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48
148 우리 집안에 미친놈이 하나 들어왔군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알만하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볼 때도 상당히 강인한 인상이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코앞에서는 보는 건 위세가 전혀 달랐다.
단순히 체격이 거대하다는 의미를 떠나서, 그의 걸음걸이나 눈빛을 비롯한 몸짓 하나하나에 태산과도 같은 무게감이 실려있다.
특히 강용학이 한 차례 좌중을 훑던 와중, 잠시나마 서로의 눈이 마주쳤을 때는 산전수전 다 겪은 나조차 움찔할 정도였으니.
‘이러니 다들 꼼짝을 못하지.’
백두대호(白頭大虎).
문자 그대로 백두산의 호랑이 같은 사람이었다.
동시에 수많은 악조건과 위기 속에서도, 그가 어떻게 대한 그룹을 일궈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고.
“시작하지.”
“예, 회장님.”
보기 드문 강산의 깍듯한 대답과 함께 회의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우리에 대한 질문이 먼저일 거라 생각했건만.
‘···이건 좀 당황스럽네.’
오늘을 대비해 머릿속은 물론, 실제로 시나리오를 타이핑해가면서까지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전부 뽑아온 나였다.
허나 강용학은 모든 예상을 깨트리고, 나에게는 한 줄기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로 담담히 회의를 이어나갔다.
심지어 강산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당연하다는 듯 나와 강바다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멕시코에서 추진 중인 반도체 공장 건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입니다. 정부 측과는 진즉 협의가 마무리됐고, 현지 카르텔 쪽만 마무리하면 됩니다.”
“치안 문제는 해결했나?”
“예. 저희가 자리 잡은 곳은 무정부 상태인 북부지역과는 다르게, 멕시코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 자본도 많이 유입된 지역이라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카르텔 쪽과의 협상은 이렇게 지지부진하지? 처음 입안했던 계획서대로라면 그쪽이 제일 먼저 끝났어야 할 텐데?”
“그건···.”
“이 부분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베라크루스에 자리 잡은 카르텔은 불법적인 일보다는 지역 치안에 힘을 쓰는 기업화된 경호업체···.”
스윽-
나는 조심스럽게 좌중을 훑어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긴 했으나.
‘지금은 그냥 조용히 있자.’
강용학을 비롯한 모든 인원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며 진행되는 회의에 굳이 돌을 내던질 필요는 없으니까.
‘기강 잡으려는 것도 아니신 듯하고.’
군대든 어디든 간에, 신입이 들어오면 괜히 기강 잡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있다. 괴롭히는 방법도 가지가지인데.
대놓고 트집을 잡아 꼽을 주는 방법도 있고,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경우도 있다.
허나 내가 볼 때 강회장은 결코 그런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이건 반대라고 생각해야겠지.
‘···흘러나오는 정보 하나하나가 기업 비밀이야.’
혹여 바깥으로 정보라도 새어나갔다가는, 대한 그룹은 물론이고 코스피까지 뒤흔들 정도로 엄중한 정보들이다.
만약 강용학이 나와 강바다를 완전한 외부자로 취급했다면, 이런 자리에 불러서는 안 된다.
만약 부른다 하더라도, 첫 번째 안건으로 처리한 다음 회의실을 나가라고 했겠지.
‘어쩌면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수도···.’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회의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발단은 강회장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하여 저희는 토착세력과의 협상을 통해···.
“강산.”
뚝-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천하의 강산이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그러자 강용학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은 기업인으로서의 숙명이다. 허나 그것이 단순히 돈으로만 계산되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
“네가 처음 이 안건을 제시했을 때도 내가 분명히 말했지. 그룹에 이익이 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직원들이 다치는 일은 없도록 하라고. 기억하나?”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일을 이렇게 처리했지?”
“······.”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강산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처음 보는 모습에 신기해할 새도 없이 강용학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나도 카르텔이라고 해서 꼭 마약 유통과 범죄만 자행하는 집단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오히려 자경단 역할을 하는 곳도 있지. 네가 말하는 곳도 그런 성향이 짙은 곳일 테고.”
“예, 그렇습니다.”
“헌데 직원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현지의 값싼 노동력을 끌어당긴다고 해도, 최소한의 관리 인원은 필요할 텐데?”
“······.”
다시금 이어지는 침묵.
강산은 무언가 고민하듯 지그시 눈을 감았고, 강용학은 그의 대답이 나올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순 계산으로는 고작 2~3초에 불과했으나, 그 시간 안에 담긴 무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천년 같은 기다림 끝에 마침내 강산이 눈을 떴을 때, 그는 강용학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한층 차분해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저희도 처음 멕시코행 비행기를 탈 때는 안전에 대해 가장 많은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나는군요. 아마 직원들은 저희보다 훨씬 더 큰 부담감을 느끼겠지요.”
“······.”
“아무리 기업화된 카르텔이라고는 해도, 어쨌거나 총기로 무장한 집단의 경호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겠죠. 이 안건에 대해서는 전면 재검토해보겠습니다.”
“그리하거라.”
“예. 감사합니다.”
깔끔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강산과 쿨하게 이를 받아넘기는 강용학. 그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조금 놀라고 말았다.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네.’
김포 공항에서 멕시코시티까지 비행기로만 최소 17시간이다. 강산은 전세기를 사용한다고 했으니 소요 시간이 크게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꽤나 큰 노력이 들어가는 것은 변함없다.
어디 그뿐이랴.
그가 직접 멕시코에 체류했던 기간만 해도 수개월이며, 이 계획을 위해 준비했던 시간은 몇 배로 훌쩍 뛰겠지.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저런 말은 쉽게 못 하지.’
물론 전면 철회하겠다는 발언까지는 아니었으나, 여태껏 전해 들은 발언만 종합해봐도 계획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건 단순히 강산뿐 아니라, 기업적인 측면에서도 손해가 막심할 것이 분명한데도. 저렇게 담담히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다음 안건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강산의 안건이 끝나자 곧바로 강태양이 보고를 이어나갔으며, 이것이 강별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이게 대한 그룹의 진정한 힘인가.’
겉으로는 서로 으르렁대며 물어뜯으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룹에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는 행동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상대방의 능력과 맡은 영역을 인정하고 존중해준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는 더욱 탄탄해지고, 외부로는 끊임없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그룹의 원동력이 되는 거고.
‘대단하군.’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
그 말을 실제로 구현해내는 모습에 나는 기어코 감탄하고야 말았다.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지는 느낌이랄까.
회의는 몇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고, 그동안 나와 강바다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으나. 이에 대한 불평은 전혀 없었다.
어느 새부턴가 나는 그들의 대화에 푹 빠져들었다. 가능하다면 이런 모습을 내 소설에도 온전히 담아내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며.
“···늘 씨.”
무아지경에 빠진 손이 저도 모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림자처럼 항상 함께하던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없는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은 한 자루의 펜과 종이뿐.
스스스스슥-!
실로 오랜만에 쥐어보는 펜의 감촉이 낯설었으나, 그것이 되려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빠르게 글을 써 내려갔다.
촤악-!
머릿속으로 쏟아지는 영감을 새하얀 백지 위에 모조리 토해낸다. 종이가 검게 물들어가며 내 생각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꽤나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소설. 몇 번이나 퇴고를 거쳤음에도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폴더 한구석에 박아두었던 나만의 이야기.
그렇게 긴 세월 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좀처럼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던 그것이, 이 자리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어간다.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그곳에는 모두가 있었다.
나는 물론이고, 바다 씨와 예나. 부모님과 동생. 강용학, 강산, 강태양, 강별, 종국에는 정규섭에 이르기까지.
한 줄씩 채워나갈 때마다, 각 캐릭터에 점점 생기가 불어 넣어지면서 한 명씩 머릿속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내야!”
“···두거라.”
종종 귓가에 알 수 없는 울림이 들려왔지만, 지금 나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이 한순간의 영감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촤르륵-!
그런 확신으로 벌써 몇 장째인지도 모를 종이를 넘겨 가며, 나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나갔다.
툭-!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명을 다해버린 펜촉이 부러지며 시꺼멓게 물들었던 나만의 세계가 무너져내렸다.
진한 아쉬움과 뿌듯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감각에 넋을 놓기도 잠시. 퍼뜩 돌아오는 정신에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나에게 쏠린 수많은 시선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 안에는 아주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나 강렬하게 느껴졌던 것은.
“다했나?”
다름 아닌 강용학의 시선이었다. 몇 시간 동안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던 그가 전에 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으면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제대로 깨달았다.
‘···좆됐다.’
그제야 주변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는 처음의 온전한 형태를 잃고 어딘가 하나씩 부러져버린 펜들이 잔뜩 늘어져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한 자루에 불과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한두 개가 아니라 아예 수십 개를 부러트린 모양.
“···하늘 씨, 괜찮아요?”
책으로 엮어도 모자랄 만큼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강바다의 시선. 그녀의 손에는 꽤나 두툼한 종이 뭉치가 들려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었으나, 문제는 그 분량이 정말 만만치 않았다는 것.
키보드로 쳐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 법한 분량을 펜으로 써냈다면, 물리적인 시간은 대체 얼마나 흐른 걸까.
‘···와, 진짜 좆됐네.’
꿀꺽-!
슬쩍 시계를 확인한 나는 입안이 바싹 말랐다. 직후 아나콘다처럼 온몸을 꽉 조여오는 긴장감에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고야 말았다.
3시간.
나는 장장 3시간 동안,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의 관심 어린 뜨뜻한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단독 서커스를 해버린 것이다.
도무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상황에, 지금이라도 양손을 넓게 펼치며 ‘짜잔-!’이라도 외쳐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큭, 크하하하하하-!!”
어디선가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내게로 집중되어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곳에는 누가 자신을 바라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이 떠나가라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강용학이 있었다.
“크하하하, 재밌군! 정말 재밌어!”
그를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어색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 한참을 웃던 강용학이 돌연 정색을 하며 말했다.
“우리 집안에 미친놈이 하나 들어왔군.”
사아아-
몸이 시릴 정도로 싸늘한 바람이 회의장을 맴돌았다. 이에 모든 걸 체념한 나는 깊은 한숨을 삼키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