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
버들바람 마을을 안내해 주고 있던 샬롯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지더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수많은 간식거리들.
“와, 개쩌네.”
“세금 걷는 줄 알았어.”
마리아와 다이니가 함께 탄성을 내지를 정도로 엄청난 양.
마을 사람들이 주는 걸 거절하지도 못하고 그냥 무작정 받기만 하던 샬롯이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본다.
아까 첫 만남에서부터 뭘 먹었냐고 물었던 게 그녀에겐 꽤나 부담이 됐던 모양이다.
만약 몸 상태가 여름방학 때처럼 딱 눈에 띠게 살이 쪄있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라서 사실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내가 너무 애 기를 죽여 놨나?’
지난번 폴탄 해안에서 웨인을 상대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던 모습도 그렇고. 종종 자신이 동아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말하던 모습 등.
‘곤란하네.’
이전 중간고사 대련에서 다이니를 이기면서 나름대로 올라왔던 자신감.
하지만 다이니가 마몬의 기운을 받고, 내 가르침을 받으며 오히려 최근 우세를 점하고 있고.
대련은 대부분 베런이나 마리아 같은 애들이랑 하다 보니 이기는 경우가 없다.
지금 내 눈치를 보는 건 실력적인 부분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것에서도 눈치를 보는 거였다.
‘그렇다고 샬롯이 성장하지 못한 건 또 아닌데.’
몇 번이나 말했지만 우리 부원들 중에서 가장 성장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살롯이었다.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성장세는 C반에 있는 그녀가 성적 최상위권까지 올라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상대들이 너무 안 좋아.’
마리아와 베런. 게다가 같은 C반인 벨레스. 마몬의 기운을 받은 다이니한테는 다시 따라잡히는 기분까지.
그렇다고 내가 져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머리를 북북 긁으며 슬쩍 샬롯을 본다. 그녀는 움찔 떨더니 햄스터처럼 슬며시 먹을 걸 뒤로 숨긴다.
“그, 먹긴 했는데. 찌진 않았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
내가 뭐라 하기 전에 미리 선수 친다.
“검술도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고, 너, 너무 뭐라 하진…….”
“아니, 뭐라 할 생각 없어.”
“……내가 제 발이 저렸구나.”
민망하니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치며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는 샬롯.
그녀를 보니 확실히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샬롯의 아버지이자 일레인 가문의 가주께서 우리를 환영해 준 덕분에 며칠 정도는 저택에서 머물기로 했다.
샬롯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걸 기뻐하시는 모습이 다소 팔불출이었다.
특히나 마리아가 레이로즈 가문이라는 것을 듣고는 의자 뒤로 넘어가실 정도로 깜짝 놀랐고.
내가 이안 아이넬이라는 걸 들으시자 안타깝게도 의자 뒤로 넘어가셨다.
‘레이로즈는 그렇다 쳐도, 나도 꽤나 유명해졌구나.’
레이로즈야 왕국에서 손에 꼽히는 적장미 기사단을 이끌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나에 대한 것도 꽤나 알려져 있구나 싶었다.
여러 사건을 해결하긴 했으나, 아마 성검의 주인이 된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했겠지.
따로 받은 방 안에서 나는 슬그머니 붕대에 묶인 성검을 풀어헤쳤다.
순백색 바탕에 푸른 선이 이어진 아름답던 성검은 어디로 사라지고.
완전히 오염되어 검은빛을 띠고 있는 모습.
이제는 천사의 신성 같은 건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쥘 때마다 마음 한 편이 편안해지는 기분.
그게 마몬이 기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지금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어렵네.’
레비아탄과 벨페고르를 먹어치운 이후, 사실 내게는 크게 뭔가가 변화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마몬에겐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주 열심히도 힘을 숨기고 계셨어?’
성검을 먹어치우는 걸 본 순간, 내 안에 위기감이 정말 강하게 들었다.
상성 면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천사의 신성이 담긴 검조차 먹어치울 정도로 마몬이 덩치를 불렸다는 소리였으니까.
힘을 다룰 수 있다고 안일했다. 앞으로는 좀 더 주의할 필요가 있었고.
또한.
‘단원들을 빨리 소환할 필요가 있다.’
워즈까지 소환해 내긴 했고, 이제 소환한 숫자보다 소환할 숫자가 더 적어지긴 했다.
그리고 아마 마지막이 될 대마법사 힐다까지 소환하면 그녀가 뭔가 해법을 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보여도 마법에 있어서는 불세출의 천재니까.
한동안은 마몬의 기운을 억제하면서 생활해야겠다 다짐하며 마나를 일으킨다.
방 안에 둥글게 그려지는 마법진.
그 안에서 튀어나온 건 당연히 넬슨 일레인이었다.
“으음? 저만 부르셨네요?”
오랜만에 혼자 불린 것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넬슨.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의문을 표한다.
“단장, 여긴 어딥니까?”
“너희 저택.”
“……일레인 저택이요?”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넬슨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창밖을 확인한다.
검술이 유실된 이후로 일레인 가문이 저택을 팔았으면 팔았지 증축하거나 옮길 돈은 없었기에.
아마 넬슨의 기억 속에 엇비슷한 풍경이 있지 않을까 싶었고.
실제로 창문 난간 위에 올려진 녀석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 아…….”
꽤나 감동을 받았는지 넬슨의 목소리가 옅게 떨려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름 만족하며 잠깐 그에게 시간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얼추 시간이 지나고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넬슨.
눈가가 촉촉한 것이 확실히 감동을 받은 듯 보여 잘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저택도 한번 돌아보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건 지금은 힘들고, 새벽에 조용히 할 수 있을 듯했다.
이제 역소환되는 줄 알았는지 준비 중인 넬슨.
하지만 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녀석에게 물었다.
“최근 샬롯은 좀 어때?”
겨울방학 이전까지만 가르쳤으니 다소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넬슨이 가늠하고 있는 샬롯의 기량에서 크게 늘거나 줄지는 않았을 거다.
내 질문에 넬슨은 준비라도 하고 있었는지 재빠르게 답을 내놓는다.
“기량 자체는 충분히 상승했습니다. 아직 마리아나 베런 같은 애들한테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실 그건 그 아이들도 저희에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겠죠.”
생각해 보니 넬슨은 가장 처음, 반배치 대련을 봤던 유일한 단원이지 않은가.
문득 궁금해졌기에 나는 턱을 괴며 물었다.
“네가 봤을 때, 입학 당시의 마리아, 베런이랑 지금의 샬롯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아?”
“샬롯입니다.”
튀어 나온 즉답.
솔직히 이 부분은 나도 조금 애매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샬롯의 성장폭이 뛰어나지만 일단 시작점이 너무 낮았다.
유실된 일레인의 검술을 자기가 복원하겠다고 그야말로 땅이나 파고 있었으니까.
다른 애들은 이미 완성형의 검술을 다룰 때, 샬롯은 시작하는 중이었다.
넬슨이 같은 일레인 가문인 샬롯에게 다소 무른 경우가 있으며, 평가 자체가 후하긴 했으나.
지금의 넬슨은 꽤나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그 정도라고?”
아무래도 샬롯의 최우선 목표는 일레인 가문의 검술이 부활하는 게 목표였기에 최근 훈련은 내가 굳이 봐주지 않고 넬슨에게 맡겼었다.
내가 안 봐준 사이에 검술 실력이 그만큼 늘었나?
“아, 단장님은 아직 못 보셨군요.”
겨울방학이 되자마자 성검 때문에 바로 프나틱스 신전으로 출발했다 보니 따로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기말고사에서는 꽤나 잘했다고 듣긴 했어. 그때 루메나 성녀랑 학장이 밀당하던 때라서 좀 바빴지.”
“마침 일레인 가문에 오셨으니까 한번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흠.”
확실히 맞는 말이다.
게다가 나뿐만 아니라 샬롯의 아버지인 일레인 가문의 가주도 한번 보는 게 좋을 듯했다.
‘샬롯의 성장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일레인 가문의 검술에 대해서 그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니까.’
좋은 생각이다.
나는 알겠다고 답하며 넬슨을 방에 둔 채로 샬롯에게 향했다.
* * *
“뭐가 문제야. 주는 거 받아먹은 건데.”
“맞아. 애초에 주시는 걸 안 받으면 주는 사람들이 서운할 거 아니야.”
샬롯의 방.
뭐 재밌는 거 없냐며 놀러 온 마리아와 다이니랑 함께, 샬롯은 오늘 마을을 거닐며 받은 빵과 과자를 같이 먹는 중이었다.
오늘 이안의 눈치를 보며 먹을 걸 숨기던 샬롯의 행동에 대해서 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는 중이었다.
“애초에 이안이 먹을 걸로 뭐라고 한 적은 여름방학 때밖에 없잖아. 식단은 훈련 들어가려면 몸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거고.”
굳이 따지자면 여기서 가장 군것질을 많이 하는 건 다이니였기에 그녀의 말은 꽤나 위로가 되었다.
어디선가 과자를 꺼내서는 오독오독 씹어 먹는 게 바로 그녀였으니까.
“아니, 이상한 걸로 신경 쓰네? 그놈이 너 빵 먹는다고 짜증을 냈냐? 이상하게 과민반응을 하고 있네.”
답답하다면서 샬롯에게 반쯤 짜증 내는 마리아. 하지만 샬롯은 머리를 감싸 쥐고는 꿍얼거린다.
“마리아는 뭘 몰라.”
“기사 하려면 좀 먹어야지 뭘.”
“기사 이야기가 왜 나와…….”
마리아의 심드렁한 한마디에 투덜거리는 샬롯.
마리아는 절대 이해 못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그걸 본 다이니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번뜩한 감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샬롯과 자신들의 대화 핀트가 어긋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잠깐만, 자기관리 못하면 동아리에 못 있을 것 같아서 숨긴 거 아니었어?”
샬롯이 워낙 소심한 구석이 있다 보니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건 처음이었으나.
“음? 무슨 소리야?”
되레 샬롯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이니를 바라본다.
“이안이 나를 왜 쫓아내.”
그런 걱정을 했던 적은 있으나, 폴탄 해안에서 그의 위로를 받고 샬롯은 이제 그런 부분으로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왜 그렇게 숨기려 했던 거야?”
마리아의 질문에 동시에 꽂혀 들어가는 두 소녀의 시선.
이미 다이니는 엇비슷한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던 기억이 있어 대답을 알 것 같았다.
“조, 좋아하는 애한테 먹보처럼 보이기 싫잖아.”
얼굴을 발갛게 붉히며 쑥스러워하는 샬롯.
예상치 못한 대답에 빵을 먹던 마리아가 목에 걸렸는지 가슴을 쿵쿵 두드리며 음료수를 찾는다.
‘아직 포기 안 했었구나.’
워낙 격차가 컸기에 샬롯이 이안을 자연스럽게 포기한 줄 알았던 다이니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뭔가 말하려던 순간.
쿵쿵.
문밖에서 들리는 노크소리.
“샬롯, 자는 건 아니지?”
“이안?!”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한 샬롯이 방 정리를 하려 했으나, 다이니는 슬며시 문을 연다.
“왜 왔어?”
날카롭게 째려보는 그녀의 시선에 살짝 당황했으나 이안은 턱짓으로 샬롯을 가리킨다.
“할 얘기 있어서. 근데 여기서 뭐하냐.”
“놀고 있는데.”
“……마리아는 아닌 것 같은데?”
다급하게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안은 한숨을 내쉬곤 샬롯에게 말했다.
“샬롯, 내일 나랑 따로 얘기 좀 하자.”
“어? 어어.”
방청소를 하던 샬롯은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안의 뒷말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가주님께도 말씀 좀 드려. 너랑 얘기한 다음에 따로 뵙고 싶으니까.”
“아, 아빠도?!”
“응, 부탁할게.”
그렇게 가버린 이안.
샬롯의 방에는 미묘한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