친구가 그간 받은 선물 꼴 보기 싫다고 되돌려주는 것 정도랄까? 하긴 그년이 돌려줄리 없지. 생각하니 또 혈압이 오르는군. 담배가 어디 있냐.
4년을 만났으니 정으로 버틴 것이 맞을 것이다. 짜인 각본처럼 만나서 좀 그럴싸한 곳에서 사진 찍어 가며 밥 먹고, 가게 여기저기 순회하거나 영화 보거나. 그러다 헤어진다. 집에 오면 의무적으로 전화 통화해 주고.
그 짓도 이 회사 들어온 뒤로는 할 수 없었다. 일단 몸이 너무 피곤했다. 8시에 출근해서 5시까지 정신없이 일해야 했다. 말이 8시 출근이지 7시 반 출근이 일상이었다. 그것도 부족해 9시까지 야근.
그렇게 택배 상하차 일이 우스울 정도의 노동을 끝내고 집에 오면 피곤에 절어 그냥 뻗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주말이나마 제대로 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자 친구는 슬슬 짜증이 늘었다. 회사에서 겪은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내가 받아 주지를 못하니 도리어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땐 그건 스트레스 축에도 끼지 못했다. 내가 죽게 생겼는데 누구 스트레스를 풀어 주랴.
마음은 이미 멀어졌고, 몸도 멀어지니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할 동력을 찾을 수 없었다.
여자 친구는 모든 책임을 나한테 돌렸다. 자기는 잘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내가 변해 버렸단다. 뻔한 클리셰. 결국 내가 못된 놈인 양 다 뒤집어쓰고 결별을 고했다. 나만 나쁜 놈이지. 암, 그렇고말고.
생각을 말자. 집에나 가자.
늘 그렇듯 나같이 없이 사는 놈에게는 옥탑방이 거주지로 딱이다. 옥탑방에 살지 않으면 형사처벌 받는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벗어날 수가 없다. 눅눅하다 못해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쩍쩍 붙는 비닐 장판을 자랑하는 반지하가 아닌 것에 만족해야 하는 것인가!
회사에서는 선심 쓰듯 기숙사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쓰러져 가는 3층짜리 연립주택 하나 빌려서 3명이 모여 사는 기숙사를 아방궁이라도 되는 듯 자랑하는 것이 어찌나 꼴불견이던지. 그것도 관리비조로 월 10만 원씩 공제하겠단다.
거기서 살면 평생 노예꼴을 면치 못할 것 같았다. 초가삼간에 거적때기밖에 없어도 내 집이 제일이지.
4층까지 힘겹게 걸어 올라와 문을 열었다. 부처님 손바닥 같은 곳이라 굳이 불도 켜지 않는다. 페트병이 있을 법한 곳으로 손을 뻗는다. 힘들게 집에 오면 인지상정으로 물을 찾아 줘야지. 페트병 무게가 묵직한 것이 한 3일 정도는 거뜬해 보여 위안이 된다.
“쓰으발.”
육성으로 욕이 터져 나왔다. 어쩐지 묵직하더라. 흔들림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을 때 짐작했어야 하는데. 홍삼진액에 버금가는 니코틴 가래탕의 진득함이 씨발스럽다. 앞으로는 집에 오면 꼭 불부터 켜자.
니코틴 가래탕의 썩은 맛을 게우고 나서 시계를 보니 7시다.
띠링.
이 시간에 웬 문자야?
토요일 저녁 7시면 한참 핸드폰이 불나야 정상이겠지만, 이 회사 생활 3년을 거치다 보니 친구들도 거의 떨어져 나갔다. 주말이라도 좀 쉬고 싶은 맘에 한두 번 튕기다 보니 저들이 튕겨 나간 것이다.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데…….
-6 30 38 39 40 43
발신자를 알 수 없는 번호로부터 온 문자는 숫자만 덩그러니 박혀 있었다. 뭐야 이 스팸도 아닌 이상한 문자는.
개운하게 씻고 진한라면 하나 후루룩 마시고 나니 9시가 다 돼 간다. 황금 같은 토요일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다니, 원통하다 원통해.
학창 시절 딱히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순진했던 탓인지 철이 없었던 탓인지, 대학은 학문 연구의 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공부만 했다. 취업 안 되기로는 문사철 다음가는 사회학도가 졸업할 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 원.
막상 졸업을 앞두고 나니 할 것이 없어졌다. 난 늘 사업을 꿈꿨다. 그냥 흔한 사업이 아니라 아주 큰 사업! 회의실에 입장하면 계열사 사장들이 일제히 일어나 나를 맞이하는 광경. 꿈은 이 정도로 거창하게 꿔야지.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난 당장 먹고 살아야 했다. 한 푼이 아쉬웠다. 결국 이곳저곳 닥치는 대로 이력서 내다보니 걸린 곳이 지금 회사였다.
보험, 신용카드, 부동산 팔 것이 아니라면 갈 곳은 이곳뿐이었다. 자재를 담당하는 ‘관리직’이라는 말에 연봉 2천만 원짜리 노예 계약을 체결했다.
뒤늦게 깨달았다. 중소기업에는 ‘관리직’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장 가족이나 친인척이면 ‘관리직’이 가능하지만, 월급쟁이는 그럴 수 없었다. 중소기업에서 말하는 관리직은 야근 수당 주지 않기 위한 술책일 뿐이었다. 악명 높은 포괄 연봉제. 나쁜 놈들.
일 년을 미친 듯이 고생하니 오기가 생겼다. 오냐,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붙어 보자. 내가 여기서 뽑아먹을 것 다 뽑아서 회사 하나 차린다. 어디 두고 봐라. 오기가 생기니 버틸 힘이 생겼지만, 여전히 하루하루 지옥이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3년을 채웠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연봉이 2,000에서 2,250으로 살짝 늘어난 것 말고는 좋은 변화는 아니었다. 아직도 더 버텨야 하는 것일까? 회사 차리기는커녕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내 꿈을 과연 이룰 수 있을까? 로또나 되면 모를까.
그러고 보니 로또 할 시간이구나. 내 유일한 희망, 로또나 맞춰 보자.
“어? 이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