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12)
112 대규모 공습
1월은 이승연 도지사의 공장 방문으로 마무리됐다. 특별한 준비를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대로 간단한 청소와 도지사 방문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 정도로 응대를 끝냈다.
“도지사님, 바쁘신 가운데 저희 회사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덕분에 혁신산단이 빠르게 자리를 잡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히려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더 좋은 회사로 성장해서 고용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겠습니다.”
“사장님께서 어두운 곳에서 눈물 짓는 이들에게 빛을 안겨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지 못하는 일을 앞장서서 해 주신 것을 기억하겠습니다.”
적당한 덕담이 오가면서 분위기가 따뜻해졌다.
화기애애함은 공장 견학을 계기로 놀라움으로 바뀔 것이다. 아직은 허접한 중소기업이지만, 회사의 성장을 이끈 각종 신무기들은 어디 누구한테든 자랑할 만하다.
“변압기에서 전압을 바꿔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권선입니다. 이 권선은 지금까지 사람이 직접 한 층 한 층 감았어야 했는데, 저희는 기술 개발로 자동 제작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강소기업답습니다. 히든챔피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반응이 시원찮다. 변압기를 모르는 사람 앞에서 권선이니 코아니 떠들어 봐야 소용이 없구만. 이 바닥에 혁신을 가져온 자동권선기의 대단함을 널리 알리고 싶었는데, 쳇.
뜨뜻미지근한 공장 견학이 끝나고 사무동 강당에서 특강이 진행됐다.
‘얼음장 밑에서도 강물은 흐른다’라. 특강 주제치곤 참 운치 있는 말이다. 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란 말과 비슷한 뜻 같네.
군대식 문화는 정말 싫어하지만, 안 되면 되게 하라나 불가능은 없다 같은 강한 정신력은 살아가는 데 필요할 것이다.
정신력 기르게 한다고 극기 훈련 같은 말 같지도 않은 짓은 절대 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명사들 초청해서 좋은 강연 듣게 하는 것은 잘한 것 같다.
예상대로 주옥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여러분, 쟁기질할 때 뒤돌아보면 소가 날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소가 앞으로 가야 쟁기도 앞으로 가는 법이지요. 밭이 잘 갈렸나 뒤돌아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는 길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소가 앞으로 가겠습니까? 소가 날뛰는 통에 쟁기를 놓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
“늘 인사를 공손히 해야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자는 의미겠지요. 그리고 나를 최대한 낮춰야 합니다.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사람이 올챙이 적 경험을 잊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상대를 최대한 높입니다. 나보다 앞서서 길을 걷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나 자신도 그 길을 걸을 수 있겠지요?”
“…….”
“지름길을 안다면 좋겠지만, 모른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큰길로 가면 됩니다. 큰길을 모르거든 직진하세요.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봅시다. 머릿속에 내가 가야 할 길이 그려질 것입니다.”
이건 전에 했던 말이군. 명언 리바이벌도 하나 보네. 그나저나 이리 좋은 말들을 하는데 졸고 있는 저놈들은 대체 뭐야! 수요일마다 열리는 군 정훈 교육도 아니구만.
1시간 가깝게 진행된 특강이 끝났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열화와 같은 박수 세례를 보냈다. 나 역시 자동으로 물개 박수가 나왔다.
“도지사님, 감사합니다. 우리 직원들, 그중에서도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하려는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됐을 것 같습니다.”
“직원들 눈빛이 살아 있는 것이 프라임일렉트릭의 밝은 미래를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졸던 이들도 보이긴 했지만요. 하하.”
“늘 좋은 말씀만 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 그럼 식사하러 가시죠. 요청하신 대로 저희가 먹던 그대로 준비했습니다. 불편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1인분에 5천 원짜리 한정식 뷔페가 성대하게 차려졌다.
구내식당 만들겠다고 생각만 하고 자꾸 미루고 있다. 큰일 처리하는데 바쁘다는 핑계지 뭐. 사장이면 큰일도 해야 하지만, 화장실 막힌 변기 뚫는 것 같은 사소한 일도 잘 처리해야 하는 법이다. 할 것 참 많네.
밥 먹는 동안 별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왜 하필 이때 강연을 오겠다고 했는지 궁금했지만, 그냥 조용히 있었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는 등 수행원도 많은데, 괜한 오해 받을 짓은 하지 말아야지.
“도지사님,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만 감사하단 소리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의례적인 멘트이기도 하지만, 진짜로 고마워서 한 소리이기도 했다.
“나주 발전에 크게 공헌하는데 이 정도도 못하겠습니까? 하하. 변압기 회사들의 나주 이전에 대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도정이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 수 있도록 고민하겠습니다.”
좋네, 좋아. 선점 효과랄까? 조합 회원사들 나주로 이전하는 건 강호창 사장이 꺼낸 얘기인데, 소문이 돌고 돌아 내가 주도한 것처럼 포장이 된 모양이다.
열심히 일하면 이렇게 뜻하지 않은 운이 따른다. 더 열심히 일하자.
그렇게 나름 다이내믹했던 1월이 지나가고, 1년 중 가장 짧은, 그래서 무서운 2월이 찾아왔다.
2월도 여전히 바쁘다. 내가 큼지막하게 일을 벌려 놨고, 직원들은 부지런히 수습하고 있다. 수습이 다 될 즈음 또 일을 벌여야 한다. 사업가의 숙명이겠지.
누군가는 그러더라. 사업은 멋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깡으로 버티며 하는 것이라고, 사업은 지치면 지는 것이라고. 마라톤과 같은 사업에서 쉴 수는 없지.
현장 돌면서 이상 없는지 지켜보는데, 덕준이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현장에 있는 것 알면서 뭐 급하다고 전화야?”
“사장님아. 빨리 사무실로 복귀! 큰일 났어!”
쉼 없이 달리겠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쉴 틈을 안 주네.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왜왜? 무슨 일인데 그래?”
“대한전력 발주 나왔는데, 이거 봐 봐. 장난 아니야.”
“많이 나왔어? 내가 2월에는 많이 나올 거라고 얘기했잖아.”
“그냥 많이 정도가 아니야. 다 해서 8,300대 나왔어!”
씨발. 나쁜 대한전력 자재과 놈들. 한 납기에 8,300대 쏟아 내면 어쩌란 말이야! 이거 이러다 이번 달에만 만 대 넘게 나오겠네.
“와. 미치겠네. 이거 진짜 대규모 공습이네. 우리 한 달 캐파가 8천 대 겨우 넘는데, 한 납기에 8,300대면 우리보고 죽으란 소리야?”
캐파를 월 1만 대로 키우는 작업에 착수하긴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정신없이 일을 끌어 온 내 잘못이다. 2월에 발주가 엄청나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해 놓고, 그걸 그저 당해야 한다니.
“완성품 재고가 2,300대 정도 있긴 한데, 18일 발주도 있잖아?”
“이건 대놓고 연체료 내놓으란 소리네. 일단 신입으로 충원한 직원들 교육 미루고, 급한 대로 현장 죄다 투입시키자. 너도 일단 영업 인수인계 천천히 하고 자재 공급 차질 없도록 신경 쓰고!”
“오케바리! 지독한 놈들 진짜.”
한 달 꼬박 만들어도 8천 대 나오는 판인데, 한 번에 8,300대라. 올해 2월이 29일까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다음 주는 설날이란 말이다!
현장에 달려가 급하게 공장장을 찾았다. 공장장 얼굴이 깜깜하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네.
“사장님, 마침 잘 왔네. 방금 한 부장한테 문자 받았어. 대한전력 놈들 매년 반복이구만.”
“공장장 보시기에, 이거 답 없죠?”
“대한전력 놈들이 우리보고 죽으라고 이러는데 죽는 수 말고 더 있나? 죽었다 생각하고 공장 풀로 돌려야지. 저번 달에 재고 좀 만들어 놨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재고 빼도 6천 대다. 6천 대라도 지금까지 나온 11번 발주 중에서 최대치다. 2주 뒤에 나올 2차 발주는 생각하기도 싫다. 먹다 지쳐 토할 지경인데도 계속 먹어야 하는 상황. 닝기리.
“공장장님. 이번 설은 어쩔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일요일하고 설 당일만 쉬는 것으로 하죠.”
“별수 없지. 빨간 날은 쉬고 싶지만, 이거 아무리 계산해 봐도 답이 안 나오네. 주말도 없이 풀로 해도 모자랄 판이니 원. 직원들 속상하지 않게 잘 달래 줘야지.”
“설 연휴는 당연히 1.5배 지급할 것이고, 연휴 이틀 못 쉰 것은 연차 늘려 주는 걸로 하겠습니다. 공장장님이 잘 얘기해 주세요.”
대한전력 놈들 우리 등골 빼먹으려고 작정을 했다. 연체료라고 해 봐야 하루에 200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 아주 푼돈 같지만, 연체 쌓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발주는 2주마다 계속 나오지, 직원들은 죽어 나가지, 회사는 인건비 부담에 쓰러진다.
납품하고 나면 무려 94억 원이 한 방에 들어오지만, 수익은 그리 좋지 않다. 우리 회사야 마진이 워낙 좋기 때문에 큰 타격이 없지만, 여타 회사들은 확 오르는 인건비 때문에 재미없을 것이다. 거기에 연체료까지 물리면 아주 울상이겠지.
“공장장님. 엄청 바쁠 것이긴 한데, 그래도 설비 제작은 하던 일 계속하게 해 주세요. 거기도 급합니다.”
“아휴, 당연하지. 거기 일 쌓인 것 보면 나는 무서워서 쳐다보기도 싫어. 허허. 우리 매년 이맘때마다 죽어났으니까, 이번에도 한번 잘 버텨 보자고. 이번엔 직원들 간식비 없나?”
“하하. 급하게 오느라고 깜박했습니다. 아니다. 제 카드 드릴게요. 공장장님이 맘껏 시키고 결제하세요.”
“넣어 두게. 그냥 해 본 소리네. 나도 이제 역대 연봉자인데, 내가 그 정도도 못하겠나? 하하.”
우리 공장장한테 연봉 1억 주기로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저 얼굴에 역대 연봉자라는 자부심이 가득하네. 월급쟁이의 자존심은 연봉이지!
다음 행선지로 가려는데, 주머니가 요란하게 흔들린다. 전화 많이도 오네. 박준희 사장?
“박 사장님! 어인 일이십니까?”
“꼭 일이 있어야 전화해요?”
저번에 누나라고 불렀다고 까칠하게 나오시네.
“하하. 농담이구요. 이번에 발주 몇 대 나왔어요?”
“대한전력에서 설 선물 아주 화끈하게 줬습니다. 올해 설은 물 건너갔습니다.”
“또 많이 나왔어요?”
“8,300대 나왔습니다. 저번 발주에서 거의 3배 가까이네요. 이번 달은 죽었다 생각하렵니다.”
“8,300대요? 어휴. 사장님 회사가 그만큼 나왔으면, 우리는 천 대 넘겠네요. 진짜 대한전력 왜 그런대요? 아니, 2월 달 짧은 거 알고 설까지 껴 있는 거 뻔히 알면서 왜 매번 그래요!”
나한테 그러지 말고 저기 혁신도시에 있는 높은 빌딩 가서 얘기하세요. 저도 죽겠어요.
“이달엔 주말도 없이 계속 일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설에는 안 쉬세요?”
“일월 이틀만 쉬기로 했어요. 대한전력 진짜 지독하네요. 하하.”
“그럼 잘됐네요. 우리 공장 잘 짓고 있나 겸사겸사 나주 내려가거든요. 일요일에 시간 좀 내주세요. 사장님 맛있는 것 사 드릴게요.”
“제가 뭐 이쁜 짓 했다고 그러십니까?”
“예전 같았으면 한 납기에 천 대 나오면 백 프로 연체 먹었을 텐데, 이제는 자동권선기 있잖아요. 진짜 볼 때마다 놀라워요.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더라니까요.”
다 해서 30억 원에 넘긴 자동권선기 5대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모양이다. 그럼, 그게 어떤 물건인데! 이 업계를 뒤흔들 게임체인저이지.
조합 회원사에 싹 팔고 나면, 중전기조합 회원사들은 방적 작업 기계화로 일자리를 잃어버린 19세기 영국 노동자 신세가 될 것이다.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해 보시든지. 우리 조합 회원사들은 직원들 월급 풍족하게 주면서 니나노하고 있을 테니까.
“당분간 추가 주문은 못 받습니다. 설비 만드느라 우리 직원들 쓰러지기 직전입니다.”
“하하. 맘 같아서는 더 사고 싶은데, 저도 공장 새로 짓느라 돈이 말라 가네요. 그래도 사장님 맛있는 것 사 드릴 돈은 있으니까 일요일 잊지 마세요.”
“네, 누나.”
“아이 진짜! 뭐예요!”
화내는 박 사장 얼굴이 홀로그램처럼 펼쳐졌다. 최유리가 매력 있는 일반인이라면, 박 사장은 예쁜 연예인이란 말이지. 잡생각 그만!
지금 그런 생각이나 때가 아니다. 대한전력이 연체료 뜯어내겠다고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으니, 제대로 한판 붙어야지. 2월은 아예 회사에서 살아야겠다. 대한전력 이놈들, 다 덤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