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48)
048 시끄러운 엠프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의 플랜.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나오지 않았지만, 새로운 조합 설립을 위해 박 사장이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다. 나도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지만, 몸이 나주에 묶여 있으니 힘내라고 격려만 해 줄 뿐이었다.
그 미안함을 이 자리에서 풀 수 있겠다 싶다. 대한전력 본부장 앞에서 새 조합 설립을 공식화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역시나 이춘배 본부장이 관심이 크다는 눈치이다.
“그렇습니까? 그거 좋은 움직임이네요.”
“네. 내년엔 서너 회사가 더 늘어날 것 같은데, 저나 여기 강 사장님도 같이 해서 조합을 새로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뭐야? 나는 뭐 이미 합류한 거야? 하하. 지 사장 이거 고단수네. 나야 뭐 나쁠 것 없지. 조합 이놈들 하는 일이라곤 물량 배정 가지고 장난치는 것 말고는 없으니, 이번 기회에 갈아치워야지. 우리 동생 가오도 세워 주고 말이야.”
“형님. 가오가 뭡니까. 앞으로 큰일 하실 분이 그런 말 쓰면 됩니까?”
“기름밥을 하도 먹어서 그런가. 하하.”
말이 또 샌다. 이제는 우리말 고운말 만담이 시작되는가. 배가 산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조성됐으니 눈치 볼 것도 없다.
“그나저나 조합에서 다음 주에 대한전력 본사 앞에서 집회도 열겠다고 합니다.”
“집회? 그거 백날 해 보라고 해. 이것들을 어떻게 밟아 줘야 하려나. 아니, 사전에 나한테 동의라도 얻어야 하는 것 아니야? 우선 배정 때마다 시끄러운 것은 알지만, 이번엔 다르지. 나를 얼마나 우습게봤으면 그러냔 말이야.”
“형님, 좀 진정하셔. 내가 뭐 조합 일까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지만, 지 사장님. 확실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겠네요.”
침이 꼴까닥하고 넘어갔다. 침 삼키는 소리가 났을까 부끄러울 지경이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대한전력을 공룡이라고 하지요? 몸이 무거워서 그만큼 문제가 많긴 한데, 확실한 건 쉽게 움직이지 않아요.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사람들이 우리보고 나쁜 놈이니 뭐니 하면서 의견서 내고 집회 열고 그러는데, 우리가 그걸 다 받아 주면 어떻게 되겠어요? 뭐 피해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규정대로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구멍에 살짝 걸려 있던 육회가 쑤욱 하고 시원하게 내려가 버렸다. 이거 입에 넣자마자 소화돼 버린 기분이다. 이 집 육회비빔밥 잘하네.
규정대로 원칙대로. 게임이 끝났으니 엔딩만 즐겁게 바라보면 되는 시간이다. 엔딩 크레디트에 내 이름 석 자와 회사 이름이 올라오겠지?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 대한전력 상생협력본부 이춘배 본부장. 그리고 나. 아주 좋은 분위기라 밥이 술술 넘어간다.
술만 없다 뿐이지, 안주는 아주 화려하다. 규정대로, 원칙대로 하겠다는 대한전력 본부장의 선언. 이보다 더 화려한 안주가 더 있겠나? 풍미를 위해 깨라도 솔솔 뿌려 주자.
“저희도 법과 원칙대로 회사 꾸려 가려고 합니다. 향후에 저희가 피해 입는 일이 있더라도 규정이 그렇다면 따라야지요.”
“네, 좋은 말씀입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그걸 빨리 적응해야지요. 나 때야 대한전력은 그냥 공부 좀 한다 하면 들어왔는데, 요즘 공채로 들어오는 애들은 스펙이 어마어마해요. 나 같은 윗사람들이 옛날에 이랬다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해 봐. 그 잘난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지킬 것은 지켜야지.”
“그래서 요즘 대한전력이 그렇게 욕을 먹고 다니는구만. 하하. 큰 회사가 원칙대로 해 주면 사업하기가 편하지. 뭐 옛날이야 봉투 좀 챙겨 주면서 술 좀 먹이면 다 되는 시절 아니었나? 그런데 그게 편할 것 같지만, 나중에는 다 되돌아오게 돼 있어.”
강 사장의 끼어들기로 난 또 만남을 구경해야 하는 것인가? 이미 결론이 나와 버렸으니 맘 편히 구경하자. 규정대로, 원칙대로. 아주 좋은 말이야.
“맞습니다, 형님. 내가 본부장 자리 앉아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시험관들한테 현장 나가서 물 한 잔도 마시지 말라고 한 거야. 형님도 알잖아, 시험관들 그동안 짭짤했던 거.”
“말도 말어. 나중에는 아주 대놓고 달라고 하더라니까. 진짜 돈들 많이 벌었을 것이야.”
“처음에는 난리도 아니더라고. 대놓고 말은 못하고, 너무 엄격하면 기업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네 어쩌네 하면서. 형님 이해가 돼? 왜 기업들이 피해를 입는데? 하하. 이게 적응이 되니까 기업들이 엄청 좋아하더라고. 우리야 불량품 걱정 덜어서 좋고.”
“시험관들이 돈 받고 시험 대충 해 주면 편하긴 하지. 근데 FM대로 하니까 뭐 서로 감정싸움 벌일 일이 없어. 아니, 우리 제품이 완벽한데 시험관 왔다고 굽실굽실할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좋아?”
하긴 요즘 변압기 터져서 정전됐다는 뉴스를 찾기 힘들긴 하다. 예전에는 전봇대에 불이 나서 정전 피해가 어쩌니 말도 많았었지. 오죽했으면 전봇대 근처에 있는 집은 세도 안 나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본부장과 말을 나누면 나눌수록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지 사장님. 여기 형님이야 잘 알고 있지만,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면서 바뀌고 있는데 대한전력이라고 하면 욕부터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사장님도 사람 만날 때마다 얘기 좀 잘해 줘요.”
“염려 마세요. 저는 대한전력 좋은 회사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알고말고. 올해 20퍼센트 주고 내년에 또 20퍼센트 주는데 얼마나 좋은 회사냐! 빛이 있어 세상은 밝고 따뜻하단 말이야!
나올 얘기는 다 나왔다. 결론까지 훌륭하다. 이제 잔챙이로 서로 덕담이나 하다가 마무리하면 된다. 강 사장이 눈치껏 말을 이어 주시는군.
“지 사장. 공장 아주 멋드러지게 지었다고 하던데 언제 구경시켜 주려고 그래?”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사장님하고 본부장님 오시면 출입문에 플래카드 걸어 놓겠습니다.”
“하하. 이 사람이 능글맞은 구석이 있어. 동생, 말 나온 김에 지 사장 공장이나 구경 갈까?”
“오늘? 오늘은 안 돼요. 알잖아, 말이 본부장이지 이거 원, 툭하면 행사에 회의에. 무슨 얼굴마담 같다니까.”
“얼마나 좋나! 그러면서 월급 받고. 하하. 나도 뭐 오후엔 은행 가야 하니까 오늘은 힘들고. 가만있자. 내가 또 언제 나주를 오려나.”
본부장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대화 바턴을 받았다. 살짝 기대가 된다.
“지 사장님. 다음 주 금요일에 시간 괜찮습니까? 그때 공장 한번 찾아가는 걸로 하지요.”
“다음 주 금요일요?”
이거 확실하게 도장을 찍겠다는 소리 같은데? 그날은 조합 놈들 집회가 계획되어 있다. 조합이 대한전력 앞에서 으쌰으쌰 할 때 본부장이 우리 공장을 온다? 이건 확인 사살이다.
“형님. 내가 다음 주 금요일에 지 사장님네 공장 가면 형님이 좀 기분이 풀리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움직여 주는 것만큼 확실한 것이 또 있겠어?”
“조합들 엿을 먹이겠다? 하하. 그거 좋네!”
“형님, 진짜 엿 먹인다가 뭡니까? 고운 말 좀 쓰라니깐.”
“내가 기분이 살짝 풀리려고 해서 그러지. 다음 주 금요일이라, 좋아. 나도 내려가지. 동생, 그러면 주말에 필드나 나가지?”
이제 허기가 진다. 육회비빔밥이 벌써 다 소화돼 버렸나? 눈치 본다고 얼마 먹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나는 추임새만 몇 마디 넣어 주고 말았는데, 이미 판소리 완창을 해 버렸다. 명창 임방울도 놀랄 완창이다.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과 한배를 탔다는 것이 이런 의미인가 싶다. 한쪽에서는 집회 열고, 다른 쪽에서는 플래카드 내걸고 본부장 방문을 환영한다며 박수 치고 있고. 이거 아주 그림이 좋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무등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고 추고 영산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오면!
그날이 와 버렸다.
아침이 밝아 오기 무섭게 덕준이가 신이 났다. 오늘이 그날이렷다?
“사장님! 갑시다! 조합 놈들 굿하는 것 보러 가즈아!”
솔직히 덕준이는 조합에 반감을 가질 이유는 딱히 없다. 있다면 우리 회사 직원이라는 것과 조합에 태양전기가 소속돼 있다는 것? 때린 사람은 금방 잊을지 몰라도 맞은 사람은 절대 못 잊지.
“사장님아! 뭐 하셔? 가자니까!”
“오후에 대한전력 본부장님이랑 안성파워 사장님 방문하는 것 다 준비됐어?”
“이젠 말 안 해도 알지 않아? 다들 알아서 척척 하잖아! 사단장 방문보다 더 빡세게 준비해 놨으니까 걱정 마셔. 조합 놈들 구경이나 갑시다!”
“그래그래! 가즈아!”
대한전력 본사 앞 공터가 시끌시끌하다.
“와! 사람 많네? 얼추 200명은 돼 보이는데?”
“뭐 동원했겠지. 동원된 직원들은 무슨 죄냐. 나주까지 내려오려면 새벽부터 움직였을 텐데.”
중전기조합 나부랭이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나름 돈 좀 들였는지, 피켓에서 허접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합 회원사들한테 납품 대금 3프로씩 받아먹어서 피켓 만드는 데 다 썼구만.
동원된 듯한 집회 참가자들은 피곤에 절어 있는 표정을 숨기지도 않고 여실히 드러냈다. 한참 뜨거워지는 유월 햇빛에 고생들이 많네. 일광욕 잘하고 가소.
뻔하다. 회사별로 몇 명씩 뽑아서 조끼 입혀 데려왔겠지.
그늘 하나 없는 공터에서 피켓 들어 주다가 예비군 훈련에서나 맛볼 수 있는 ‘특제’ 도시락 하나씩 받아 허기를 달래겠지. 치킨 무같이 포장 뜯기 어려운 물 마시려다 바닥에라도 흘리면 얼마나 목이 마르려나. 도시락 몇 개는 밥이 쉬었을지도 모른다.
장미꽃이 만발했는데, 조용히 꽃구경이나 하고 가지. 이게 무슨 짓이람.
“사장님아, 마이크 잡고 있는 저놈 우진택 맞지? 하아, 저 개새끼. 당장이라도 달려가 아가리 찢어 주고 싶네.”
“진정해. 덕분에 전과자 됐잖아. 부사장 주제에 완장 찼다고 저리 신 났는데 오늘은 좀 봐줘.”
“우리 민사소송도 준비해야지? 몇 푼이라도 받아 내야 내가 직성이 풀릴 것 같어.”
전과자 우진택 씨가 이를 악문 모양이다. 표정에 독기가 가득하다. 문자님이 저놈을 조심하라고 했지? 저 독기 어린 표정으로 무슨 짓을 하겠다는 것이지? 오냐. 두루와 두루와.
“나주혁신산단 입주 기업에 대한 과도한 혜택으로 대한민국 산업의 전초 역할을 맡은 변압기업계가 고사 지경에 빠졌다. 대한전력의 우선 배정 제도는 최전방에서 묵묵히 일하는 중소기업들을 죽이겠다는 소리나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이를 묵과할 수 없으며, 우선 배정 제도 철폐가 관철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다. 투쟁!”
“투쟁!”
어디서 본 것은 있어 가지고, 참 내. 노조 생기면 회사 망한다고 광분하던 사장님들아, 이리 보니까 노조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직원들 노조 조직하게 도와주고 노조창립기념일에 쉬기도 하고 그러세요.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 말대로 매출 백억짜리 회사 이끄는 사람들이 이를 악물어 봤자 뭐 어쩔 건데? 내가 설령 우선 배정 일부 반납한다고 한들, 그 결실을 직원들하고 나눌 생각조차 없잖아? 그러니까 니들을 욕심만 남은 욕망덩어리라고 하는 것이야.
그나저나 평화로운 나주 땅에 와서 엠프 너무 크게 튼 것 아니냐? 시끄러워 죽겠네.
뭐? 폐업도 불사하겠다고? 이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거짓말 좀 보태서 사돈의 팔촌까지 회사 직원으로 올려놓고 한 달에 몇 천만 원씩 가져가는 사람들이 폐업하겠다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배당까지 척척 가져가시는 분들이 폐업하겠다고? 퍽도 그러시겠네. 저기 지나가는 개도 놀래서 웃고 있잖아!
“중소기업 다 죽이는 우선 배정 철폐하라!”
“철폐하라!”
“신생 기업에 20프로가 웬 말이냐!”
“웬 말이냐!”
왜 이리 웃음이 나냐? 최후의 발악을 한다는 생각에 입가에 행복이 만연해졌다.
그래, 죄 없이 끌려온 저 직원들은 내가 일부라도 구제해 줄게. 나중에 회사 망해서 갈 데 없으면 우리 회사 찾아와.
그러나 나 죽이겠다고 이를 악무는 저 오야들은 가만둘 수가 없겠다. 기대해라. 나도 힘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