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41)
041 신탁
박준희 사장 눈이 마구 불타올랐다. 오늘 당장 자동권선기 한 대 뜯어서 가져가겠다고 할 정도로 뜨끈뜨끈하다.
살짝 몸 달아오르게 해 줄 필요가 있겠군.
“저거 엄청 비싸요. 기존 자동권선기랑 비교가 안 될 정도로요.”
“그래서 팔 생각은 있다는 것이죠? 비싸 봐야 기계가 얼마나 비싸겠어요.”
“못해도 3억은 주셔야 할 텐데요. 저거 특허라서 사용료도 받아야 합니다. 로열티 말이에요.”
“헐~. 사장님 지금 보니까 진짜 사업가시네요!”
노골적이고 뇌쇄적인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눈에서 나오는 열기는 조금 차가워졌다. 차갑다 못해 꽁꽁 얼 정도라고 해도 싸게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저게 어떻게 만든 옥동자인데!
“단가 자체가 워낙 높아요. 제작도 오래 걸리구요. 직원들이 저거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해 보면 솔직히 3억도 거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3억이라……. 너무 비싼데요? 처음 본 사이도 아닌데 너무 남겨 먹으려고 하시는 것 아니에요?”
처음 본 사이도 아니라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겠네. 우리 오늘까지 세 번밖에 안 봤어요! 오즈 야스지로 선생이 남녀가 단둘이 세 번이나 만나고도 아무 일이 없을 때는 단념하라고 하더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원.
“사장님, 생각해 보세요. 저거 한 대면 권선공 4명 몫을 거뜬히 해냅니다. 24시간 내내 돌아가면서 1시간도 안 돼서 권선 뽑아내죠. 저희는 몇 달을 24시간 내내 돌렸는데도 아직까지 고장 한번 없이 잘 돌아갑니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비싸다고 생각하세요?”
“으음. 그런데 사용료는 또 뭐예요?”
“특허니까 그에 걸맞은 값은 있어야지요. 우리 회사에서는 대략 매출의 0.5프로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걸 판다고 하면 3억은 받을 것이라고 생각은 해 왔는데, 문제는 아직 판매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얘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격 협상을 하고 있다. 어째 대화가 말리는 기분이다.
자나 깨나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는 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우리 집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내가 태양전기에서 개고생한 것도 그렇지. 박 사장, 이 여자가 뭐라고 내가 이렇게 경계를 풀어 버렸나. 정신 차리자고!
그런데 정신 차려도 좋은 사업 기회인 것이 너무 분명하다. 대당 3억이면 못해도 2억은 넉넉하게 남는다. 이걸 놓칠 수 있나! 어차피 혼자서 변압기 시장 다 먹을 수도 없는 판에 이걸 혼자 감추고 있을 필요도 없다. 돈이 될 때 파는 것이 맞다.
“그렇게나 많이요? 대단한 설비인 것은 분명한데……. 잠깐만요. 생각 좀 하구요.”
엄청 탐나는 설비인데, 가격이 생각보다 높다. 이럴 때 저 능력 있는 사업가의 판단은? 궁금하다. 생각이 오래가지 않았다. 판단 빠르네.
“그럼 다섯 대에 15억 드리고 다섯 대 합쳐서 5년간 매출 1프로는 어떠세요? 유지 보수는 사용료 드리는 동안 계속해 주시는 조건으로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최대치입니다.”
그 찰나에 손익 계산이 다 됐나 보다. 역시 사업하는 사람은 돈 계산이 예사롭지 않다. 4명 인건비 빼고 생산성 높아지는 것 감안하면 1년 정도면 본전 뽑고도 남으니 사지 않는 것이 바보이지.
가만 보자, 금성전기 연매출이 300억이 넘으니까 로열티로만 매년 3억은 넘게 떨어지겠군. 대당 6억이라, 이것도 꽤 꿀인데?
“너무 후려치시는 것 같은데요. 하하. 일단 검토는 해 볼게요. 솔직히 지금까지 저걸 팔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거든요.”
“그럼 지금부터 생각하시면 되잖아요. 무조건 저희한테 파시는 겁니다! 아셨죠? 자! 약속!”
눈빛에 홀려 나도 모르게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사람 홀리는 매혹기라도 발산하나? 엄지로 도장도 찍고 손바닥으로 복사까지 하는데 손을 덥석 잡는다. 따뜻하다. 좋다.
“사장님, 우리 잘해 보자구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그렇죠?”
녹아내릴 뻔했다. 무슨 사람이 저렇게 저돌적이야? 정신 차려야지. 이러다간 쓸개까지 다 빼서 내주게 생겼네. 내 간 빼 가려는 별주부 같은 여자!
“이번엔 제가 도움 받게 생겼지만, 저도 많이 도와 드릴게요. 안 그래도 제가 공장 완공 선물 하나 드리려고 왔는데, 도리어 도움을 받게 됐네요.”
생각해 보겠다니깐 이미 확정 지어 버렸군. 사업가로서 빠른 판단력과 과감한 실천력. 훌륭하군. 앞으로 나와 좋은 경쟁 상대가 되겠어.
“무슨 선물 말씀이십니까?”
“뭐 당장 도움이 될 선물은 아니구요. 저희 수출하고 있는 것 아시죠? 반응이 좋아서 물량이 많이 늘어날 것 같은데, 아무래도 혼자는 버거워서 괜찮은 파트너가 필요한 참이었어요.”
“그래서 저랑 같이하자는 말씀인가요?”
“오늘 공장 둘러보니까 사장님이라면 훌륭한 파트너가 될 것 같아서 말이죠.”
그래서 초대도 없이 이 멀리까지 내려와서는 홍어도 안 먹고 공장부터 보자고 했구만. 이 여자, 이거 나한테 너무 호의적인 것 아니야?
대한전력한테서만 꿀 빨겠다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 회사 키우기 위해서는 수출이 필수이다. 당장 여력이 안 돼서 생각만 해 두고 있었는데, 대뜸 수출을 같이하자니!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
“생각해 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좋은 기회입니다만,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습니다.”
“저도 알죠. 당장 내일부터 하자는 것이 아니에요. 내년까지는 정신없이 바쁘실 테니까요. 저희야 사장님이 20프로 가져가는 통에 관수 매출도 줄게 생겼으니 수출에 힘을 쓸 생각이에요. 호호. 내년까지는 기다려 줄 수 있으니까 준비되면 말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래저래 많이 도와주시네요. 잊지 않겠습니다.”
“덕분에 저는 저 설비 얻게 됐잖아요!”
이렇게 자동권선기 판매가 확정된 모양이다. 자동권선기 팔아서 돈 벌고, 수출 길도 열렸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그나저나 박 사장, 사업 한번 화끈하게 하시는구만.
팩토리 투어를 끝내고 잔칫상이 펼쳐진 마당으로 나가니 난리가 났다. 노래방 기기를 가져온 것이 대성공이자 패착이다. 술판에 춤판에 주지육림이 따로 없구나!
신입들이 최신곡을 부른다 치면 출처를 알 수 없는 요상한 춤으로 전국노래자랑으로 만들어 버리는 공장장님! 무형문화재 공옥진이 환생한 듯한 병신춤으로 부끄러움을 자아내는 덕준아! 양 모서리에 춤신춤왕이라도 붙은 것 같다야. 어휴.
신입들도 함께 어울려 넋을 놓고 노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안정이 된다. 몇 명은 적응 못하고 구석에 앉아 뭔가를 부지런히 먹고 있기는 했지만…… 이규철 과장이 신입 여자애 하나 붙잡고 뭔가 한참을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안정된 마음이 요동치기도 했다. 저러다 도망가면 어쩌려고!
신입 10명 중에 여자가 2명인 것을 두고 공장장과 함께 꽤 고민을 했었다.
“공장장님, 여자애 2명 괜찮을까요?”
“그러게. 나도 여자애 들어왔길래 좀 놀라긴 했는데 말이야. 여자가 하는 일이야 절연지 자르고 권선 감는 것 정도인데, 이거야 뭐 다 자동화됐으니…….”
“남자들도 힘들어하는데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긴 하네요.”
“그래도 같은 월급 받는데 누구는 힘든 일 하고 누구는 쉬운 일 하고 그러면 안 되지. 일단 지켜보자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고 하지만, 현장은 남자 일과 여자 일이 명확히 구분된다. 무거운 것을 들고 힘쓰는 일을 여자가 하기는 벅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자 직원에게 월급을 덜 주기도 뭐하다. 공정에 따라 급여를 차등하는 것을 고민해 봐야겠군.
이규철 과장을 보니 고민거리가 또 하나 늘어 버렸다. 신입 2명을 둘러싸고 수컷들의 암투가 얼마나 심해질 지 말이다. 이 과장님아, 띠동갑도 넘는 애들한테 부디 흑심을 품지 말아 주세요!
“사장님,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해 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네요.”
홍어 냄새 가득한 마당에서 향수 냄새로 코를 정화시켜 준 박준희 사장이 작별 인사를 전했다.
“멀리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자주 보기는 어렵겠네요. 이참에 저도 나주에 하나 세울까요? 근거리에서 사업하면 서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 설비 아시죠? 꼭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참! 올라가시는데 요기나 하시라고 홍어 좀 싸 드릴까요?”
“아이고, 마음만 받겠습니다. 사장님 가만 보니까 아주 고상한 취미가 있으시네요. 호호.”
우리 회사 이름으로 생각해 뒀던 제네시스를 타고 온 박 사장이 창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서울대를 씹어먹었다던 전설의 레전드가 생각난다. 서울대가 아니라 서울여대였나? 뭐가 됐건 이쁘긴 이쁘군.
“뭐야! 사장님아! 저 사람 누구야? 누군데 저리 이쁘냐?”
춤신춤왕 덕준이가 정신없이 달려왔다. 지독한 홍어 냄새 사이로 뚫고 들어온 박 사장의 향수 냄새 맡았니?
“저번에 같이 밥 먹었다던 금성전기 사장이야.”
“와! 화가 난다, 화가 나!”
“네가 왜 화가 나는데?”
“알면서 그러냐! 와! 나 오늘 맨 정신으로 못 자겠다. 좀 많이 취해야겠다. 신나라도 퍼 마셔야지. 오늘 나 찾지 말아 주세요. 와! 난 진짜 무슨 연예인 보는 줄 알았다야.”
“이 시끼야. 넌 손님들 접대나 신경 써. 너 자재 발주할 때 전화로만 했지, 실제로 사장들 본 적은 없잖아? 이럴 때 가서 눈도장 확실하게 찍고 좀 구워삶으라고!”
징끗.
시부랄. 빈속에 덕준이 윙크를 보니 위액이 식도를 마구 때리는 기분이다. 뭐야, 저 표정은? 하여간 알다가도 모를 놈이야.
주지육림이 펼쳐진 마당에서 떨어져서 굳은 의지로 홍어를 먹으며 빈속을 달랬다. 다들 잘 놀아 주니 좋네 좋아.
암모니아향이 코를 뻥 뚫어 버리는 알싸한 홍어 맛을 음미하면서 새로운 사업에 대해 구상에 들어갔다. 박 사장이 자동권선기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면 판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시점이다.
대당 3억에 로열티까지 받으면 짭짤하다 못해 MSG를 봉지째로 들이부은 듯한 단짠한 맛이 양껏 나는 장사이다. 10억을 불러도 서로 못 사서 안달일 것이다. 자동권선기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업계가 양분될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팔 생각은 없다. 우리 회사 경쟁력의 원천인데, 돈 몇 푼 벌겠다고 그럴 수는 없지. 이걸로 변압기 사장 놈들을 길들일 것이다. 철저히 내 편에게만 팔겠다고 한다면 누가 감히 나한테 함부로 하겠는가.
조합 신년회 때 지랄한 그놈들 말이야. 내가 잊지 않고 있다.
자동권선기가 괜히 게임체인저가 아니지. 역시 나는 타고난 자질을 가진 사업가로구나! 내가 아니면 이런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띠링.
문자? 설마!
문자님의 신탁이다! 오! 문자님! 할렐루야!
-자만하지 말 것.
자만하지 말라는 건 또 뭐야? 내 생각을 읽었나? 뽕에 취하지 말고 얌전히 일이나 하라는 뜻인가? 몇 번 안 오는 문자이지만, 시크하면서 은근히 챙겨 줄 것은 다 챙겨 준단 말이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첨부 문서는 뭐지? 이건 또 무슨 설계냐.
부싱 체결 장비? 이름만 들어도 빨간 구두 신고 미친 듯이 춤출 것 같은 기분이다. 일단 감사합니다! 100퍼센트 수작업인 공정을 설비로 대체한다? 이것 또한 분명 대박이다!
변압기라는 것이 고압을 받아서 저압으로 바꿔 주는 것이니 전기를 받고 건네주는 자재가 필수이다.
애자라고도 하는 부싱이 그것인데, 조립하기가 어찌나 지랄 같은지 몇 대 하다 보면 쌍욕이 나온다. 자기로 만든 것이라 있는 힘껏 조이면 깨져 버리고, 어설프게 조이면 기름이 줄줄 샌다.
이걸 설마 자동으로 해 주는 것인가? 문자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뽕에 취해 자만하지 않고 늘 정진하겠습니다! 김칫국물 드링킹 하지 않겠습니다!
전국노래자랑과 홍어 냄새를 피해 서둘러 사무실로 달려갔다.
어디 보자. 와우!
예상대로 장난이 아니다. 늘 보고 나서 깨닫지만, 이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괴감도 든다. 발상의 전환. 이건 돈이 된다!
뭐 이것저것 재 볼 필요도 없다. 당장 도면 자재 목록대로 주문해서 당장 만들어야지! 유재준 부장 투덜거리는 곡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하다.
이건 또 얼마에 팔아야 할라나! 따라 만들기 쉽게 생겼으니 팔지 말까? 박준희 사장이 본다면 또 손을 꼭 잡고 팔아 달라고 애절한 눈빛을 보낼 텐데…….
이런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하다니! 문자님 싸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