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38
038 역시 돈이 최고라니까
– 설마 내 경고를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연애 중 이상 없습니다.”
– 이제는 나한테 농담도 던지는군. 조만간 말도 트자고 하겠어?
“가문의 영광이죠.”
국내 최고 대기업의 차남과 말을 튼다면 우리 조상님도 잘했다며 물개 박수를 쳐주시겠지.
– 쯧. 건방진 놈.
내가 넉살 좋게 받아넘기자 강태양이 혀를 찼다. 다행히 기분 나쁜 듯한 어조는 아니었다.
‘둘이 남매 맞네.’
말투는 달라도 분위기가 강바다랑 똑같다. 특히 ‘건방지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의 어조는 두 사람이 같은 핏줄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 조심해라. 그 이상은 용서 못 한다.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말이었으나, 강태양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분명 스킨쉽에 관한 이야기겠지.
‘···역시 지켜보고 있었나?’
곧바로 박수정이 머릿속에서 떠올랐으나, 금세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래 봬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몸인지라, 사람 보는 눈 하나만큼은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내가 볼 때 박수정은 강태양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존재다. 힘의 크기를 떠나서 개와 고양이처럼 생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명심하겠습니다.”
– 매번 말은 잘하는군. 아무튼 이번 주에 보육원 리모델링이 끝날 예정이다. 너라면 꼬맹이들을 직접 데려가고 싶겠지?
“특별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착각하지 마라. 이건 단순한 거래일 뿐이니까. 일정은 장비서를 통해 전달하겠다.
뚝-
예고 없이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시꺼멓게 물든 화면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말투는 좀 까칠해도 자기 사람은 확실하게 챙겨주는 사람이라니까.
‘그나저나 리모델링이 끝났다고?’
어느새 한 달이 훌쩍 넘어가 버린 기간. 도대체 얼마나 뜯어고치려고 이렇게 오랫동안 공사를 한 건지.
언젠가 궁금해서 직접 보육원에 가봤더니, 주변에 거대한 천막을 둘러놨더라. 심지어 주변에는 정장 입은 아재들이 출입을 통제하는 중이었고.
‘이 인간 설마···. 세탁소로 쓰려는 건 아니겠지?’
얼핏 일본의 야쿠자들이 자금 세탁을 위해 고아원을 경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강태양은 조폭도 아니고, 조세피난처나 페이퍼 컴퍼니는 이미 잔뜩 가지고 있겠지만. 원래 이런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아니던가.
– 이건 단순한 거래일 뿐이니까.
– 저희는 항상 베푼 것 이상을 받아내거든요.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강 씨들의 지난 발언. 이쯤 되자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근데 따지고 보면 서로 좋은 일 아닌가?’
사실 대한 그룹이 개입하기 전의 보육원은 지원도 제대로 못 받았다. 아이들 밥 챙기는 것도 힘겨워했었고.
헌데 지금은 밥은 물론, 옷이나 장난감 사주고, 리모델링도 해주고, 심지어 유원지까지 데려가 주는 곳이 되었다.
강태양이 보육원을 조세피난처로 사용하든 말든, 제대로 운영하기만 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일 아닌가.
‘나쁘지 않은데?’
제법 진지하게 고민되기 시작했다.
다음에 슬쩍 한번 여쭤봐야지.
* * *
“언니이-!!”
아이들이 머무는 수련원으로 들어서자, 차 소리를 들은 예나가 얼른 뛰어나왔다. 예나는 강바다 품에 안겨서 울먹거렸다.
“보고 싶었어···.”
“지난 주에도 봤는데?”
“언니야는 매일 보고 싶은걸!”
“오구, 그랬어?”
강바다가 예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러자 예나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려는지 훌쩍거리면서도 입술을 오물거렸다.
“이 오빠는 무척 섭섭하구나.”
그 모습에 괜히 장난기가 돈 나는 고개를 돌리며 눈물 흘리는 척을 했다. 그러자 예나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이후 나와 강바다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예나. 거기서 진짜로 마음이 상해버렸다.
“와···. 이 오빠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예나 보려고 달려온 게 1년이 넘는데. 예나는 마녀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렸구나.”
“지금 저보고 마녀라고 하신 거예요?”
강바다가 어이없다는 듯 나에게 핀잔을 줬다. 나 스스로도 유치한 짓거리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아아, 이제 오빠는 속상해서 여기 못 오겠다.”
“히끅-!”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예나가 움찔하며 내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려는 찰나.
“예나야, 저건 거짓말이야.”
“거짓말?”
“그래, 하늘 오빠는 지금 예나를 속이고 있는 거야. 못된 악당의 말은 믿으면 안 된다?”
“저기요.”
강바다의 복수에 우는 소리를 냈으나, 그녀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리 둘 사이에 낀 예나의 눈살이 잔뜩 찌푸려졌다.
“언니는 마녀···. 오빠는 악당···.”
혼란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고민하는 예나. 그 모습이 퍽 귀여웠던 터라 우리는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나를 선택하지 않을까.
솔직히 그런 생각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시간과 노력의 힘으로 틀림없이 내가 선택받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허나.
“예, 예나야!”
“후훗-”
예나가 강바다의 손을 잡았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절규에, 강바다가 ‘설마 진짜로 기대하신거예요?’라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매도했다.
“언니랑 음료수 마시러 갈까?”
도리도리-
예나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후 절망에 빠진 나를 지그시 쳐다보는가 싶더니, 선뜻 발걸음을 옮기는 예나.
예나는 강바다의 손을 굳게 잡은 채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 손에는 강바다를, 다른 손으로는 나를 붙잡았다.
“예나는 둘 다 좋아.”
“······.”
“나쁜 저주는 예나가 풀어줄게!”
“응?”
예나가 동시에 손을 놓더니 손목에 차고 있던 캐릭터 시계를 눌렀다. 그러자 안쪽에서 화려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최근 강바다가 아이들에게 사준 장난감인 모양인데. 우리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예나가 짐짓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변신!”
“···가면라이더!?”
“아니야! 마법 소녀 ‘메리’야!”
“아, 그래. 미안.”
왠지 본격적인 시동이 들어가 버린 예나. 그 서슬 퍼런 눈빛에 당황한 나는 입을 꾹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예의 ‘변신’을 마친 예나는 강바다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고.
강바다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예나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여줬다.
“나쁜 저주야 사라져라, 뿅!”
“······.”
“뿅!”
“···우와아, 저주가 풀렸어요! 예나 덕분에 언니는 공주님으로 되돌아왔어!”
“에헴!”
강바다가 눈치껏 맞춰주자 기고만장해진 예나. 허리에 손을 올리며 짐짓 거만한 포즈를 취한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퍽 재밌었던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곧바로 꽂히는 두 쌍의 차가운 시선. 특히 강바다 쪽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것이 진짜 마녀 같았다.
두 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지 못한 나는 장단에 맞춰 입을 열었다.
“오빠 저주도 풀어줄 거지?”
“애교.”
“나는 왜 유료야!?”
“오빠한테 걸린 저주는 너무 강해.”
킥-!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바다가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참았다. 슬쩍 째려봤으나 보란 듯이 어깨를 들썩이는 그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스스로 쌓은 업보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무슨 애교를 해야 하는데?”
“강아지.”
“왜 하필 강아지야?”
“오빠의 저주는 너무 강해서 액막이가 필요해. 길 잃은 강아지의 영혼을 불러와서 오빠 대신 희생시켜야 해.”
그건 너무 본격적이지 않니?
게다가 마법 소녀라기보단 주술사에 가까운 것 같은데. 태클 걸고 싶은 부분은 많았으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용기는 없었다.
‘···예나도 만만치 않다니까.’
고민은 짧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본격적으로 임한다.
이래 봬도 나는 그 유명한 ‘포켓몬스터 알바’까지 해본 사람이다. 꼬맹이 수준에 맞춰 놀아주는 건 얼마든지 자신 있다.
“자, 얼른!”
“멍···.”
“흐흐흐.”
“···청한 녀석! 방심했구나!”
“꺄아아악-!”
기습적으로 예나의 옆구리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지난 1년의 세월은 결코 허투루 보낸 것이 아니다. 난 그녀의 약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꺄하하하하-! 그만! 그만! 오빠!”
“오빠가 아니다! 악당이다!”
“아, 안 돼! 언니!”
“후후후. 너의 언니는 이미 나에게 세뇌되었다. 메리, 넌 속은 거야!”
“······!!”
예나가 충격받은 얼굴로 강바다를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상황극에 당황한 강바다가 잠시 멈칫거리다가, 조심스레 말을 열었다.
“호, 호호호! 완전히 속았구나, 메리!”
“히끅-!”
이런.
예나의 표정을 본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적당히 져줄 생각이었는데, 놀리는데 너무 심취해버렸다.
“······.”
“······.”
갑작스럽게 내려앉은 숨 막히는 침묵. 이건 머지않아 폭탄이 터질 거란 전조 증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메리는 졌어.”
“마법 소녀가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되지!”
“이제는 희망이 없어.”
어린아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 튀어나오면 누구라도 움찔할 수밖에. 강바다 역시 안절부절못하며 허공에 손을 휘적거렸다.
짝-!
그때 누군가 내 등짝을 시원하게 때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원장님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계셨다.
“밖에서 안 들어오고 뭘 하나 했더니···.”
“원장니이이임!”
예나가 얼른 원장님 품으로 달려들었다. 드넓은 품에 안긴 예나는 눈물 젖은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봤다.
“단단히 삐졌구만. 음···.”
더 늦기 전에 나는 얼른 몸을 숙였다. 천천히 시선을 맞추자 예나가 움찔하며 원장님의 뒤로 몸을 숨겼다.
그 모습에 괜히 가슴 한구석이 따끔거렸으나, 나는 짐짓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예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예나야, 우리 새집 보러 가자.”
“새집?”
“응. 산타가 와서 예나가 살던 집을 예쁘게 꾸며놨대. 언니 오빠랑 같이 구경하러 가자.”
“오빠 바보. 세상에 산타가 어디 있어.”
“······.”
대체 어떤 놈이냐, 예나에게 속세의 찌든 때를 묻힌 녀석이. 누군지 꼭 밝혀내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강바다가 끼어들었다.
“지금 산타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셔.”
“···정말?”
“그럼. 언니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니?”
도리도리-
예나가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말할 때랑 온도 차가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느껴지면 속이 너무 좁은 걸까.
씁쓸한 마음을 삼키는 사이, 강바다는 세상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예나를 쓰다듬었다.
“원장님이랑, 친구들이랑. 다 같이 산타 보러 가자! 예나가 친구들 좀 데려와 줄래?”
“응!”
어느새 눈물을 닦아낸 예나는 환하게 웃으며 원장님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이에 원장님은 걱정이 담긴 시선으로 강바다를 바라보다가, 확신에 가득 찬 그녀의 눈빛에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셨다.
“크리스마스도 한참 멀었는데 어디서 산타를 구하시려고요?”
“다 방법이 있죠.”
강바다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채 한 번도 울리기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실장님, 저예요.”
강바다의 의도를 파악한 순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진짜 마녀보다 더한 마법도 부릴 수 있는 인간이 내 눈앞에 있었다.
역시 돈이 최고라니까.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다음 일정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