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318
317화 우주에서 온 독재자
링 월드가 새로운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아스테라는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조용하게 정체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북적북적 시끄럽게 떠드는 쪽에 가까웠다.
아스테라에 있던 인류제국은 지구에서 온 인류연합을 받아들였다.
유지하는 공식적으로 통합 인류연합의 설립을 선포했다.
22세기 인류연합을 재건하겠다는 그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대통령은 유지하이고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사법부의 조직이 갖춰졌다.
유지하의 측근은 주지사나 고위관료에 임명되어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드론과 안드로이드는 예전처럼 널리 보급되진 않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플레이그의 전쟁을 목전에 두었을 때에는 좁은 메가시티가 많은 인구를 수용해야 했고 자연스레 치안 확립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 해소가 중점이 되었다.
하지만 아스테라 전체가 메가시티가 된 이상 그럴 필요는 없었다.
모든 땅이 유지하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예전처럼 환경을 파괴하면서 문명의 발전을 꾀하지는 않았다.
유지하는 회색의 어둠침침한 메가시티 대신 세련되고 미래적인 도시를 원했다.
“메가시티는 다 좋은데 너무 획일적이란 말이야. 이젠 미래형 도시로 바꿀 때가 왔어.”
메가시티 퍼시픽과 사우스는 해체되었고 시민들은 여러 지역에 분산되었다.
아르마가 미리 준비를 해두었던 터라 빠르게 거주 지역이 완성되었고 몇 개월 후에는 지구인들도 완전히 아스테라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를 갖게 된 알테마와 발가드는 언덕 위에서 그들의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좋지 않소? 드디어 주인이 바라던 세상이 왔으니 말이오.”
바그란주의 로제론은 예전과 같이 목가적인 주택이 줄줄이 들어찬 도시가 아니었다.
유려한 은색과 흰색의 건물이 전경을 가득 메웠고 완전히 새로 설계된 비행선과 기차가 하늘과 땅을 누볐다.
이 대중교통은 빠르고 편리하게 아스테라 각지와 연결되어 시민들의 발이 되어 주었다.
저 멀리 보이는 높은 건물은 우주로 진출하기 위한 기지 역할을 한다고 한다.
알테마는 거기까지 알진 못했지만 아스테라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래서 아쉬웠다.
“다 좋은데 내 것이 아니란 게 참으로 아쉽구나…….”
“내가 좋은 방법을 알려드리겠소.”
“무엇이냐?”
“예로부터 남편은 부인 나름이라고 하지 않았소? 왕을 품에 안으시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주인의 소유가 될 테니까.”
그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나보고 인간의 반려가 되라는 말이냐?”
“이제 왕을 얕잡아 보는 건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소? 그 무섭다는 오메가 퀸도 단독으로 분쇄하고 선지자의 후계자가 되었는데. 지금의 그는 신이자 황제나 다름없단 말이오.”
“…….”
알테마는 아무 말도 않고 도시로 고개를 돌렸다.
자존심이 높은 그녀였지만 이제는 인정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눈앞의 도시와 그녀의 육체를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레오볼드였다.
루시아의 육체에 갇혀 있던 그녀를 구해 주고 새로운 육체를 선물한 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마음씀씀이가 고마운 건 사실이었다.
그녀가 망설이자 발가드가 재촉하듯 말했다.
“빨리 안기지 않으면 엘프 황녀가 냉큼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요. 주인은 네 번째가 되는 거지.”
“그 엘프 황녀는 자존심도 없단 말이냐?”
“자존심보다는 통합이 중요하지 않겠소? 요즘 최고평의회에선 엘브랑데 주에 있는 엘프들을 어떻게든 사회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요. 언제까지 4천만을 숲속에 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정작 그 황녀도 엘프들로부터 경원시되고 있는 걸로 아는데.”
“개척도시를 내세워서 꾸준히 설득한 게 통한 모양이지. 일부이긴 하지만.”
“둘이 맺어지는 게 통합의 상징이라 이거냐? 우습구나.”
“뭐… 뻔히 보이는 수작이지만 잘 먹힌다고 하오. 어쨌거나 왕이 엘프를 완전히 버리진 않았다는 신호가 아니겠소?”
“정작 그는 지구라는 곳에 동족을 버리고 오지 않았느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왕이 언젠가 한 말이오. 그래도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한다고 했소. 그게 안 되면 최후의 방법을 쓰겠지.”
마르그레타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유지하의 품에 안기는 것을 선택했다.
알테마는 그녀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구원받았고, 육체도 얻었으니 내 목숨은 오롯이 내 것이 아니겠지… 알았다. 네 말대로 항복하마.”
“항복하는 게 아니라 그의 손을 잡는 거요. 어쨌든 이제 주인에겐 내가 필요 없어지겠군.”
“계약은 해지되었다. 이제 뭘 할 거냐?”
발가드는 도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 티렌델과 함께 대륙을 좀 돌아다닐까 하오.”
“땀내 나는 사내놈 둘이 붙어 다닌다고? 그새 정이라도 든 게냐?”
“안 될 건 없지 않겠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비슷한 처지거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왕의 명령을 기다릴 생각이오. 언젠가 우리의 힘이 필요해질 때가 온다고 하니까.”
“나는… 뭘 하지?”
“글쎄, 지갈레온과 마법 연구라도 하는 게 어떻겠소? 이 세계도 결국 마법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마법에 무궁무진한 힘이 숨겨져 있는 건 사실이지만 굳이 그 멍청이와…….”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드래곤이잖소. 분명 통하는 바가 있을 거요.”
하긴 그렇다.
알테마는 결심했는지 곧장 지갈레온에게 연락을 넣었으나 뜬금없는 소리만 들렸다.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이 멍청이가 감히 나를 무시해?”
작은 전화기가 부서졌고 그녀는 곧장 본체를 소환해 날아갔다.
“리빙메탈 드래곤… 참으로 멋지군.”
발가드는 웃으며 골드 드래곤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평화가 왔으니 그녀도 자신의 삶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 *
유지하의 꿈은 언젠가 모든 의무를 완수하면 권력을 내려놓고 한적한 곳에서 오두막을 짓고 전원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이 꿈은 정확히 반만 실현되었다.
그는 여전히 인류연합의 대통령으로서 테라 행성과 링 월드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을 완벽히 통제하진 않았다.
대부분의 일은 측근들에게 맡겨놓고 푹 쉬고 있었던 것이다.
쉰다고 해서 마냥 늘어져 있는 건 아니었고 나름 바빴다.
전원생활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
오죽하면 종종 집에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겠는가.
“농사를 짓느니 플레이그와 싸우는 게 더 낫겠어. 이건 진심이야.”
의무를 벗어던진 그에게선 여유와 부드러움이 엿보였다.
힘들다고 엄살은 피웠지만 그래도 텃밭을 가꾸고 생선을 잡는 등 꽤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르마는 그와 함께 살림을 차렸고 카밀라는 같이 살진 않았지만 휴가를 받으면 어김없이 놀러와 애정을 과시하곤 했다.
둘의 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봤을 때 조만간 새 생명이 태어날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아르마가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딸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녀와 아기를 진심으로 축하했는데 이름을 듣고는 다소 고개를 갸웃했다.
“아기 이름이 루시아라고요? 그거 안드로이드 제품명 아닙니까?”
“그만큼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죠. 이 애도 그렇게 되라는 의미에서 지은 거예요.”
“아…….”
사람들은 대통령의 최측근쯤 되면 뭔가 생각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고 여긴 모양이다.
하지만 아르마는 플레이그 퀸인 루시아와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주인과 맺어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사랑받을 수 있으면 만족한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아르마는 그녀의 영혼을 품었고, 아기를 잉태하기에 이르렀다.
둘의 아기라면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유지하는 포대에 둘러싸인 아기를 소중하게 안았다.
“아빠 덩치가 너무 커서 그런가, 꼭 빵 봉투를 든 것 같네.”
“하하하.”
사람들의 웃음이 터지는 가운데 루시아는 아기답지 않게 조용히 유지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방긋 웃었다.
“내 딸…….”
그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유전자가 이용당하는 것이 싫어서였고, 또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평화로워진 지금은 아이의 작은 미소가 세상의 그 무엇보다 행복하게 느껴졌다.
‘난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워온 걸지도 모르겠군…….’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유지하의 진정한 꿈은 평화였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확실하지 않았고 모든 일이 끝난 것도 아니었지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할 일이었다.
유지하는 아르마와 함께 행복한 전원생활을 즐겼다.
그리고 얼마 후 배성민이 찾아왔다.
그는 은퇴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최고평의회 수석의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누구는 의회에서 얻어터지고 있는데 누구는 아주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계시는군요.”
“밥이나 먹을까? 생선을 좀 잡았거든.”
유지하가 줄이 꿴 생선을 들어보이자 그는 술잔을 기울이는 동작을 취해보였다.
잠시 후 술상이 차려졌고 그는 정보국에서 수집한 내용을 보고했다.
“관측컴퓨터가 입실론 항성계에서 나오는 신호를 포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신호를 분석 중인데 역시 문명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선지자가 짚어 준 거니 틀림없겠지. 그래서 특성은 어때?”
“링 월드의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우리와 비슷한 언어 체계를 가진 것으로 나와 있고 기술력도 상당합니다. 최소한 자신들의 행성을 벗어나 항성계로 진출했을 걸로 추측됩니다.”
“그럼 별문제 없잖아?”
선지자는 엇나가는 자신의 창조물들을 유지하가 올바른 길로 이끌기 바랐다.
자력으로 행성에서 벗어나 항성계로 나아갔다면 그건 축하할 일이지 개입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속사정은 좀 다르다고 한다.
“200년 가까이 한 항성계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자원줄은 말라가고 있는데 고위층은 하이브 월드를 만들어서 온갖 향락적이고 변태적인 생활을 누리며 하층민은 바닥에 늘러 붙은 음식물 찌꺼기를 먹으며 죽지 못하는 삶을 이어나가고 있죠.”
“자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시니컬해진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 정보를 받아 보고 갑자기 화가 나서 그렇습니다.”
“하긴 우리 입장에서 그쪽 수뇌부는 좀 문제이긴 해.”
현재 아스테라는 시민의 생활이 상향평준화 되어 있었다.
성실히 일하기만 하면 굶어죽는 일은 없었고 치안은 예전처럼 완벽하진 않아도 매우 좋은 편이었다.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각종 제품이 다양하고 끊임없이 공급되고 있었고 거리엔 희망이 넘쳐흘렀다.
그런 아스테라에 비하면 저 하이브 월드는 지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우리는 선지자의 아이들이야. 저들을 구원해 주지는 못해도 손을 내밀 순 있어야 돼.”
그게 바로 선지자와 약속한 것이었다.
대가로 링 월드까지 받았으니 충실히 이행해야 되지 않겠는가?
유지하는 일어서서 지시를 내렸다.
“문명 구출 프로젝트를 가동하도록 하지. 마찰이 있을 테니 전투원들 불러들이고 스크랩 해제 시작해.”
“반바지에 하와이안 셔츠 차림으로는 조금 어색한 지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 이게 편해서 말이야.”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고 배성민은 웃으며 밖을 내다봤다.
몇 개월 동안 평화롭게 살다 보니 독기가 다 빠진 것 같았다.
어쩌면 이게 원래 성격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실론 항성계에 도착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그곳의 위정자들이 쉽사리 자신들의 권력을 내놓을 리 없을 테니까.
얼마 후 링 월드의 관제센터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10초 후 워프아웃이 시작됩니다. 장소는 입실론 외곽 10억km 지점입니다.」
「워프아웃. 메인 스크린을 활성화합니다.」
관제센터의 거대한 화면에 입실론의 항성 두 개가 보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일어섰고 유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접촉을 시작해 보자고. 아마도 공격이 날아올 것 같지만.”
* * *
입실론 항성계에 하이브 월드는 총 세 곳이 존재했다.
이 기괴한 건축물은 행성에서 긁어모을 수 있는 자원을 모조리 동원해 만든 것이었다.
높이는 5km에 넓이는 수십 km에 달했고 지하엔 그 몇 배나 되는 복잡한 거주 구역과 시설 등이 깔려 있었다.
건축물이 이렇게 큰 것은 행성 전체의 인구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노예를 만 명 단위로 거느리는 거상과 귀족들은 물론이고 하루 한 끼도 먹기 어려운 하층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하이브 월드로 몰려들고 있었다.
덕분에 이 기괴하고 거대한 건축물은 유사 이래 최고의 인구 밀도를 자랑했다.
생태계 최하위 계층을 담당하는 곤충인 몰트보다 인간이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니 오죽할까.
심지어 하이브 월드의 지배자조차도 정확한 인구는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건 사실이었다.
산 자는 죽은 자를 부러워하고 매일 수만 명이 벌레처럼 죽어나가며 또 그만큼의 인구가 새로 태어나는 인세의 지옥.
그게 바로 하이브 월드였다.
입실론 항성계엔 그런 곳이 3개나 있었고 최근까지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가장 강대한 세력을 가진 자는 가루리엘 젠트라는 군주로 무려 700년 가까이 살아왔다고 한다.
그가 귀족 사회의 일원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비정상적인 숫자였고, 사람들은 노예 수백 명을 악신에게 제물로 바쳐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고 수군거리곤 했다.
젠트는 그런 소문을 더더욱 부추겨서 자신의 악명을 드높이는 계기로 삼았다.
악명이 높으면 높을수록 하이브 월드에서의 지배력이 공고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그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보고가 있었다.
태양계 외곽에서 심상치 않은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규모는 1,500척 수준으로 상당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정확한 전투력은 산정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떤 놈이지? 둘 다 그럴 여력이 없을 텐데.”
그의 적수라고 할 수 있는 두 하이브 월드의 군주들은 최근 큰 전쟁이 끝난 터라 이런 대규모 함대를 꾸릴 수 없었다.
젠트는 검붉은 눈으로 보고서를 읽어보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외계에서 왔다고? 선지자는 또 누구야? 이런 얼간이 같은 보고서는 어떤 놈이 쓰는 거냐?”
부하들이 분석원 한 명을 체포해 데려왔고 그는 즉석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성실하게 보고를 올렸음에도 그의 심기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이 부여되었다.
“군주님! 제발 자비를… 끄아아악!”
분석원이 그렇게 사망하자 젠트는 특유의 음흉한 웃음을 짓고는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누가 오든 상관없다. 어차피 내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쓰레기겠지. 우리 쪽에 접근하면 경고 없이 박살 내. 알겠나? 단 한 놈만 살려서 내 앞으로 끌고 와라.”
나머지는 모조리 죽이라는 소리고 이건 그리 특별한 지시가 아니었다.
하이브 월드에서 헤비 커세어 1,000척이 뛰쳐나갔다.
이 우주선은 노예의 사이킥 에너지를 이용해 추진하며 개인이 조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커세어 한 척에 수백 명의 노예가 갇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전투 한 번에 50만 명을 동원하게 되는 셈이다.
이 정도 숫자는 하이브 월드에선 별게 아니었다.
“노예는 충분히 공급된다! 걱정 말고 사이킥 에너지를 쥐어짜라!”
“단 한 놈의 목숨만 필요하다! 나머지는 모두 죽여라!”
그들에게 있어 전쟁은 곧 일상이었기에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1,000척의 헤비 커세어가 앞을 다투어 주항성으로 향했다.
항성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군단타격함대는 이미 그들에 대한 정보를 캐낸 상태였다.
“수억 명의 노예를 다스리며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독재자라… 이거 혹시 나 말하는 건 아니지?”
유지하의 농담에 함교의 인원들이 작게 웃었다.
하이브 월드에 대한 조사 결과인데 공교롭게도 대통령과 비슷한 인간이 나와버렸다.
물론 둘은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유지하는 최소한 남의 고통을 즐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가 목표로 하는 것도 평화와 번영이었다.
처음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지만 아스테라를 순식간에 바꿔놓는 것을 보고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아스테라 5억 인구 모두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지배자였다.
유지하는 입실론 거주민들의 외모를 확인하곤 옆에 서 있던 티렌델에게 자료를 넘겼다.
엘프를 닮은 외모에 준수한 그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우주 엘프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엘프는 참 숫자가 많아.”
어쩌면 선지자의 원래 외모와 닮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엘프가 이런 멍청이는 아닙니다, 대통령님.”
“뭐 좋아. 지금부터 그걸 증명할 기회를 주지.”
티렌델은 이를 악물고 밖으로 나갔다.
타이탄을 조종하는 그의 솜씨면 저따위 우주 엘프 따위야 순식간에 박살낼 것이다.
작전관이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는지 함대에서 무수한 타이탄이 떠나는 게 보였다.
한때 유지하가 탑승했던 타이탄의 출력을 낮추고 조종이 용이하도록 개량한 버전이었다.
전투가 시작되었고 헤비 커세어에서 포격이 쏟아졌다.
그러나 티렌델이 이끄는 골리앗 부대는 에테르 필드로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역공에 들어갔다.
―저놈들은 엘프가 아니라 깐프다! 우주 깐프를 죽여라!
타이탄 수십 대가 입자포를 쏟아내자 헤비 커세어가 줄줄이 녹아내렸다.
순식간에 커세어 부대가 전멸하자 젠트는 하이브 월드 전체에 비상을 울렸다.
“보통 놈들이 아니다! 즉시 크루저든 뭐든 동원하라! 놈들을 막아!”
이건 확실히 하이브 월드 군주의 소행은 아니었다.
외계에서 왔다면 모두가 힘을 합쳐서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사이킥 통신으로 다른 두 명의 군주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잡음만 들릴 뿐이었다.
“통신국은 대체 뭘 하는 거냐? 모조리 사형……!”
언제나처럼 부하들을 윽박지르던 그는 그림자가 자신의 얼굴을 덮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검고 탁한 하늘에 최소 수백 척은 넘어 보이는 우주선이 보였다.
하나하나가 크루저를 가볍게 능가하는 거대한 크기였다.
게다가 선두의 우주선은 하이브 월드에서 가장 큰 기함의 몇 배나 되었다.
저런 게 이 항성계에 있었나?
그는 홀린 듯 창가로 다가가다가 흠칫했다.
우주함대 뒤로 푸른 행성과 고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행성 표면의 대륙과 구름의 흐름이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이렇게 가까이 오는 동안 전혀 눈치를 못 챘다고?
젠트의 손과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한편 유지하는 링 월드의 관제센터에서 하이브 월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링 월드와 아스테라의 지배자이며 또한 선지자의 후계자였다.
5억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으며 그보다 더 많은 종족을 구원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남자이기도 했다.
늘 그렇듯 그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최대의 숙적인 플레이그와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빈틈없이 자신의 일을 해나갈 것이다.
그것이 선지자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완결)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슬리버입니다.
2021년 6월 28일 시작했던 우주에서 온 독재자가 약 1년 만에 끝이 났습니다.
연재하면서 이래저래 굴곡도 많았고 비판도 많았던 글이지만, 그럼에도 여태까지 읽어주신 독자분들 덕분에 끝까지 텐션을 잃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글은 제가 15년 전에 연재했던 더 세틀러라는 글의 개량판입니다.
저는 작년에 몇 차례 더 세틀러의 리부트판을 연재했으나 3번의 연중을 겪었고 현대물과 섞어서 간신히 내놓을 수 있었죠.
그건 다른 글을 섞어놓은 것 같다는 비판을 들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더 세틀러는 낡은 글이며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는다는 걸 3번의 연중에서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나마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완결을 지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만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전작 아포칼립스의 고인물을 쓰면서 다음에는 끝까지 텐션을 잃지 않은 채 쓰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적어도 그건 이룬 것 같습니다.
현대편이나 판타지편을 길게 끌 수도 있었겠지만 애초에 300-350편 정도를 계획했었기에 여기에서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완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재미있는 글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