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87
87. 아비가 이 정도였느니라.2015.09.02.
장씨세가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이름 모를 산마루.
겨울 날씨답지 않은 따뜻한 빛이 내리쬐고 있었고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가고 있었다.
“여길세.”
거목 아래, 그늘 밑에서 배를 북북 긁던 능시걸이 손을 들어 광휘를 불렀다.
이런 산중에 언제 이런 평상을 설치했는지 그는 신선놀음이나 하듯 편히 쉬고 있었다.
곧 광휘가 그의 옆에 앉자 능시걸이 입을 열었다.
“련 소저는?”
“점점 좋아지고 있소.”
“그나마 다행이구만.”
능시걸이 또다시 배를 북북 긁었다. 그러다 머리도 간지러운지 벅벅 긁어댔다.
킁킁.
손 냄새를 한 번 맡아본 능시걸이 입을 열었다.
“문제가 생겼네.”
광휘가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운수산 말일세. 대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아직 모르겠네.”
능시걸은 여전히 정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번에 흥미 있는 얘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광휘가 곧장 질문했다.
말도 빨라졌다.
“그랬지.”
능시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초석이 있었네.”
초석이란 말에 광휘가 눈을 크게 떴다.
“헌데…… 순도가 너무 낮아. 광맥도 그리 많이 퍼져 있지도 않고. 그 정도라면 산 전체를 뒤집어 까야 벽력탄 몇 개를 만들 정도나 될까.”
“…….”
“그 정도에 그리 집착하진 않았을 게야. 석가장이 운수산을 노린 것. 그를 도운 화월문의 비연 단주. 팽가도 이리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면 분명히 그곳엔 뭔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네. 그런데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뾰족한 것이 눈에 띄질 않아.”
“…….”
“그 외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광물 몇 개가 다였네. 목재나 석회석 같은 흔하디흔한 것. 특별한 것은 찾을 수 없었어.”
광휘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말만 없었을 뿐, 낯빛은 굳어져 있었다.
예상과 달리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확실한 거요?”
광휘가 재차 묻자 능시걸은 고개를 저었다.
“좀 더 조사를 해면 나올 테지. 하지만 지금은 들어갈 수 없네. 자네도 알지 않은가. 팽가가 얄팍한 수를 써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 말일세.”
“…….”
“이렇게 되다보니 조금 성급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조사를 좀 더 했어야 했네. 그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확실한 정도로 말일세.”
“아니오. 시기적으론 잘한 거요. 그사이 어떤 식으로든 장씨세가는 팽가의 공격을 받았을 테니.”
광휘의 말에 능시걸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의 팽가는 분명 야욕을 드러내던 중이었다.
사람들이 본가로 돌아가면 또 다른 방법으로 장씨세가를 공격해 올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만약 이 상황에서 또다시 팽가가 이빨을 드러냈다간, 그땐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지 않은 때에 또 안 좋은 소식이 있네.”
광휘는 덤덤하게 얘기를 기다렸다.
“맹의 서기종(徐琦琮)이란 자가 이 일에 개입되어 있네.”
“서기종이?”
광휘는 잘못 들었다 생각했는지 곧장 되물었다.
능시걸은 그의 반응을 이해했다.
서기종이란 인물이 어떤 자인지는 그가 잘 알았으니까.
“자네가 있던 당시에는 순찰 당주로 있었으며 지금은 맹의 총관으로 승격되어 있네.”
무림맹.
황제의 명을 받는 관(官)과 함께 중원의 질서를 지키는 최고의 단체.
총관.
순찰당을 대표하는 총순찰(總巡察).
호법들의 우두머리인 대호법.
맹주를 지키는 친위대장.
이들은 무림맹주를 필두로 맹을 떠받치는 네 개의 기둥이었다.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것이 총관의 자리였다.
총관은 맹을 대표하는 최고의 부대 중 하나인 풍운검대(風雲劍隊)를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위대장은 맹주 쪽이니 이 일과는 연관이 없을 테니까, 총순찰이나, 대호법의 의중이 중요해질 걸세. 만약 그 둘이 이 일에 개입되어 있다면 확실히 일이 더 복잡해질 걸세.”
“…….”
“참 어떻게 된 건지…… 고양이 싸움에 호랑이가 끼어들었다 싶었더니 그게 아니라 실은 용(龍)이 있었어. 대체 왜 장씨세가가 이런 싸움에…….”
“그 고양이가.”
광휘는 그의 말을 자르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겠소.”
“문제지.”
능시걸은 동의했다.
아직은 확실하게 모르지만 운수산이란 것에 분명 뭐가 있을 터였다.
단지 지금 찾지 못하는 것일 뿐.
광휘는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능시걸을 보며 말했다.
“혹시 더 없었소?”
“……?”
“운수산에 말이오. 찾다보면 여러 광물들이 많이 나왔을 것이 아니오. 그중에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들도 있지 않았겠소?”
“음, 그러고 보니…….”
능시걸이 턱을 괴며 눈을 껌뻑였다.
“산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모래들을 발견했지. 그리고 석염도 보았고.”
“석염?”
“그렇네. 석염이었네. 하지만 질이 낮아 소금으로도 쓰이지 않는 것이었네.”
순간 광휘가 눈을 껌벅였다.
기억 속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서서히 엉키기 시작했다.
“같이 터트리게. 초석과 말일세.”
“예? 굳이 왜 석염을…….”
“조건을 붙였네. 꼭 같이 터트려야 한다고 말이야.”
“…….”
“짐작한 게 맞을 걸세. 아마도 그것과 같이 쓰이는 재료일 것이야.”
와락!
광휘가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 일어섰다.
얼굴 전체가 떨릴 정도로 감정이 매우 격양되어 있었다.
“왜 그러는가?”
능시걸이 당황하며 물었다.
“폭굉이오.”
“뭐?”
“폭굉의 재료가 운수산에 있단 말이오!”
그 말에 능시걸이 뭔가 생각이 난 듯 읊조렸다.
“폭굉이라면 설마…… 은자림…….”
“어디 있는 게요?”
광휘가 곧장 달려 나가려는 모습을 보이자 능시걸이 말했다.
“어디 가려고? 운수산에? 그곳에는 팽가 무인들이 진을 치고 있어 아무도 못 들어가네.”
“그쪽이 아니오. 비연 단주를 말하는 것이오.”
순간 능시걸은 깨달았다.
운수산에 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움직였던 자.
그녀를 조사하다보면 운수산에 뭐가 있는지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날 따라오게. 바로 알아봐주겠네.”
*
저녁노을이 이름 모를 가원(街園)을 내리쬐는 한적한 시간.
항시 묵객과 다니던 담명은 그 가원의 번듯한 건물 밑, 문 앞에 서 있었다.
조용히 있는 것을 보아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는 듯했다.
“들어오거라.”
말이 떨어지자 그는 문을 슬며시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소박하지만 기품이 흐르는 방이었다.
과거 서원(書院)으로 사용되었던 서고(書庫)였고, 지금은 가주가 기거하는 서재로 활용되고 있었다.
“왔느냐?”
주름이 깊은 노인이 담명을 매우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앉거라.”
담명은 맞은편 의자에 걸어갔다.
노인은 그런 담명의 행동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흐뭇해 보이는 입가가, 그가 담명을 어떻게 여기는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녀석, 이제 좀 강호를 돈 티가 나는구나.”
“어디가 말입니까?”
“내 눈엔 보인다. 행동이며, 말투 하며, 만나는 사람들이며…….”
“예? 그게 무슨…….”
“그런 게 있다.”
노인은 웃음을 머금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본가로 온 날, 급히 알아볼 게 있다고 내게 말했었지?”
“혹시, 소식이 왔습니까?”
담명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래, 알아봤다. 사실 답신이 온 건 엿새 전이었지.”
“그럼 왜 알려주시지 않고…….”
“추가로 확인할 것이 있어서 말이다.”
담명이 의문스럽게 노인을 바라볼 때였다.
그는 담명에게 한 장의 첩지를 내밀었다.
“이거부터 읽어보거라.”
담명은 급히 뜯었다.
종이를 펼치자 그곳엔 한 가지 글귀가 쓰여 있었다.
[불가(不可)]“이건…….”
담명이 노인을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줄 수 없다고 하더구나.”
“그럴 리가요. 개방 방주께 직접 보내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헌데 왜…….”
“녀석, 급하긴 급한가 보구나. 글귀를 다시 한 번 잘 살펴보거라.”
담명은 종이를 다시 살폈다.
자세히 보니 불가라는 글 밑엔 직인 하나가 찍혀 있었다.
“개방 방주의 직인이다. 그가 보내온 것이야.”
“아!”
담명은 충격을 먹은 듯 눈을 부릅떴다.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 없다는 모습이었다.
“정말 의외더구나. 뭐 대단한 인물이라 보는 게 맞겠지. 나름 개방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본가의 청도 이렇게 거부할 줄이야.”
노인,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상(慕容常)이 밝게 웃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모용담명은 당황스러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이내 고개를 든 담명이 말했다.
“그럼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글쎄…… 어떨까?”
모용상은 모호한 운을 뗐다.
그러더니 다시 빙긋 웃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조금 전 이것을 받은 날이 엿새 전이라고 했지?”
“예.”
“그 사이에 내가 뭘 했겠느냐?”
“…….”
“이대로 물러서면 우리 모용세가가 아니지 않겠느냐? 그리고 이 아비가 열심히 견문을 쌓다가 온 자식의 부탁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느냐.”
그는 입가에 손을 슬쩍 올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사실은 말이다. 아비도 그가 어떤 자인지 매우 궁금하더구나. 해서 말이야…….”
“……?”
“맹에 한번 접촉해 보았다.”
“맹이요?”
담명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모용상이 찔끔한 얼굴로 쉿 하고 소리를 낮추게 했다.
“조용히 말하거라. 어미한테 들키면 둘 다 혼이 나느니라.”
“아, 죄송합니다. 아버지.”
담명은 고개를 자라목처럼 쭈욱 당기며 숙였다.
“지금이야 네 어미의 눈치를 보고 사는 아비지만 이래 봬도 한때 누구 못지않게 잘나가지 않았느냐. 특히 여인네들에게.”
“……예. 그러셨지요.”
“대답 전에 그 망설임은 뭔고? 하지만 정말이었느니라. 누구도 아비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 맹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여럿 울렸었다.”
“…….”
담명은 뭔가 한마디를 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그중에 비선당 당주도 있었고.”
“혹…….”
담명이 의문 섞인 표정으로 모용상을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선당.
맹의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곳.
모용상은 그곳을 말하고 있었다.
“마침 이곳을 지나간다는 얘길 듣자마자 급히 연통을 했다. 엿새면 소식이 닿고도 남는 시간이니 곧 연락을 취하겠지.”
“아.”
담명은 얼굴이 밝아졌다.
비선당이라면 틀림없을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내인지 이번엔 확실히 알게 될 터였다.
“아비는 기쁘구나. 네가 한량 짓을 일삼을 때만 해도 본가의 모두가 포기했었지 않느냐.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인물들과 만나고 다닌다니. 역시 묵객께 너를 부탁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하하하. 아버지, 묵객께서 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제가 묵객을 선택한 것입니다.”
둘 다 껄껄 웃었다.
누구보다 죽이 잘 맞는 부자였다.
모용상은 다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며 물었다.
“그래. 다시 본가를 나갈 것이냐?”
“아직 그분께 배울 것이 많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배워나가려고 합니다.”
“많이 배우거라. 칠객은 명실공히 중원을 대표하는 고수다. 그리고 언제든 아비가 네 뒤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예, 아버지.”
그들은 흐뭇한 미소로 몇 마디를 더 나눴다.
그리고 둘이 일어나려고 할 때쯤 방문이 열렸다.
“가주. 빠,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구(邱) 노대, 무슨 일인가?”
평소와 달리 말을 더듬거리는 노대의 행동에 모용상은 눈을 껌벅였다.
“맹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직접 이곳을 찾아왔단 말이냐? 허어어.”
모용상은 웃으며 담명을 바라봤다.
“보았느냐? 아비가 잘나갔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아비가 이 정도였느니라.”
“과연 그렇군요!”
어깨를 으쓱거리는 모용상의 말에 담명도 맞장구를 쳤다.
모용상은 구 노인을 향해 다시 말을 걸었다.
“헌데…… 구 노대, 왜 그리 경직되어 있나? 오더라도 비선당 당주가 왔을 터인데 왜 그리 뻣뻣하게 굳어 있는 게요?”
“다른 분도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다른 분? 그분이 누군데?”
구 노대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무림맹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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