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50)
050 방역 조치
공장장이 가져온 생산 이력 서류에는 생산된 모든 제품에 대한 기록이 사진과 함께 정리돼 있다. 트럭 5대가 싣고 온 저 제품이 우리 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들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입니까? 그 거래처랑 악연이라도 있습니까?”
완벽한 증거에 대한전력 이춘배 본부장이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어느 회사가 이렇게 꼼꼼하게 자료를 갖추고 있단 말인가.
처음엔 직원들 반발이 있었다. 서류 작업이라는 것이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품질에 대한 자신감은 확실한 자료에서 나온다. 변압기로 장난치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니 귀찮더라도 품질 기록을 갖추고 있어야지. 잡놈들 이제 죽었다고 복창해라.
“가만가만, 지 사장. 그 거래처가 어디인가? 이런 막가는 놈이 있단 말이야? 그런 놈을 가만둘 생각이야? 아무리 민수 시장이 개판이라도 이렇게까지 막나가도 되냔 말이야!”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강 사장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강 사장님은 증인 말고 나랑 같이 행동까지 나서 줘야겠습니다요.
“당연히 가만있으면 안 되죠. 일단 법률 검토를 거쳐 고소해야죠. 장난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거래처가 어디냐니깐.”
“가온전기입니다. 뭐 최철민 사장 혼자서 꾸몄겠습니까? 회사 마크나 명판까지 위조해서 붙였을 정도면 동종 업계 협력자가 있었겠죠. 지금이야 뭐 추정이지만, 고소해서 수사가 진행되면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뭐? 최철민이? 하아. 그 자식 아직도 이딴 식으로 사업을 한단 말이야? 예전에도 나한테 장난을 치길래 대번에 거래를 끊어 버렸는데, 그 버릇을 못 고쳤구만. 개가 똥을 끊지. 나 원.”
안성파워한테까지도 장난을 쳤다니 최철민이 다시 보이네. 짠내가 펄펄 나는 쫌생이로만 알고 있었는데 간땡이가 아주 큰 사람이었구나. 그래, 간땡이 큰 대가가 얼마나 짜디짠지 느껴 보시라.
“지 사장님. 뭐 대한전력이 민수 시장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이거 보통 일은 아닌 듯합니다. 민수에서도 이런 짓을 하는 회사가 관수라고 안 하겠습니까? 고소하겠다고 하시니, 나중에 수사 결과가 나오면 꼭 말씀해 주시죠. 저희도 관련된 회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조사해서 문제가 있다면 엄벌에 처해야겠습니다.”
아이쿠야. 이거 생각지도 못한 선물까지 주시다니. 우리 본부장님 대단하십니다. 태양전기와 연관성만 밝혀진다면 최현아 우진택 연놈 부부는 물론이고, 태양전기까지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겠다. 문자님이 우진택이 범인이라고 말씀해 주셨으니 확실할 것이다.
이쯤에서 확실하게 못을 박고 공장 견학이나 시켜 주자.
“제가 또 하나 말씀 안 드린 것이 있습니다.”
강 사장과 본부장이 또 있냐는 놀라움과 지독하다는 경악함이 공존하는 표정을 지어 낸다. 맞습니다, 저 독한 놈입니다. 오기의 화신이라구요.
“명판을 보시면, 뭐 위조됐겠지만요. 생산일이 올해 3월로 찍혀 있습니다. 여기 안에 권선을 보시죠. 그냥 권선이죠? 저희는 권선이 이렇게 안 나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권선이 이렇게 안 나오다니? 자네가 만드는 권선은 뭐 특별하기라도 하단 말이야?”
“네, 맞습니다. 특별합니다. 저희는 100프로 기계로 권선을 제작합니다. 강 사장님, 놀라셨죠? 안 그래도 오늘 공장 오시면 구경시켜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말 나온 김에 여긴 이쯤에서 정리하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시죠.”
대단하다는 뜻을 그저 덤덤하게 표현한 본부장과 달리 강 사장은 전혀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이 바닥에서 기름밥 먹는 사람이라면 자동권선기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이건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이봐, 지 사장. 이게 대체 뭔가? 내가 변압기 팔기 시작한 지 30년이 다 돼 가는데, 이런 기계는 생전 처음이네. 이게 자동으로 권선을 감는단 말인가?”
“네, 맞습니다. 시간 되시면 권선 나오는 전 과정을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신기할 지경이죠. 하하.”
“동생.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이야.”
“이게 그렇게까지 대단해?”
“권선을 사람 없이 기계로 전부 다 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니까!”
이를 어쩝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강 사장도 사업가니까 냄새를 맡았겠지? 자, 어디 노래 한번 불러 보셔.
“지 사장! 이거 팔 수 있나? 아니다. 내가 조만간에 또 한 번 내려오겠네. 아니다. 내일 시간 어떤가?”
“저기 내일은 본부장님이랑 같이 필드 나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네. 하아. 이거 참. 이따가 또 일정이 있는데…… 내가 최대한 빨리 다시 올 테니 그때 오붓하게 얘기하자고.”
어리둥절한 표정이 가득한 본부장을 앞에 두고 강 사장이 안절부절못했다. 사업가라면 응당 그래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러나 당장 팔 생각은 없으니 당분간 맘을 좀 졸여야 할 것입니다.
공장 견학이 끝났다. 이미 나와 두 사람 모두에게서 조합의 반발 따윈 기억에조차 없다. 오전에 집회가 있었다는 얘기는 전혀 나오지도 않았다.
본부장은 아주 흡족한 표정이다. 꼼꼼함과 이만한 시설이라면 대한전력 납품 변압기도 아무 문제없을 것이란 기대감일 것이다.
강 사장도 흡족한 표정이다. 이제야 경쟁할 만한 사업가가 나타났다는 기대감일까? 자동권선기를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일까?
“지 사장, 최철민이 말이야. 내가 검찰 쪽에 넌지시 얘기라도 해 줘?”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제 일이니 제가 해결해야지요.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행여나 답답한 일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전화하라고. 내가 말했지? 우린 한배를 탄 사람이라고. 하하하.”
벤츠 S600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정문을 빠져나갔다.
최근 일주일이 아주 천년만년같이 느껴졌다. 많은 일이 있었구만.
날파리는 빨리 잡아 버리고 내 갈 길을 가자. 날파리들을 조져야 할 시간이다. 법률 자문이 필요하다.
“한 과장!”
어디 한번 법조문 줄줄 읊어 보시게나.
“고소장 쓰라고?”
“아이고야, 이젠 알아서 척척이네. 너 이러다 부장 단다. 조심해라.”
“부장 좋지. 근데 들어온 지 1년도 안 됐는데 부장 되면 다른 형님들이 좋아할까?”
우리 덕준이가 확실히 달라졌어. 회사 조직에 혼연일체로 녹아들면서 딴사람이 됐다. 내가 원하던 회사 모습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회사 생각하는 마음 갸륵하다 갸륵해. 너 예전에 나한테 다른 사람 같다고 그러지 않았냐?”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여전히 약 빨고 있는 것 같어.”
“난 이제 네가 어색할 지경이다야. 우리 한 과장 얼렁 부장 올려 줘야겠구만. 내년 회계 연도 시작하면 고생한 사람들 싹 올려 줘야겠어.”
“근데 말이야. 본론은 언제 들어갈 거야?”
“맞네. 하하하. 최철민이 그놈, 태양전기 연놈이랑 손잡은 것이 분명해. 협력자 없으면 저렇게 우리 물건처럼 꾸밀 수가 없잖아? 내가 봤을 땐 우진택이를 족쳐야 해. 그러려면 최철민 이놈을 제대로 엮어야 한단 말이지?”
“안 그래도 내가 이것저것 찾아보고 알아보는데, 일단은 업무 방해가 딱 걸려. 그걸로 보내자고. 그래서 우진택 그 새끼까지 걸려들면 뇌물이며 배임횡령이며 줄줄이 걸리겠지.”
뭐야? 법 조항 안 읊어? 업무 방해면 징역 몇 년인데!
“이번엔 어떻게든 최현아, 우진택 그것들 콩밥 먹여야겠어. 고소장 좀 준비해 주라.”
“내가 그럴 줄 알고 지금 부지런히 쓰고 있습니다요. 이따 다 쓰면 가져올게.”
“덕준아.”
“뭐야 갑자기? 이름만 부르니까 이상하잖아. 또 뭔 약을 빤 거냐?”
“고맙다.”
“뭐냐 오글거리게. 에잇, 진짜 밥맛 떨어지게시리.”
덕준이의 불타는 타이핑이 일궈 낸 고소장이 꼼꼼한 증거와 함께 나주경찰서에 제출됐다. 또다시 수시로 불려 다녀야 할 일이 번거롭지만, 날파리 방역을 위해서는 기필코 감내해야 한다. 그러겠다고 다짐도 했다.
고소장 낸다고 경찰님께서 ‘아이고, 이런 일이 있으셨습니까! 이놈들 콩밥 먹이겠습니다!’라고 잽싸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3개월 내에 처리하도록 규정돼 있다고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혐의 없음이나 기소유예 의견으로 검찰에 넘기는 일도 허다하다.
날파리 방역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여기저기 손을 쓸 수밖에 없다. 오로지 내 힘으로 방역을 완료하고 싶지만, 그러다 유야무야 끝나 버리기라도 하면? 그러면 안 되지. 돈 많이 벌 것이라는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우리 직원들을 생각해서라도 조질 때 확실하게 조져야 한다.
* * *
가장 모양새가 좋은 혁신산단 최대근 사장부터 찾아갔다. 혁신산단에 1호로 입주한 기업이 봉변을 당했으니 공단 관리하는 회사 사장이 검경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그림이니 말이다.
“최 사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에 사업이 아주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나도 우리 지 사장 복을 듬뿍 받아서 아주 훨훨 날고 있습니다. 토지 분양이 벌써 25프로를 넘겼습니다. 올해까지 목표인 40프로를 넘기고도 남겠습니다. 하하.”
“혁신산단이 잘나가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공장 하나뿐이라 직원들이 일 끝나고 무척 심심해하는데, 공장 많이 들어서면 편의 시설도 좀 생기겠지요?”
“전국 모든 공단 단지 분양하는 곳이 편의 시설이랑 대중교통 걱정만 하고 있지라. 나도 백방으로 뛰면서 상업 구역 분양에 힘쓰고 있응께 몇 달만 좀 참아 주시요.”
“저는 늘 사장님 믿고 있습니다. 하하. 그나저나 말씀드릴 일이 하나 있는데요.”
최 사장 성격이라면 세상에 그런 일이 어찌 일어날 수 있냐며 누구 못지않게 흥분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건 확실하다. 역시나.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 지 사장님 이제 막 자리 잡고 사업 한번 크게 일으키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안 되겠소. 내가 나주경찰서장한테 전화 한 통 해야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님도 같이 계셨는데, 사장님처럼 똑같이 엄청 걱정해 주시더라구요. 이렇게 우리 회사 잘되라고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끗발 좀 있는 사람 이름 슬쩍 집어넣으면 효과가 확실히 좋다. 본사까지 이전하며 200억 원 가까운 투자를 하겠다는 안성파워 강 사장도 화를 냈다는데!
“강 사장님 오시기로 하셨으면 저도 좀 불러 주지 그러셨습니까! 사장님도 그렇고 강 사장님도, 인자 우리 식구나 매한가지 아닙니까! 내가 식구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강 사장은 아들뻘이라고 하더니, 최 사장은 식구라고 하니 이제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나? 이리 가족이 많아지다니…… 혁신산단 처음 와서 분양 물꼬를 터 준 것이 확실히 큰 메리트이긴 하다.
“하하. 죄송합니다. 강 사장님 조만간에 또 오시기로 했으니까 약속 잡히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함께 식사하시죠.”
“가만가만. 내가 생각해봉께 안 되겄소. 잠깐만 기다려 보소. 내 전화 한 통 하고. 경찰서장 전화로는 어림도 없지.”
우리 최대근 사장. 이름답게 굵직하니 화통하기 이를 데 없다.
“형님! 저 대근이요. 최대근이! 아따 척하면 알아야지. 아니 세상에 말이여.”
손님 앉혀 놓고 전화로 한참을 떠드는 최 사장. 나 도와주겠다고 저러니, 여기가 사우나라도 1시간은 족히 있을 수 있다.
“맞다니까요. 우리 나주기업 죽일라고 이 난리를 치는 것 아니요! 서울 산다고 이렇게 지방 기업 죽이면 되겠습니까? 내가 혁신산단 어떻게 일궈 왔는데! 맞아요, 맞아. 형님이 눈치껏 신경 좀 써 주시요. 뭐? 맨입으로 되냐고? 하하하. 형님도 참. 내 안 그래도 낼모레 도청 가야 하니까 식사나 합시다. 네네, 그래요. 그때 보자구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누군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아는 형님이요. 저번에 조직 개편하면서 정무부지사로 올라갔지라. 그러고 보니까 우리 지 사장님 때문에 승진한 것이구만. 이러면 은혜를 갚아야지라. 하하하.”
도지사 면담 이후 공직 기강 확립 특별 점검으로 기존 정무부지사가 옷을 벗었다. 새로 임명된 도청 정무부지사라…… 이거 부담스럽다. 괜한 오해를 사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네.
아니지. 로비랄 것도 없다. 아주 착한 중소기업이 큰 피해를 입었으니, 규정대로 수사 제대로 해서 확실하게 일벌백계하라고 요청하는 것에 불과하다. 최 사장한테 물 한 잔 산 적도 없고, 공장 건설도 제값 다 치렀다. 잔금 20억도 꼬박꼬박 매달 이자 주고 있으니 누가 뭐랄 것인가?
이제 고소장이 빨리 접수돼 최철민이 콩밥 먹이는 날만 기다리면 된다. 최철민과 연결됐을 것으로 확신하는 태양전기 우진택 이 자식도 그 실체가 드러나리라.
기다려라. 이 똥파리 녀석들아. 내가 방역 확실하게 해 주겠다. 인생이 얼마나 실전인지를 처절하게 느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