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47
교랑의경 147화
관리인은 스스로도 놀란 듯이 크게 기뻐하며 두칠 앞에 꿇어앉았다. 두칠은 그저 홧김에 내뱉은 말이라, 이 얼간이가 정말로 좋은 묘책을 생각해 낼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게 뭔데?”
두칠이 못 미더운 표정으로 말했다.
“주인어른, 주인어른.”
흥분한 얼굴의 관리인이 두칠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3월 20일에 경성 보수사에서 대선사 법회를 열 겁니다.”
그야 온 경성 사람이 다 아는 일이지. 두칠은 언짢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거기 가서 시주나 할 기분 아니다.”
“가셔야 합니다, 꼭 가셔야 해요. 그것도 아주 요란하게 가셔야 합니다. 양조부께도 부탁드려 함께 가셔야 해요!”
두칠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관리인을 쳐다봤다.
“주인어른.”
관리인이 눈을 빛내며 두칠에게 바짝 다가갔다.
“음식 공양이요!”
두칠이 퍼뜩 깨닫고 손을 들어 탁자를 내리쳤다.
같은 시각, 태평거에서도 탁자를 치는 소리가 울렸다. 오 관리인이 서무수를 진지하게 쳐다봤다.
“주인어른, 이건 좋은 기회입니다!”
서무수도 구미가 당기는 듯, 관리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소. 관리인이 하라는 대로 하리다. 말해 보시오. 어떻게 하면 되겠소?”
“사실 말하자면, 원래 보수사가 차정사보다 유명하진 않았습니다. 전 왕조 때까지만 해도 눈에 띄지 않는 저잣거리의 낡은 전각에 불과했지요. 오래된 측백나무 이십여 그루와 눈먼 노승 한 분만이 향불을 지키고 있었고요.”
늙은 관리인이 회상하는 얼굴로 말했다.
방 안에 있는 서무수와 범강림은 경성 사람이 아니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방금 불려 들어온 이대작도 경성 근방에서 자랐지만, 부엌에 틀어박혀 일만 하다 보니 경성의 풍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몸종은 서무수 무리보다도 경성에 늦게 올라왔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모두가 관리인의 말에 집중했다.
“후에는 정혜대사(淨慧大師)께서 경성에 머무르며 보수사에 계셨어요. 그분은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아침저녁 할 것 없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불법을 설파하셨죠. 그렇게 20년이 지나니 잡초만 무성하고 낡아빠진 전각이었던 보수사가 지금의 불상 가득한 전당이 되었지요.”
앉아 있는 사람들은 불교 신자가 아니었지만, 20년 동안 들인 노고에 감복하여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규율이나 불교도리에 관해서는 저 역시 무지합니다. 정혜대사께서는 3월 20일에 입적하셨죠. 그 후로 보수사에는 매년 3월 20일이면 대선사 법회를 여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오늘날의 명해선사는 차를 잘 우려서 법회의 이름을 더욱 널리 알리셨고요. 명해선사의 선차 한 잔은 천금보다도 얻기 힘들 정도죠.”
“차? 우리가 먹는 차 말이오?”
범강림이 참지 못하고 불쑥 물었다.
“요리는요? 요리라고 다 똑같은 맛이 나지는 않잖습니까.”
늙은 관리인이 웃으면서 답하자 범강림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형님, 뭘 하려는 겁니까? 우리도 가서 차 한 잔을 받아오면 돼요? 좀 있으면 식당에 손님들 오실 텐데, 별일 없으면 전 이만…….”
이대작이 중간에서 불쑥 끼어들자 늙은 관리인이 이대작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반근 낭자가 있는데, 자네가 뭘 바쁘다고 난리야. 내가 지금 심심해서 불법 설파하는 줄 알아?”
이대작이 입을 삐쭉거렸다.
오 관리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명해선사의 차에 대해 더 말하겠습니다. 그분의 차 한 잔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수조 장사를 하는 상인 하나는 무려 만 관을 들여 보수사에 음식 공양을 하고 차 한 잔을 얻었다지요.”
“만 관이요?”
이번엔 몸종도 옆에서 같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차 한 잔을 위해서요? 그만한 값어치가 있어요?”
관리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을 게슴츠레 뜨고 웃었다.
“정말 차 한 잔이 그 정도 값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만 관으로 온 경성에 명성을 날렸으니 그만한 값어치를 했다고 봐야지요.”
서무수가 관리인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관리인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관리인의 뜻은 우리도 가서 음식 공양을 해야 한다는 거요?”
관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도 음식 공양을 해야 합니다.”
“근데 우리가 만 관을 무슨 수로 구해요?”
이대작이 불쑥 끼어들었다.
“이 세상 모든 일을 무조건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오 관리인은 서무수를 보며 미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주인장께서 아씨와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십시오. 보수사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요.”
이 세상에서 돈보다 더욱 강력한 게 바로 연줄 아니던가. 그리 좋은 글씨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어딘가 연줄이 있을 테지.
서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내가 가서 누이와 한번 얘기해 보겠소.”
“근데 말이오, 우리 태평거도 저 정도면 이름을 꽤 날리지 않았나?”
범강림이 손으로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밖에는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이 소란을 떨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일세, 여기. 저 편액 좀 보게나.”
범강림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저 글씨가 곧 온 경성에 이름을 알리지 않겠소.”
그런데 굳이 그런 수고까지 들일 필요가 있나?
관리인도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고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주인어른, 글씨는 참으로 좋은 글씨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식당이니 음식으로 알려지는 게 바로 정도입니다.”
* * *
가랑비가 마당을 적셨다. 빗방울은 정원 한쪽에 만들어진 석가산을 따라 흘러 물줄기가 되었다. 물줄기는 한쪽이 비스듬하게 잘려나간 대나무 통으로 흘러내렸다. 통 안에 빗물이 가득 차면 대나무 통은 무게에 못 이겨 빗물을 한꺼번에 쏟아냈고, 그때마다 대나무 통과 그 아래 돌덩이가 부딪혀 맑은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가랑비를 뚫고 건물 안으로 전해졌다. 회랑 아래에 있던 반근은 깜짝 놀라 소리가 난 쪽을 확인하고는 입을 가리고 혼자 웃었다.
정교랑이 들어오고 나서부터야 이 저택이 정말 집 같아졌다. 다들 집 안을 더욱 깨끗이 하고 정성 들여 장식했다.
마당에 있는 작은 정원도 시녀가 손수 만들었다. 경성에서는 샘물을 길어 올 수 없으니, 어디선가 대나무 통 하나를 얻어와 정원에 있던 물로 조경을 꾸민 것이다.
“우리 노태야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 선음(禪音)을 들을 수 있다고 하셨지.”
시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조용한 마당에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사찰에서 들리는 목탁 소리와 비슷하여 과연 선음 같았다.
반근은 다시 한번 생긋 웃고 표정을 수습한 다음 문 앞으로 걸어갔다. 안에는 정교랑과 서무수가 마주 앉아 있었다.
“도련님, 차 드세요.”
반근이 무릎을 꿇고 서무수에게 차를 건넸다. 정교랑이 서무수 앞에 놓인 차를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차, 나쁘지 않지요.”
반근이 정교랑에게 건네려던 물잔을 손에 들고 멈칫했다. 아씨께서도 차를 드시려나?
“그렇지, 나도 오 관리인의 생각이 좋다고 생각해. 선다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지.”
서무수가 대답했다.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뻗자, 반근은 얼른 정교랑에게 물을 건넸다. 반근은 정교랑이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고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
“반근.”
이제 막 문을 나서던 반근은 정교랑의 부름을 듣고 반사적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정교랑 뒤에 앉아 있던 시녀가 대답한 뒤였다.
“진십팔랑이 말했던 법회가 이 법회니?”
반근은 고개를 푹 숙이고 서둘러 문을 나왔다. 비가 그쳐가자, 마당을 가득 채운 봄빛이 무르익은 상쾌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반근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입꼬리를 올린 채 쟁반을 팔 사이에 끼고 회랑을 따라 걸어갔다.
“맞아요, 아씨. 진 아씨께서 같이 가자 말씀하셨던 게 바로 그 법회예요. 오 관리인 말씀이 맞아요. 그런 소문이 돌긴 했어요. 그 수조 상인이 한동안 꽤 유명했죠. 나중엔 주점까지 열었고요. 지금은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가 봐요.”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다만, 만 관이 드는 음식 공양까진 필요 없을 것 같네.”
정교랑이 말을 이었다.
“한 가지면 충분해.”
“한 가지?”
서무수가 물었다.
“신기한 것 한 가지면, 충분해요.”
정교랑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두부로 하죠. 일거양득이겠네요.”
서무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알겠다고만 했다.
“참, 누이. 요즘 장사는 잘되는데, 딱히, 남는 건 없어. 그래서 돈이 좀 필요한데.”
서무수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자 정교랑이 고개를 돌려 시녀를 쳐다봤다.
“이제 돈이 얼마 안 남았어요.”
시녀가 대답했다. 서무수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 급하진 않아. 우선 이 선다회부터 지나고 다시 얘기하자. 누가 알아, 선다회를 마치면 돈이 따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서무수가 빠르게 덧붙여 말하고 웃자 정교랑도 따라 웃었다.
“오라버니, 걱정 안 해도 돼요.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한 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라버니한테 고마워할지 모르겠네요.”
서무수는 정교랑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웃었다.
“반근.”
시녀가 얼른 네 하고 대답하고 분부를 기다렸지만, 정교랑은 한동안 잠자코 있었다.
“그 반근을 불러와.”
시녀는 멈칫했고 서무수 역시 멈칫했다. 반근이 또 있어? 누이는 대체 반근을 얼마나 많이 수집한 거야?
시녀의 말을 전해들은 반근은 믿을 수 없어 하며 쭈뼛쭈뼛 들어와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내 기억으로는, 예전에 네가 날 위해 환자를 데려오곤 했지?”
정교랑이 물었다.
예전에……. 아씨께서 예전을 기억하시다니. 반근의 눈시울이 또다시 붉어지려 했다.
“내가 기억하는 건 물론 아냐. 그 공책에 그렇게 쓰여 있길래.”
정교랑이 말했다.
“네, 아씨. 아씨께서 소인더러 매일 저잣거리로 나가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병자들의 증상을 아씨께 전하라 하셨어요. 아씨께서 고치겠다고 하시면, 다시 우연인 척 그 병자의 가족한테 접근해 아씨께 치료를 받도록 했고요.”
반근이 말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말이 안 되는 말은 아니었다.
“그럼 지금, 다시 거리로 나가 봐. 내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돌아와서 들은 것들을 내게 알려 줘.”
정교랑의 말에 반근은 감격하여 예를 표했다.
“네.”
반근은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고개를 들 때 방석으로 눈물 몇 방울이 툭 떨어졌지만, 이번 눈물은 달콤한 것이었다.
비가 멈추자, 편전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책 읽는 소리도 따라 멈췄다.
문밖에 서 있던 궁녀 둘이 서로 눈짓을 했다. 궁녀 하나가 입을 삐죽이고 웃으면서 손을 내젓더니, 꿇어앉아 문틈으로 몸을 빼고 안을 들여다봤다. 편전에는 팔걸이 책상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소년이 소매로 입을 가리고 크게 하품을 하고 있었고, 바닥에는 책 한 권이 떨어져 있었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실내에는 빛이 들지 않았다.
하품하던 소년은 시야가 흐린지 손을 뻗어 부싯돌로 불을 피웠다. 불이 번쩍이며 소년의 오목조목 잘생긴 이목구비를 비췄다. 희고 고운 얼굴에서도 그윽한 눈동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진안 군왕은 태조의 칠세손답게 외모가 준수했다. 태종의 후손인 지금의 황제 혈통과는 외모에 꽤 차이가 있었다. 태조의 혈통은 대대로 효자고양황후(孝慈高陽皇后)의 외모를 많이 닮았다. 고양황후의 단정하고 고운 외모는 건장하고 우락부락한 방씨 일가의 외모를 중화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