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really good RAW novel - Chapter 113
113
제113화: 덫2(1)
캐서린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덮어준 이불을 걷어찬 탓에 탐스런 몸매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녀를 만지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침대로 다가가려다 멈칫했다.
깨어나면 다시 매달릴 것이다.
조태수는 슬며시 이불을 당겨 몸을 가려주었다.
지이잉!
진동으로 해 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가 왔는데 모디였다.
「조슈아라고 아나?」
조태수는 이마를 찡그리며 생각해 보더니 직접 전화를 걸었다.
모디는 조태수가 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슬쩍 문자로 한번 두드려 본 것 같았다.
[조!]모디의 목소리였다.
조태수는 욕실로 들어갔다.
자는 캐서린이 깨거나 혹시라도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알지, 메이슨의 분신이랄 수 있네.”
[그 친구가 조금 전 한 사내를 만났는데 누군지 알 수가 있어야지 말이야. 운 좋게 사진 한 장을 찍어 보냈으니 확인 바라네.]잠시 후 문자로 사진 한 장이 전송되어 왔다.
검정색 양복에 붉은 점이 찍힌 푸른색 넥타이를 한 남자로, 4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였는데 머리를 바짝 뒤로 넘겨 빗었다.
조태수도 처음 보는 인물이다.
이제 마피아 생활에 어느 정도 젖어 웬만한 거물이나 경계해야 할 인물들은 알고 있지만, 이런 인물은 처음이다.
한참을 살핀 조태수는 맥그리거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 아직 안 자나? 캐서린과 같이 있나?]꿈틀!
맥그리거의 말은 반가워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캐서린과 같이 있냐는 말이 왠지 섬뜩하게 들린다.
마치 자신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자신을 감시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짚어 본 말일 수도 있을 것인데 등줄기가 후줄근하게 젖어오는 이유는 뭘까.
“사진 한 장을 보냈어요. 그자의 신분을 빨리 알려주세요.”
조태수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거실로 나가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마셨다.
담배 한 대를 물고 밖으로 나왔다.
밖은 한겨울이다.
동쪽과 서쪽 경호 초소에 불이 켜져 있고 경호원들이 총을 들고 유리 너머 찬바람 부는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누구보다도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맥그리거이며 또한 주말이었다.
주말이면 별일이 없는 한 캐서린과 같이 보낸다는 것도 알고 있으므로 얼마든지 추측 가능한 일인데 왜 이렇게 앞가슴이 싸하게 내려앉는 걸까.
‘설마!’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편집증?’
조태수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절대 아니다. 난 그렇게 심약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은 강했다.
지금까지 약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성격 차이나 지독한 권태 따위로 헤어진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부도덕함으로 부모가 이혼을 했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는 술에 의지해 살다 끝내 교통사고로 죽었다.
흔히 말하는 삐뚤어진 길을 갈 법도 하건만 자신은 꼿꼿했다.
삐뚤어지는 것 자체가 아버지에 이어 자신까지 함몰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더욱 올바르게, 흔들리지 않고 버텨야 한다며 살았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끝없이 주위를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살기 위한 예리한 경계와 의심은 편집증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맥그리거였다.
[어디서 찍었나?]모디에게 세 명의 전 전국위원들을 감시하라고 한 것은 조태수 자신의 뜻일 뿐 맥그리거는 모른다.
자신의 임무는 맥그리거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조직의 사업 확장에 충실하도록 보좌하는 것이다.
맥그리거를 보좌한다는 건 곧 튼튼하게 지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지간한 일은 자신의 선에서 처리한다.
[레드 디자이너라는 말 들어봤나?]조태수는 움찔했다.
살인 청부업자이다.
피를 디자인한다는 사내.
이탈리아계 이민 3세로 뉴욕 5대 패밀리는 물론 정재계까지 넓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그가 보여준 가장 최근의 사건은 머더 의원 사건이다.
총기를 규제하지 않으면 머잖아 수십, 심지어 수백 명까지 총기에 죽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라면서 강력한 총기 규제를 외치는, 대표적인 반 총기협회 쪽 인물이었다.
수많은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총기 규제법을 발의 통과시키기 직전 자신의 침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부검 결과 심장에서 독일제 발터 PPK 한 발이 발견되었다.
총기 남용을 가장 경계했고 근절시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정작 자신은 총에 의해 암살된 것이다.
배후로 미 총기협회가 지목되었고 대대적인 조사에 나섰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은 미제로 빠졌다.
총기협회의 청부를 받은 레드 디자이너 짓이라는 것이 FBI의 주장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주장으로 끝났을 뿐이다.
증거도 없고 그 시간 레드 디자이너는 자신의 가족들과 부활절 파티에 참여하고 있었다.
조태수는 전화를 끊었다.
때마침 순찰을 돌던 로이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안 자고 나왔나?”
캐서린의 신변을 책임지는 인물이다.
조태수 입장에서는 가장 잘 대접해야 할 인물이었기에 수시로 봉투가 들어갔다.
로이는 그때마다 고마움을 전하면서 더욱 열심히 캐서린을 경호했다.
“결혼식 예정은 없나?”
로이가 씨익 웃었다.
“집이 너무 커.”
물론 집이 크다.
그러나 로이의 말뜻은 가끔씩 캐서린이 너무 외로워 보인다는 의미였다.
결혼하여 같이 지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얘기였다.
“봄이 어떨까 싶은데…….”
“봄 좋지. 혼인은 봄에 하는 게 좋아.”
“이보게 존, 조가 캐서린과 올 봄에 결혼한다네.”
화장실을 들렀다 지나가던 경호원이 걸음을 멈추며 큰 소리로 웃었다.
“아가씨는 알고 있습니까?”
조태수에게 묻는 것이었다.
“아직 말하지 않았네.”
“언제나 결혼하자는 청혼이 나올까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 같더니 빅 뉴스로군. 축하드립니다. 조.”
“고맙네. 존.”
조태수는 싱긋 웃었다.
캐서린이 슬며시 이불을 빠져나갔다.
조태수는 일찍 잠들지 못했기 때문에 한밤중이다.
그런데 빠져나가려는 캐서린을 조태수가 잡았다.
“깼어요? 난 조심한다고 했는데 미안해요.”
캐서린이 엎드리듯 그를 내려다보자, 조태수는 캐서린의 가슴을 감싸쥐듯 껴안으며 말했다.
“결정했어?”
“뭘요?”
“결혼. 자세한 얘긴 로이에게 들어, 어젯밤 로이와 우리의 결혼 문제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지.”
“우리의 결혼 문제 이야기를 왜 로이와 나눠요?”
캐서린의 눈이 커졌다.
“로이는 당신을 지켜주는 사람이잖아. 어찌 보면 우리에게는 제일 중요한 식구이지.”
“피이!”
캐서린이 입을 삐쭉했다.
“안 기뻐?”
의외로 차분한 캐서린의 표정에 조태수의 눈이 빛났다.
“글쎄요. 오빠가 청혼하면 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듣고 보니 맹숭맹숭한데요.”
오빠, 한국식 표현이다.
물론 조태수가 한국에서는 남자가 나이가 더 많을 때는 오빠로 호칭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전혀 기쁘지 않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 웁!”
조태수가 그녀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나와 결혼해 줘. 캐서린, 당신을 사랑할 준비가 끝난 것 같아.”
“아아!”
캐서린은 감격의 한숨을 뱉었다.
“싫어?”
“아니, 너무 좋아. 황홀해. 이제 마음이 편해졌어. 사실 그동안 얼마나 눈치를 봤는지 알아? 왜 청혼을 하지 않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의심하고 두렵기도 하고…… 아빠도 없는데, 오빠가 나 싫다고 돌아서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았어. 이제 됐어. 너무너무 행복해. 사랑해!”
캐서린은 조태수의 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비볐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뜨거운 태양이 방 안을 비추었고 열기는 갈수록 높아졌다.
***
예전에 폭발로 부서진 조태수의 집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보험회사가 주도하여 짓고 있는데 절반 정도밖에 지어지지 않아 인근 호텔에서 묵고 있었다.
오랫동안 묵고 있기 때문에 호텔 직원들과도 허물없이 지낸다.
데스크에 있던 지배인이 미소를 지었다.
조태수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이 묵고 있는 7층으로 올라갔다.
쨍!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조태수는 조용한 복도를 따라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707호 문 앞에 도착한 조태수는 주머니에서 키를 꺼냈다.
멈칫!
키를 꽂으려던 조태수의 고개가 문 위로 향했다.
아침에 나갈 때 문 위쪽에 슬쩍 끼워 놓고 나간 검정색의 실이 보이지 않는다.
조태수는 카펫이 깔린 바닥을 주시했다.
카펫은 자주색이었는데 검정색 실이 복도 창문 아래에 떨어져 있다.
누군가 지나가다 문틈에 끼인 실을 보고 뽑아 버렸을 리는 없다.
문 또한 어두운 밤색이었기 때문에 검정색 실을 발견한다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
조태수는 허리를 구부려 바닥에 떨어진 검정색 실을 주웠다.
자신의 뼘에 맞는 길이, 아침에 끼워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는 조태수의 눈이 깊이 침잠했다.
침착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지금 사냥꾼이 문에 가혹한 덫을 설치해 놓고 자신이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필시 문을 열면 폭발할 것이다.
흔히 군사적 용어로 부비트랩이라고 하는데 테러나 게릴라전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법이다.
일단 덫에 걸려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냥꾼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걸려들지 않으면 계속 자신을 피곤하게 할 것이고 집요하게 뒤쫓을 것이 틀림없다.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삶이 쫓기는 것이다.
걸려들면서 죽지 않는 법이 뭘까.
한참을 생각하던 조태수는 몸을 돌려 곧장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덜컹!
트렁크를 열자 바닥에 검정색 방탄조끼와 바이크용 헬멧이 있었다.
조태수는 양복 윗도리를 벗고 안에 방탄복을 착용한 뒤 재킷을 걸쳤다.
이어 작은 여행 가방을 열어 압박붕대와 석면으로 된 장갑과 헬멧을 들고 트렁크를 닫았다.
“지코!”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며 지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게.”
조태수는 자세한 설명을 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왔다.
다행히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다.
문 앞으로 다가온 조태수는 압박붕대로 눈 주위를 칭칭 동여맨 뒤 헬멧을 눌러썼다.
압박붕대와 석면장갑, 방탄조끼 모두 만약을 대비한 준비물들이다.
석면장갑은 불에 강하고 웬만한 충격에도 뚫리지 않는다.
방탄조끼는 자동소총을 정면으로 맞으면 몰라도 권총이나 파편에는 충분한 보호가 된다.
바이크 헬멧은 충격 방지용이다.
특히 앞의 유리는 방탄으로 특별히 제작되어 권총은 너끈하게 막아낸다.
그래도 혹시 눈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압박붕대로 눈을 감은 것이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조태수는 열쇠를 꽂아 왼쪽으로 돌렸다.
철컥!
하며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콰아앙!
예상대로 부비트랩이었다.
조태수의 몸은 공중으로 붕 떴다가 천장에 한번 부딪친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탄복을 입었는데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수류탄 두 발을 깔았군.’
눈을 떠 보니 안전핀 두 개가 저만치 나뒹굴고 있었다.
조태수는 곧바로 헬멧과 방탄복을 창밖으로 던졌다.
눈을 감은 붕대도 풀어 던졌는데 호텔 뒤쪽 정원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코는 떨어지는 헬멧과 방탄복과 붕대를 신속히 수거해 사라졌다.
가슴과 얼굴은 보호되었지만 옷은 구멍이 뚫리고 찢어져 걸레가 되었다.
양쪽 팔 일부가 따끔거리는 것이 파편 몇 개를 맞은 것 같다.
문을 여는 순간 양팔을 뒤로 감췄는데도 적지 않은 상처이다.
이제 남은 건 얼굴이다.
퍼억! 유리조각에 얼굴을 스치듯 박았다.
면도할 때 살을 베는 느낌이 들었는데 유리 파편이 얼굴 피부 일부를 그은 것이다.
흉터가 생기지 않을 정도의 상처만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