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42)
042 돈을 달라
내 방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 동네도 황량한 사막답게 바람 잘하네.
두어 번 시도 끝에 겨우 불을 붙이고는 마당을 바라보니 여기가 포석정인가 싶다. 좋다 좋아. 직원들도 남녀노소 구애받지 않고 잘 놀면서 어울리고, 사업도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할 동력이 생겼으니 마냥 좋다.
“지 사장! 거기서 혼자 처량하게 뭐 해? 빨리 내려와! 노래 하나 불러야지!”
“사장님! 빨리 오세요! 사장님 노래 듣고 싶어요!”
오냐. 기분 좋은데 내가 오늘 너희들 고막을 다 터트려 주겠다. 오장육부를 비틀어 막걸리를 다 게워 내게 해 주겠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닌 것처럼 흥겹던 잔치가 그렇게 파국을 맞이했다. 파국이다! 내가 마이크를 잡는 것이 아닌데…… 미안하다 직원님들아.
“이 자식아. 이게 다 니 때문이야!”
애꿎은 덕준이를 갈구기 시작했다. 종로에서 뺨 맞았을 때는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법이지.
“사장님 보필을 못한 제 잘못입니다. 앞으로 사장님 성대 청소 깨끗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넌 진짜 앞으로 노래 부르지 마라. 10년이 넘었는데도 적응이 안 된다 진짜.”
“언젠가 득음할 날이 오지 않겠냐?”
“지랄. 폭포 밑에서 밤낮으로 악 질러 봐라. 목구멍이 터지나. 넌 그냥 노래와 연을 끊어. 그게 이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길이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사장님. 근데 은행엔 언제 갈라고 그러십니까?”
공장 등기도 나왔겠다, 갈 때가 됐지. 덕준이 이 자식 한시도 방심할 틈을 안 주는구만. 오늘은 잔칫날인데 좀 놀면 안 되냐?
“안 그래도 공장 정리되면 바로 가려고 했어.”
“공장 정리를 사장님이 하십니까요! 그런 건 직원들한테 맡겨 놓고 가서 돈 뽑아 오시라구요. 솔직히 요새 좀 겁나더라. 돈 걱정하지 말고 자재 발주하라고 해서 시원하게 하고 있긴 한데, 이러다 다음 달 결제일 때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걱정된다니까.”
“하여간 우리 회사는 이리 걱정쟁이들이 많아. 다들 공장장님 닮아 가나…….”
“오호라. 지금 공장장님 디스했다 이거군. 옳지. 잘 걸렸다. 공장장님! 우리 사장님이 읍읍.”
귀밝이술을 자셨는지 공장장이 정신없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우리 사장님이 왜?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하하. 공장장님 잘 오셨네요. 제가 또 기가 막힌 것을 하나 얻어 왔습니다.”
“이번엔 또 뭔데? 또 그 쩐주 작품이야?”
“네, 맞습니다. 나주 공장 완공 선물이라네요. 이번엔 부싱 체결기입니다. 일단 가서 보시죠.”
“아니, 대체 그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야?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가서 보자고. 유 부장! 일루 좀 와 봐.”
공장장과 유 부장은 다시 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로 다른 의미겠지만…….
“이거 정말 신통방통하구만.”
“그렇죠? 제가 보니까 1차고 2차고 다 가능한 것 같아요. 관수랑 민수도 마찬가지고. 이게 아주 보물입니다.”
부싱 체결기는 가방처럼 멜 수 있게 설계돼 있었다. 팔 하나는 애자가 흔들리지 않게 고정해 주고, 다른 팔은 부싱에 들어갈 너트 크기만 설정해 주면 척척 조여 주는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애자가 깨지지 않도록 토크렌지로 조여야 하기 때문에 사람 손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부싱만 조립하는 사람은 토크렌지 조이는 팔에 비정상적으로 근육이 붙기 일쑤였다. 누가 보면 취사병으로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자동권선기를 통해 만끽했듯이 문자님이 주신 설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자동권선기만큼 대박은 아니지만, 조립공 2명 정도는 거뜬히 대체할 신무기임이 분명하다.
앞으로 스패너에 폴대 연결하고는 곡소리 내며 너트 조일 일은 없겠군. 흥부야 엄동설한에 어디 가겠냐고 울고불겠지만, 부싱 너트 조이고 나면 엄동설한도 핀란드 습식 사우나로 바뀌는 판이다.
이 짓을 기계가 대신해 준다니! 부싱 조립이 야기하는 근골격계 질환에서 해방될 일만 남았다!
“진짜 난 이제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겠네. 그 쩐주란 양반 진짜 대단하구만. 유 부장! 이거 만들 수 있겠나?”
“휴우. 까라면 까겠는데요. 아휴, 진짜 지금도 할 것이 산더미라. 내가 여기 온 것이 사장님이랑 공장장님 보고 따라온 것이긴 한데, 이거 아주 고생 화끈하게 하는구만. 재미있는 일 하니까 좋긴 한데…….”
“아니 이 양반아! 돈 많이 벌고 좋잖아! 허허허.”
공장장이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유 부장에게 파운딩을 날렸다. 저건 빡세게 일해서 설비 만들어 내란 뜻이겠지? 공장장이 채찍질을 가했으니 나는 당근을 주면 되겠군.
“우리 형님, 사랑합니다. 부장님, 이거 한 과장한테 말해서 캐드로 옮겨 놓고, 바로 자재 발주해 놓겠습니다. 자알 부탁드립니다. 부장님은 연말에 무조건 성과급입니다! 조금만 더 고생해 주세요.”
“이봐, 지 사장! 나는? 나는 성과급 안 주나?”
“공장장님은 소주 한 짝 드릴게요.”
“안주는!”
설레발이라서 아무 말 안 하고 있었지만, 기대해도 좋습니다. 못해도 순이익 10퍼센트는 성과급으로 나눠 줄 생각이니까요. 이거 헹가래 준비하고 있어야 하나.
문자님이 주신 신무기들, 의좋은 형제가 만들어 낸 각종 설비. 이제 돈을 짝짝 빨아들일 일만 남았다. 8월아! 빨리 와 라.
여름이 오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은행 가서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 먹어 줄 시간이 찾아왔다. 은행 문 벌컥 열고 돈을 달라고 소리칠 일이 기다리고 있다.
“사장님. 은행에서 돈 빌릴 때는 대부계 담당자를 최대한 잘 꼬드겨야 해.”
“그 정도는 알고 있다고!”
“준수율 낮게 잡혀야 하니까 최대한 좋은 것 사 먹이고!”
“이 양반 걱정도 많네.”
덕준이가 못내 걱정되는지 신신당부를 한다. 다른 직원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회사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에 감동했을 텐데, 덕준이가 그러니 괜히 안 그런 척 툴툴대고 싶었다.
여자한테 차여서 구석에서 눈물 질질 짜고 있으면 달려와서는 낄낄거리면서 ‘우냐? 울어?’라고 말하는 것이 친구이지. 서로 말은 거칠지만 누구보다 속내를 잘 이해해 주는 것이 친구이지. 그래, 덕준이 이 자식아. 내가 감동하긴 했지만 쪽팔리게 티낼 수는 없잖아?
대출에 앞서 덕준이한테 특강을 들었다. 덕준이 이놈은 이런 것까지 어떻게 다 알고 있는지 귀신이 잡으러 왔다가 놀라서 곡할 지경이다. 진짜 알다가도 모를 놈이야.
“그래서 준수율만 제대로 확인하면 된다는 거지?”
“응, 맞아. 은행 직원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금리 약간 손봐 주는 정도지, 제아무리 지점장이라도 안 되는 대출을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 그래서 준수율이 중요하다는 거야. 그래, 이제 강의 잘 들었는지 시험을 볼까나?”
“그래서 준수율이 대체 뭐야?”
태어나서 대출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터라 용어 자체가 이세계로 회귀한 사람인 양 생소하기 그지없다.
“뭐라고 해야 할라나. 그러니까 이놈이 돈 잘 갚을 놈인지 아닌지 평가하는 것이랄까? 100을 기준으로 잡아서 100보다 낮아야 금리 우대가 좋거든. 우리야 처음이니까 절대 100 밑으로는 안 내려가겠지. 그래도 주둥이 잘 까면 꽤 낮출 수 있단 말이지.”
소규모 소호 대출이 아닌 기업 대출은 움직이는 돈이 수억 수십억 단위라 가산 금리가 얼마나 붙느냐가 관건이다. 은행 직원한테 밥 사 주면서 친분을 쌓으면 0.1퍼센트라도 혜택을 볼 수 있으니, 어떻게든 구워삶아서 준수율을 낮추라는 것이 한덕준 교수님의 지론이었다. 잘 알아들었습니다!
대출이라는 것이 ‘돈 좀 빌려 주쇼.’ 하면 ‘네, 여기 있습니다.’ 하고 선뜻 내주는 것이 아니다. 대출이 될지 아닐지부터 개미 똥구멍 핥을 정도로 지독하게 체크하면서 진을 빼게 만든다.
그것만이면 다행이지. 등기부터 해서 대표자 초본까지 최신본으로 준비해야 해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들락날락.
남의 돈 벌어먹고 사는 것도 어렵지만, 남의 돈 빌리는 것도 난이도가 레전더리이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한 번쯤은 거치고 겪어야 할 일이다.
* * *
보무도 당당하게 은행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VIP실을 대령하라!
“어떤 업무 보시려고 하십니까?”
“네, 기업 대출 때문에 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잠시만요.”
청원 경찰이 대출 창구로 잽싸게 걸어간다. 청원 경찰이라고 이름 붙여 놓고 고객 응대 잡무나 시키는 은행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파트 경비가 택배 수령하고 재활용품 정리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다들 고생들 하십니다.
대기가 미어터지는 일반 창구와 달리 대출 창구는 한산해 바로 직원과 마주했다.
“기업 대출 알아보시려구요?”
“네, 프라임일렉트릭이라고 혁신산단 입주 기업입니다. 신용 보증하고 운전 자금 대출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아! 프라임일렉트릭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일단 상담실로 들어가시죠. 저희 대부계 팀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은행들이 먼저 올 때까지 기다릴 걸 그랬나? 이런 중소 도시에 자리한 지점에서 수십억 원을 대출할 기업이 생겼는데, 가만히 있어도 서로 찾아와서 자기들과 거래하자고 할 것인데 말이다. 조금 뻗대고 있을 걸 그랬다.
“안녕하십니까! 오래 기다리셨죠? KGB은행 나주지점 대부계 이창민 팀장입니다. 프라임일렉트릭 사장님이시죠?”
“지정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지요.”
팀장 얼굴이 싱글벙글이다. 실적 채워 줄 거물이 오셨다는 표정이다. 거물 대접을 받으니 어깨에 또 뽕이 잔뜩 들어간다. 계속 인천에 있었다면, 어림도 없을 일이다. 나주에 일찍 내려온 것이 참 좋은 선택이군. 문자니무! 감사합니다!
“회사야 잘 알고 있으니까 따로 현황을 여쭤 볼 필요는 없구요. 신용 보증은 저희가 추천서 발급해 드릴 테니까 신청서 작성해서 신용 보증 기금에 제출하시면 됩니다. 혁신산단 특례가 있으니까 금리도 아주 좋습니다.”
“기업 운전 자금이나 시설 자금은 최대한으로 받고 싶습니다만…….”
“저야 뭐 최대한으로 해 드리고 싶지만, 담보물 가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서요. 혹시 혁신산단 입주하실 때 정부 지원금 받으셨지요?”
“네. 토지랑 설비 지원으로 24억 조금 넘게 받았습니다.”
“담보물 가치는 감정 평가 후에 결정되지만, 지원금만큼 차감됩니다. 지원 조건으로 5년간 처분이 안 되는 상황이라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혁신산단은 담보 설정이 일반 기업보다 10프로 더 높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네, 그럼요.”
사실 뒤늦게 알게 됐다. 살짝 당황해서 혁신산단 이정용 과장에게 따졌더니, 처음 계약할 때 확인한 자료에 다 있던 내용이란다. 그러고 보니, 뭐 이리 읽을 것이 많냐면서 건성으로 보긴 했었지. 로또 맞고 정신 못 차렸던 때였으니 뭐…….
하긴 나라에서 마냥 공짜로 수십억을 줄 리가 없지. 지원금만큼 정부가 5년간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은행도 그만큼을 담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공장과 설비 담보로 30억 정도 빌릴 생각이었는데, 살짝 모자라게 생겼다. 뭐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니 일단 진행하자.
“등기부등본이랑 재무제표는 가져오셨죠?”
“우리 회사가 창업한 지 1년이 안 돼서 아직 매출이랄 것이 없습니다. 다만, 8월에 대한전력 입찰 끝나면 800억가량 매출이 확정되는데, 아직 확정이 아니니 반영이 되지 않겠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어떤 미친 은행이 공수표에 대뜸 돈을 빌려 주겠냐만, 혹시 모르잖아?
“800억요? 엄청나십니다. 대한전력에서 혁신산단 입주 기업 밀어 주는 건 알았지만, 매출 800억이면 정말 대단한데요?”
그래서 뭐가 있다는 거야 아니야? 놀라지만 말고 대답을 해야지.
“낙찰 결과가 있으면 신용 대출 한도가 조금 늘어나긴 할 것입니다. 그때도 꼭 저희 은행을 찾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하.”
안 된단 말이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건설 쪽 SPC에는 몇천억씩 펑펑 대출해 주면서 기업 대출은 참으로 깐깐하게 군단 말이지.
“운전 자금은 최소한 1년 치 매출이 나와야 가능하니, 지금 상황에서는 어렵고, 시설 자금만 가능하겠네요. 등기부등본 확인했구요. 이건 사업 계획서입니다. 대출 실행하려면 있어야 할 서류라서요. 이것 작성해서 제출해 주시면 감정 평가 끝나자마자 최대한 빠르게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몇 번을 들락거려야 할지 모르겠다. 담당 직원을 얼마나 잘 구워삶느냐에 따라 금리가 달라지고, 내 번거로움이 줄어드니 곰탕을 가마솥째로 먹일 필요가 있겠다.
“서류 준비되는 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거 시간이 벌써 이리됐네요. 팀장님, 점심 약속 없으시면 같이 식사 어떠십니까?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밥 한 끼니는 해야지 않겠습니까?”
능글맞게 얘기하는 것이 나도 이제 사업가 다 됐구나.
오늘 처음 만난, 여자도 아닌 남자와 단둘이서 밥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 하는 것이 나도 이제 사업가 다 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