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26
26. 우린 고수가 필요하오2015.01.30.
삐걱 삐걱.
이 공자는 방 안에서 좀처럼 앉아 있지 못했다.
외총관과 황 노인을 보낸 후 흥분과 기대, 염려와 걱정이 한데 어우러져 도통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쯤 올 때가 됐는데…….’
문제가 없다면 그랬을 것이다.
마차로 반나절.
올 때는 두 시진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출발했을 때야 아침 시간대를 맞추기 위해 마차를 탔던 것이고 올 때는 직접 말을 타고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공자님. 외총관 장태윤입니다.”
때마침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공자는 곧장 그를 안으로 들게 했다.
*
“내가 가면 된다는 것이냐?”
장태윤의 보고를 듣고는 이 공자가 물었다.
“직접 오시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도와준다던가?”
그 말에 장태윤이 고개를 저었다.
“도와주겠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얘기를 들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음.”
이 공자의 얼굴에 수심이 짧게 드리워졌다.
자신을 직접 보려고 하는 의도가 왠지 모르게 꺼림칙했다.
물론 평소라면 못 갈 이유가 전혀 없다.
헌데,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지 않은가.
그것을 그도 모를 리가 없을진대.
‘뼛속까지 무골이라더니 소문이 사실인가 보구나.’
이 공자는 입을 열었다.
“알겠네. 지금 바로 가지.”
“지금 말입니까?”
“말을 타고 가면 두 시진 정도가 걸릴 테니 지금 가야 오늘 저녁 즈음엔 당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마차를 타고 가시지 않으시고요?”
“마차는 무슨. 자넨 어서 가서 빠른 말 한 필 내오게.”
잠시 고민하던 장태윤이 곧 수긍했다.
최후통첩까지 이제 겨우 한나절 조금 모자란 시각.
그를 만나고 급히 오면 오늘 자정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준비시키겠습니다. 그에 맞춰 세 명의 호위무사도 함께 부르겠습니다.”
“호위는 놔두게. 그냥 가겠네.”
“이 공자님 그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장태윤이 시선을 들자 이 공자가 그를 노려봤다.
“직접 오지 않았다고 장부답지 못함을 말하지 않았더냐. 헌데, 뒤늦게 나타난 자가 끝끝내 호위무사까지 대동하고 온다면 뭐라 하겠느냐?”
“그러나 이 공자님.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아시겠지만 석가장의 최종 통보 날짜가 오늘 자정까지…….”
“그러니.”
장웅이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더 그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공자가 그리 말했다면 오히려 이쪽이 더욱 대담함을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럼 한 명이라도 대동하는 것이…….”
장태윤은 머뭇머뭇했다.
안 좋은 예감에 신경이 점점 곤두서고 있었다.
“아니다. 이왕이면 혼자 가는 것이 더 낫다. 어서 준비하거라. 시간이 많이 없다.”
이어진 이 공자의 다급한 언성에 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시간이 많이 촉박하다.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되면 당도할 수 없을 만큼.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장태윤은 곧장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이 공자는 한쪽에 걸린 장포를 몸에 걸쳤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검 한 자루를 잡고는 허리춤에 차려다 멈칫했다.
‘아냐. 그냥 가는 것보다 청광검(靑光劍)을 차고 가는 게 더 나을지도.’
그는 앞서 전표로 인해 낭패를 당할 뻔했다던 장태윤의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이 공자가 그리 생각한 것은 그들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판단했다.
하여 무인이라면 탐낼 수밖에 없는 보검을 들고 가려고 생각한 것이다.
청광검은 장씨세가에서도 보유하고 있는 가장 좋은 보검 중 하나다.
기회가 된다면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붉은 노을이 한정당 정원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늦은 오후.
장련은 광휘와 함께 인공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앉아 있었다.
“군명상회는 삼룡표국이 주로 맡아 거래를 해요. 삼룡표국은 그리 크지 않은 표국이지만 지리를 잘 아는 만큼 일 처리가 깔끔하죠. 표국주는 송무광(宋無光). 가끔 본가에 들르는 만큼 알아두면 좋을 거예요.”
장련은 온종일 내외원을 둘러보며 장씨세가의 인물과 사는 곳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제는 장씨세가가 보유한 상단과 표국.
주요 인물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본세가가 보유한 가장 큰 상단은 유정상단이에요. 재정의 절반이 그곳에서 발생하죠. 상단주는 장원기. 본가의 둘째 숙부로 시세에 밝고 생각이 깊어 아버님의 신임을 받죠. 그간 우리 세가에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줬어요.”
“…….”
“유정상단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가 구룡표국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표국주는 송방(宋方). 중원 칠대 표국 중 한 곳으로 다른 곳은 몰라도 그곳은 정말 대단한 곳이죠. 표물 운송에 관한 한 실패한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요.”
한참을 설명하던 장련은 시선을 들어 광휘를 바라봤다.
그는 시선을 자신의 어깨쯤 내린 채 침묵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어딘가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졌다.
“저기요. 제 말을 듣고 있나요?”
“그렇소.”
광휘는 즉각 대답은 했지만 장련은 여전히 의구심은 거두지 않았다.
중간 중간 묻는 모습은 없었고 반응도 느릿느릿했다.
거기다 초점도 조금 흐려보였다.
“그럼요…… 조금 전에 제가 얘기했던 유정상단의 상단주 이름을 기억하세요?”
“그렇소.”
“제가 뭐라고 했죠?”
“장, 장…… 숙부라 했소.”
“그럼 앞서 구룡표국이 중원 몇 대 표국이라고 했죠?”
“여섯, 일곱?”
“…….”
“아, 아니…… 여섯이라고 한 것 같소.”
“이봐요. 전혀 안 듣고 있잖아요.”
장련이 미간을 약간 찡그렸다.
설마 했는데 지금까지 집중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장련이 인상을 쓰며 노려보자 광휘는 그녀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오해 마시오. 듣고는 있었소 소저.”
“…….”
“다만. 소인이 기억하지 못했던 것뿐이오. 믿기 어렵겠지만.”
“조금 전에 말한 건데요?”
“특별한 사항 아니면 잘 잊어먹소. 자각하는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좀 떨어진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오.”
장련은 광휘를 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껏 그의 행동들만 보더라도 그랬다.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 변명을 늘어놓는 건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무사님. 무림맹에는 어떻게 들어가셨나요?”
장련은 그 일은 그만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그간에 궁금했던 것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광휘가 고개를 조금 들어보였다.
“시험이 매우 까다롭다고 들어서요. 실력만 있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하니까…….”
무림맹의 시험은 이미 경로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수많은 인재가 지원하는 만큼 뽑는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다.
무공을 가장 중점적으로 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신분에 대한 검증이다.
둘째로는 인성을 본다.
셋째로는 직책에 맞는 기본 지식이며 넷째로는 암기 능력과 산수(算數) 등 지원한 분야에서 자격을 검증 받아야 한다.
물론 한 분야에 기재(奇才)에 달하는 능력을 보일 경우 특별 우대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추천을 통해서 들어갔었소.”
침묵을 지키던 광휘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장련이 놀라며 곧장 물었다.
“추천요? 추천으로도 들어갈 수 있나요?”
“그렇소.”
“어떻게요? 아무나 그런 자격이 있는 건 아닐 텐데요.”
장련의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추천은 특별 우대보다 더 희박한 경우다.
무림맹에 사람을 들이는 추천은 하북팽가 같은 오대세가나, 소림, 무당, 화산파 같은 구대문파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광휘가 재차 침묵하자 장련은 호기심을 누그러뜨렸다.
그러고는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운이 좋으셨네요. 무림맹이 무공 실력만 가지고 되지 않잖아요?”
“아니오. 운이 나빴던 게요.”
“예?”
광휘는 읊조리듯 다시 말했다.
“운이 나빴었소.”
“…….”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조금 전보다 한층 더 흐릿해진 광휘의 눈빛은 장련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왜 운이 나쁜 건지…….”
장련이 다시 그 이유를 물으려 할 때였다.
멀리서 그녀 쪽으로 한 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황 노대?”
“아가씨!”
황 노인이 장련을 발견하고는 급히 뛰어왔다.
그러고는 말을 이으려하다 옆에 있던 광휘를 발견했다.
“자네가 왜 여길…….”
“오늘부터 제 전속 호위무사가 되기로 했어요.”
“아…….”
황 노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장련의 옆에 있는 광휘를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고맙네.”
황 노인의 말에 광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헌데, 가신 일은 잘 해결되셨나요?”
“아. 그것이.”
황 노인은 이곳에 온 이유를 깨닫고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 문제로 얘기 드릴 게 있습니다.”
*
황노인은 그간 상황을 얘기했다.
본가의 사정을 듣던 대공자의 반응.
그리고 그 뒤 그가 제안한 조건.
얘기를 들을수록 장련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대공자가 그리 말했다면 오라버니가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겠군요.”
황 노인의 설명이 끝났을 때쯤 곧장 물었다.
“저도 그것이 걱정되어 왔습니다.”
황 노인은 의중을 내비쳤다.
장련은 고민했다.
자신이 묵객을 만나러 갔을 때처럼 오라버니의 상황은 비슷했다.
오히려 기회에서는 더 좋았다.
하북팽가의 지지만 얻어낼 수 있다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설득에 실패할 가능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대공자가 그 자리를 잠시 비웠을 수도 있지 않은가.
자칫 기한 내에 본가로 당도할 수 없을 수 있었다.
“황 노대의 말이 맞아요. 가만히 있을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당장 오라버니를 말려야 해요.”
“하지만 이 공자께서 아가씨의 말을 들으려 하실지…….”
“어떻게든 말려야죠. 느낌이 너무 좋지 않아요.”
장련은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이 공자의 처소로 급히 뛰어갔다.
*
자정이 넘어 새벽빛이 조금 밝아오는 시각.
황룡표국이라 쓰인 커다란 깃발 아래 다섯 명의 무사가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다섯 명의 무사들의 눈빛은 좌우에 배치된 화로의 불꽃만큼이나 뜨거웠다.
서 있는 자세 역시 굳은 석상처럼 단단했다.
“응?”
화로 속 불의 세기를 살피기 위해 움직이던 무사, 소검평(蘇劍萍)의 고개가 대로 쪽으로 이동했다.
긴 정적을 깨는 말발굽 소리를 들은 것이다.
뒤에 있던 무사들의 시선도 그곳으로 향했다.
안개 속에 가려진 그림자의 윤곽은 점점 선명해졌다.
달그락 달그락.
이히히힝.
값비싸 보이는 마차 한 대가 그들 앞에서 멈춰 섰다.
이내 마차 문이 열리며 죽립을 쓴 두 사내와 노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내렸다.
“누구십니까?”
조열이 그들에게 다가가 예의를 갖췄다.
이에 마지막에 내렸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송 국주를 만나러 왔네.”
“약속은 하셨습니까?”
원래라면 굳이 물지 않고 돌려보냈을 소검평이었다.
시각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자정을 넘어 어스름한 빛이 밝아오는 새벽이지 않은가.
헌데, 그는 그리하지 않았다.
차려입은 행색이나 타고 온 고급스러운 마차가 눈에 걸린 것이다.
“미리 언질은 주었네만…… 약속 시간보다 많이 늦었네.”
“그럼 다음에 오시겠습니까. 지금 이 시각이면 국주님이 취침을 하실 때라서.”
“워낙 시일을 다투는 일이라……. 무례인 줄 알지만 한번 청을 넣어보겠나?”
“그건 좀…….”
사내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그때 대문이 활짝 열리며 중년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국주님의 손님이시다. 안으로 뫼셔라.”
*
장원 뒤 거대하게 들어선 정당(正堂).
비둘기 날갯짓 모양으로 만들어진 지붕선은 장원을 덮을 만큼 화려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전각 아래도 꾸며놓은 조경들이 다채로울 정도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조경으로 쌓은 사괴석 안에는 물레방아가 연신 돌아가고 있었고 내 천(川)자 모양으로 천장에 걸린 각등이 새벽빛에 투영돼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정당 옆으로 전방의 한 면이 개방된 복도식 건물, 회랑(回廊)이 들어서 있었다.
그 앞에는 향로가 있었다. 그윽한 향과 연기가 피어나오며 새벽의 운치를 더욱 살려내고 있었다.
회랑 안, 기다란 탁자를 두고 자리에 앉은 장원태는 경건한 자세로 그를 기다렸다.
“많이 늦으셨습니다. 장 대인.”
발걸음 소리와 함께 작은 체구의 노인이 웃으며 다가왔다.
장원태는 급히 일어나 포권했다.
“미안하오. 송 국주. 내 조금 일을 본다는 것이 너무 늦어버렸소.”
“아닙니다. 표국을 두 곳이나 돌고 여길 오셨으니 그럴 법하지요. 그곳과의 거리도 제법 되지 않습니까.”
표국주 송방의 말에 장원태의 볼이 씰룩거렸다.
아침부터 은밀히 자신의 행적을 손바닥 보듯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굳어지는 장원태의 표정을 의식한 송방이 재차 포권했다.
“장씨세가를 뒷조사한 건 아니니 오해 마십시오. 표국과 표국 간에는 견제와 경계가 기본입니다. 상시 하던 수소문 중에 마침 장 대인을 발견한 것이구요.”
그의 설명에 장원태는 불편한 마음을 조금은 놓을 수 있었다.
송방은 단상에 올라서며 손을 내밀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지요.”
곧 장원태가 자리에 앉았고 그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잠시 뒤 시녀로 보이는 여인이 차를 가져왔다.
“난 됐소.”
장원태는 사양했다.
차를 먹을 만큼 그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나도 됐네.”
송방도 손을 저었다.
장 가주의 분위기를 읽은 것이다.
시녀가 나가는 것을 확인한 송방은 두 손을 의자 받침대에 올리며 입을 열었다.
“장 대인께서도 참 고집이 있으십니다. 그간 도움을 드리겠다고 수차례 말씀드릴 때는 가만히 계시더니 이제야 저를 찾아오신 것을 보면 말입니다.”
“미안하오. 사정이 그렇게 됐소.”
“괜찮습니다. 장 대인 마음이야 제가 더 잘 알지요. 어떻게든 칼을 맞대지 않는 것을 원하신 것이 아닙니까. 석가장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피를 흘리는 것을 피하고자 하셨던 거니까 말이지요.”
장원태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숨겨둔 의중을 드러내듯 진중한 얼굴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온 이유는 알 테니 짧게 말하겠소. 본가는 고수가 필요하오.”
송방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결정을 내리신 게로군요. 좋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드륵.
그는 의자를 조금 더 앞으로 당겼다.
그러고는 서글서글한 눈매를 조금 더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어느 정도 수준을 원하십니까?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오늘 들르신 삼룡표국과 남산표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
“요즘 세를 확장한다고 시끄럽게 떠들어도 결국 그들의 수준이야 작은 동네에 겨우 맴도는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그에 반해 저희는 말입니다.”
송방은 천천히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중원을 무대로 합니다.”
중원.
거래하는 규모와 가진 힘이 전혀 다르다는 말을 강조한 것이다.
“어떤 수준을 원하십니까? 보표(保標)나 표사 중에는 워낙 여러 등급이 있어서 말입니다.”
송방의 말에 장원태는 등을 의자에 기댔다.
그러자 등 뒤에서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일 장로 장운이 그에게 목함 하나를 내밀었다.
장원태가 그것을 받고 송방에게 건넸다.
“흐음.”
끄윽.
송방은 목함을 받자마자 장원태를 흘낏 한 번 쳐다본 후 천천히 열었다.
그러고는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최상급이군요.”
목함을 닫는 송방에겐 더는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장원태의 각오를 읽은 만큼 신중해진 것이다.
그는 의자 팔걸이를 손으로 슥 문지르다 입을 열었다.
“혹시 파불(破不)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파불? 파계승(破戒僧)을 말하는 것이오?”
“비슷합니다. 허나,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둘 다 법도를 어긴 중들로 소림사에게 쫓겨난 자라는 것 같습니다만 무공의 수준은 파불이 더 높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지요.”
송방은 말을 이어나갔다.
“파계승은 그냥 계율을 어긴 중입니다. 소림사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제압해 처리가 가능하지요. 헌데 파불은 다릅니다. 제압이 불가능하지요. 물론 천하의 소림사가 마음을 먹는다면 못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아무튼 피해가 커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겁니다.”
“…….”
“그만큼 강하다는 말입니다. 마침 그런 자가 본 표국에서 밥을 먹고 있기도 하구요.”
송방은 장원태를 노려보며 말했다.
“강남일권(江南一拳) 방각대사(方覺大師)를 내어드리겠습니다. 또한 실력 있는 보표들이 이곳에 도착하는 대로 추가로 더 보내 드리지요.”
그 순간 등 뒤에 있던 일 장로의 눈이 부릅떠졌다.
장원태 역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백대고수 아니오!”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에게 송방은 감정의 동요 없이 대답했다.
“방각대사가 뛰어난 고수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백대고수는 좀 과분한 말입니다. 아시겠지만 중원엔 소림사, 무당파, 화산파 등 구파(九派)가 있고 개방이라는 일방(一幇)이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장문인을 포함한 문파를 대표하는 고수 각각 다섯만 선별해 보십시오. 여기서 벌써 오십 명이나 됩니다.”
“…….”
“물론 오대세가도 포함해야지요. 거기다 알려진 사파 조직 세 곳도 합해야 합니다. 그럼 벌써 구십 명입니다. 백대고수라는 표현은 정말로 쉽게 내뱉을 수 없는 말이지요.”
장원태와 일 장로 장운은 조용히 송방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그리 말할 수도 있습니다. 뛰어난 절학신공을 지닌 삼절(三絶)이니 육봉(六峰)이니 하는 그런 자들도 비슷한 의미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칠객같이 워낙 유명한 자들은 예외겠지만요.”
명문정파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
송방이 말한 대로 백대고수란 무게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 은혜는 내 잊지 않겠소.”
“은혜랄 것까지요. 저흰 정당한 대가를 받았을 뿐입니다. 운송비를 두 배로 늘려주지 않았습니까.”
구룡표국이 장씨세가와 거래하는 양은 한 해 은 오만 냥이 넘었다.
그 금액을 단순히 고수를 영입하는 조건으로 준다는 것이다.
구룡표국 역시 최고의 고수를 내어줬지만 그리 큰 손해는 아니었다.
사실, 가치로 따지면 장씨세가가 큰 손해였다.
상황이 절박했기에 장원태는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 그자를 불러오거라.”
그의 말에 한 사내가 빠르게 갔다.
장원태는 기대했다.
과연 소문으로만 듣던 그의 수준이 어떨지.
그가 오면 장씨세가는 묵객을 포함해 백대고수 두 명을 보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면 석가장도 이젠 두려워할 정도의 상대가 아니었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를 들었을 때쯤.
생각에 잠겨 있던 장원태는 웅장하게 등장할 파불이란 자를 상상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너는 여기 웬일인가.”
그곳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아…… 가주님. 아…… 가주님…….”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불길한 예감을 강하게 들게 했다.
“이 공자가…… 납치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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