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41
041 언니가 왜 거기서 나와?
“막내야아아아-!!”
“윽···.”
와락-!
누군가 강바다를 세게 끌어안았다. 강바다는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한테 연락할 때부터 예상했던 전개이기에, 비교적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언니, 숨 막혀···.”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응? 우리 도대체 얼마 만에 보는 거니? 심지어 네가 먼저 연락을 다 하고.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우리 지난달에도 봤거든?”
“너무 오랜만이다. 얘!”
강씨 가문의 넷째, ‘강별’은 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이에 한숨을 내쉰 강바다가 등을 토닥여주자, 그제서야 뒤로 물러나는 그녀.
강별은 연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강바다를 바라보며 질문을 쏟아냈다.
“그동안 뭐 하고 지냈어? 밥은 먹었니? 남자친구는 언제 데려올 거니? 응? 응?”
“언니!”
결국 강바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계속 끌려다니기만 해서는 결코 언제 본론으로 들어갈지 알 수 없으니까.
“우리 막내 많이 컸네. 언니한테 소리도 막지르고. 이 언니는 감동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픔을 감출 수가 없구나.”
“계속 그러면 나 그냥 간다?”
“그건 안 되지. 홍차? 커피?”
“···그냥 물이면 충분해.”
강바다는 고개를 내저으며 쇼파에 앉았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기가 다 빨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 모습에 강별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녀는 강바다의 맞은 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언니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부탁?”
“응.”
부탁이라는 말에 강별의 미간이 좁혀졌다. 평소 막내는 타인에게 빚을 지기 싫어하는 터라, 정말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어리광을 피우지 않는데.
“혹시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지원해달라고 하는 거라면 무리야. 이 언니는 반대파거든.”
“···뭐!?”
“나는 기둥서방이니, 셔터맨이니 전부 질색이야. 감히 우리 막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놀고먹는 꼴은 절대 못 봐.”
“언니, 내 뒷조사했어?”
강바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얼어버렸겠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강별 역시 대한 그룹의 일원.
심지어 강바다와는 다르게 진정한 후계자로서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강별을 여유롭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
“새삼스레 무얼. 우리 가문에서 네 소식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니? 대놓고 그쪽 부모님까지 우리 그룹 병실로 옮겼으면서.”
“아무리 그래도···!”
“바다야, 너도 이제 어른이잖니.”
달칵-
강별은 찻잔을 다시 내려놓으며 차게 식은 눈으로 상대를 마주했다. 낯선 언니의 모습의 강바다가 움찔했다.
“회장님께서는 막내가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고 하셨지만, 네가 ‘강’이라는 성을 달고 있는 이상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
“어리광부릴 나이는 이미 지났단다. 그래도 막내를 사랑하는 언니로서 경고해주자면, 연구실에서도 곧 나오게 될 거야.”
“누구 마음대로?”
“그것까지 알려주면 재미없지. 너도 스스로 날갯짓하는 법은 배워야 하지 않겠니?”
강바다는 말없이 상대를 노려봤고, 강별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마주 봤을까, 강별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백기를 내걸었다.
“역시 사랑에 빠진 여자는 무섭네. 우리 막내 완전히 콩깍지가 쓰였구나?”
“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작년까지만 해도 언니 눈 하나 똑바로 못 쳐다봤잖니. 그때는 마냥 귀여웠는데 이제는 제법 대한 그룹 사람다워졌네? 작은 오빠가 직접 관리하는 이유도 알겠어.”
“···작은 오빠?”
“아, 실수. 방금 건 못 들은 거로 해줘.”
찡긋-
강별이 윙크를 날렸다. 허나 강바다는 그녀가 결코 이런 실수를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작은 오빠가 뭘 관리하고 있다는 거지? 사업체? 보육원? 아니면 연구실에 손을 뻗은 게 작은 오빠인가?’
강바다는 애써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쏟아지는 정보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허나 이곳을 찾아온 본래 목적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강바다는 짐짓 태연한 척 자세를 고쳐 앉았다.
흐응-
강별은 강바다의 기색이 바뀐 것을 읽었는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부탁할 건 뭐야?”
“···언니 소유의 개인 전시관을 빌리려고 왔어. 가능하면 작업실도 같이.”
“이유는?”
“개인적인 사유.”
“그러면 내가 빌려주겠니?”
“응. 부탁할게. 동생으로서.”
“나참.”
강별은 대답하는 대신 홍차를 입에 머금었다. 결연한 강바다의 눈을 보니 좀처럼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했다.
“공짜로는 안 돼.”
“원하는 걸 말해 봐.”
“네가 가진 대한전자 주식 나한테 전부 넘겨.”
“알겠어.”
켈록-!
예상치 못한 수락에 강별이 헛기침을 했다. 홍차가 목에 걸렸는지, 크게 사레가 들린 탓에 한참을 들썩거렸다.
“얘는, 농담도 못 하니!?”
“언니라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줄 수 있어.”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해두는데 네 결혼 문제는 대한전자 주식 따위로는 안 돼. 네가 가진 모든 걸 걸어도 힘들걸?”
“···회장님이구나?”
“글쎄.”
강별은 손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더는 말해줄 수 없다는 의미. 그것만으로도 강바다는 꽤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만 돌아가 봐. 곧 손님이 오실 시간이거든. 비서한테 방문 일정을 말해놓으면 알아서 처리해 줄 거야.”
“대한전자 주식은···.”
“됐어. 언니가 돼서 그런 거 하나 못 해주겠니? 참고로 거기 CCTV 쫙 깔려있으니까, 남자친구랑 이상한 짓 하지는 말렴.”
“그, 그런 거 안 해!”
강바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를 본 강별이 작게 웃음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암묵적인 축객령에 강바다 역시 몸을 일으켰다.
“그럼 조심히 가고, 다음에는 이 언니가 보고 싶어서 와주면 좋겠···. 으응!?”
등을 돌리고 있던 강별은 뒤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촉에 순간 몸이 굳었다. 간신히 뒤를 돌아보자 강바다가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바, 바다야?”
“고마워, 언니.”
시선을 느낀 바다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뒤로 물러났다. 강별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자, 강바다가 양손을 흔들었다.
“다음에는 우리끼리 밥 먹으러 가자. 내가 괜찮은 식당을 하나 찾았거든.”
“어···. 응, 그래.”
“이만 가볼게.”
부끄러운지 강바다가 총총거리며 방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강별은 낮게 헛웃음을 흘렸다.
“···사람이 저렇게 변해도 되는 건가?”
설마 강바다가 먼저 스킨십을 해올 줄이야. 그녀가 성인이 된 이후로는 줄곧 엎드려 절받기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는데.
‘김하늘이라.’
녀석이 우리 막내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강별의 마음속에서 아주 자그마한 호기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강별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자신을 끌어안았던 강바다의 온기를 회상했다. 그러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비서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손님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스윽-
순식간에 미소가 사라지고 무표정으로 되돌아온 강별. 그와 동시에 익숙한 사내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이네. 작은 오빠.”
“지금은 대표님이다.”
강태양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의 눈이 테이블 위를 훑었다.
“먼저 온 손님이 계셨군.”
“엉덩이도 무거우신 분께서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을까?”
“······.”
강태양이 슬쩍 찔러봤으나, 강별은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어지럽게 얽혔다.
“꼬리를 잡았다.”
“드러그 디자이너?”
“그래.”
강별이 표정을 굳히며 자리에 앉았다.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를 찾아왔다는 건···.”
“그래, 아틀리에와 연관된 사람이더군. 미술품과 세트로 팔아넘기는 모양이야.”
“대체 어떤 놈이야?”
으득-
강별이 이를 갈았다. 예술 작품을 모으는 게 취미인 그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들을 모아서 아틀리에를 운영했다.
좋아하는 분야이니만큼 신경도 많이 쏟는 편인데, 그 안에 약쟁이가 숨어있다는 말은 결코 넘겨 들을 수 없었다.
“그건 아직 모른다.”
“우리 쪽 정보는 넘겨줄게.”
“말이 통해서 좋네.”
“우리 집에 있는 바퀴벌레를 잡아준다는데 오히려 내가 부탁해야 할 일이지.”
강별은 책상 서랍에서 두꺼운 책자 하나를 꺼내왔다. 아틀리에 소속 화가들과 직원들 일체의 신상이 담긴 책자였다.
강태양이 책자를 짚으려고 손을 뻗은 순간. 강별 역시 책자 위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 그냥 개인적으로 오빠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거니까.”
“대표님.”
“아니, 이건 오빠한테 묻는 거야.”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점점 무거워지는 침묵 속에서 먼저 입술을 뗀 것은 강태양이었다.
“말해라.”
“김하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강태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말에 숨겨진 진의를 파악하려는 듯 강별을 지그시 노려봤으나,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무슨 의미지?”
“문자 그대로야. 그 녀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먼저 온 손님이 바다였나?”
“질문은 이쪽이 먼저 했거든?”
“······.”
사뭇 진지한 강별의 표정을 보며 강태양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 동안 뜸을 들이던 그는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은 녀석이지.”
“···굉장히 후한 평가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뿐이다.”
“그 잘난 평가에서 보통 이상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되더라? 가족을 제외하면 끽해야 장비서 정도 아니야?”
“잡담은 끝이다.”
강태양은 책자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의문을 해소한 강별도 그를 막지 않았다.
멈칫-
곧장 문을 향해 나아가던 강태양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말했다.
“괜히 어설프게 장난치지 마라.”
“얼씨구, 그렇게 매제가 마음에 드셨어요?”
“아니,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응?”
“그리 만만한 녀석은 아니거든.”
철컥-
그 말을 끝으로 강태양은 방을 나섰다. 방 안에 홀로 남은 강별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비서를 불렀다.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되지?”
강별의 눈이 시리게 반짝였다.
그 짧은 시간에 강씨를 두 명이나 꼬셔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 * *
“우와아아아아─!!”
전시관에 들어서자 예나가 행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이런 반응은 1년 넘게 함께했던 나로서도 처음 보는지라 굉장히 신기했다.
‘···내가 봐도 웅장하긴 하네.’
일단 크기부터가 어지간한 공용 전시관보다 거대했다. 유지보수에도 신경을 쓰는지 습도와 온도 역시 일정하게 유지되는 모양이고.
더욱 놀라운 것은 전시관에 걸려있는 그림들이었다. 개인 아틀리에를 운영하면서 수집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저거 혹시 ‘고흐’ 작품이에요?”
“바로 알아보시네요.”
“···진품인가요?”
“아마도요.”
저게 다 진품이라고?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빈센트 반 고흐 외에도 ‘밀레’나 ‘모네’ 같은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꽤 많았으니까.
물론 생전에 다들 수천 장씩 그린 만큼, 생각보다 저렴한 그림도 많겠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기준이다.
당장 2021년에 경매에 나왔던 고흐의 가 ‘423억’에 낙찰된 것만 봐도, 여기 모인 그림들의 가치를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
가격이 가격이니만큼 보통 재벌들의 개인 컬렉션으로 들어가는데.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경우는 없다.
이 그림들을 소유한 강별의 재력과 인맥이 얼마나 대단한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예나야, 마음에 들어?”
“······.”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당연히 예나였다. 그녀는 강바다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멍하니 그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웃음을 삼킨 강바다는 미리 준비해둔 발판을 가지고 와서 그림 앞에 뒀다. 이후 예나를 번쩍 들어 그 위에 올려줬다.
“어때, 아래에서 보는 거랑은 또 다르지?”
“···응!”
“오늘은 예나 보고 싶을 때까지 마음껏 봐도 돼.”
“정말!?”
“그럼. 옆에 그림 그릴 수 있는 곳도 있으니까 언제든 언니한테 말해. 알겠지?”
“······!!”
예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잠시 강바다를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대뜸 두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는 듯한 모션을 취했다.
강바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예나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 그러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예나.
“고마워 언니. 사랑해!”
“으응!? 그, 그래···. 언니도 사랑해?”
“웅!”
예나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그림을 감상하기 시작했고, 강바다는 크게 감동한 듯 입을 틀어막으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들으셨어요?”
“네, 뭐···.”
“예나가 저보고 사랑한대요!”
“너무 큰 의미는 두지 마세요.”
“지금 괜히 부러워서 그러는 거죠?”
강바다가 내 마음을 꿰뚫어 봤다는 듯,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렇게 티가 났나?
솔직히 예나가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는 건 나도 처음 봤다. 또래에 비해 말을 굉장히 신중하게 하는 타입이니까.
‘그만큼 마음에 든다는 거겠지.’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고 있는 예나. 그녀에게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을 거다. 그럼 강바다는 천사로 보이려나.
확실히 거장들의 미공개 작품을 코앞에서, 심지어 단독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흐음. 저 아이 때문이었구나?”
그때 누군가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상대를 확인한 강바다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언니가 왜 거기서 나와?”
덕분에 나 또한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정체는 이 전시장의 주인이자, 대한 그룹의 넷째인 ‘강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