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크흠.”
“…….”
우리 동아리 남자들이 다소 과묵한 편이라는 건 알고 있다.
베런 같은 경우는 원래 말이 적고, 벨레스는 친한 사이한테만 말을 좀 하는 편이었다.
어쨌든.
신입생 뷔페는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로 갈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별로 동아리 인원들이 나눠졌고.
“…….”
“크흠.”
지금 둘 다 입을 다물고 조용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니들 싸웠냐?”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라는 건 알고 있다.
예전에 벨레스가 들어올 때도 베런은 불만을 가졌으니까.
그래도 나름대로 같이 훈련도 하고, 땀도 흘리면서 친해지지 않았나 했는데.
“안 싸웠다.”
“아니, 대련만 했어.”
“…….”
생각보다 심한데.
둘이 눈치 싸움을 할 정도로 성격이 민감하다거나 얄팍하지 않다.
정말로 서로를 싫어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둘이 개인적으로 감정이 상할 일은 없었을 거다.
애초에 타인에게 그런 여지를 주지 않는 애들이니까.
‘그렇다고 대련을 안 하는 건 아니란 말이지.’
서로 치고 받고 싸우다 보면 원래 알아서 풀리는 게 남자애들인데 얘네는 왜 이런 걸까.
게다가 베런은 유일하게 벨레스가 수인이라는 걸 아는 부원이었다.
예전 레지스탕스가 아카데미를 습격했을 당시 베런과 벨레스는 서로 싸웠으니까.
나름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서로를 불편해하고 있는 게 거슬린다.
“이제 등 맞대고 싸워야 하는데 이럴 거야? 너희 왜 그러는데.”
“후.”
베런이 한숨을 내쉬며 벨레스 쪽을 노려본다.
분명 나이가 더 많은 데다 실력적인 면에서도 베런보다 뛰어나지만.
왜인지 벨레스의 기가 죽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쪽에서 할 말이 없다면 나도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다.”
그리 말한 다음 베런은 본인을 따르는 생도들 쪽으로 가버렸다.
우리 부원들 중 가장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게 뜬금없게도 베런이었다.
쟤는 워낙 가문이 빵빵하고 애들을 잘 돌봐주니까.
인품에 반해서 찾아드는 애들도 꽤 많았다. 남녀 두루두루 친하다고 해야 하나.
뭐, 우리 부원들한테는 그게 별 효과가 없어서 문제지만.
“너 뭐 잘못한 거 아니냐?”
내 물음에 벨레스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 역시 고민하고 있었으나 막상 답이 나오진 않아 보였다.
“보통 이런 건 여자애들이 겪는 문제인데 왜 우리는 여자 쪽이 털털하고 남자들이 꿍하냐.”
“꾸, 꿍하진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뭘, 삐져 가지고 서로 눈치나 보고 있으면 딱 그거지.”
“아, 아니 나는 정말 모른다고.”
일단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나 역시 시선은 베런 쪽으로 가있었다.
이제 곧 있을 신입생 뷔페도 사실상 전장의 일종.
그런데 지금 베런은 나와 벨레스랑 함께하지 않고 자기 친구들 쪽이랑 함께하겠다고 선언한 셈이었다.
그것도 리더인 나에게 따로 불만이 있는 게 아니라 벨레스 하나 때문에.
‘등을 믿고 맡기지 못한다는 고지식한 성격 때문이겠지.’
대놓고 나한테 보여주는 것도 베런이라면 뭔가 의미를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본인이랑 벨레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뜻인가?’
아니다.
베런은 그런 남자가 아니다.
그런 말을 할 거라면 그는 물러서지 않고 벨레스와 내가 있는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을 거다.
저 남자와 함께할 수 없으니 누군가 하나를 선택하라고.
아니면 스스로 입을 꾹 다물고 그냥 자진해서 나가거나.
그런데 그렇지 않는다는 건.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고민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시간이 되어 우리는 2학년 기숙사 앞으로 집합했다.
이쪽은 2학년 수석인 내가, 여자 기숙사 쪽은 2학년 여생도 중 가장 성적이 높은 마리아가 지휘할 거다.
아마 마리아 성격상 지휘는 불가능하고 다이니가 떠맡겠지.
“크흠.”
그래도 1년 동안 굴렀다고 오와 열을 맞춰서 서 있는 2학년 동기들을 보고 있자니 나름 볼만했다.
입가에는 후배들 때려주겠다고 음흉한 미소들이 지어져 있는 게 아주 꼴사납게도 우스웠다.
“지들 울면서 얻어맞던 거 생각도 못하고 좋아라 웃고 있네.”
어처구니없음에 내가 한마디 하자 다들 고개를 돌리며 괜히 못 들은 척한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하지만 1년 만에 이렇게 위치가 바뀌었다고 좋아하는 것들도 우습다.
“미리 공지 다 했지만. 이번 년도 신입생 뷔페는 다르게 갈 거야. 애들을 너무 일방적으로 구타해도 안 되고 적당히 선을 지켜.”
크게 불평이 있지는 않았다.
2학년들도 나 때문에 신입생 뷔페를 어렵지 않게 넘긴 덕분에 호의적인 부분이 있었다.
“특히나 애들 물건 뺏거나, 이미 항복한 애들 때리면 안 돼. 이거 악습이 아니라 교수님들도 다 보시는 하나의 훈련이야.”
교수님들이 보신다는 말에 몇몇이 퍼뜩 주변을 둘러본다. 당연히 여기에는 없다, 1학년 기숙사에 있지.
“가서, 2학년이 호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자. 선봉은 베런이랑 벨레스가 맡는다.”
두 사람 다 내가 지명한 걸 당황스러워 했으나 다른 생도들은 오히려 환영했다.
둘 다 성적 우수자였으며 특히나 베런 같은 경우는 방금도 말했듯 지지자가 많으니까.
“얼른 나와.”
두 덩치가 앞으로 나선다.
벨레스는 어색하게 쥐고 있는 창으로 시선을 돌렸고, 베런은 오히려 대놓고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벨레스 쪽을 노려본다.
‘으음?’
이렇게 둘이 앞에 나와 있는 걸 보니 뭔가 느낌이 오기도 했다.
나름대로 한 단체를 이끄는 수장질을 꽤 오래 해온 경력이 있으니까 불화를 꺼트리는 법도 잘 안다.
베런과 벨레스 같은 경우는 일단 만나서 얘기를 좀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뭐, 그건 그거고.
마법을 통해 성검을 꺼내 든다.
검을 휘두를 줄밖에 모르는 멍청한 생도들은 나의 묘기에 신기해하며 탄성을 내질렀고.
검게 물든 성검에 마나를 흩뿌리며 나는 1학년 기숙사 쪽을 가리켰다.
“가자! 선배님들 행차하신다!”
우오오오오오오!
* * *
1학년 남자기숙사 앞.
늦은 밤이어도 오늘의 이벤트를 위해 기숙사에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으며 교수들도 주변에 배치되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당연하게도 기숙사 앞에 있는 목책들과 사이사이 껴 있는 1학년 생도들.
당연하게도 목책 앞에 있는 생도들은 전부 장봉을 들고 결사항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들이 무슨 역사 속 전장의 한 가운데 온 것 같은 기분이겠지.
“잘해봐.”
같이 전열에 서 있던 이안 아이넬은 뒤로 빠졌다.
가장 강한 생도이긴 했으나 자신이 끼면 취지에서 벗어난다는 이유에서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안이 끼는 순간 목책이든 1학년의 숫자가 얼마나 되든 그냥 밀고 들어가서 순식간에 신입생 뷔페가 끝날 테니까.
하지만 그가 남기고 간 말은 벨레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제 곧 싸우게 될 1학년들이 안중에도 없어질 정도.
그는 옆에 있는 베런의 눈치를 보면서 창을 꼬나 쥔다.
차라리 얼른 돌진하고 싶었다.
그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기에 벨레스는 이안의 출진 신호를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는데.
“도대체.”
그 모습이 더욱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베런의 표정이 과격하게 일그러지며 벨레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무섭지?”
“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애초에 베런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게 의외였다.
벨레스는 당황해서는 되물었고 베런은 검을 쥔 채로 다시 그에게 물었다.
“뭘 무서워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불편한 것뿐이야.”
무서워한다는 표현이 벨레스의 자존심을 툭 건드렸다.
꽤나 효과적이었기에 그는 천천히 베런을 바라본다.
“이제야 눈을 보는군.”
베런 역시 그에게 몸을 틀며 벨레스를 노려봤다.
뒤에 있는 2학년 생도들은 갑자기 선봉 둘이 신경전을 벌이니 당혹스러워 했으나 그럼에도 둘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벨레스 테오도른. 지금까지 우리의 전적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나?”
“어?”
알 리가 없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대련했으니까.
이게 동아리의 강점이라면 강점이었다. 어색한 사이도 자연스럽게 또한 자주 대련할 수 있게 된다.
특히나 벨레스 같은 경우는 동아리에서 강자에 속하는 마리아, 베런과 대련을 많이 겪었다.
“27전 0승 27패다.”
“…….”
단 한 번도 벨레스에게 이겨본 적이 없는 베런.
당연했다. 아무리 베런이 뛰어난 생도라고 할지라도, 명예로운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라고 할지라도.
벨레스는 산전수전을 겪어오면서 싸워 온 레지스탕스에 나이도 그보다 많다.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벨레스를 이긴 마리아라는 존재가 다소 비상식적인 거였고 또한 스승인 윤의 도움도 컸다.
사실상 이제 마리아와 베런 사이에는 메꿀 수 없는 간격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고.
“너는 강하다. 치욕스럽지만 이안을 넘기 전, 너를 넘어야만 그에게 도달할 수 있겠지.”
“…….”
이안은 지금까지 대련에서 패배한 적이 없다. 이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며.
그의 전력을 끌어내는 건 아직 멀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슬쩍 베런이 주변의 눈치를 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했는데 그는 조용하게 속삭였다.
“너는 수인이다.”
“……!”
뜬금없었다.
베런이 유일하게 자신이 수인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여기서 그걸 밝힐 줄은 몰랐고. 벨레스의 어깨가 움츠러들며 주변과 베런의 눈치를 본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든다.”
베런은 답지 않게 짜증을 담아 그에게 손가락질 한다.
“뭐?”
“왜 그렇게 눈치를 보면서 생활하지? 나는 은빛사자 연구회가 마음에 든다. 뭐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아나?”
알 리가 없다.
벨레스는 지금 베런이 화를 내고 있는 이유도 모르겠으니까.
“아무도 내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거다. 샬롯도, 다이니도, 마리아도, 실리아 선배도. 다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하게 지낸다. 그게 나는 마음에 든다.”
“아…….”
베런의 뒤로 수많은 생도들이 보였다.
그를 따르고 있는 생도들은 여전히 베런을 향해 신뢰를 보내고 있었으나.
지금 보니 친구라고 보기엔 다소 어색해 보였다.
“연구회가 아닌 다른 친구들이 싫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도, 평범한 생도로서 있을 자리가 필요하다.”
위대한 가문이든, 빼어난 초신성이든. 결국 베런은 아직 18살이었다.
누군가를 책임지기보다는 동갑내기들과 편하게 놀아야 할 나이.
“벨레스, 내 눈치를 보지 마라. 나는 너와 대등한 관계가 되고 싶다. 애초에 수인인 네가 내 가문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겠지.”
스릉.
베런이 몸을 돌려 앞을 바라본다. 벨레스는 그 옆모습을 보며 가슴의 뭉클한 뭔가를 느꼈다.
의외였다.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던 가문의 도련님이.
실은 그냥 평범한 관계를 원해왔다는 게.
이안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명문가의 도련님.
그런 부분들이 벨레스가 베런의 눈치를 보게 만들었으나.
베런은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였고.
“후우.”
벨레스는 이제야 베런이라는 소년에 대해서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이 소년은 절대로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속에서 그는 창을 들고 베런의 옆에 선다.
“뒤를 맡겨도 되겠나.”
슬쩍 물어오는 베런에게 벨레스는 별다른 답을 하진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고.
“가라아아아!”
어디서 가져왔는지 나이트 아카데미의 깃발을 펄럭이는 이안 아이넬의 명령과 동시에.
두 사람이 가장 먼저 1학년들의 요새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