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49)
049 부비트랩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조합 나부랭이들 악쓰는 것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이거 뭐 하려나 본데?
“덕준아. 쟤네들 뭐 하려는 거냐? 우진택 저놈은 왜 갑자기 비장한 표정을 짓냐?”
“몰러. 할복하려고 그러는 것 아녀? 아니면 진짜 삭발식이라도 하려나? 삭발이면 진짜 웃기겠다야.”
비장한 표정 가득한 전과자 우진택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우리의 피 끓는 절절한 각오를 알리기 위한 삭발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사장님 준비되셨으면 앞으로 나오세요. 바쁘신 가운데 찾아오신 기자님들, 우리의 절박함을 부디 널리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중소기업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뭐야? 장난처럼 얘기했던 삭발을 진짜로 하려고? 기자로 보이는 이들도 몇 되지 않는데, 좀 억울하지 않겠어?
“사장님아, 나 신통력 있나 봐. 진짜로 삭발식 하네? 아, 웃겨.”
“진짜 가지가지한다야. 야야, 저거 봐. 우진택이 나온다. 저놈도 삭발하려나 보네!”
나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라는 그 세 명이 비장한 각오로 의자에 앉았다. 조합 이사장 최웅민, 그 동서 김익환 그리고 우리의 친구 전과자 우진택! 최현아는? 최현아는 왜 삭발 안 하는데!
위윙, 위윙, 즈즈륵.
바리캉 돌아가는 소리가 더없이 청량하다.
“사장님아, 나 앞에 가서 동영상 좀 찍고 올게. 이런 기념비적인 장면을 눈으로만 보면 쓰나!”
“진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편의 영화 같다. 아~ 안구에 습기 찬다, 습기 차.”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작 하겠다는 것이 나주까지 내려와서 피켓 들고 구호 좀 외치다가 삭발하는 것이었단 말인가! 신년회라고 불러다 놓고 다구리 치면서 뭐 대단한 사람들인 양 으스대던 것들이 고작 이 정도라니.
내가 살짝이나마 걱정했다는 사실이 몹시도 부끄럽다. 자존심이 상해 무려 기쁨의 눈물을 흘릴 뻔했잖아!
“사장님아! 이거 대박이야!”
“왜? 우진택이 두상이 너무 아름답더냐?”
“이거 봐 봐. 최현아 질질 짜잖아. 꼴에 남편이라고 질질 짜는 것 좀 봐.”
“어? 아오! 우는 꼴을 직접 못 본 것이 너무 원통하다!”
“이따 저녁에 우진택 이 새끼한테 머리 시원하냐고 안부 문자나 하나 넣어 줘. 그래야 내가 개운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어!”
대단할 것 같지도 않았던 집회가 예상대로 초라하게 끝이 났다.
대한전력에서는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던지 젊은 직원 두 명을 보내서 이런저런 자료를 받아 갔다. 대한전력이 쌩 까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러면 너무 안쓰러운 것 같았다. 안쓰러워서 하마터면 내가 우선 배정 일부를 양보해 줘야 하나 걱정할 뻔했다.
그 정도로 집회는 영향력이 미미했다. 대한전력이 흔들릴 걱정 따위는 전혀 들지 않았다. 방침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다.
“덕준아, 들어가자. 예상했지만, 진짜 별것 없다야. 가서 귀빈 맞을 준비나 하자.”
“왜 별것이 없어! 삭발하고 질질 짜고! 이건 만방에 알려야 해!”
덕준이가 악감정이 가득 담긴 말을 내뱉으며 신이 나 있었다. 덕준아, 그 맘 잘 안다. 내가 확실하게 처리해 줄게. 이제 우리 좋은 생각만 하고 살자.
우진택 저놈이 절대 가만있을 놈이 아니다. 삭발까지 했다는 것은 그 의지의 표출이다. 오냐, 컴온. 니놈 할 짓은 뻔하다. 이번엔 그냥 벌금 정도로 끝내진 않을 것이야.
소문나지도 않은 잔치에 먹을 것도 없었던 집회를 뒤로하고 회사로 복귀하는데, 나와 덕준이 핸드폰에 불이 났다. 대체 또 무슨 일이냐!
“사장님! 회사 빨리 와! 지금 변압기 반품 들어왔다고 트럭들이 줄줄이여!”
상무의 다급함이 영상통화 하는 듯 훤히 보인다. 아이고 두야. 어째 하루라도 평온한 날이 없냐!
* * *
아닌 낮 중에 회사가 시끄럽다. 기분 좋게 조합 놈들 집회 보고 왔는데 대체 또 무슨 일이냐.
“상무님! 상무님! 이거 무슨 일입니까?”
회사 주차장으로 15톤 장축 트럭 5대가 변압기 잔뜩 싣고 와서는 빨리 물건 내리라고 아우성이다.
“아나, 진짜 미치겠네. 아니 최 사장이 우리 제품이 죄다 불량이라고 말도 없이 이렇게 다 실어 보냈어! 전화했더니 제품 다 환불하고 피해 보상까지 하래. 그 새끼 진짜 미쳤나. 아, 진짜 짜증 나서 못해 먹겠네!”
최철민? 생태탕 사는 것조차 아까워하던 그 새끼 말인가?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곤조통 부리면서 우리 물건 불량이라고 난리쳤을 때 한번 봐줬으면 얌전히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내가 설이라고 생태탕 사 먹이면서 상품권도 줬더만. 이놈 이거 정신이 나갔네.
우리 물건이 불량일 리가 없다. 민수 변압기가 시험 대충 해서 내보낸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 우리 검사과 꼴통 이규철 과장이 얼렁뚱땅 하지 않는다고!
이거 또 머리에서 스팀이 올라온다. 담배 줄일 수 있는 일은 언제 생기는 것이냐?
담배 한 대 피우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흥분했다. 이건 와꾸가 나오는 그림이다. 누구를 통해 치고 들어올지 꼽지 못해서 그렇지, 이건 그림이 확실해!
우진택 이 새끼. 최철민이랑 손을 잡았단 말이지?
최현아와 우진택이 나를 엿 먹일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 공격뿐이다. 관수 시장에서 공격은 조합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대한전력의 단호박으로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이건 실패!
남은 방법은 민수 시장에서 공격하는 것이다. 대한전력 입찰만 끝나면 민수 없이도 배 터지게 먹고 살 수 있다. 그 연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공격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으니 얼마나 분이 터질꼬? 내가 다 대비하고 있었음을 알면 분이 터져 모르핀이나 맞으면서 고통을 참을 수밖에…….
사실 대비랄 것도 없다. 그저 공격 들어오면 반격해 주면 그만이다.
이제 반격할 시간이다.
“상무님! 최 사장 전화해서 따질 필요 없고, 그냥 물건 다 내리세요.”
“사장님, 이따 대한전력 본부장 온다고 했잖아? 이거 보면 뭐라고 하겠어? 이거 안 돼! 대번에 소문난다고. 대한전력까지 보고 가면 우리 이제 민수는 망하는 거야! 민수만 망해? 관수도 끝장난다고!”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일단 변압기 다 내리세요. 저 화물차 기사들이 무슨 잘못입니까? 내려서 보내야죠.”
황미연 대리도 허겁지겁 달려왔다. 딱 보니 반품했으니 돈 돌려 달라고 전화 왔다는 것이겠지.
“사장님 여기 계셨네요. 아휴, 가온전기에서 전화 와서 변압기 반품했으니까 마이너스 세금 계산서 끊겠다네요. 28대에 2억 원이 넘어요. 아휴, 이를 어째. 화물비도 다 부담하래요.”
“일단 전화해서 알았다고 하세요.”
“한두 푼이 아니잖아요. 말이 2억이지, 저거 다시 수리해서 팔려면 그만큼 돈 깨지는 거잖아요!”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걱정 마시고. 최 사장한테 전화해서 알았다고 하시면 됩니다.”
직원들 동요가 심상치 않다. 어쩌겠나, 이 정도야 예상했으니 감내해야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당에 내린 변압기로 다가갔다. 역시나군.
일단 최철민 넌 나한테 죽었다. 최철민 이놈이 태양전기랑 연결됐다는 증거만 찾으면 된다. 생태탕 값도 아까워하는 놈이니 증거 찾기는 어렵지 않겠지? 이 새끼들 진짜 혈압 오르게 하는구만.
공장 출입문에 걸린 대한전력 본부장 방문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와 마당에서 일어나는 난리통이 심한 이질감을 준다.
호이스트로 정신없이 변압기 내리는 와중에 벤츠 S600 한 대가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정문을 통과해 주차장에 안착했다.
잘 왔다. 증인이 필요했으니 더없이 적절해.
“지 사장! 잘 있었는가! 이거 공장 정말 으리으리하게 지었네?”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과 대한전력 이춘배 본부장이 차에서 내려 공장을 극찬하며 다가왔다. 안으로 들어가면 더 놀랄 것입니다.
그나저나 저 난리통부터 구경하시죠? 당신들은 지금 이 시간부로 증인석에 서게 될 것을 명하는 바입니다.
“어서 오세요. 환영식도 열면서 기분 좋게 맞이하려 했는데, 갑자기 일이 터지는 바람에 응대가 소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뭘 번거롭게 그래. 공장이야 바쁘면 좋은 것 아닌가! 하하. 근데 민수에서도 날아다니나 보네? 한 번에 트럭 5대나 보낼 정도로 주문이 많은 건가?”
“형님, 저거 싣는 게 아니라 내리는 것 같네요. 지 사장님,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입니까?”
본부장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공장을 스캔하더니 매섭게 질문을 날렸다. 민수와 관수는 아예 다른 시장이지만, 민수 쪽에서 문제가 있다면 관수도 안심할 수 없을 것이란 눈치인 듯싶다.
강 사장이랑 같이 있어서 진면목을 못 봤을 뿐, 거대 공기업 본부장이라면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하. 아무 문제없습니다. 민수 변압기 시장이 워낙 복마전이라 별의별 일이 다 있지요. 별일 아니니 사무실 들어가서 차 한잔하시고 공장이나 쭉 둘러보시죠.”
“좀 실례되는 말이긴 한데, 트럭이 변압기 싣고 온 것이면 하자로 반품했다는 것일 텐데요. 한 대도 아니고 5대나 와서 물건 내릴 정도면 별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어떤 자초지종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본부장 짬밥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매섭다 매서워. 대한전력 물건 가지고 장난이라도 쳤다면 아주 작살이 나겠네.
“뭐 그러시다면 같이 가시죠. 제가 직접 보면서 설명드리죠.”
잡놈들 밟아 주는 데 훌륭한 증인이 될 두 사람을 데리고 하역장으로 갔다. 귀빈 온다고 환영 준비를 하느라 마당에 나와 있던 직원들이 심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회사 걱정해 주는 이 고마운 사람들. 걱정들 마시라. 아무리 난리 쳐 봐야 지정수 손바닥 안이니까.
“지금 내리고 있는 변압기가 총 28대입니다. 거래처에서 저희 제품이 불량이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주장했다구요? 그럼 불량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아니면 사장님 회사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로고까지 딱 찍혀 있는데요?”
역시 예리해. 그래서 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살펴봤던 것이지.
“불량 여부는 테스트를 해 봐야 하기 때문에 아직 모릅니다만, 로고는 저희 것이 맞습니다. 여기 명판도 저희 것이네요. 명판에 붙은 봉인납도 저희 회사 로고로 찍은 것이구요. 이렇게 보면 누가 봐도 저희 제품입니다만.”
잡놈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니들이 아무리 우리 제품이라고 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힌단 말이야.
“민수 시장이 워낙 문제가 많아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저희는 그래서 별도로 고유의 표시를 해 놓는데, 이쪽 모서리에서 네 번째 볼트에 표시를 해 놓습니다. 보실까요? 아무것도 없죠? 이것만으로는 불안해서 내부에도 표시를 해 놓습니다. 뜯어서 보시죠. 저기 부장님! 이거 볼트 좀 풀어 주세요!”
이상철 부장이 직원 셋을 데리고 정신없이 달려와서는 볼트를 풀어 댄다. 진짜 일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야. 옆에서 지켜보던 공장장도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평온한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호이스트 연결해서 커버 좀 올려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외함 커버 안쪽에도 부싱 구멍 옆으로 로고를 박는데, 보시면 아무것도 없네요? 외함 교체하는 경우도 있어서 중신에도 중신 넘버랑 로고를 박습니다만, 역시 없네요. 거래처에서 장난치는 것이죠.”
“음…… 혹시나 실수로 표시를 안 하고 출하됐을 수 있지 않습니까?”
좋은 질문이다. 역시 본부장 대단해.
“하하. 저는 그렇게 허술하게 회사 운영하지 않습니다. 모든 제품의 생산 이력을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품 품질에 확실한 자신이 있기 때문에 불량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만, 일이란 것이 100프로라는 것이 없으니 그렇게 나름의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공장장님? 생산 이력 서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직원들의 동요가 진정됐다. 상무도 당당했던 내 모습이 이제야 이해된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여러분, 저 작은 하마라구요. 누구든 건들면 좆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