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15장 천산전투(千山戰鬪)
“고려 세자의 도전장을 받아 나오긴 했지만….”
“그럭저럭 우리가 우위군.”
아우의 중얼거림에 야율설도는 저 멀리 배치되어 있는 고려군을 보며 담담히 대답했다.
1만 5천 명의 동요군과 그보다 적은 고려군.
요동으로 건너온 고려군의 규모가 1만이 넘는다는 보고와 달리 실제 규모는 1만도 채 되어 보이지 않았지만 두 형제는 딱히 이상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퇴로를 확보했다는 것인가.”
“나도 그리 생각하오.”
오골성->연산관->요동성으로 향하는 길은 짧은 대신 천산산맥을 가로질러 가야 했는데 천산산맥에는 길이 설치되어 있어 그 길만 확보한다면 수풀로 가득하고 척박한 산을 돌파하는 노력은 피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잃게 된다면 꼼짝없이 우회하여 가거나 산을 타서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가도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으니 퇴로를 확보하기 위한 군대를 분리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형님께선 이리 나와도 되는 것입니까?”
“이 전투에서 패한다면 내가 성에 있는다 한들 의미가 없지 않으냐. 그렇다면 성에 처박혀 내 자식뻘도 안 되는 고려 세자가 친정을 하고 있는데 왕이 성안에 처박혀 있어 두려움에 떤다는 말을 듣고 있을 바에 똑같이 친정으로 응대하여 군의 사기를 올리는 것이 열배 백배 낫지 않느냐?”
“…그렇긴 하지요.”
이 회전에서 패한다면 두 형제들에겐 어떠한 나은 미래도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신중했고, 고려군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고, 확인을 했다.
그 결과 두 형제는 고려군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딱 하나 거슬리는 것이 있다.”
“고려군이 천산(千山 : 요양 남쪽에 있는 산) 아래에 군을 배치한 것 말입니까?”
“…….”
무언으로 긍정하는 야율설도.
만약 고려군이 천산 중턱이나 정상에 배치했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등산한다고 기병들의 속도가 줄어드니 보병들로 기병을 맞서기엔 최고의 배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고려군은 중턱조차 아닌 완만한 길인 천산가도(千山街道)에 배치한 채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도발… 만은 아니겠지.”
“도발‘도’ 섞여 있다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렇겠지. 그게 아니면 일부러 그런 전령을 일부러 훤히 보이지 았았을 테니까.”
그의 말에 선가는 어젯밤 척후병이 사로잡은 고려 사자를 떠올리곤 쓴웃음을 지었다.
고려의 사자를 잡아 물으니 ‘몽골 조정을 향해 상황을 보고’하러 가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귀국에서 나를 붙잡든,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하든, 마음대로 해보시오. 이미 아조에선 바다를 통해서도 사자를 보냈고, 요동에 와서도 나 외에도 십수 명이나 이미 출발하였고, 이후로도 보낼 것이니 말이오. 덧붙여 그들 모두에게 만약 다른 이들이 도착 못 하였다면 십중팔구 귀국에서 잡았을 것이라고 전달해 놓았으니… 본인이 늦거나 죽는 것이야말로 귀국의 죄를 증명하는 길이 될 것이오이다!”
“…이. 이, 이놈들이.”
그 말을 들은 야율 형제들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져야 했다.
현 상황에서 동요국이 난처한 것은 사실이나 고려 입장에서도 몽골의 개입은 달갑지 않을 것이 뻔한데, 드러내 놓고 몽골에게 사자를 보내 개입을 요청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지금 내용을 들어보면 고려에선 작정하고 이번 문제를 동요국에 덮어씌우려는 듯했다.
이 사실이 옷치긴 왕가에 전해진다면 그 영악한 늙은이가 어찌할지 상상조차 들지 않아 더욱 오한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자가 눈앞에 있는 한 명뿐이라면 살인멸구로 끝낼 수 있었지만, 사자의 말대로 여럿이고 이미 바닷길로도 보냈다고 막기는 버거웠다.
이렇다 보니 결국 야율 형제는 몽골이 개입하기 전 고려군을 격퇴하는 것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거슬린다 하여도 쳐야지.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그 전령이 몽고에 전달 되는 순간 순식간에 개입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몽골이나 노왕이 개입하기 전 저 고려군을 처리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지 않으냐?”
“…알겠습니다. 뭐 다소 적에게 거슬리는 점이 있긴 하나 못 이길 것은 없습니다.”
결정을 내린 야율설도는 병사들을 보며 외쳤다.
“고개를 들어라! 무엇을 겁을 내는 것이냐. 고려군이 무서우냐? 지금 고려군은 우리의 절반도 안 된다. 기병들도 없는 것이나 매한가지라 한다. 고려의 세자가 무서우더냐? 저기에 처박힌 어린 애송이가 말이냐? 적의 허상에 붙잡히지 마라. 지금 저들이 겁을 상실하여 요동으로 왔으나 돌아갈 때는 결코 성히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잊지 마라. 그대들은 그 옛날 세상을 떨게 한 대요의 후손들이다! 전투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저들이며, 우위인 것은 우리로다!”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연설은 계속되었다.
그 연설이 정말로 병사들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들에게 향하는 것인지, 혹은 둘 다 인지 아무도 몰랐다. 본인도 모른다.
* * *
“거란 기병을 상대로 정면으로 싸울 이유는 없다.”
“적이 오지 않는다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닙니다.”
“그리고 동요국의 편도 아니지. 적은 반드시 온다.”
“그렇다면 산 위나 중턱에 진을 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렇다면 적이 오지 않겠지. 저들은 도박을 하러 온 것이지. 자살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니 말이다.”
“…….”
9천여 명의 고려군은 동요군이 야전을 벌이려고 성 밖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천산가도 중 숲이 우거진 곳으로 이동했다.
완만하다곤 해도 능선(稜線)을 점하고 방어가 용이하도록 후방에는 숲이 있는 곳을 포진했으며 상대적으로 약한 측면에는 검차와 수레로 방벽을 만들었다.
그러곤 왕식은 2천의 기병들 중 절반을 말에서 내리게 하여(下馬) 3군으로 나누어 중앙에 포진시키고 각궁과 편전(애깃살) 훈련을 시킨 내솔부 병사들과 서경군으로 이루어진 궁병대들을 양 날개에 풀숲에 매복 배치하며 학익진을 구성했다.
양익 편전 궁병대의 앞에는 혹시 모를 적들의 진군을 막기 위해 우거진 풀에 가려 보이지 않는 작은 말뚝 장애물들을 배치하고 장애물 옆에는 중보병대들도 풀숲에 누워 매복시켜 놓았다.
그러는 한편 500기는 김방경에게 주어 선봉에 놔두었고, 다른 500기는 이자성의 휘하로 두고 후방의 숲속에 매복한 채 동요군을 맞이하였다.
* * *
“퇴각! 퇴각하라!”
거란 기병의 돌격이 시작되자 김방경이 이끄는 기병 500기가 요격하여 맞서 싸우다가 이내 이기기 힘들어지자 고려 본군이 있는 곳으로 퇴각을 시작했고, 거란 기병들은 그런 김방경의 군대를 쫓아 추격을 시작했다.
“쫓아라. 이대로 적의 전열을 무너트려라!”
무섭게 달려드는 거란 기병들이었지만 길 주변은 지형이 험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닦여 있지 않아 풀숲이 우거져 기병들의 속도는 자연히 죽었고, 그나마 속도를 원 속도를 가질 수 있는 곳은 싹 닦인 길 정도뿐이었다.
이렇다 보니 기병들이 질주하는 곳은 당연히 도로에만 집중되었다.
“돌격! 돌ㄱ, 커억!”
“사격! 사격하라!”
“매복! 고려군의 매복이다!”
모난 돌이 정(釘) 맞는 것처럼 우거진 풀 아래에 숨어 있던 양익의 고려의 궁병대들은 거란 기병들이 깊숙이 들어오자 일제히 일어나 기사들의 정면과 측면을 노리고 사격을 퍼부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고려군의 사격에 많은 기병들의 말들이나 기사들이 화살에 맞고 비명횡사를 하거나 낙마를 하며 붕괴하였고, 거란 기병들이 붕괴되고 속도도 줄어들자 매복하고 있던 고려 중보병들도 일어나 그들을 급습했다.
“낙마한 자들을 우선 적으로 노려라!”
“항복한 자를 제외하면 모조리 죽여라!”
뒤따라 오다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선봉군이 무너지는 것을 본 야율선가는 인상을 찡그러곤 궁보병들을 투입시켰다.
“기병들을 움직이려면 저 궁병들을 치워야 한다. 움직여라!”
선봉 기병들이 붕괴되었지만 수는 여전히 동요군이 더 많았다.
하지만 동요군의 궁병들의 사거리는 고려 애깃살의 사거리보다 짧았고 결국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에 고려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돌격! 적들에겐 기병은 없다!”
거짓 퇴각으로 유인하였다가 거란 선봉대를 순식간에 붕괴된 것을 목격한 김방경과 기병들은 말에서 하마한 뒤 마중 나온 중군 보병들에게 말을 맡기고는 다시 아래로 내려가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크윽!”
“아악!”
“돌격! 돌격하라!”
“아아아악!!”
편전 궁병들을 잡으려고 진군하던 거란 보병들의 선두가 별안간 비명을 지르며 전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고려군이 풀숲에 박아놓은 말뚝을 밟아 버린 것이다.
“조심해라! 바닥에 뭔가 있다.”
“고려 놈들이 송곳을 박아놓았다!”
“젠장.”
“크억!”
눈앞에 우거진 풀 속에 말뚝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거란 보병들은 자연히 진군이 굼떠졌고 고려 보병들은 그 틈을 노려 거란군의 측면을 쳤다.
동시에 말뚝 너머에 있는 고려 궁병들도 거란군을 향해 화살을 쏘아대며 더욱 거란의 혼란을 부추겼다.
“장군!”
“진정해라. 우선 적의 보병들을 쓰러뜨리고 그 시체를 저 풀숲 위에 깔아라. 시체를 밟고 지나갈 것이다!”
동요군들은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치열하게 싸웠다.
측면과 원거리의 화살 세례에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어떻게든 와해를 막으며 사거리까지 접근하여 고려군의 시체는 하나 둘씩 만들어갔다.
그리고 시체들을 말뚝이 박힌 풀숲에 위로 던져 버렸다.
“돌격! 돌격하라!”
결국 치열한 전투 끝에 마침내 야율 형제들이 있는 본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려군 양익 궁병대 앞에 깔린 말뚝은 고려군과 동요군의 시체에 그럭저럭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보병들도 큰 피해를 입었고, 말뚝도 사실상 뒤덮이자 동요국의 본군은 큰 어려움 없이 말뚝밭을 통과할수 있었다.
왕식이 있는 본군이 움직인 것도 이때였다.
편전 궁병들은 신속하게 물러났고 양군은 충돌하였다.
고려군이 길목을 질주한 거란 기병들에게 검차와 장창들로 막자, 거란 기병들은 길 양측 풀숲으로 움직였고 난전은 시작되었다.
풀숲이라 속도가 줄어든 기병과 사기를 점한 보병들의 난전은 무척이나 질척하면서도 치열하였는데, 양 측 최고 지휘관들도 두 발 벗고 직접 무기를 휘둘렀다는 점이 양군이 얼마나 이 전투에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쓰러뜨려라! 반드시 쓰러뜨려야 한다!”
“와아아!!”
김방경은 말에서 내려 싸우던 기병들의 일부를 다시 말에 태우게 하여 애깃살을 사용하는 궁병들도 태운 뒤 적들의 측면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쏘게 하였다.
비록 우거진 풀숲 속에 말 위라 명중률은 높지 않았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처럼 약간이라도 동요군의 시선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개전 이전에 숲에 매복하고 있던 이자성의 500명의 기병대가 마침내 움직이면서 숲 뒤로 빠져 나간 것도 양군이 격렬히 싸우고 있는 이때였다.
* * *
이자성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여진, 북방 도합 500명의 기병이 그의 뒤에서 언제든지 명령만 내려주기만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이자성은 결국 검을 뽑아 들었다.
“전군 돌격하라아아아!!!”
“돌겨어어어억!!!”
이자성은 명령을 내리며 발로 말의 옆구리를 세게 걷어찼고, 잘 훈련된 군마는 주인의 뜻을 알아채고 번개처럼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질주하는 이자성을 따라 뒤에 있던 기병들도 함성을 내지르며 힘껏 질주를 시작했다.
그는 난전이 시작되자 소리 없이 숲 뒤로 빠져나가 동요군의 후방을 가서 친 것이다.
동요군들은 갑자기 나타난 고려 기병들의 공격에 혼란에 빠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위되었다는 두려움에 동요군의 후미부터 와해되어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그 파급이 야율 형제들이 있는 선봉 곳까지 퍼지자 야율선가가 뒤늦게 직접 후미로 가서 병사들을 진정시키려 해보았지만, 그도 이미 기세를 탄 고려군의 기병과 혼란에 빠져 와해가 된 병사들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야율선가는 격전 중 말에서 떨어지면서 의식을 잃어야 했다.
야율선가 마저 쓰러지자 동요군의 후미는 고려 기병들에 의해 도륙되거나 그 살육에서 피해 도주하는 등 완전히 와해 되었는데 그 파급은 얼마 안 가 선봉군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저자가 동요의 왕이다! 잡아라!”
거란군이 밀리는 상황에서도 야율설도는 직접 칼을 휘두르며 끝까지 저항하였으나 결국 왕식이 쏜 화살에 말이 맞아 낙마하였고 그 틈을 타 다가온 고려군에 의해 포로로 잡히게 되면서 전투는 끝이 났다.
전투가 끝난 후 왕식은 승전의 축수 속에서, 사상자는 430여 명이고 동요군은 죽거나 부상을 입은 자가 3천여 명에 육박하며 포로로 잡힌 수는 그 이상이라는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전투는 치열했지만 양자의 피해는 극명하였고, 동요군은 왕과 왕제 모두 잡혔으니 그야말로 대승 중 대승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대승 속에서 왕식이 가장 먼저 입에 연 것은 진격도 퇴각도 아니었다.
“동요와의 전투가 끝났으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 서둘러 북조 노왕에게 전령을 보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