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15)
215 포옹과 악수
전장특수변압기도 전날 들린 난징변압기처럼 분주함이 가득했다. 중국 변압기 회사도 우리나라처럼 겨울이 바쁜 모양이다. 이 추위가 물러나고 봄이 찾아오면 변압기 짝짝 빠져나가리라.
쳔즈쉬앤 종징리가 육중하고 포마드 바른 머리로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나와 눈이 마주쳤으니 나한테 오겠지? 손을 비비며 악수 준비를 했다.
악수는 개뿔. 바로 껴안아 버리는 쳔 종. 보자마자 껴안을 정도로 내가 그리 그리웠나?
“인사 한번 뜨끈뜨끈하네요. 하하. 잘 지내셨습니까?”
“호호. 지 사장님 오시기를 엄청 기다린 모양이에요. 덕분에 사업도 잘되고 있다네요. 요즘 아버지가 기운이 예전 같지 않게 넘쳐 난대요.”
“원하는 선물은 아니지만, 좋은 소식 들고 왔다고 전해 주시죠.”
에이전트 케이의 말을 전해 들은 쳔 종이 더 활짝 펴진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어깨도 부여 만진다. 아휴, 아파라. 살살 좀 합시다.
“자, 쌀쌀한데,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선물을 꺼냈다. 협상 전에 몸을 좀 녹여 줘야지.
“쳔 종 조부께서 묻혀 계시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국군 유해발굴단이 내년부터 발굴 조사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여기 공문이 있으니 확인해 보시죠. 이게 절차가 엄청 오래 걸리는 것인데, 제가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성사시킨 것입니다.”
유학, 유교가 태동한 곳이지만, 중국은 우리나라처럼 조상, 제사에 대한 강박이 진하지 않다. 옛것이라면 다 때려 부수고 불태워 버린 문화대혁명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고, 종교를 아편으로 여긴 공산주의 체제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돈 좀 만져 본 사람들은 가문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한다. 중국에서 살았던 민희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뭐. 쳔 종에게 본 적도 없는 조부의 유해를 보내 주겠다고 한 것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빠르면 내년 하반기 중으로 유전자 확인까지 끝날 것이고, 그럼 바로 유해 송환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건 제가 확실하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쳔 종이 손이 으스러지도록 세게 잡았다. 이건 기선제압용 악수가 아니라 정말 고맙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도 선물 보따리를 풀어 보시지?
향긋한 녹차 한 모금 마시고 있으니, 에이전트 케이가 쳔 종의 선물 보따리를 통역해 풀어냈다.
“쳔 종이 제안하는 것은 전과 그대로입니다. 솔직히 물가도 올랐으니까 물가상승률만큼은 단가를 올려 보려고 했는데, 아시잖아요? 이 사람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에요. 호호. 그건 사장님들께서 양해해 주세요.”
“단가 인상은 기대도 안 했습니다. 연간 계약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여기 쓰여 있는 그대로입니까?”
“네, 맞아요. 총 3만 9,800대, 2억 4천만 위안이니까 대략 400억 원 정도 하겠네요.”
“402억 원이네요.”
“호호. 사장님은 머리도 좋으셔. 여기가 난징변압기보다 규모가 작은데, 이 정도 규모로 계약하자고 한 건 쳔 종이 꽤 신경 쓴 것이에요. 그리고 삼상변압기가 많아서 더 괜찮을 수도 있습니다.”
대충 계산해 보니 주상과 삼상 비중이 6 대 4 정도이다. 우리 누나 엄청 좋아하겠군.
“박 사장님, 어떻습니까?”
“네, 저는 좋습니다. 다만, 주상변압기가 3만 대 정도밖에 안 되는데, 생각보다 많이 적네요. 저번 방문 때는 월 5천 대는 거뜬하다고 하셨는데요.”
오호.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인가? 마진이야 민수용 삼상변압기가 훨씬 좋지만, 만들기는 주상변압기가 압도적으로 편하다. 나로서는 한 대라도 더 만들 수 있는 주상이 좋다. 그걸 알아주는 누나가 한마디 덧붙여 주는군.
에이전트 케이가 우리 쪽으로 몸을 수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말해도 못 알아먹을 건데, 그냥 얘기하지.
“저 사람이 허풍이 좀 세다고 했잖아요. 난징보다 작은 회산데, 월 5천 대는 어림도 없죠. 아마 전력청 계약 생각하고 그렇게 얘기했을 텐데, 계약이 잘 안 됐어요. 단독으로 못 들어가고 컨소시엄으로 들어가서 몇 대 못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여쭤 봐 주세요.”
쳔 종과 에이전트 케이가 한참을 떠들었다. 여지가 있는 모양이지? 길어진 대화에 궁금함을 참기 어려워졌다. 옆에 앉은 민희 귀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지금 저 두 사람 뭐라고 하는 거야?”
“아, 김 사장님이 물량 더 없냐고 하니까, 쳔 종징리가 다른 업체 것 가져올 수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자기도 어느 정도 내놔야 해서 지금 가격으론 안 된다고 하네요. 김 사장님은 품질 좋으니까 가격 생각하지 말라고 그러고. 뭐 그런 얘기가 오가는 것 같아요.”
민희도 내 귀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었다. 아휴, 닭살 돋아. 그냥 궁금해도 참을 걸 그랬네. 닭살이 가라앉기도 전에 에이전트 케이가 쳔 종과 대화를 끝내고 결과를 알려 왔다.
“쳔 종이 주상변압기 대수를 늘릴 수 있대요. 15,000대에서 2만 대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는데, 문제는 지금 단가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물량 더 받겠다면 키로당 85위안은 돼야 한답니다. 전체 물량 다요. 쳔 종 참 징글징글하죠?”
키로당 85위안이면, 50kVA가 72만 2,000원이다. 지금 77만 원에 공급하고 있으니 5만 원이나 빠진다. 나야 그래도 남긴 하지만, 금성전기는 무조건 손해일 것이다.
“박 사장님은 키로당 85위안 안 되죠?”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단가예요. 90위안이면 모를까, 손해 보면서까지 물량 더 받을 이유는 없죠.”
“아니면, 우리끼리 따로 얘기를 더 해 보시죠?”
누나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물량을 더 줄 수 있다는데, 단가 때문에 그냥 보내기는 아깝다.
“정수 씨, 더 받고 싶어요? 참, 담배 피우고 싶으면 피워요. 얼굴 보니까 피우고 싶어 하는 얼굴 같네요. 이쪽으로 연기만 내뿜지 말고요.”
니코틴 갈망을 캐치하고는 흡연을 권하는 누나가 더 예뻐 보인다. 배려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것인가!
“90위안이면 지금 단가랑 거의 차이가 없어서 쳔 종이 당연히 안 받을 거고, 87이나 88위안 정도면 어때요? 지금보다 3만 원 정도 빠지는 거예요.”
“어휴, 3만 원 빠지면 잘해야 본전이에요. 정수 씨도 알잖아요. 지금 가격도 저희 얼마 안 남아요.”
울상을 짓는 표정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안아 주고 싶었다. 어쩜 저런 표정이 나오지? 일에 집중해야 하는데,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88위안이면 환율 170으로 계산해서 50키로가 74만 8,000원이거든요? 여기에 리베이트 2프로로 내리면 지금보다 17,000원 정도 빠지는데, 어때요?”
“정수 씨야 단가나 캐파나 여력이 있으니까 더 하면 좋긴 하겠죠. 17,000원이라…… 그럼, 거기에 추가되는 것만 그 조건으로 하자고 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기존 물량은 기존 단가로 가고 말이에요.”
“저야 누나만 오케이해 주면 오케이죠. 담배 다 피웠는데 들어가죠. 고마워요, 담배 피우게 해 줘서.”
“뭘 그런 걸로요. 저는 그런 걸로 뭐라 안 하니까 피우고 싶으면 언제든 피워요. 끊으면 더 좋겠지만. 하하.”
‘뭘 그런 걸로요’란 말이 가슴을 흔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느꼈다. 누나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 버렸다는 것을 중국에 와서도 확인한 것일 수도…….
“얘기 잘하셨어요?”
에이전트 케이에게 우리의 조건을 제시했다. 내가 오늘 소소한 선물을 가져왔음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김 사장님. 잘 설득해 주세요. 물량 많아지면 사장님 가져갈 몫도 더 커지는 것 아시죠?”
“그럼요. 근데 하필 쳔 종하고 협상을 맡기는 거예요. 호호.”
쳔 종이 우리 조건을 받지 않으면 굳이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100억 정도의 매출이 아쉽긴 하지만, 마진 떨궈 가면서 매출에 목맬 필요 없지.
쳔 종과 에이전트 케이의 대화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장님. 쳔 종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네요. 키로당 88위안에 리베이트는 2프로. 이 조건은 추가되는 물량에만 적용하는 걸로요. 대신 유해 송환 좀 잘 챙겨 달라고 하네요. 선물이 선물값 했네요. 호호.”
“잘됐습니다. 물량은 여기서 확정되지 않은 모양이죠?”
“네, 그건 차후에 확정되면 말씀드릴게요. 2만 대 얘기했는데,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아시죠? 쳔 종 저 사람 허세가 좀 많은 거?”
버릇처럼 감사하다고 할 뻔했다. 가격을 또 낮춰 주면 쳔 종이 감사할 일이지.
어쨌든 내 선물 덕에 우리 직원들 내년에도 단내 나는 물량 뽑기 하게 생겼다. 시원하게만 뽑아 다오. 시원하게 쏠 테니까.
이후 절차는 순조로웠다. 식어 버린 녹차 마시며 계약서에 사인을 갈겼다.
두 번의 사인으로 이틀 동안 879억 원 어치에 달하는 8만 8,700대를 입도선매했다. 아직 파종도 안 했는데, 대한전력과 수출로만 1,500억 원 매출을 확정지어 버렸다. 내년 매출 3천억 돌파도 가능하겠구나! 크으, 취한다!
다시 한번 세 사장이 서로 손을 마주 잡으며, 희망찬 내일을 약속했다.
중국에서 마지막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시간이 빠듯해 화려한 오찬을 즐길 시간이 없다. 꼭 이렇게 계약 체결하고 마음 후련해지고 나면, 출장을 짧게 잡은 것이 후회된다.
다음에는 넉넉한 일정으로 놀러 와서 프랑스와 함께 요리 선진국이라는 중국의 기상천외한 요리들을 다 맛보리라.
“먼저 들어가세요. 담배 한 대만 피우고 들어갈게요.”
고민할 때 피우는 담배도 좋고, 일 다 마치고 피우는 담배도 좋다. 이러니 담배를 못 끊지.
민희가 일행을 따라 들어가지 않고 내 옆에서 알짱거린다. 저기에 대포 카메라 하나 쥐여 주면 아이돌 따라다니는 찍사라고 해도 믿겠군.
“민희, 넌 안 들어가?”
“사장님이랑 같이 들어가려고요.”
“그래. 있는 김에 뭐 느낀 것 있으면 얘기해 봐.”
웬일로 구박 안 하냐는 표정이다. 짜식.
“천 종징리요. 전엔 엄청 꼬장꼬장하고 그랬단 말이에요. 근데 오늘 보니까 전보다 확실히 좀 나아진 것 같아요.”
“나도 그런 느낌 같더라. 말투나 말하는 것은 어땠어?”
“제가 기억력이 좀 딸리거든요? 근데 천 종징리는 확실히 기억해요. 저번에 봤을 때 좀 짜증 나게 했잖아요? 말투도 의심 가득하고. 근데 오늘은 뭐랄까, 약간 친구 대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이게 말로 설명하기 그런데, 그런 게 있어요. 암튼 전이랑 완전 달라졌어요.”
언어를 안다는 것은 말에 담긴 뉘앙스를 안다는 것이겠지? 중국어 능통자 민희를 데리고 온 것은 잘한 선택이다.
“천 종 할아버지 유해 송환해 주면 완전 껌뻑 죽겠네. 여튼 고생했어. 상점 1점.”
“유후. 저 상점 4점이나 있는데 이거 뭐에 쓸 수 있어요? 포옹권 그런 걸로 바꿀 수 있어요?”
“또 시작이네. 담배 다 피웠으니까 들어가자.”
기억력 없다는 녀석이 상점 4점인 것은 잘도 기억하네.
짧은 오찬은 더없이 화기애애했다.
좋은 품질의 변압기를 대량으로 확보해 회사 성장의 꿈에 부푼 쳔 종. 440억 원 매출을 확보했고 마진이 좋은 삼상변압기도 두둑하게 얻어 낸 준희 누나. 수수료로만 17억 원가량 벌게 된 에이전트 케이. 상점 4점 받은 민희까지. 모두가 기분 좋은 표정들이다.
이 기분으로 시원하게 마사지도 받고 관광도 했으면 좋으련만, 시간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비행기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푸동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아휴, 좀 여유 있게 오라니깐요. 1박 2일 너무 짧잖아요.”
“그러게요. 막상 시간 내려니까 쉽지가 않네요. 정말 다음에 올 때는 놀겠다 생각하고 오겠습니다.”
“꼭 그렇게 해요. 저 아시죠? 가이드 알바도 했던 거? 다음엔 관광 제대로 시켜 드릴게요.”
에이전트 케이의 손을 꽉 잡았다. 처음에야 어떤 사람인지 몰랐지만, 지금 보니 좋은 사람이더라. 돈 벌게 해 주는 사람은 무조건 고마운 사람이지. 그 마음을 담아 손을 한참을 잡았다.
그렇게 1박 2일의 중국 출장이 끝났다.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얻어 냈다.
변압기 업계 빅4가 되기 위한 여정이 멀고 험하지만, 여러 유혹을 이겨 내며 뚜벅뚜벅 걷다 보면 모르도르 운명의 산에 도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