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영화 촬영 이틀 전.
한성태는 정두식에게 연락을 하나 받았다.
―영화 촬영할 때 나도 껴도 될까?
갑작스러운 그의 말은 한성태를 당황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배우가 작품 활동 하는 일에 매니저가 따라오는 건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나 말고도 담당하는 배우가 있을 텐데 괜찮은 건가.’
정두식은 한성태 말고도 담당하는 배우가 많은 바쁜 사람이었고, 굳이 따라오지 않아도 되는 일에 따라오는 그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전생에는 항상 혼자 다녀서 더욱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저는 형이 와주신다면 감사하죠. 그러면 제가 민석이한테 물어볼게요.”
―오케이. 아, 하린이는 내가 허락 맡았으니까. 굳이 연락할 필요는 없어.
“아, 네.”
서하린은 PAN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연습생이라고는 해도 회사의 허락 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건 한성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였다면, 이렇게 쉽게 영화나 뮤지컬을 할 수 없었겠지만.
‘내가 신인이라는 것과 학생이라는 점이 컸지.’
그의 위치가 있다 보니 소속사에서 관리하는 부분에서 제법 널널했다.
허락만 맡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민석이한테 물어보고 바로 연락드릴게요.”
―알았어. 이따가 연락 줘.
“네.”
전화를 끊은 한성태는 옅게 숨을 내쉬고는 바로 김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그리고 들려오는 김민석의 목소리.
“어. 뭐 하냐?”
―나? 지금 촬영 때 쓸 소품 정리하고 있는데, 너는?
“나는 방금까지 연습하고 있었어.”
무거운 물건이라도 드는 건지, 수화기 너머로 김민석이 힘을 주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뭔 문제라도 생겼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나, 이번에 들어간 소속사에서 붙여준 매니저 형이 있거든?”
―그 누구더라, 정두식 매니저님?
“어, 그 형이 영화 촬영할 때 따라오고 싶다고 하셔서, 네 의견 물으려고 전화했어.”
영화의 모든 최종결정권은 김민석에게 있었다.
그의 허락 없이 누군가를 데려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 될 건 없는데. 그분 바쁘신 거 아니었어? 평소에 다른 배우들 챙기느라 얼굴 볼 시간도 없다고 했잖아.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이번에 시간을 내실 수 있나 봐.”
―오시라고 해. 네 소속사 매니저님인데. 오히려 환영이지.
“고맙다.”
김민석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가 너무 친근해 한성태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자리했다.
* * *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민석의 우렁찬 목소리가 시골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졌다.
목소리가 어찌나 힘이 좋은지 바로 옆에 있던 한성태는 날벼락을 맞아야 했다.
윙윙거리는 귀를 움켜잡는 한성태의 옆에서 정두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짐 지금 바로 옮기실 건가요?”
“네, 미리 카메라를 세팅해야 해서요.”
“알겠습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김민석이 정두식을 향해 허리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정두식이 한성태에게 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친구, 재미있는 사람이네.”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옅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김민석은 친화력이 좋았다.
“민석 씨, 이거 카메라 가방 같은데. 어디로 옮기면 될까요?”
“그건 저 주시면 됩니다. 지금 바로 세팅할게요.”
“민석아, 이 박스는 어디로 옮겨?”
“뭐 들어 있는데?”
“옷 같은 거 들어 있어.”
“소품 상자네. 그건 마루에다 놓으면 돼.”
한 장소에서 촬영해서 그런지, 10분 단편 영화 촬영인데도 짐이 상당히 많았다.
소품이 든 상자만 다섯 개니, 김민석이 얼마나 공을 들여 준비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조명이 엄청 많네. 이거 다 산 거야?”
“산 것도 있고 미소 누나한테 받은 것도 있어. 옷들은 전부 미소 누나가 준 거고. 자기 말로는 협찬이라고 하는데, 나야 돈 안 쓰고 좋지.”
“나중에 미소 누나한테 감사하다고 연락 드려야겠네.”
보통 학생들이 단편 영화를 찍을 때는 제작비가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소품과 같은 것들이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옷은 동묘 시장 같은 것에서 구해오는 게 아니라면 준비하기도 힘들었다.
‘미소 누나라고 해도 이건 무리한 것 같은데.’
박스에 들어 있는 옷이 상당히 많다 보니 김미소가 무리한 게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성태야, 그래서 이거 영화 이름이 뭐야? 아직 제목 못 들은 것 같은데.”
“아, 그거……. 잠시만요. 민석아, 영화 제목 정했어?”
기존에 ‘살인마에게서 살아남아라’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제였다.
슬슬 제대로 이름을 지어야 할 터.
“하루.”
“어?”
“하루라고, 하루.”
그의 물음에 김민석은 바로 대답했다.
‘하루’라는 제목.
‘괜찮은데?’
한성태는 그 제목이 상당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마에게서 살아남아라’는 너무 노골적이라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었으니까.
“그렇다네요. 하루래요.”
“괜찮은 이름이네.”
대화가 잠시 끊어지고 네 사람은 부지런히 움직여 차에서 짐을 내렸다.
짐을 다 옮기고 차까지 빼고 나서야 쉬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하린 씨, 수고 많았어요.”
“아, 고마워요. 안 그래도 목말랐는데, 잘 마실게요.”
한성태가 건네주는 물컵을 받으며 서하린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 앉은 한성태는 물을 홀짝이며 앞을 바라보았다.
김민석이 카메라를 세팅하고 있었고 그런 그의 옆에서 정두식이 말을 걸고 있었다.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걸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한성태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성태야, 옷 한번 갈아입어 봐. 하린 씨도 저기 방안에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알았어.”
“네, 지금 갈아입고 나올게요.”
한성태와 서하린이 각자 옷을 챙겨 안방과 작은 방에 들어갔다.
한성태의 손에 들린 최덕수의 옷.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온통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당신의 분장에 탄식합니다.] [‘천의 얼굴’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분장이라며 묘한 미소를 짓습니다.]한성태가 갈아입은 옷은 상체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 어떤 오물이 묻어도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은 진한 검은색.
유일하게 검은색이지 않은 부분은 그가 얼굴에 쓰게 될 새하얀 가면뿐이었다.
무표정한 그 가면은 부서지지 않은 오페라 유령의 가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섬뜩하기는 하네.”
시골에 새하얀 가면을 쓴 괴한이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헛웃음을 흘렸다.
“와……. 이렇게 보니까, 위압감이 장난 아니기는 하네.”
“시골에서 너 보면 기절하지 않는 게 다행이겠는데.”
방에서 나온 한성태를 보며 김민석과 정두식이 감탄사를 흘렸다.
“야, 이것도 들어봐.”
한성태가 해머를 붙잡아 어깨에 걸치니 김민석이 감탄하며 박수 쳤다.
그 모습에 한성태는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얼마 지나 서하린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검은색 돌핀 팬츠와 새하얀 면티와 줄무늬가 그려진 청색의 셔츠를 걸치고 있었고 도수가 없는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꾸민 듯하면서도 꾸미지 않은 그녀의 모습은 위화감 없이 매우 잘 어울렸다.
“괜찮나요?”
“네, 좋네요. 잘 어울려요.”
한성태의 말에 서하린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서하린을 보며 제대로 꾸며보고 싶다며 입맛을 다십니다.]시야에 떠오른 메시지를 뒤로 한 채, 한성태는 촬영을 위해 움직였다.
“준비 다 한 것 같은데. 바로 촬영 들어가도 되겠죠?”
김민석의 물음에 한성태와 서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태가 해머를 든 채 자리를 옮겼다.
그런 그를 따라 김민석이 든 카메라가 따라왔다.
[‘천의 얼굴’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촬영이 시작되었다.
* * *
정두식은 팔짱을 낀 채 한성태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도 연극 때 보았던 한성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느꼈던 충격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까.
“천천히 걸어와 봐. 망치는 땅에 질질 끌면서. 어, 좋다.”
김민석이 장소를 선정하고 어두워지는 주변에 가져온 조명의 빛을 더했다.
조명 가운데 걷는 한성태의 모습은 어딘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분위기가 기가 막히네.’
단순히 한성태가 입은 복장 때문에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아니었다.
한성태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있었다.
짙게 내쉬는 숨소리, 천천히 걷는 발걸음, 살짝 삐딱하게 기울어진 고개까지.
한성태의 의도하에 만들어진 동작들이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자, 레디…… 액션!”
김민석이 한성태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소리에 한성태가 해머를 땅에 질질 끌며 상체를 살짝 낮췄다.
“하…….”
그 모습을 보며 정두식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뭘까, 이 느낌은.
한성태를 보고 있는데 한성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그극.
그가 들고 있는 해머가 땅에 끌렸다.
해머에서 나는 소리에 정두식은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솜털이 바짝 서 있었다.
저벅저벅.
한성태가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 걸음은 느리지도 않았고 빠르지도 않았다.
느긋하게, 하지만 집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살벌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이잉―.
김민석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전부 담아내고 있었다.
‘제법인데?’
정두식은 많은 배우를 만났듯이, 감독도 여럿 만났다.
그들을 보면서 감독을 보는 눈도 어느 정도 생겼고, 그런 그가 보기에 김민석은 장래가 기대되는 사람이었다.
찍는 방식부터 시작해서 집중력까지.
미숙하기는 해도 학생들에 비하면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하린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이 처음 하는 연기.
한성태를 앞에 두고 연기하는 서하린의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괜찮았다.
이제야 자신의 옷을 찾아 입은 사람처럼.
연기를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부족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베테랑에 비한다면 서하린의 연기는 부족한 게 많았고 그게 정상이었다.
처음 하는 연기를 가지고 완벽하게 해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한성태, 쟤는 도대체 뭐지?’
그렇기에 더더욱 한성태를 바라보는 정두식의 표정이 혼란스러웠다.
한성태도 연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연극까지 따진다면 이번 네 번째 연기.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성태는 촬영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압도하고 있었다.
“괴물이네.”
문으로 다가가 해머를 흔드는 한성태의 모습을 보며 정두식은 헛웃음을 흘렸다.
배역에 빙의된 것처럼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는 한성태의 모습은 신인의 것이라 볼 수 없었고.
그를 선택한 것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고 있었다.
촬영을 지켜보는 정두식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