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71)
071 소풍
나주 시내에 나가기 앞서 나만의 의식을 치르고자 차 앞에서 담배 한 대 꺼내 물었다.
담뱃불 붙이려고 고개를 살짝 수그리는데, 앙상한 배가 눈에 들어왔다. 빨래판 복근이라고 좋게 포장해 주자.
3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사실상 잡부로 일하면서 속칭 노가다 근육이 몸에 붙었는데, 지금까지 유지가 됐다. 딱히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그랬나 싶다.
앞으로 부자로 살려면 이 몸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근육만 이쁘게 만들면 더할 나위 없겠군. 사무동 강당에 피트니스 센터나 어서 만들어야지.
이거 또 일 생각이네. 반차 낸 것도 직원들 살 집 구하러 나가는 것이지만, 마음이라도 편하게 쉰다고 생각하자.
“사장님! 어디 나가?”
상무가 환한 얼굴로 주차장으로 달려왔다. 늘 환한 얼굴에 시원시원한 성격의 우리 상무. 주차장에서 보니 또 반갑네.
“혁신도시 구경이나 하고 오려구요. 저 반차 냈습니다.”
“반차? 사장이면 그냥 쉬면 되지. 뭐가 됐건 잘 생각했어. 사장님도 좀 쉬어야 해. 아니 직원들한테는 맘 편히 쉬라고 해 놓고 본인은 죽어라 일만 하면 되나.”
“태양전기 때 죽어라 일하던 것이 몸에 익었나 봐요. 뭐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너무 많긴 하지만, 일도 재미있고.”
“그러다 탈나. 지금부터 몸 관리해야 나이 먹고 고생을 안 해요. 우리 사장님은 그런 면에서는 은근 고지식한 데가 있단 말이야.”
지당하신 말씀이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 자신에게 너무 엄격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태양전기 다닐 때도 명절에 업체들이 주는 상품권도 마다할 정도였으니, 지금 내 회사에서는 더 엄격해진 것 같다.
직원들 대할 때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도 살짝 관대해지자. 쉴 땐 쉬고, 기회가 된다면 연애도 하고 말이야.
“그나저나 상무님은 어디 가세요?”
“왜 저번에 광주에 거래처 하나 뚫었잖아? 거기 윤 사장이 밥이나 먹자고 하길래, 가서 이것저것 정보 좀 캐고 와야지.”
상무의 외근에 대해서는 일절 간섭을 안 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혼자서 40억 매출을 받아 온 사람이다. 상무의 헌신적인 영업이 아니었으면 대한전력 관수 물량 받기 전에 굶어 죽었을 것이다.
법인 카드도 눈치 보지 말고 영업에 필요한 일이면 얼마든지 쓰라고 했지만, 끽해야 비타300, 편의점 커피, 비싸 봐야 만 원짜리 밥 정도이다. 이렇게 회사 생각하는 직원이 있다는 것은 그냥 복이 아니라, 무량대수로 큰 복이다.
“가면 점심 맛있는 것 사 드세요.”
“윤 사장이 사 준다잖아. 밥 얻어먹으니까 커피 정도는 사야지. 사장님 괜찮지?”
“에이, 진짜 왜 그러세요. 누가 들으면 제가 돈 쓰지 말라고 하는지 알겠습니다.”
“내가 우리 사장님을 믿으니까 그러지. 태양전기였어 봐? 욕하든 말든 돈 펑펑 쓰고 다녔지.”
“하하. 제가 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 엄청 기대하고 있다구. 이거 내 정신 좀 봐라. 쉬겠다는 사람 붙잡아 두고 뭐 하는 짓이람. 암튼 사장님, 쉴 때 푸욱 쉬라고!”
나도 출발하자.
혁신도시에 도착해 눈에 보이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딱히 밥 생각은 없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 한잔이 하고 싶었다. 약간 쌀쌀한 늦가을 바람 쐬면서 흡입하는 커피와 담배는 최상의 궁합이다.
옛날 생각이 난다.
커피 마시면 머리가 멍청해진다고 했다. 그래도 집마다 찬장 어딘가에 빨간 상표 붙은 커피와 프림 한 통씩은 꼭 있었지. 에어컨과 함께 손님접 대용이었던 커피.
언제부턴가 한 잔에 3~4천 원씩 해도 기꺼이 지갑을 열 정도로 커피가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가난에 익숙했던 예전에는 그깟 커피 한 잔에 밥 한 끼 값을 낸다는 사실에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커피에 인이 박혔는지 자연스럽게 커피를 찾고 있다. 프랜차이즈 간의 커피 맛 차이도 조금씩 알 것 같다. 나도 신식인이 다 됐군.
오늘은 에스프레소다!
페어리루 장난감 세트에서나 볼 법한 컵에 담긴 에스프레소. 진하고 씁쓸한 맛을 느끼다 입에 가득한 향이 사라질 때쯤 연기 한 모금. 여긴 천국이다.
천국 입구까지 다 왔는데, 회사 생각이 좌뇌를 강타한다. 우뇌야, 넌 대체 뭐 하니? 좌뇌가 회사 생각하게 놔둘 거니?
공장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패드 변압기 신제품이 대한전력 개발품으로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 주요 자재는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코아가 핵심인데, 올해가 가기 전엔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에잇, 관두자. 부동산이나 찾아가자. 이거 분명 일 중독이야. 고쳐야 해.
“네, 어서 오세요.”
진한 화장품 냄새가 입구까지 풍긴다. 핑핑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캔디크러시에 매진하셨군.
궁예질을 해 보자면, 나를 몹시 반기는 저 중개사는 부푼 마음으로 중개소를 열었을 것이다.
혁신도시에 2만 세대 가까운 아파트가 지어지니 거래가 활발해질 것이란 기대감이 아주 컸겠지. 대한전력이 내려왔고, 아파트가 마구 지어지니 폭발하는 거래에 넘쳐 나는 복비를 주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입주가 시작됐음에도 아파트에 불은 켜지지 않고, 아파트 가격은 분양가와 별반 차이가 없으니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캔디크러시에 심취할 수밖에. 그러다 내가 등장했으니 화들짝 놀라 몹시 반기지 않았을까?
“안녕하세요. 혁신도시에 아파트 좀 보러 왔습니다.”
“매매로 알아보시려구요? 아님 전세?”
“매매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화들짝 놀란 표정이 한층 더 화들짝 놀란다. 그래, 거래 성사되면 복비는 잘 챙겨 줄게.
“아휴. 잘 오셨어요. 혁신도시가 앞으로 엄청 발전하는 것 아시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공기업이 대한전력이잖아요? 본사가 위치한 데다, 자회사도 계속 들어오구요. 여기서 차로 20분 거리에 혁신산단 있는데 회사들도 많이 들어와요. 여기가 성장 가능성이 어마어마합니다.”
혁신산단에 입주한 회사라. 제가 첫 입주 기업 사장입니다. 하하.
“매물은 많습니까?”
“그럼요, 그럼요. 예산은 얼마쯤 잡고 오셨어요?”
“일단 한번 보여 주시죠. 매물 보고 돈을 맞추려구요.”
“네네, 그래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한번 보러 가시죠. 혁신도시에서 민간 아파트로는 가장 먼저 입주 시작한 아파트인데, 아주 잘 지었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차는 사무실 앞에 주차해도 되니까 놔두시고, 제 차로 가시죠.”
행여나 다음에 오겠다고 할까 봐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네. 뭐 나쁠 것 없지. 나도 아파트 구경 좀 해 보자.
“이 동네 상가들은 분양이 잘됩니까?”
“그럼요. 지금 인구가 만 명이 넘었는데, 앞으로 개발 다 끝나면 5만 명으로 늘어나요. 당연히 상가가 많아지겠죠? 호호.”
물어보고 나서 아차 싶었다. 어떤 공인중개사가 ‘이 동네는 밤이면 불 다 꺼져서 놀 데가 없어요’라고 하겠나.
“자, 다 왔습니다. 이 아파트에 대한전력 직원들이 많이 살아요. 혁신도시의 강남이랄까요? 호호.”
입주 시작한 지 반년 밖에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새 아파트 냄새가 진하다. 이런 아파트 살면 좋겠네.
“총 1,078세대인데, 전 세대가 다 남향이에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향만 한 것이 없죠. 창이 4개나 나 있어서 볕이 아주 잘 듭니다. 단지 뒤로 하천이 있어서 산책하기도 좋아요. 단지 내에 수영장도 있고, 이만한 아파트 없죠.”
“좋네요. 매매가가 어떻게 됩니까?”
“33평이 2억 3천만 원인데, 제가 집주인한테 얘기 잘해서 2억 2,500만 원까지 맞춰 볼게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알아서 500만 원 내려 보겠다고 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거래가 목마른가 보다.
“다른 매물을 더 보고 싶은데요.”
“가격이 맘에 안 드세요? 그럼 이것보다 조금 낮은 가격대로 보여 드릴까요?”
그렇게 세 채를 더 보고 나니 3시가 넘어 버렸다. 집 보는 것도 시간 잡아먹는 귀신이네.
“어떻게, 결정은 하셨어요? 가격이 너무 높다 싶으면 빌라도 괜찮은 데 많아요. 빌라로 몇 군데 보여 드릴까요?”
“아닙니다. 충분히 잘 봤습니다.”
고생을 시켰는데, 기대감을 실망으로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계약 한번 하겠다고 이리 최선을 다하는데 희망은 심어 줘야지.
“직원들 숙소 구하려고 하는데, 제가 준비되는 대로 다시 오겠습니다.”
“다음에 오신다구요? 오늘 뭐라도 하나 하시면 좋을 텐데…….”
중개사가 헛품 팔았다는 생각에 실망한 표정을 보인다.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것 모르나?
“제가 혁신산단에서 조그마한 회사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단 15채 정도 매입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올 때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구경하게 해 주세요.”
중개사가 로또 3등이라도 맞은 듯 표정 관리가 안 되기 시작했다. 맘 같아서는 아파트 단지 전체를 사고 싶지만, 그건 다음에 돈 많이 벌면. 돈은 많이 벌 것이니까. 아주 많이!
“엄마야. 혁신산단이면 그 프라임테크인가 그 회사 사장님이신가요?”
“프라임일렉트릭입니다. 이거 회사 이름을 맘대로 바꾸시니 다른 데로 갈까 봐요.”
“호호호. 제가 깜빡깜빡해요. 밤이고 낮이고 아무 때나 연락 주세요. 제가 아주 잘해 드릴게요.”
이만하면 됐다. 이제 진짜 휴가를 즐겨 보자.
오랜만에 혁신산단 사무실이나 놀러 가야겠다. 나주 내려와서 일만 하느라 대외 활동을 거의 못해서 그런지, 만날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나는 사람이라면 혁신산단 최대근 사장이나, 혁신산단 이정용 과장이나, 혁신산단 유아란 대리나……. 젠장.
“안녕하십니까! 저 왔습니다!”
“어머, 사장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요즘 엄청 바쁘시다고 하던데…….”
문 여는 소리에 유 대리가 미어캣처럼 고개를 치켜세우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 몹시 반겨 준다. 정말 오랜만이긴 하다. 약간 차가운 인상은 여전하네.
“바람 좀 쐬러 한번 놀러 왔습니다. 이 과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네, 시청에 일 보러 갔어요. 미리 연락 주시지 그러셨어요. 이렇게 갑자기 오실 줄을 생각도 못했네요.”
“그나저나 대리님한테 큰 은혜를 입었는데 사례도 제대로 못했네요. 말로만 사례하겠다 하고, 죄송해요.”
정말 유 대리 아니었으면 우리 공장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유 대리 덕분에 도지사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도지사와 면담을 성사시켜 줬으니 나에게는 큰 은인이지.
“은혜요? 아! 도지사님하고 면담할 수 있게 아버지한테 부탁한 것 말씀이세요? 은혜라고까지 하시니까 쑥스럽네요.”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꽤 귀엽다. 차가운 인상을 가진 이가 의외의 모습을 보이면 강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법이지.
“제가 조만간 거하게 저녁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그때는 미리 연락드릴게요. 사장님 안에 계시죠?”
유 대리가 은인이라면 최 사장은 음, 은인이다. 내가 혁신산단에 처음 입주할 수 있도록 진두지휘했고, 공장도 합당한 가격에 지어 줬지. 무엇보다 돈 걱정하지 말라며 공사비 잔금 20억 원을 빌려 주기까지 했으니 은인 맞다. 역시 큰 은인.
“사장님, 지정수입니다.”
“아이고! 지 사장님! 어서 오세요. 어인 일이십니까!”
“근처 왔다가 인사차 들렀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이렇게 뵈니까 예전 생각도 나고 좋네요. 그렇지요?”
총선이 반년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 자리에서 최 사장 볼 일도 많지 않겠네.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시간 참 빠르네요.”
“나는 사장님 처음 봤을 때 이 사람 성공하겠구나 딱 느꼈지라. 우리 사장님은 눈빛이 아주 예술이에요. 사장님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성공합니다. 하하.”
“저 띄워 주시는 것은 여전하십니다. 하하. 총선 준비는 잘되십니까?”
공천은 따 놓은 당상이라며 기뻐했던 최 사장 얼굴에 근심이 흘렀다. 무슨 일 있나?
“아이고, 말도 마세요. 요즘 아주 시끌시끌하지 않습니까? 결국 당이 쪼개질 것 같은데, 이거 어떻게 돌아갈 지 예상을 못하겠으니 내가 미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제가 정치는 잘 모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정치 아니겠습니까? 사장님께서 열심히 준비하셨으니까 좋은 결과가 있겠지요.”
“여기 사장 자리도 올해까지만 하고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뛰어 볼까 했는데 판세가 복잡하게 돌아가니 원. 이거 내가 손님 모셔 놓고 애먼 소리만 하고 있네요. 하하.”
사업하는 사람이 정치 얘기 깊이 해 봐야 좋을 것 없다. 이 정도로 끝내고 로타리클럽 얘기나 들어 보자. 나도 이제 대외 활동하면서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사장님, 저번에 통화할 때 로타리클럽 가입 얘기하셨는데,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가입하시려고? 잘 생각하셨습니다. 사업도 좋지만, 지역에서 좋은 일도 하고, 좋은 사람도 만나고 그래야지요. 그래야 사업도 잘나가는 법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냥 가입 의사를 밝히면 됩니까?”
“아따. 로타리클럽은 아무나 가입을 못해요. 추천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내가 해 주면 되니까 걱정 말고.”
“그럼 바로 가입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로타리클럽은 회원 중에 동일한 직업이 있으면 가입이 어렵습니다. 아마 변압기 회사 하는 회원은 없을 텐데, 확인 절차를 거쳐야지요.”
이거 뭐 프리메이슨도 아니고, 순수한 봉사 단체를 지향한다더니 가입도 빡세네.
“사장님께서 추천해 주세요. 저도 짬 내서 봉사하며 지역 발전에 힘쓰겠습니다.”
“말씀 잘하셨네. 안 그래도 오늘 월례회가 있어서 회원들이랑 저녁 한 끼 하는데, 시간 되면 같이 가시죠? 뭐 몇 명 안 오니까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모처럼의 휴가가 이렇게 끝이 나겠구나.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회사 생각 안 하며 시간을 보냈으니 그걸로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