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폴탄 해안에서의 훈련이 끝나고, 나이트 아카데미로 돌아온 지 벌써 일주일.
이제 정말로 3학년들이 졸업할 시간이 찾아오고 있으나 1학년인 나와는 크게 관계도 없으니.
그냥 평범하게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꽤나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지금도 부실 밖에는 생도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기말고사가 코앞인 상황.
성적 상위권의 학생이 몰려 있는 우리 동아리에 입부하고 싶다고 찾아온 생도들이었다.
선도부로 인해 입부희망자가 줄었으나, 이번에 마수 사태에서 교수와 선도부도 처리하지 못한 마수를 내가 쓰러트린 게 알려지면서 입소문이 더욱 퍼져 버렸다.
“들어오세요.”
내가 부르자 입구에 서 있는 샬롯이 문을 열고 지원자를 안으로 데려온다.
부실 내부는 꽤나 정갈하게 청소해 두었고, 책상을 이어 붙여서 면접실처럼 꾸며두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청소하는데 왜인지 매일 더러워지던 부실이 그야말로 새로 태어난 것처럼 탈바꿈하는 데는 부원들의 노력이 있었다.
정확히는 마리아와 다이니 빼고.
둘은 대청소할 때 도망쳤다.
그래서 벌칙으로 나와 함께 면접관을 하고 있으나.
“이름?”
“……거기 적혀 있지 않아?”
어디서 주워 온 안경을 쓴 마리아가 입부신청서를 내려다보며 묻는다.
마리아는 이상한 걸 배워 와서는 면접자의 대답을 듣는 순간 곧장 한숨을 푹 내쉬며 손짓했다.
“탈락. 나가.”
“…….”
이거 진짜냐고 나를 쳐다보는 생도.
나는 당연히 아니라고 손짓으로 부정한 후 마리아를 노려본다.
“뭐 하냐.”
이제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아니면 그냥 하기 싫어서 깽판 치려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뻔뻔하게 답해 왔다.
“넌 종종 억지스러운 요구나, 훈련을 시킬 때가 있잖아. 이것도 일종의 확인이야. 뻔히 적혀 있는 이름을 물어서 이런 사소한 것도 제대로 말을 듣는지 확인하는 거지.”
“오…….”
마리아의 반대편에 앉아 있는 다이니가 탄성을 흘린다.
나름대로의 이유에 다이니도 납득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렇다고 그냥 나가라고 해? 일단은 넘어가겠는데 적당히 해라.”
“쳇.”
내 말에 마리아는 팔짱을 끼며 알겠다고 심드렁하니 답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직 안경을 벗지 않는 걸 보면 끝나진 않은 듯했고.
실제로 면접이 진행되면서 마리아는 아주 기이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팔굽혀펴기 50번만 해봐.”
“점프해서 몇 번 돌 수 있는지 보여줘.”
“개 흉내 한번 내볼래?”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면서 개 흉내를 내려던 면접자를 말린다.
나는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마리아를 노려봤다.
“꺼져.”
가뜩이나 물어볼 것도 많은 면접인데 얘가 옆에서 자꾸 이상하게 끼어드니까 진행이 안 된다.
“쩝, 이제 좀 재밌어지던 참인데.”
아쉬워하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그녀.
하지만 안경을 벗는 순간, 무슨 가면이라도 깨진 것처럼 환한 미소와 함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다.
“탈출이다! 야, 샬롯! 베런이랑 실리아 선배 어디서 대련한다고 했지?”
“……4번 대련장이긴 한데.”
문 앞에 서 있던 샬롯이 볼을 긁적거리며 묻는다.
“너 근데 달인님이 대련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참고로 저 달인님은 생도들이 윤을 부르는 호칭이다.
꼬맹이인 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의에 윤이 직접 스스로를 달인이라 부르라고 말해줬다.
사심이 한가득 담겨 있는 호칭이긴 했으나, 실제로 달인은 맞으니까 허가해 줬다.
“뭔 소리야. 그런 적 없어.”
누가 들어도 거짓말이라는 게 목소리에서부터 티가 나는 마리아.
턱을 괸 다이니는 비웃음을 내걸며 추가타를 건넨다.
“달인님이 너랑 대련해 주면 우리도 뒤진다고 해서 아무도 안 해줄 걸?”
“아, 그 꼬맹이…….”
이마를 탁 치며 윤을 향해 짜증을 낸 마리아가 결국 몸을 돌려 다시 내 옆자리에 앉는다.
“입 다물고 있어. 넌 면접관 아니니까.”
“아, 예. 나도 어떤 놈들 들어오나 구경만 할 생각이야.”
부실에 둔 과자 하나를 책상 위에 두더니 그걸 먹으면서 그대로 구경하기 시작한다.
거슬리긴 했지만 일단 과자로 입이라도 막아둘 수 있으니까 그냥 무시하고 면접을 진행하기로 했다.
“저기, 나 면접 안 볼게.”
“……그래.”
이 꼴을 보고도 동아리에 들어오고 싶진 않았겠지.
* * *
“끄으응.”
입부신청서를 정리하며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켠다.
면접을 다 보고 나니 어느새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이제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는 편이긴 해도 이 시간까지 면접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어느새 마리아는 팔짱을 끼고, 책상에 다리를 얹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대강 몇 명 정도지?”
나와 같이 면접을 본 다이니의 질문에 나는 조금 아쉬워하며 답했다.
“다섯 명.”
이렇게 오래 면접을 봤는데 고작 다섯 명.
그 말을 듣자 다이니는 미간을 팍 찌푸리며 높게 쌓인 입부신청서 위에 손을 얹는다.
전부 오늘 탈락한 생도들의 것이었다.
“서른 명에서 마흔 명은 봤는데 고작 다섯 명 뽑았어?”
“이것도 많이 뽑은 거야. 중간에 하나도 못 뽑을 것 같아서 눈을 좀 낮췄거든.”
당장에 내가 원하는 건 자라나는 새싹이 아니라, 얼추 성장된 생도였다.
적어도 우리 부원들과의 대련이나 훈련에 있어서 뒤처지지 않을 수 있는 수준.
그렇다 보니 뽑을 생도가 턱없이 부족했다.
“1학년은 전멸이고 다섯 명이 다 2학년이네?”
“어쩔 수 없잖아. 1학년에선 아직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
“뭐, 선도부가 괜찮은 매물을 전부 가져간 탓이기도 하지만.”
슬쩍 다이니를 보자 어느새 뽑힌 사람들 명단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마리아아아, 일어나.”
오늘 밖에서 면접자들 관리하느라 고생해 준 샬롯이 마리아를 깨우는 동안.
나는 여전히 다이니를 보고 있었고, 그녀도 내 시선을 느끼곤 잠시 머뭇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기에 잠시 기다린다.
결국 그녀는 샬롯과 마리아를 힐끔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만약 우리가 면접 봤으면 오늘 통과했어?”
“음? 지금 상태면 당연히 통과했겠지.”
부원들에게 맞출 수 있는 생도를 뽑는 건데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다이니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처음 봤을 때의 우리라면?”
왜 굳이 상처를 받고 싶어 하나 싶은 질문이었지만 샬롯도 침을 꿀꺽 삼키며 이쪽을 힐끔 바라본다.
“절대 안 뽑지.”
솔직하게 말해서 뽑을 필요가 없었다. 샬롯은 서류에서 탈락해서 면접 자체를 볼 수 없을 테고, 다이니는 면접을 봤겠으나 부족함을 느꼈겠지.
그나마 마리아?
“아마 베런이나 마리아 정도가 턱걸이로 걸쳤겠지.”
실리아는 무조건 통과.
벨레스는 예외에 가까운 생도니까 논외로 친다.
내 말을 듣자 다이니의 표정이 사뭇 어두워진다.
본인도 모르지 않고 질문했겠으나 막상 들으니 더 가슴에 박히는 듯했다.
“근데 그게 뭐가 중요하냐? 결국 너희는 이렇게 함께하고 있잖아. 게다가 1차 면접에서는 안 뽑았을 뿐이지, 나중에 동아리 안정화되고 체계가 잡히면 싹수 있는 애들도 뽑을 거야. 그때 뽑힐 수 있을걸.”
내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독이려 했으나.
“어휴, 등신.”
잠에서 깬 마리아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내가 다른 애들은 다 괜찮은데 마리아한테 살면서 등신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욕도 누구에게 듣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아주 기분이 나빴다.
“얘네가 지금 너한테 위로받고 싶어서 그런 걸 물어본 줄 아냐?”
“…….”
슬그머니 다이니와 샬롯을 확인한다. 둘은 여전히 표정 자체는 어두웠으나, 그 일면에서는 묘한 열정이 타오르고 있었다.
운이 좋아 얻은 기연.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샬롯은 넬슨 때문에 접근하게 되었고, 다이니는 마몬의 로자리오 때문에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두 사람이 뛰어났다기보다는 다른 모종의 이유가 있었을 뿐이다.
둘 다 그걸 인정하면서도 굳이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
입을 꾹 다문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봤자 별 쓸모 없다는 걸 알아차린다.
우연한 인연을 통해 얻은 기회.
시작은 운이었더라도 끝은 능력을 통해 쟁취하겠다는 듯.
타오르는 둘의 열정을 보며 나는 지어지려는 미소를 억지로 숨겼다.
* * *
댕! 댕! 댕!
거대한 은색 종이 프나틱스 신전의 하루가 끝났음을 알려온다.
오늘 하루도 기도와 말씀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성실하면서도 순결한 이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사용한 방석이나 주변을 기물들을 정리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근처에 카페 생겼다던데 이번 쉬는 날에 같이 갈까?”
“좋긴 한데, 너무 달거나 짜면 우리는 못 먹잖아.”
“그래서 일부러 성직자들 먹으라고 메뉴도 따로 구비해 뒀대.”
“머리 좋다. 인기 많겠네.”
방금 전까지 신의 말씀을 묵상하고, 눈물과 기도로 범벅이 되어 있던 이들의 대화도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나틱스 신전에는 특히나 함께 훈련받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신도들이 많았기에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많았다.
다른 신전들과는 다른 거대한 예배당과 더불어 압도적으로 큰 규모.
세상과 떨어진단 명목으로 인적이 드문 장소에 신전을 세웠으나, 워낙 거대한 크기 탓에 오히려 프나틱스 신전 근처로 사람들이 찾아왔고 어느새 작은 마을 수준이 되었다.
길고 긴 전통을 통해 쑥쑥 성장해 가는 프나틱스 신전에는 또한 특별한 여인이 있었다.
프나틱스 신전에 젊은 여신도들이 많이 찾아오는 이유.
다른 여신도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성녀라는 이름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여인.
곱게 포갠 두 손과 꿇고 있는 무릎. 기도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땀에 젖은 녹색 머리카락.
“루메나 성녀님?”
종이 울려오고, 모든 시간이 끝났음에도 아직도 양손을 꼭 모으고 기도 중인 루메나 성녀를 예배당 청소당번인 신도가 조심스럽게 불러본다.
원래라면 루메나 성녀도 기도시간이 끝났으니 일어나야 했으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어? 어?”
“시, 신탁이다!”
성녀의 머리 위로 내리쬐는 찬란한 하얀 빛.
예배당 중앙에 있는 스테인글라스를 타고 쏟아지는 빛은 오롯이 루메나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신의 계시.
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받아서 세상에 전파한다는 신탁.
말씀이 변질되거나 오염되지 않게, 정결하고 깨끗한 신자만 받을 수 있다고 알려진 기적.
“아.”
찬란하니 내리쬐던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루메나 성녀는 뜨거운 숨소리를 흘리며 천천히 일어났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신도들을 한 번 빙 둘러보더니 루메나 성녀는 양손을 꼭 쥐고 눈을 감는다.
“마차를 준비해 주세요. 로베르담으로 가야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에는 신을 향한 감사. 또한 오래도록 버려져 있던 물건의 주인을 찾았다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세리안의 검. 주인을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