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63
363화
3부 외전 후일담(5)
“지난 전란(동경의 난)에 전하께서 내게 말씀하시길, ‘사람들은 구습(舊習 예로부터 내려오는 풍속과 습관)을 그대로 따르는 데에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을 편안히 여겨 부득이 크게 고쳐야 할 부분이 있어도 번번이 구습에 꺾여 버리곤 하오. 하여 무슨 일을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이 병통을 극복하는 것부터 모색해야지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오.’라고 하였네. 금주가 동경으로 승격된 후, 동경이 경주로 격하된 이후 많은 이들이 주와 경이던 시절 그대로 하고자 하여 문제를 일으키니 과연 전하의 말씀이 맞는 말이라 할 수 있네.”
“과연, 결단을 내리면 신속히 처리하라는 뜻이 아닙니까?”
동경 유수 김총은 유수가 되기 전 동경의 난 진압 당시 태자와 함께하였을 때 들은 말을 알려주자, 그의 앞에 앉은 김총에 비하면 젊은 사내는 잠자코 듣고는 생각한 바를 물었다.
이에 김총은 껄껄 웃더니 이어 대답했다.
“그런 뜻도 있겠으나 저 말씀 직후, ‘그러나 그저 서둘러서만 한다면, 민간의 집들과 백성들도 큰 고통을 겪으니 역시 시작하기 전부터 계획을 갖추고 나서 행동에 나서는 것이 맞지, 그저 신속히 처리하기만 하는 것은 보통 안 하느니만 못하니, 그 경우 되도록 안 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라고 하였네.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그때의 나는 전하의 그 말씀이 와닿지 않았네. 좀 더 고백하면 아예 입에 발린 소리라 생각하며 답답하게 여겼다네.”
“예?”
일국의 태자의 말을 그렇게 들었다는 무엄하기도 한 말에 사내가 놀라자, 김총도 스스로의 말과 당시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설명하였다.
“아니, 생각해 보게. 결심하여 행동하기에 앞서 그로 인한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계획하라 하셨는데, 정작 당시 태자 전하께서 금주에 오시자마자 반란을 알리신 뒤 경상도와 전라도의 병력을 소집하라는 명을 내리셨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급기야 군을 직접 지휘하여 반역도들의 대군이 있는 동경으로 간다고 하고 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야. 하여 당시 내가 봤을 때 전하의 행동은 무모하면서도 성급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것이야. 전하께서 그렇게 무략과 군재까지 갖추었을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김총의 변명 같은 설명에 마주 앉은 사내의 입에서 탄성을 내며 이해의 뜻을 밝혔다.
그 또한, 동경의 난에서 왕검이 전장을 누빈 모습을 본 적 있었다. 궁술과 담력, 그리고 전술 등은 어느 하나 범인의 것이 아니었다.
만약 자신도 직접 보지 않은 채, 유수와 같은 처지에 처했다면 태자의 행동을 성급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뭐, 그러나 이후 전하의 모습을 보곤 내가 단단히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지. 전하의 보령(寶齡)을 생각하시면, 전하께서는 그 이른 나이에 이미 결단력만이 아닌, 신중함과 백성들을 애민하는 심성을 모두 품고 계신다 할 수 있으니 진정 성군이 될 자질을 갖추신 게야.”
동경 유수 김총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웃더니 자신의 앞에 앉은 젊은 지기(知己)에게 술을 따라주며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네 아직도 장가를 들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김총과 마주한 이는 지난 동경의 난에서 김총과 함께 반역군을 진압하는 데 참가한 대구현의 배영이었다.
처음 둘의 관계는 김총의 일방적인 의심과 적대로 불편하였으나, 전장을 함께하면서 배영이 김총을 구한 뒤 둘은 호형호제(呼兄呼弟), 지기지우(知己之友)와 같은 관계가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와서는 일로 동경에서 벗어나기 힘든 김총이 만나고 싶으니 동경으로 와달라는 청을 보내면 배영이 대구현에서 찾아와 이렇게 담화를 나누는 것도 일상이었다.
“허허허. 그럼 그대는 눈여겨본 이는 있는가?”
“…….”
배영이 말없이 얼굴을 붉히자 김총은 그가 마음에 둔 처자가 있는 것을 간파하고는 다시 술을 따라주며 미소를 지은 채 추궁하기 시작했다.
“이보게. 누군가? 혹시라도 내가 아는 집안이라면 자네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은가?”
“괜찮습니다. 김 형.”
“혹시 대구현의 사람인가? 아니면…….”
장난기가 동해진 김총은 더욱 어린 친구의 마음을 뺏은 처자가 누군지를 추궁하려 들었는데, 그때 방해가 들어왔다.
“유수 나리. 지기와 담화 중 송구하오나 지금 급히 나가 뵈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냐?”
“지금 대마도에서 대마도주 대마도주(對馬島主:아비루 치카모토)의 사람이 찾아와 유수 나리를 뵙고자 청하옵니다.”
“대마도주의…?”
갑오년 이례 대마도는 일본의 땅이면서도 일본과는 다소 다르게 취급받는 외번으로 취급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동경 유수인 김총도 잘 알고 있었다.
* * *
서경 팔관회 준비와 요동의 준비가 한창인 지금도 서연(書筵:황태자, 왕세자를 위한 강연. 고려 시기엔 말기까지 왕의 강연도 서연이라고 불러 혼동하기가 쉽다.)에 빠질 수는 없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빠지려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빠질 수는 있다. 하지만 되도록 참가해야 하는 것이 현재 나의 딜레마이자 상황이다.
문무양도(文武兩道)를 주창한 내가 문의 상징인 유학을 배우는 서연을 빠진다면 무슨 본이 될 것이고, 그런 나에게서 나온 은 또 누가 눈여겨보겠는가?
하여, 지금 내게 있어서 서연에서 공부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했던 문무양도의 기치를 지키고, 나아가 새로운 유학을 떨치기 위한 준비 작업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 지금 서연은 이전의 서연들과 원 역사 조선의 세자가 배웠던 서연처럼 단순히 공부만 하는 장소가 아니라 하고자 한다면 나도 질문이란 이름과 생각을 밝힌다는 명목으로 에 대해 논하고 제작에 참가도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내가 벌인 일들 문제를 제하고도 서연에 참석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닌 것이….
“그 옛날 당의 태종은 총신인 위징(魏徵)이 죽자,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옛 역사를 거울로 만들면 흥망성쇠를 알 수가 있고, 현인을 거울로 만들면 득실을 잘 알 수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태사께서 보기에 오늘날 아조에는 거울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이렇게 물으니 주잠이 대답했다.
“소인이 어찌 함부로 나랏(나라의) 일에 말하겠사오나 소인이 지금 앉은 자리가 태자태사(太子太師)의 자리에 앉았으니, 서연 중 수학(修學)으로 나온 문답에 어찌 차마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맡은 직무에 대해 답을 하니, 전하께서는 헤아려 들어주소서.”
“알겠습니다.”
어차피 말할 것을 참 뜸을 들이시네.
“소인이 삼가 생각건대 오늘날 아조에는 거울이 하나뿐이며, 2개는 불충분하다 생각하옵니다.”
내가 고려에 온 뒤 나는 원 역사에 비해 많이 개선했다고 생각하고, 세간의 평도 오늘날 고려를 보고 태평성대를 누비고 있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하나도 아니라 2개나 없다는 말에 주잠의 제자들마저 당황하는 반응을 보였다.
“태사께서는 어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전하께서는 참으로 총명하고 영민한 자질로 밤낮으로 근심하고 노력하면서 부지런히 나라 태평하게 만들 방도를 도모하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위로는 북적이 국경을 어지럽히고, 아래로는 만이(蠻夷)들이 소란을 피워 군대가 움직이지 않는 나날이 없습니다.”
“…….”
“그리하여 장정들은 집으로 가서 밭을 갈지 못하여 나라의 밭들은 날로 황폐해지는 것이 많아지고, 재용(財用)도 날로 고갈되었으니, 위태롭고 어지러운 나라에 대한 근심은 깊어지는데 나라를 잘 다스린 공효는 드러날 기약이 없습니다.
하여 나라가 망하지는 않았으나 아직 흥하였다고도 온전히 말할 수 없는데 흥하고 있다고 하니 나라의 흥망성쇠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으니 거울(역사) 하나가 모자란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태에 폐해가 일어날 때까지 관망하였으니 나라에 당의 문정(文貞 위징) 같은 현인이 없음을 말하니 이 또한 거울(현인) 하나가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잠의 말이 끝나자 학사들로부터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학사들은 스승의 말에 동의하는 듯했고, 실제 지금 고려의 평가는 국내외(國內外) 모두 과장도 제법 있다고 생각하고, 군대도 너무 숱하게 움직이고 있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후자의 문제 경우 오키나와 경략 이후 일어난 옷치긴 전쟁 대비로 들어간 군비는 본격적인 전쟁은 쿠릴타이로 취소되었다고 해도 이미 만만찮은 경비가 들어갔다.
비유하자면 기존 계획에서 새끼손가락 하나가 잘린 정도로 전체로 본다면 큰 타격은 아니지만, 이후 일을 할 때 이 피해로 생긴 진통과 상실에 대한 불편함은 느낄 수준이다.
그러니 나도 주잠의 말이 딱히 다 틀렸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견은 있다.
“태사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저 2개만 없다 할 수 있으나, 남은 하나마저 없다 할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그리 말씀하시옵니까?”
내가 그렇게 이견을 달 것이라고는 생각 못 한 것인지 학사들은 의문에 찬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태사께서는 아조의 상태를 태평성대라고 단정하는 것에 역사를 보지 않으니 거울이 하나 없고, 군을 일으켜 생긴 폐해로 국고가 줄어들고, 추수에 가지 못한 장정들도 있는데 그것을 미리 파악하거나 막지 못하고 있으니 이에 또 거울 하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찌 아조에 역사를 거울로 삼지 않고, 인재도 없겠느냐마는 이는 모두 태자인 내가 부덕한 소치입니다. 그러나 이도 결국 ‘역사를 돌이켜 보는 것’과 ‘현인’이라는 거울을 다루지 못하니 없느니만 한 것과 같으니 태사께서 하신 거울이 두 개가 없다고 한 것이 분명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가장 기본이 되는 용모를 단정하는 거울을 만들 구리조차 아조에서는 잘 나오지 않으니 어찌 거울 하나라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내가 이리 말하니 주여경이 대답하길.
“전하. 당의 태종이 구리 거울을 논한 것은 문자 그대로 용모를 단정할 수 있는 거울에 비유하여 역사와 인재가 나라의 국정에 있어 중요함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는 뜻이옵니다.”
이렇게 지적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대답했다.
“시독학사(侍讀學士)의 말대로 당 태종이 말한 구리의 거울은 그러한 뜻일 것이다. 그러나 금과 은도 제대로 닦는다면 구리 거울처럼 용모를 확인할 수 있는데, 어찌 당 태종은 물론 서토에서는 금과 은이 아니라 구리를 거울을 만들 때 기본으로 하는 것인가?”
“그것은 금과 은이 구리보다 비싸고 희귀하니 그것들로 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여… 으음.”
말하던 도중 주여경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이유를 깨닫고는 말을 흐리자, 나는 재빨리 받아 대답했다.
“그렇다. 시독학사의 말대로 금과 은은 희귀한데 금과 은으로 거울을 만든다고 한다면 어느 누가 그것을 사치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런 값비싼 금과 은에 비해 구리는 서토(西土)에서 많이 나서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니 자연히 ‘흔하고 값싼 구리로 거울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여, 당의 태종의 말한 것에 그것은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아조에선 서토(西土)와 달리 구리가 많이 나오질 않으니 ‘그 당연함조차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구리란 무엇이더냐? 구리는 동전(銅錢)을 만들 수도 있고 유기(鍮器)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데, 유기는 백성들이 생활에 사용하여 민생에 도움이 되고, 동전은 나라의 상업을 도우니 그것들이 나라의 번성함을 비춰주는 것이기도 하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금과 은은 아조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인가 한다면 그조차 아니다.
그나마 금(金)은 그 가치가 커 많이 필요하지 않고, 은(銀)은 아조가 많은 나라와 무역을 하며 은을 받고 팔아 비축된 것이 있다. 결국 청구(靑丘 중국에서 신라, 고려 등 한반도 나라를 부르던 이칭)에서 금과 은, 구리들은 생산은 되나 생산이 되는 것만으로 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지속적으로 나라에 은이 들어가게 하지 않는다면 결국 차질이 생길 것이 당연지사이니 이 또한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라 할 수 있다. 하여 과인은 남은 거울마저 없다고 한 것이다.”
“…….”
학사들이 침묵을 하고 있을 때, 주잠이 대답했다.
“전하의 말씀대로 아조는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하고 미진한 부분이 있사옵니다.”
그렇게 말해주는 주잠에게 나는 물었다.
“하면 태사께서는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작가의 말
*주인공이 김총에게 했다는 말은 실제 조선 시대 임금 정조가 했던 말입니다. 주인공은 정조의 어록을 인용하여 김총에게 말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