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14)
214 술의 위력
술이 술을 마신다는 말이 있다. 그 말 믿고 마시다 보면 염라대왕에게 세배하게 될 것이다.
겨우 잠재운 중국 독주의 기운이 홀짝홀짝 마신 맥주의 도움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슬슬 술자리를 파할 때다.
“자, 내일도 일정이 빡빡하니까,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일어날까요?”
맥주잔을 비워 낸 준희 누나가 이제 시작이라는 표정이다. 옆에 앉은 유민희도 비슷한 기운을 뿜긴다. 무서운 사람들일세.
“아직 술이 이만큼이나 남았는데요? 10시밖에 안 됐는데 그런 나약한 소리 하는 것 아니에요!”
“맞아요. 이제 시작이죠. 사장님, 그런 의미에서 짠 한번 해요.”
칭다오 자매의 건배가 이어졌다. 몇 번 안 봤지만 베프처럼 구는 두 사람. 사교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술에 한계가 와서 그렇지, 할 얘기는 많다. 민희 말고 누나에게.
“금성전기 올해 매출 얼마쯤 했어요? 한 500억 정도 됩니까?”
“고작 그거 해서 어디 명함이라도 내밀겠어요?”
누나가 자신감 가득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올해도 꽤 선전한 모양이다.
작년까지 금성전기 성장이 누나의 맹활약 때문이었다면, 올해 성장은 내 역할이 큰 몫을 했다고 자부한다. 누나가 서로 도우며 살자고 했는데, 어째 내가 더 많이 도와준 것 같다. 가만 보면 참 노련한 사람이야.
“놀라지 마세요. 벌써 550억 넘었어요. 600억 못 넘긴 게 아쉽긴 한데, 내년에 부지런히 해야죠. 매출은 크게 올랐는데 영업이익이 많이 아쉬워요. 수출 때문인데, 뭐 학습비용이라고 생각해야죠.”
금성전기가 작년에 매출 350억 찍었으니 엄청난 성장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 비추니 잔잔해 보인다. 놀라지 말라고 해서 하나도 안 놀랬더니 누나가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별거 아니라는 표정이네요? 프라임일렉트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가요? 하하.”
“아닙니다. 와우! 정말 놀라울 정도로 고성장이네요. 사장님이 회사 맡고 나서는 매년 어닝 서프라이즈 아닙니까!”
“에이, 진짜!”
장단 맞춰 주고자 오바하긴 했지만, 550억,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괜히 질투심 유발하지 말자. 금성전기 매출은 우리 회사 영업이익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말자.
“사장님, 저는 우리 회사 들어와서 변압기 회사는 다 비슷한 줄 알았어요. 근데 알고 보니까 우리 회사가 엄청난 거였네요?”
민희가 틈을 노려 끼어들었다. 우리 회사 대단한 것이야 간첩도 아는 것이니 굳이 강조할 필요 없는데…….
민희의 호기심 유발에 누나가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프라임일렉트릭은 올해 실적이 어떻게 돼요? 연초에 매출 천억 넘기는 걸로 목표 잡았다고 했는데, 목표 달성했어요?”
“저희 사장님께서 매출 천억 목표라고 하셨어요? 에이, 엄살이 너무 심하셨다.”
“하하. 천억이 엄살일 정도예요?”
민희가 나와 누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회사 자랑에 나섰다.
“사장님, 우리 회사 올해 매출 2천억도 가뿐히 넘지 않았어요? 김 대리님이 저번 달인가에 2천억 넘었다고 하셨는데…….”
민희 녀석.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서 그런지, 누나가 친하다고 해 줘서 그런지 말이 많군. 묘하게 누나를 자극한다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이었으면 싶다.
“어머나. 예상은 하긴 했는데, 그렇게 많이 했어요?”
누나는 능숙하게 마이크를 나에게 넘겼다. 나와 대화에만 집중하겠다는 느낌도 착각이겠지?
“네, 뭐. 그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조합 회원사들이 자재 구입해 준 것이 컸죠. 수출도 큰 도움이 됐고.”
“대단하네요. 내년에 수출 본격적으로 하면 더 커지겠어요! 그러다 변압기 못 만들게 되는 거 아니에요? 참, 회사 여러 개로 나눴죠?”
“네, 맞습니다. 대한전력 물량 포기하긴 너무 아깝죠.”
“이제 프라임일렉트릭 따라잡을 회사는 없겠네요. 오히려 대기업들이 벌벌 떨 것 같은데요? 하하.”
“금성전기도 그렇고, 우리 조합 회원사들이 많이 도와준 결관데, 다 같이 잘돼야죠. 앞으로 많이 도와 드릴 테니까 사장님도 많이 도와주세요. 하하.”
습관적으로 겸손 떨며 대답했지만, 내 꿈은 아직 현실과 큰 괴리가 있다. 그걸 좁히기 위해서는 현재에 안주할 수 없다.
변압기 업계 절대 강자로 대기업 빅3가 있다. 모기업도 빵빵하고, 전 세계를 들쑤시며 변압기 시원하게 팔아먹는 회사들이다.
회사 세울 때 그 정도는 해 보겠다는 포부를 가졌었다. 막상 사업 시작하니, 그 포부가 말 같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연간 3~4조 매출을 올리는 빅3는 넘사벽이다.
빅3 따라잡는 것은 무리여도, 빅3 밑까지 올라가는 것은 말이 될 것 같다. 덩치를 키우며 빅4로 불리길 원하는 회사를 따라잡는 것이 목표다.
거기 매출이 8천억 정도랬지? 몇 년만 더 부지런히 달리면 되지 않겠어? 올해도 달렸고, 내년에도 달릴 각오를 하고 있는데, 묘한 분위기가 오감을 타고 들었다.
“저희 사장님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진짜 우리 회사 들어오길 잘한 것 같아요.”
“좋은 회사니까 오래오래 다니세요. 지 사장님이 허당 같아 보여도 회사 경영하는 거 보면 무서울 정도예요. 저런 사장이 또 있을까 싶어요.”
알코올 흡수가 한계치에 도달해 눈치 보며 맥주 홀짝이고 있으니, 민희가 대화 주제를 바꾸며 쑥 들어왔다. 다시 나를 구박하려는 둘의 만담이 시작되겠군.
“잘 아시네요? 저희 사장님이 일하실 때는 정말 딱 부러지시는데, 평소엔 허당 캐릭터라 맨날 직원들한테 구박 받고 그래요. 헤헤.”
두 여인의 만담이 시작됐으니, 잠자코 맥주 마시는 척이나 하자.
“직원들이 구박도 해요? 하하. 아까도 민희 씨한테 우리 민희라고 하는 것 보니까 직원들이랑 친하게 지내나 보네요. 뭐라고 구박해요?”
“연애 안 하냐고요. 회사 안 나와도 되니까 제발 연애하라고 난리예요. 헤헤.”
“아휴. 제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닌 것 같네요.”
나를 공격하겠다고 장단을 맞추다 누나가 급히 발을 뺐다. 연애 안 하냐는 구박은 나보다 누나가 더 받겠지.
눈치 빠른 민희가 웬일로 눈치 없이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저희 사장님 나이에 20대면 최고 아니에요? 그쳐? 근데 꿈쩍도 안 해요. 눈이 높은 건지, 여자 보는 눈이 없는 건지…….”
“하하. 눈이 높은 게 아닐까요?”
“저희들끼리는 사장님이 여자 보는 눈이 없다고 그러거든요.”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민희야, 1절만 하자. 오케이?”
“이것 보세요. 저러신다니까요.”
“하하. 뭐 나이는 숫자일 뿐이죠. 자신과 잘 맞는 사람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신중하게 그런 사람을 찾는 과정이겠죠.”
건너편의 누나 자리에서 유리잔을 와그작 씹어 먹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내가 뭐라고, 이리도 안줏감으로 삼는지 원.
“민희야. 나나 박 사장님이나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얘기 들으니까 너까지 보탤 필요 없다. 이미 말한 것이야 어쩔 수 없고, 1절에서 끝내자고.”
“네에.”
그래도 눈치가 있는 녀석인지라, 달라진 목소리 톤만 듣고도 바로 정신을 차려 준다. 노련한 누나가 바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민희 씨는 회사에 또래들이 많아서 회사 다닐 맛 나겠어요. 어때요?”
“네, 친구가 있어서 좋아요. 사장님도 잘해 주시고, 다른 직원들하고도 친하게 잘 지내고요.”
“그게 되게 좋은 거예요. 집보다 더 오래 있는 곳이 회산데, 서로 맘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또래 직원들 있다는 건 복 받은 거예요. 다른 회사들은 나이 든 사람이 워낙 많아서 젊은 직원들이 오래 못 버티거든요.”
“우리 회사는 연로하신 직원님들도 젊은 직원들이랑 잘 어울립니다. 하하. 박 사장님은 회사 처음 와서 힘드셨죠?”
화제를 전환하려는 누나의 뜻을 이어받아 냉큼 말을 받았다.
말동무 하나 없었던 태양전기 시절의 끔찍한 기억을 직원들에게 안겨 주기 싫었다. 그래서 직원 뽑을 때도 연령대 맞추는 것에 꽤 신경을 썼다. 다행히 그 효과가 나타났고, 이렇게 칭찬까지 받는다.
“우리 회사 알잖아요? 창업주 딸이라고 해서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었고, 또래도 없었고. 정신도 없고 신경 쓸 것도 많은데 힘든 것 내색도 못했죠. 그때 지 사장님 스카우트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요. 하하.”
“어? 두 분이 예전부터 아시는 사이였어요? 어쩐지 되게 친해 보이던데, 그래서였군요?”
“민희 씨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지 사장님이 업계에서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났었어요. 지금 회사 차리기 전이니까 한 4년 됐죠? 그때 마침 자재 일 맡을 직원이 필요해서 데려오고 싶었는데…… 뭐 잘 안 됐죠.”
내가 너보다 오래 알았던 사이니까 잠자코 있으란 건가? 민희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사장님께서 저희 사장님 스카우트했으면 저는 여기 없을 수도 있었겠네요? 좋게 생각하면 잘된 일이었네요.”
“못 데려온 것이 아쉽긴 한데, 지 사장님한테는 스카우트 못한 것이 결과적으론 잘된 일이죠. 그땐 제가 힘이 없을 때여서 직원도 함부로 못 뽑았어요. 하하. 이제는 그런 일 없도록 해야죠.”
“지금이라도 스카우트 하시려고요? 헤헤.”
“글쎄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두 사람의 대화가 날카롭게 들리는 것은 술 때문이겠지? 그래, 항상 술이 문제야.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맥주의 치명적인 단점 때문일 테지.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민희에게 구찌를 놨다.
“너 이런 자리에선 얌전히 있더니, 오늘은 구강 근육이 좀 풀린 모양이다?”
“술자리가 그렇죠. 저 그래도 사장님 지시사항 지키려고 선 안 넘었어요. 그렇지 않아요? 전 사장님 말씀 아주 잘 듣습니다. 헤헤.”
선은 안 넘었지만,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면서 신경 쓰게 만드는 이 기분은 뭘까? 민희가 잽싸게 화제를 돌렸다. 그런 빠른 눈치를 일하는 데 성실히 쓰길 바랄 뿐이다.
“사장님! 아까 저한테 빚진 거 아시죠?”
“유해 발굴? 그래그래, 그거 잘 얘기했어. 상점 1점 줄게.”
“유후, 그럼 상점 총 3점 되겠습니다. 근데 저번에도 그러시더니 왜 그러시는 거예요? 뭐 얘기하면 안 될 것이라도 있어요? 저번부터 여쭤 보고 싶었는데 계속 까먹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민희랑 사전에 치밀하게 입을 맞출 걸 그랬다. 구라를 구라로 덮어야 하는 상황. 애드립만이 살길이다.
“그냥 계약 따겠다고 냅다 지른 건데, 너 같으면 그렇구나 하고 믿겠니? 그럴 땐 대충 그럴싸하게 말하면서 어물쩍 넘어가는 거지.”
“우와! 그냥 지른 건데 얻어걸린 거예요? 사장님 장난 아니에요! 진짜 신내림 받으신 거 아니에요? 사장님께서 따로 조사하신 게 있는 줄 알았어요. 우와, 진짜 장난 아니네요. 참! 저 상점 주신 거 잊지 마세요!”
문자교 신도라서 다행이다. 나라면 그게 말이 되느냐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캐물었을 텐데, 민희는 감탄사만 연발하며 스무스하게 넘어가 준다.
문자님의 정체를 지키는 것이 힘겹다. 문자님 없이도 잘나가는 회사. 그것이 문자님을 지키는 길일 테다.
민희가 벌떡 일어나더니 분주히 움직였다. 휘청거리는 누나에게 달려가 부축한다.
우리 누나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좀 전에 무리해서 마신다 싶더니만.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한순간에 가게 만드는 것이 술의 위력일지니.
“민희 씨 고마워요. 아휴, 갑자기 확 올라오네요. 아까 정수 씨 말대로 파하고 일어날 걸 그랬네요.”
“계약 잘돼서 긴장도 풀려서 그런가 봅니다. 내일 또 계약하러 가야 하니까 정리하고 들어가죠. 민희야, 박 사장님 좀 잘 부탁해.”
“넵! 전 팔팔합니다. 잘 모시고 들어가겠습니다. 사장님도 굿나잇하세요.”
가볍게 시작한 술자리가 묵직하게 끝났다. 억지로 무리해서 마실 이유도 없는 편한 자리였는데, 누나는 왜 저리 들이부었나 몰라. 기분 좋게 마셨는데 왠지 모르게 거시기한 이 느낌은 뭘까?
그 느낌을 해석하지 못한 채 날이 밝았고, 서둘러 전장특수변압기로 몸을 옮겼다. 빡빡한 일정 탓에 한시도 헛되이 보낼 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