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38
38화
* * *
한성태는 김무철의 매니저가 내민 명함을 내려다보았다.
JT 엔터테인먼트 배우 1팀 팀장, 주지철.
‘JT 엔터테인먼트라면 규모가 상당히 큰 곳인데.’
대기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PAN 엔터테인먼트와 비슷한 규모의 기획사.
한성태는 자신이 벌써 엔터테인먼트 두 곳의 명함을 받았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이 명함 하나 얻으려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는데.’
주지철의 명함까지 받으면 벌써 세 개의 명함을 받는 것이었다.
PAN 엔터테인먼트만 하더라도 고민을 안겨주었는데.
한성태는 메시지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연기의 신들과 함께하는 삶.
그 삶은 한성태에게 빛이 되어줬다.
“당장 결정 내리기는 힘들어서요. 고민해보겠습니다.”
“네, 천천히 고민해보세요. 재촉하는 건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한성태는 명함을 받아들며 걸음을 옮겼다.
팟.
그의 발걸음을 따라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환하게 발걸음을 비춰주는 조명 사이로 한성태는 명함을 주머니에 넣은 채 걸어갔다.
촬영을 해서 그럴까.
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이미 전생과는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실패할 거라는 생각을 가진 채 노력만 하는 인생이 아닌, 사람들의 기대를 받는 배우로서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이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그 끝에는 자신들이 함께할 것이라며 미소짓습니다.]한성태가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던 이유는 배우로서 확신을 얻고 싶어서였다.
자신이 배우가 맞는지 알아보고 싶었으니까.
‘나는 배우야,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나는 배우로서 살 거다.’
더 이상 실패를 할 거라는 두려움이 사라졌다.
배우로서 살아가고 싶고, 자신이 배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주머니에 든 명함을 만지작거리는 그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우우웅.
걸음을 옮기는 그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전화가 왔다는 걸 알렸다.
“…….”
스마트폰을 들어 이름을 확인한 한성태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전생에도, 그리고 현생에도 계속해서 옆에 있어 주는 친구의 전화.
―뭐 하냐?
“회식 끝나고 집에 가는 중.”
김민석의 물음에 답하며 한성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두워진 하늘에는 구름과 먼지들로 인해 평소에 보기 힘든 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별들은 마치 연기의 신들을 연상하듯 한성태를 향해 반짝이는 중이었다.
―우리 한번 얼굴 봐야지.
“그래야지. 나 촬영 끝나는 대로 만나자.”
김민석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 시간이 꽤 지나서 그런지, 한성태는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한성태는 김민석과 약속을 잡으며 내일의 촬영을 위해 집으로 향했다.
* * *
악인들의 전쟁은 매우 순조로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이 이어졌다.
최예찬이 직접 보고 데려온 사람들인 만큼.
그들의 연기는 한성태에게 많은 공부가 되어주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자신이 화려한 액션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광배근에 있다며, 당신이 제대로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천의 얼굴’은 배우들의 표정을 잘 살펴보고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지 살펴, 당신의 것으로 만들라고 조언합니다.]연기의 신들의 조언을 들으며 연습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이 넘게 진행된 촬영.
그 시간은 한성태의 연기가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라며 매일 같이 바라던 것도 잠시.
아직 찍어야 할 신들은 많이 남았지만, 한성태에게 남은 시간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지?”
“네.”
“시간 진짜 빨리 가네. 아쉽지 않아?”
김대현의 말에 한성태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 아쉬움이 있기에 다음도 있는 법이었다.
“저는 뭐…… 괜찮아요. 아쉽기는 한데, 그만큼 배운 것도 많았고 즐거워서요.”
“생각보다 덤덤하네?”
“제가 아쉽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게 아니니까요. 그 시간에 다음을 기약하는 게 훨씬 낫잖아요.”
“냉정한 것 봐라. 나는 첫 작품 때 너처럼 태연하지 못했는데.”
한성태를 바라보며 김대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모습에 한성태는 옅게 웃음을 흘렸다.
전생과 회귀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니, 설명할 수 있는 말도 없었고 그저 웃음만 보이는 게 전부였다.
“성태 씨, 감독님께서 찾으세요.”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최예찬이 찾는다는 말에 한성태는 김대현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스태프를 따라갔다.
세트장 앞, 최예찬이 스태프들과 배우들 가운데서 입을 열고 있었다.
“석동 씨 들어가면, 풀샷으로 잡다가 천천히 얼굴을 클로즈업하면서…….”
최예찬은 연출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고 한성태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
“자, 그럼 모두 자리로 가죠.”
그의 말에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감독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잘 왔어요. 오늘 성태 씨 죽는 날이잖아요.”
“아……. 그렇죠?”
“표현이 조금 그랬나?”
작품 상에서 그가 맡은 배역이 죽는 거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기분이 조금 묘하기는 했다.
“동선도 맞출 겸, 마지막 촬영 힘내보자고 불렀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제가 불러놓고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한데.”
최예찬의 말에 한성태는 웃음을 보였다.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성태는 그가 자신의 편의를 많이 봐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단역인 내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인데.’
솔직하게 말해서 최예찬이 그를 신경 써줄 이유는 없었다.
이미 작품에 출연할 수 있게 도와준 부분에서 오히려 한성태가 은혜를 갚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기에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다.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게 곧 은혜를 갚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마지막까지 잘해봅시다.”
“네!”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세트장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마지막 촬영이 될 세트장의 모습.
그 주위로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세트장을 바라보던 한성태는 걸음을 옮겼다.
[‘절권도의 창시자’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이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합니다.]메시지들을 등에 업은 채 한성태는 악인들의 전쟁에서의 마지막 연기를 시작했다.
* * *
“내가 죽인다고 했지.”
연쇄 살인마, 강호경이 장수동을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의 사나운 목소리에 장수동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가 아무리 잘나가는 조폭이라고 해도 결국 칼 앞에서는 똑같은 고깃덩어리일 뿐이야.”
“개새끼가.”
강호경을 노려보며 장수동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장수동은 당장이라도 강호경을 때려눕히고 싶어 했지만, 칼에 찔린 그의 몸은 의지와는 다르게 점점 힘이 풀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점점 숨이 거칠어지는 장수동을 보며 강호경이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만 뒤져.”
강호경이 피가 잔뜩 묻은 사시미칼을 든 채 장수동에게 다가갈 때였다.
[‘천의 얼굴’이 지금이라고 신호를 보냅니다.]김규성과 장수동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던 한성태는 바로 뛰어 들어갔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비를 맞으며 한성태는 박재훈이 되어 김규성에게 달려들었다.
“형님! 이 새끼가!”
쿵!
“커헉!”
박재훈의 발에 걷어차인 강호경이 땅을 뒹굴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쿨럭.”
“지금 애들이 오고 있습니다. 조금만 버티시면 됩니다.”
“X발!”
박재훈이 장수동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을 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강호경이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공격한 박재훈의 모습에 어지간히도 화가 난 모습.
“금방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조심해. 저 새끼 정상이 아니야.”
“네, 형님.”
장수동의 말에 박재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강호경의 섬뜩한 눈빛이 박재훈을 노려봤다.
“이 개새끼가 우리 형님을 찔러? 너는 평범하게 죽는 걸 기대하지 마라.”
“지랄하네!”
강호경이 박재훈에게 달려들며 사시미칼을 마구 휘둘렀다.
후웅, 서걱.
얼마나 날카롭게 갈았는지 살짝 닿기만 해도 옷이 잘려나갔다.
[‘절권도의 창시자’가 당신의 주먹을 건드립니다.]박재훈은 사시미칼을 피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칼을 상대로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그의 행동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퍼억!
정확히 콧등을 후려친 박재훈의 주먹.
박재훈은 비틀거리는 강호경의 멱살을 붙잡아 땅에 엎어 쳤다.
푸욱.
“……어?”
배가 뜨거웠다.
고개를 내리니 강호경이 든 사시미칼이 배를 쑤시고 있었다.
엎어 치는 찰나에 강호경이 사시미칼을 휘두른 것이었다.
푹, 푸욱!
“죽어, 죽으라고!”
박재훈이 비틀거리기 무섭게 강호경이 그를 넘어뜨린 채 사시미칼을 마구 휘둘렀다.
배를 몇 번이고 계속해서 꿰뚫는 감각에 박재훈의 의식도 점점 흐릿해졌다.
죽어가는 와중에 그는 고개를 돌려 장수동을 바라보았다.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장수동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콰앙!
사람의 손이 사람의 몸을 때리는 게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커헉!”
강호경이 신음을 흘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형님!”
“저희가 와……. 재훈 형님!”
“큰형님, 괜찮으십니까?”
박재훈이 부른 조직원들이 달려오는 모습에 도망을 치는 거였다.
조금만 더 일찍 오지.
자신을 든 채 정신을 차리라고 소리치는 장수동을 향해 박재훈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형님. 제 동생을…… 부탁…….”
“내가 다 책임진다. 네 사람들 다 내가 책임지마.”
고맙다고 말하는 장수동의 모습을 보며 박재훈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몸을 끌어 않고 괴성을 지르는 장수동.
“네 형님 모셔라.”
장수동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주먹을 꽉 쥐었다.
복수를 다짐하는 장수동의 모습.
그렇게 한성태의 연기는 끝이 났다.
“고생했다, 성태야.”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촬영의 끝.
마석동이 한성태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제작하려고 하는 작품이 있는데. 마음 있으면 연락해.”
한성태는 마석동에게 받은 명함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인연이 이어졌다.
그것도 최고의 액션 배우이자 제작자인 마석동이라는 사람의 인연.
촬영의 끝이었지만, 그것은 한성태에게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