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58
1.
선발투수가 승리투수가 되기 위한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건 5이닝을 소화하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5회 초를 알렉스 브레디는 완벽한 피칭으로 마무리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5회 초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여덟 번째 삼진으로 잡아낸 알렉스 브레디는 그 순간 움켜쥔 주먹을 크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Fire!”
그 외침은 꽤 컸다.
경기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당연히 들었고, 소음으로 가득 찬 문학구장에서 경기를 보던 기자들이나 관중들도 알렉스 브레디가 어떤 심정으로 소리를 내질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
그런 외침이 알렉스 브레디를 바라보는 엔젤스 선수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을 리 만무했다.
“저 양키 새끼가!”
“처음에는 안 그러다가 4회부터 자꾸 저 지랄을 하네.”
알렉스 브레디의 외침을 들은 엔젤스 선수단은 당연히 발끈했다.
그뿐이었다.
“아오, 빡쳐!”
그 이상 알렉스 브레디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이는 없었다. 코칭스태프 차원에서의 움직임도 없었다.
샤크스의 벤치는 오히려 도발적인 환호성을 내지른 뒤 마운드를 내려와 벤치로 들어온 알렉스 브레디를 향해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알렉스! 적응 다 끝났네, 끝났어!”
“그래, 파이어다, 파이어!”
알렉스 브레디, 그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 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바뀐 건, 자신이 처음으로 홈런을 맞는 날, 자신을 상대로 홈런을 친 타자가 배트를 저 먼 곳으로 가뿐하게 날리는 것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 배트 플립을 보고 저 무례한 타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고, 그런 알렉스에게 샤크스의 투수코치인 정명훈은 말했다.
“한국프로야구는 저래도 된다. 화내봤자 네 손해야.”
그때부터 알렉스는 불만을 토로하기보다는 그 스스로 한국프로야구무대에 적응했다.
타자가 배터 박스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기에, 본인 역시 기꺼이 마운드 위에서 감정을 표출했다.
더욱이 오늘 알렉스 브레디의 피칭은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본인 스스로가 환호성을 내지를 만큼 훌륭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환호성이 필요한 때이기도 했다.
“알렉스, 나이스 플레이. 굳 플레이.”
“쾀사! 쾀사!”
샤크스의 투수코치인 정명훈이 더그아웃에 들어온 알렉스를 향해 박수를 치고, 엄지를 치켜든 이유였다.
‘예의는 여기까지, 이제는 다시 분위기를 끌어올려야지.’
엔젤스의 선발투수였던 이도섭이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이탈한 이후 샤크스는 나름의 예의를 갖추었다.
그러나 솔직히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예의는 아니었다.
애초에 샤크스가 엔젤스를 자신들의 홈구장으로 초대한 이유는 서로 웃으면서 악수를 하려고 부른 게 아니었으니까.
‘주중 3연전 첫 경기인데 여기서 만족할 순 없지.’
오히려 반대, 엔젤스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후에 울면서 이곳을 떠나게 하려고 불렀다.
물론 갑자기 식어버린 타자들의 타격감을 바로 가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이기고 있는데 악착 같이 덤벼드는 것 역시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야구는 타자들만으로 치러지지 않는 법.
‘엔젤스 타자들을 오늘 경기에서 아주 제대로 찍어 죽인다.’
알렉스 브레디의 호투를 이용해 엔젤스를 질식사시키는 것 역시 좋은 방법이었다.
그가 만약 오늘 엔젤스의 타선을 상대로 완봉승이라도 거둔다면, 최소 남은 두 경기 동안 엔젤스 타선은 반쯤 술을 걸친 상태나 다름없는 꼴이 될 테니까.
그게 지금 샤크스가 바라보는 목표이자, 이상이자, 그림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눈에 그는 보이지 않았다.
– 이진용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이진용, 그가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 따위는.
2.
야구의 시대가 세이버 매트릭스의 시대에 접어든 이후 많은 것들의 가치가 변했다.
선수를 가늠할 수 있는 절대적인 지표라고 여겨지던 것들 중 몇 가지들은 허상으로 치부 받기 시작했다.
반대로 더더욱 대단한 가치로 인정받는 것들도 있었다.
“삼진이야말로 투수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수치다.”
삼진이 그러했다.
무수히 많은 세이버 매트리션들은 삼진이야말로 투수가 오롯하게 자기 능력만으로 만들 수 있는 수치이며, 당연히 투수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치라고 말했다.
실제로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투수들은 거의 모두가 탈삼진 능력이 뛰어났다.
랜디 존슨은 두말할 것 없고,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체인지업으로 삼진을 잡는 투수였고, 맞혀 잡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놀란 라이언은 메이저리그 통산 탈삼진 1위 기록 보유자이며, 그렉 매덕스도 통산 3천 개가 넘는 탈삼진을 잡은 투수였다.
그리고 김진호, 메이저리그의 지배자로 불리며 앞서 거론한 투수들과 기꺼이 이름을 나란히 할 만한 그 역시 그러했다.
매 시즌 300개가 넘는 탈삼진을 잡아내던 김진호는 누구보다 삼진 잡는 능력이 뛰어난 투수였다.
그런 김진호는 언제나 말했다.
– 모든 아웃을 삼진으로 잡을 순 없겠지. 하지만 경기를 하기 전에 그날 경기에 나올 수 있는 모든 타자들을 상대로 삼진을 잡을 계획은 세워둬야 해. 이 타자를 상대로는 삼진을 잡기 위해서 어떤 공을 어떻게 몇 개나 던져야 하는지.
모든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고.
– 투구수가 20개든, 30개든 몇 개를 써서라도, 얼마를 낭비하더라도 좋아. 일단 계획을 세울 줄 알아야 해. 그게 기본이야.
이제까지 김진호가 이진용에게 가르쳐준 것들은 바로 그것을 위한 기초 훈련이었다.
타자를 읽고, 읽어낸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한 후에 그에 맞는 사냥법을 만드는 것.
– 그렇게 해서 삼진으로 잡을 수 있는 타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리그 내에서 가치도 늘어나는 거야.
당연히 이진용은 샤크스 전을 준비할 때 김진호의 가르침을 그대로 수행했다.
샤크스에 있는 주요 타자들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분석했고, 그들의 타격 영상을 분석했다.
그리고 경기 내내 그들의 타격에 집중했다.
오늘 그들의 컨디션이 어떠한지, 그들이 노림수가 무엇인지, 어떤 심리인지.
물론 이제까지는 그러한 것을 알아도 이진용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방법이 많아도, 이진용이 가진 능력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 없었으니까.
특히 코너워크를 마음껏 공략할 만한 제구력의 부재는 이진용의 선택지를 한없이 좁혔다.
그 사실은 이진용에게 있어 고문과도 같은 일이었다.
맹수임에도 이빨과 손톱이 없어 사냥감을 눈앞에 두고도 사냥을 하지 못한 채,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것과 같은 고문.
심지어 김진호는 그 너머의 것도 알려줬다.
– 그리고 만약 진용이, 네가 그런 식으로 계산을 해서 27명의 타자를 잡았는데도 투구수의 여유가 생긴다면 그때부터는 네가 싸울 상대는 리그의 타자들이 아니야.
그저 단순히 프로선수들의 세계가 아니라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
– 놀란 라이언, 톰 시버, 워렌 스판, 샌디 쿠팩스······ 이진용, 네 기준에서는 그렉 매덕스나 랜디 존슨 그리고 위대한 투수 김진호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은 전설들과 싸우게 되는 거지.
별들만이 노니는 그 너머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말해줬다.
– 삼진 하나를 잡을 때마다 잡은 타자가 아니라, 전설적인 투수들이 거론되는 거다. 아마 넌 상상도 못할 거다.
오로지 김진호만이 알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었고, 덕분에 이진용은 그 세계를 꿈꿀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꿈에 닿을 수 있는 이빨과 발톱이 들어온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진용은 이 순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랄 염병 때문에 방출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오늘 미쳐본다.”
3.
5대0으로 경기를 리드하던 샤크스가 맞이한 5회 말, 샤크스의 타순은 8번부터 시작이었다.
하위타순부터 시작되는 만큼 샤크스는 이번 타순에 크나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애초에 샤크스의 하위타순은 앞선 상위 타순과 중심 타선에 비해 꽤 약했으니까.
7번, 8번, 9번 타순에 배치된 주전 선수들의 평균 타율이 2할 3푼에 불과했으며, 이 타순에서 나온 홈런의 개수가 1달 내내 3개에 불과한 것이 그 증거였다.
물론 달리 말하면 그런 낮은 타율과 성적 속에서도 그들이 주전으로 활약하는 건 다른 부분에서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의미였다.
샤크스의 8번 타자 나승환은 아주 뛰어난 수비능력을 가진 유격수였다.
타율이 고작 2할 3푼에 불과함에도 샤크스의 주전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실력 좋은 유격수.
더불어 유격수는 어떤 의미에서 포수 다음으로 투수의 공이 눈에 익은 포지션이기도 했다.
언제 빠른 땅볼이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격수는 타자만큼이나 투수의 공에 집중해야 하니까.
‘이 녀석 스플리터 장난 아니야.’
때문에 나승환은 지금 자신이 선두타자가 되어 상대해야 하는 마운드 위의 투수가 앞서서 던진 그 스플리터란 놈이 얼마나 상대하기 힘든 공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작심하고 치는 수밖에 없어.’
객관적으로, 지표상으로도 타격 능력이 부족한 나승환 입장에서는 오로지 스플리터만 노려야 간신히 칠 수 있을 정도.
그렇기에 나승환은 그것을 승부수를 삼았다.
‘그래, 어차피 결정구로 스플리터를 던진다면 그걸 노려주마.’
1군 주전 선수이지만, 타석에 섰을 때 강자일 때보다 약자일 때가 많았던 나승환은 약자가 싸우는 법이 그 무엇도 아닌 선택 그리고 집중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내릴 수 있는 선택이었다.
나승환은 이진용의 스플리터를 도리어 노리기로 했다.
이건 결코 막연한 도박, 무모한 도전 따위가 아니었다.
‘일단 투스트라이크까지 본다.’
오늘 이진용의 피칭은 투스트라이크 상황까지 볼카운트를 만든 후에 스플리터를 던져 헛스윙을 끌어내는 피칭을, 삼진을 잡는 피칭을 하고 있었고, 누가 보더라도 그게 정답이었다.
그 어떤 투수도 그런 끝내주는 스플리터를 놔두고 굳이 다른 방법을 강구하진 않을 테니까.
달리 말하면 투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스플리터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의미.
나승환은 그것을 노리고 타석에 섰고, 이진용은 곧바로 피칭을 시작했다.
이진용, 그가 던진 초구는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펑!
스트라이크존, 우타자인 나승환의 몸쪽을 찌르는 투심 패스트볼.
‘헉.’
타자를 움찔하게 만들 정도.
“스트라이크!”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이 도리어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 만약 배트를 휘둘렀으면 초구 땅볼로 아웃이 되었을 정도로 홈플레이트 근처에서의 무브먼트가 끝내주는 공이었다.
‘그래, 투심이 원래 장기였었다고 했지?’
그제야 나승환은 이진용이란 투수의 카테고리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던 것이 투심 패스트볼이란 거 떠올렸다.
‘젠장, 미치겠네.’
오늘 경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진용의 카테고리 어디에도 스플리터 따위는 없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달리 말하면 샤크스 전력분석팀이 준비한 이진용의 스카우팅 리포트가 쓰레기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저 새끼 정체가 뭐야?’
그야말로 미칠 노릇.
당연히 미칠 지경인 나승환의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그런 그에게 이진용이 던진 2구째 스플리터에 제대로 된 반응을 할 여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후웅!
그렇게 나승환이 자신의 두 번째 스트라이크를 헛스윙으로 쌓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투스트라이크 상황에 몰렸다.
그러나 도리어 그 순간 나승환은 나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이제 무조건 노린다. 스플리터라고 생각하고 노린다.’
벼랑 끝에 몰린 그는 도리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그런 그를 향해 이진용이 3구째를 던졌다.
‘온다.’
나승환은 당연히 그 공이 스플리터라고 생각했다.
스플리터라고 예상하고 그린 스윙 궤적 그대로 자신의 배트를 움직였다.
‘어?’
그러나 이진용이 던진 공은 스플리터처럼 떨어지기는커녕 도리어 일반적인 패스트볼보다 덜 가라앉았다.
라이징 패스트볼!
그 갑작스러운 공 앞에서 나승환의 배트는 그대로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후웅!
그리고 주심은 곧바로 크게 제스처를 취하며 온몸으로 세상에 알렸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이진용이 세 번째 삼진을 잡았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런 주심의 노력은 곧바로 이어진 한 사내의 환호성에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호우!”
이진용, 그가 드디어 자신의 사냥감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4.
“호우!”
이진용이 처음 마운드에서 그 소리를 내질렀을 때 그 광경을 보던 관중 그리고 기자와 선수단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지금 뭐라고 한 건가?’
그들은 처음 보는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반면 이진용의 그 모습을 아는 이들은 그 사실에 도리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또라이 새끼.”
황선우 기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가 있는 기자석과 마운드 사이의 거리는 꽤 멀어서 이진용의 외침이 들릴 리 없음에도, 그는 이진용이 어떤 소리를 내질렀는지 선명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황선우는 확신했다.
‘이제 굳이 주변 눈치 볼 거 없다, 이거군.’
이진용 본인이 더 이상 눈치 볼 것 없이 자신의 야구를 할 각오를 마쳤다는 것을.
‘재미있어지겠군.’
이제 정말 야구가 재미있어지리란 사실을.
물론 황선우만 그러했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이진용이 한 짓의 의미를, 의중을 파악한 이들은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저 새끼 뭐야?”
“지금 호우, 그렇게 외친 거 맞지? 삼진 잡고?”
샤크스 벤치에서는 격렬한 분노가 표출됐다.
반면 엔젤스 벤치에서는 박수 소리가 나왔다.
“캬, 우리 팀에 드디어 뭔가 또라이 같은 새끼가 들어왔네.”
“그래, 그냥 질러버려!”
지고 있는 경기, 심지어 상대팀 에이스 투수에게 아주 그냥 사정없이 짓밟히는 와중에 이진용이 내지른 환호성은 엔젤스 선수들의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는 사이다와 같았다.
물론 선수단과 달리 코칭스태프들은 이진용의 행동에 감정의 표출이 아닌 계산을 했다.
일단 샤크스의 감독, 김수만은 생각했다.
‘엔젤스 선발투수가 타구에 맞고 부상 당해 강판된 상황에서 벤치 클리어링 같은 거 일으켜서 좋을 건 없지. 대신 이제 예의는 끝낸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이진용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되, 이도섭의 부상에 대한 예의는 더 이상 없다고.
엔젤스의 감독, 봉준식도 생각했다.
‘솔직히 알렉스를 상대로 5점이나 되는 점수 차를 뒤집긴 힘들다. 하지만 이대로 분위기마저 지고 들어가면 남은 2연전도 기대하기 힘들 터. 그런 상황에서 이진용이 분위기를 띄워줄 수 있다면······ 기꺼이 날뛰게 해줘야지.’
이진용이 나서서 분위기를 띄워준다면 말릴 게 아니라 부채질을 할 때라고.
결과적으로 두 감독은 이진용의 이 환호성에 대해 그 어떤 터치도 않지 않았다.
그 사실을 가장 먼저 파악한 건 김진호였다.
마운드 위에서 두 감독의 낌새를 파악한 김진호가 이진용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 벤치에서 오케이 콜 나왔다. 이제 마음대로 질러도 될 것 같다.
이진용은 대답 대신 숨을 골랐다.
“호오, 후우.”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호오, 후우.”
보다 크게 환호성을 내지르기 위해서.
– 미친 새끼.
그런 이진용의 모습에 김진호는 입가에 깊은 미소를 지었다.
– 그래, 미칠 수밖에 없지. 이 재미를 아는데, 미치지 않으면 그 새낀 야구를 하지 말아야지.
이 순간 김진호도 느끼기 시작했다.
마운드 위에 올라선 자가 그 마운드 위를 지배할 때의 느낌을.
자신이 전성기 시절 메이저리그의 마운드 위에서 만들어내던 느낌이 김진호에게도 전달됐다.
– 죽여 버려.
당연히 김진호는 이진용을 말리지 않았다.
“예.”
그리고 이진용은 기꺼이 김진호의 말을 따랐다.
그로부터 몇 분 후.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주심이 9번 타자의 삼진 아웃을 선언했고, 곧바로 이진용이 소리쳤다.
“호우!”
5.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구질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대답은 간단하다.
– 만약 경기에서 두 가지 공만 던져야 한다면 하나는 포심 패스트볼을, 하나는 슬라이더를 고를 거야. 실제로 랜디 존슨은 그 두 가지만으로 최고의 투수가 됐지.
슬라이더.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수놓아진 무수히 많은 구종 중에서도 슬라이더만큼 많은 헛스윙을 이끌어낸 변화구는 없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때문에 샤크스의 1번 타자, 2016시즌 3할 1푼의 타율을 기록한 이강수가 슬라이더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강수 역시 그 슬라이더에 배트를 대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그저 화가 날 뿐이었다.
“호우!”
‘저 빌어먹을 새끼!’
바로 자신으로부터 삼진을 잡아낸 것을 마운드 위에서 기뻐하는 투수의 주둥이를 뭉개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오!”
그렇게 분을 삭이며 벤치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에 이진용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이진용의 귓속으로 베이스볼 매니저의 알림이 들렸다.
– 오늘 제대로 긁히는데? 앞으로 구속이 여기서 30킬로미터만 더 나오면 포스트 김진호가 될 수 있겠는데?
김진호의 목소리로 들렸다.
– 응?
그러나 이진용은 그런 김진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진용은 마운드를 내려가지 않은 채 샤크스의 벤치를 바라봤다.
– 오호라.
그 벤치 안에서 배트 대신 주섬주섬 글러브와 모자를 챙기는 덩치 좋은 타자를 바라봤다.
최정우.
샤크스의 3번 타자이며,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3루수!
2014시즌을 끝으로 무려 4년 9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FA계약을 맺은 건 물론, 작년 시즌 무려 41홈런을 기록하며 이제 통산 홈런이 250개를 넘은 타자!
이진용, 그가 6회 말에도 마운드에 올라온다면 마주해야 하는 가장 큰 벽이었다.
물론 이진용은 그 사실에 겁을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애초에 그런 걸 배운 적도 없었다.
– 그래, 대어를 잡으려면 기세를 탔을 때 잡아야지.
김진호에게 배운 거라고는 리그 최고의 타자를 만났을 때 신께 감사하며 그 타자를 먹어치우라는 것뿐이었으니까.
– 그래서 잡을 수 있겠어?
그 말에 이진용은 짧게 대답했다.
“호우!”
그 짧은 대답을 듣는 순간 김진호는 확신했다.
– 이 미친 또라이 새끼.
이진용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