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8
18화.
바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괜히 방진을 짜기 시작하면 무뢰배에 불과한 2학년들이라도 상대하기 귀찮아진다.
‘방패를 들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야.’
전통에 따라 검이 아니라 방패를 들고 있는 게 내게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방패로 할 수 있는 공격 수단은 매우 한정적이었으니까.
발바닥에 깔창처럼 깔리는 마나.
스프링처럼 튕기며 붕 뜬 몸으로 그대로 앞에 서 있는 2학년 생도의 방패를 밀어 찬다.
밀려나서 그대로 넘어지는 생도.
“멍청하게 밀리고 있냐!”
“2학년 망신 지 혼자 다 시키네!”
몸에 깃든 마나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상쾌한 미소가 지어졌다.
넬슨과 한나를 소환하면서 다룰 수 있는 마나량이 더 늘어난 덕분에 아직 여유가 있었다.
“됐어! 방진 짜서 그냥 전부 구석으로 밀어붙여!”
버릇처럼 방진을 짜서 밀고 들어오는 2학년들.
나는 몸을 뒤로 쑥 빼면서도 방패 위를 손으로 낚아채고 그대로 아래로 눌렀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넘어진 선배를 밟고 안으로 파고든다.
순식간에 방진의 안에 서 있게 되었다.
“안으로 들어왔다!”
“포위했어! 잡아!”
방진을 짜던 선배들은 안으로 들어온 나를 잡으려 바로 몸을 틀었으나.
쿵! 쿵! 쿵!
방패와 방패가 쓸리고, 부딪치는 소리가 옥상을 가득 메운다.
“방진이라는 건 함부로 움직일 수 없기에 견고한 거야.”
각자의 방패에 부딪치고 밀린 탓에 머뭇거리게 된 선배들에게 나는 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 뒤는 너무 쉬웠다.
내부에서부터 파훼당한 허접한 방진만큼 공략하기 쉬운 것도 없으니까.
“끄억!”
“자, 잠깐만!”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는 선배를 하나 쓰러트리면 옆에 있던 선배도 같이 밀려버린다.
도미노를 무너뜨리는 기분이 드는 전투였다.
그때.
입구 쪽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는 방패를 쥔 금발의 소년, 에드원 브릴리언.
전신에 흩뿌리고 있는 금색 마나와 쥐고 있는 고풍스러운 방패는 소년을 마치 전차처럼 보이게 만들어주었다.
콰앙!
“끄아악!”
에드원은 바로 앞에 있던 2학년 생도를 방패로 밀어서 앞세우며 내게 달려들었다.
“네가 이안 아이넬이지? 방에 갔더니 없더라!”
동급생을 방패로 쓰는 모습을 보니 미간이 찌푸려져서 바로 몸을 틀었다.
하지만 에드원은 예상했다는 듯 방패를 옆으로 휙 돌리며 발을 길게 뻗어 그 끝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끼, 끼긱!
무게중심 자체를 뒤트는 과격한 움직임에 에드원의 신발 끝에서 비명과 같은 신음과 더불어 하얀 연기와 타는 냄새가 밤공기에 섞여 들어왔다.
돌진하는 힘을 온전히 남긴 채로 방향을 틀어 달려드는 에드원.
‘막아야 한다.’
피할 수 없다고 느꼈기에 손에 남은 마나를 불어넣어 뻗는다.
타점에 도달하기 전에 막아서 충격을 최소화할 생각이었으나.
손바닥을 타고 흩날려 사라지는 마나에 눈이 크게 뜨였다.
“방패가 마나를……!”
“알아챘어? 눈치가 좋네?”
그대로 뒤로 밀려난다.
마나의 보조 없이는 정면승부로 막을 수 있는 법은 없었다.
“뒤, 뒤에 난간!”
“떨어지겠어!”
에드원은 진심으로 나를 떨어트릴 생각인지 계속 밀어냈고.
“네가 선택한 거다.”
나는 방패를 쥔 채로 그대로 몸을 확 누인다.
밑으로 쏠리는 내 무게와 더불어 에드원이 달리던 힘이 합쳐졌고.
그대로 바닥에 등을 댄 후, 양쪽 다리로 방패를 받아냈다.
“어?!”
어느새 나한테 올라타 있다는 걸 알아챈 에드원.
하지만 이미 늦었다.
대퇴근과 비복근에 힘이 팍 들어가며 스프링처럼 방패를 뒤로 튕겨냈고….
“우아아아아아아악!”
끝까지 방패를 놓지 않은 에드원은 뒤에 있던 난간에 머리를 박은 후, 그대로 옥상에서 떨어졌다.
우지끈!
쿵!
중간에 나무에 한 번 걸렸는지 굵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에, 에드원!”
“죽은 거 아냐?! 빨리 교수님들 모셔와!”
당황해서는 바로 계단을 내려가는 2학년 생도들.
1학년 생도들은 옥상 난간에서 에드원을 보거나, 나를 향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저걸로 안 죽어.’
금빛 마나가 흩날릴 정도의 신체 강화라면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 정도로 죽지 않는다.
몇 군데 부러지는 정도로 그쳤겠지.
만약 마나를 중간에 해제했다면?
‘그건 지 몫이지.’
나를 떨어트리려던 악동과 같은 표정을 나와 다른 생도들 모두가 보았다.
말이 나와도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쟤, 쟤 뭐야?”
“방금 2학년 선배들 혼자서 때려눕힌 거 맞지? 거기에 에드원 선배까지….”
“평민 아니었어? 평민이라고 하지 않았나?”
수군거리면서 나를 흘깃흘깃 바라보는 생도들이 있는가 하면.
쭈뼛거리면서 내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 하는 생도들도 있었다.
“놀라워! 방금 무게 중심을 뒤로 당기면서 오히려 상대의 무게를 이용해서……!”
안경을 쓴 남생도은 저번 대련처럼 또 뭔가를 해설하고 있었고.
뭐,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가고 있었으나 생각보다 길었던 오늘 밤이 이렇게 막을 내렸다.
* * *
“얼굴들이 참.”
1학년 생도 중에 얼굴에 상처가 없는 생도는 거의 없었다.
방에 숨어있던 생도들의 얼굴도 만신창이였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기숙사는 작년 3학년 기숙사였기에 열쇠를 졸업한 선배들한테 미리 받아뒀다고 한다.
쓸데없이 철두철미하다.
어쨌든 덕분에 말끔한 생도는 거의 없다.
당장에 어제 기대된다면서 방방 뛰던 마리아 레이로즈의 얼굴을 보라.
멍과 입술에 까진 상처뿐만 아니라 누가 할퀸 건지 얇게 쭉 늘어진 자국들.
“와.”
마리아 레이로즈는 이제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으면서 책상을 탕탕 쳐댔다.
“진짜 개꿀잼. 미쳤어. 오늘 또 하면 안 되나?”
“…….”
“너는 어땠냐? 듣기로는 에드원이랑 한판 붙었다는데 얼굴은 멀쩡하다?”
아저씨처럼 말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라. 누가 이 아이를 17살로 생각하겠는가.
참고로 에드원 브릴리언은 팔 한 짝과 양 다리가 부러져서 그대로 입원했다고 들었다.
어차피 마법으로 이미 고쳤을 거고 회복 마법 때문에 피로해진 신체를 쉬게 하고 있을 뿐이겠지만.
“그리고 남자 기숙사에는 어제 이상한 2인조도 나타났다던데? 듣기로는 1학년 중에 누가 외부인을 끌어들였나 봐? 선배들한테 그거 몇 대 맞는 걸로 쫄기는.”
넬슨과 한나에 대한 얘기였다.
“그런데 그놈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더라. 아카데미 보안이 엉망이야.”
큭큭거리며 웃어대는 마리아.
그녀를 보면서 샬롯에게 주려고 챙겨 왔던 벤드와 연고를 녀석에게 건넨다.
그래도 나름의 호의였으나.
녀석은 코웃음 치며 억세게 사양했다.
“상처는 훈장이지! 남의 명예를 멋대로 감추려 하지 마.”
레이로즈 가문에서는 도대체 무슨 교육을 했기에 애를 이렇게 만들었냐.
이건 기사 지망생이 아니라 전투광 아닌가?
“아, 어쩌지. 오늘 저녁에는 또 뭐 없나? 이번에는 3학년이 오면 좋겠다.”
초조한 듯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녀석.
강의 시간에도 이딴 식으로 시끄럽게 굴면 어쩌나 했으나….
“코오오오.”
젠트 교수가 분필을 들고 정확히 2분.
마리아는 책을 베개 삼아 코를 골며 그대로 꿈나라로 가버렸다.
* * *
“……후우.”
학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엄지와 중지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두통이 일면 버릇처럼 하는 행동이었으나 늘 그렇듯 효과는 미미했다.
차라리 아주 오래 전에 끊었던 연초라도 피우면 괜찮아질까.
몇 년 만에 손가락이 욕망에 휘둘려 꿈틀거리는 기분이었다.
아카데미는 아직 젊은 생도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었다.
소년소녀들이 기사의 꿈을 품으며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도록 지식을 얻고, 힘을 키우며, 신념을 세우게 해준다.
물론 이건 표면상의 이야기이고, 아카데미라는 거창한 간판을 내놓았을 뿐 결국 젊은이들을 기사로 만드는 장소.
한마디로 군인을 키우는 장소였기에 당연히 타국의 스파이들이 침입을 시도할 때도 종종 있었다.
그렇기에 늘 철저한 방비를 통해 제3자가 침입할 수 없게 하며, 지금까지 스파이의 침입을 철저하게 막아내 온 나이트 아카데미이건만….
“크흠.”
뚫렸다.
어젯밤 1학년 남자기숙사에 나타난 의문의 2인조.
사실 목격된 건 입구를 지키던 한 사람뿐이었으나, 옥상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는 걸 감안하면 아마 두 사람이다.
절대적이라 불리는 나이트 아카데미의 방벽을 아무렇지 않게 뚫고 들어와서는 그대로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더 큰 문제는….
도대체 어디가 뚫린 건지 모르겠다는 것.
헥토르 교수를 비롯한 교수진들이 새벽부터 멈추지 않고 수색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아카데미 보안에는 구멍이 없다는 약간은 무책임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학무보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후우.”
학장은 한숨을 내쉬며 아카데미 보안을 더욱 강화시킬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 * *
“훌쩍.”
마리아 레이로즈가 미친년이라는 건 만난 지 며칠 안 된 나조차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선배들이 기숙사에 쳐들어오는 도대체 누가 걸 반기겠는가.
당연하게도 다른 여생도들에게 어제의 신입생 뷔페는 달갑지 않은 이벤트였다.
2학년 생도와의 전투력 차이가 크기에 대부분의 여생도들이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건 당연했고….
“훌쩍.”
그건 아직도 눈가에 눈물 자국이 짙게 남아 있는 샬롯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저녁에 습격당했으니까 벌써 시간이 꽤 지났지만, 샬롯은 아직도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괜히 밖에서 맞고 집에 돌아온 여동생을 보는 기분이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많이 맞았어?”
“엄청.”
“너는 때렸어?”
“조금.”
팔짱을 끼며 잠시 바라보자, 샬롯은 천천히 시선을 내리깔며 속삭이듯 말을 바꾼다.
“사실 전혀.”
“그래, 괜찮으니까 조금 쉬어라.”
아무래도 오늘 검술 훈련은 쉬어야할 듯했다.
“아니, 할 거야.”
눈물진 얼굴로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미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단순히 두들겨 맞았기 때문만이 아니고 다른 의도가 있는 느낌.
“뭔 일 있냐?”
평소의 샬롯과는 달랐다. 원래도 노력을 게을리 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오늘은 유독 악에 받친 듯 보였다.
“……아니, 그런 거 없는데.”
거짓말하는 게 딱 티가 난다.
그 모습에서 넬슨이 떠올랐기에 나도 모르게 더 캐물으려 했으나….
“…….”
샬롯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검을 세우고 그대로 앞으로 나왔기에….
잠시 지켜보던 나도 검을 들었다.
“오늘은 좀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연습해 보자. 매일 맞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알겠는데, 나 맞은 거 그만 말하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