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99
교랑의경 199화
“내력은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신선이 아니라 사람이었죠.”
거기까지 말한 주육낭은 고개를 돌려 밖에 대고 소리쳤다.
“조 집사!”
문이 열리더니 조 집사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 예를 표하고 꿇어앉았다.
“자네와 진 사노야가 교랑을 데리고 경성으로 들어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러 밥을 먹은 곳에 대해 두 분께 말씀을 올리게.”
주육낭의 말에 조 집사는 네 하고 대답한 후, 그날 있었던 일을 소상히 이야기했다. 주 노야 부부는 아둔한 사람이 아니었다. 조 집사의 이야기를 듣고 주육낭의 말을 곱씹어보자 대충 이해가 갔다. 너무 놀라운 일이라 믿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그럼, 그 애가?”
두 사람이 놀라 물었다.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원래 음식을 잘하거든요.”
주육낭은 손을 내저어 조 집사가 물러가게 한 후, 말을 이었다.
“어머니, 교랑의 일을 알아보러 강주로 사람을 보냈을 때, 여종이 돌아와서 뭐라고 했습니까. 반근의 음식 솜씨가 좋아 정씨 저택에서 싸움이 났다고 했죠. 그런데 반근을 데려와 보니 그저 그런 솜씨였습니다. 아씨한테 배웠다는 말만 반복했고요.”
물론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바보로 십수 년을 산 사람이니……. 주육낭이 한숨을 토했다.
“가장 가까운 예로 보자면, 진 상공 댁의 참새 요리도 있죠. 미심쩍거든 사람을 보내 물어보시면 알 겁니다. 교랑이 알려 준 조리법이었어요.”
“그 바보가, 세상에…….”
주 부인이 중얼거렸다.
“그 애는 바보가 아닙니다.”
주육낭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바보가 아니라고?”
주 노야는 생각난 게 있는지 허리를 곧추세우며 물었다.
“그럼 과로신선을 왜 공짜로 신선거에 넘겨?”
공짜로? 주육낭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선거 주인한테 양조부가 있었거든요.”
주육낭은 주 노야를 보며 말했다.
“유 교리입니다.”
유 교리? 화제는 다시 맨 처음에 이야기했던 유 교리에게로 돌아왔다. 주 노야와 주 부인은 얼떨떨한 채로 이야기를 들었다. 뭔지 알 것 같으면서도 뭐가 뭔지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나중에 신선거가 경성으로 옮겨 온 후, 원래 있던 자리를 사들였습니다. 정교랑이 동씨 가문에서 받은 돈으로 거길 사서, 태평거로 바꿨죠.”
그 바보가 우리 뒤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그리 많은 일을 꾸몄단 말이야? 주 노야 내외는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만날 밖으로 나돌았구나.
“그 후엔 두부를 만들었습니다. 정씨 두부엔 또 다른 이름이 있죠. 바로 태평 두부입니다.”
태평 두부! 주 부인은 또다시 놀라 허리를 곧추세웠다.
“태평 두부는 또 뭐요?”
주 노야가 물었다. 경성을 두세 달 비운 동안 무슨 일이 그리 많이 생긴 건지 모를 일이었다. 천상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십 년이라더니.
“돈이에요. 어마어마한 돈이요.”
주 부인이 중얼거렸다. 세상의 모든 일과 사람은 가치로 가늠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돈이라는 말에 주 노야는 바로 이해했다. 그 여인이 식당을 열고 명성까지 얻었군. 정말 뜻밖이야.
“그리 큰일을 벌이면서, 우리한텐 감쪽같이 속여?”
주 노야는 미간을 찌푸렸다.
“여인 혼자서 사업을 하겠다니, 빼앗아 가라고 기다리는 꼴 아니냐.”
“맞아, 혼자서 그걸 어떻게 관리해? 정말 양심도 없지. 우릴 뭐로 여기는 거야?”
주 부인 역시 화를 내며 주 노야를 쳐다봤다.
“잘 돌아오셨어요. 난 그 애 단속 못 하니까 당신이 가서 설득하세요. 태평거는 우리가 관리하겠다고요. 어린애가 뭘 안다고, 그러다 괜히 큰일 나요.”
웃기지도 않는 소리. 출가도 안 한 여인이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사업을 벌인 일이 있었던가?
“어머니, 제 말씀을 끝까지 듣고 나서 그 애를 찾아갈 건지 결정하십시오.”
주육낭은 복잡한 표정으로 주 부인을 쳐다봤지만 주 부인은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투였다.
“왜? 내가 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 집안이 아니면, 그 사업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부모를 잃은 고아는 관두고 부모며 처자식이 다 있어도 사내가 죽는 순간 그 재산을 노리고 눈이 벌게져 달려드는 게 인간사였다. 경성에서 허구한 날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딱히 신기할 것도 없어서, 다들 보고도 못 본 척 눈을 감는 지경이었다.
젊은 애들은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지. 주육낭은 대꾸하지 않았다.
“두 분 말씀이 맞습니다. 식당과 두부로 돈이 벌리자 이를 시기하는 이들이 생겼죠. 무뢰배들이 찾아와 소란을 피우기도 했고요.”
“그럴 만도 하지. 세상이 그런 법이다. 의지할 곳도 없는 처지에 순풍에 돛 단 듯 사업을 일궈 나가는 게 가당키나 하더냐.”
주 노야가 말했다.
“그래서 그 무뢰배들을 그 자리에서, 쏴 죽였습니다.”
“거봐라, 거봐. 성가신 일이 생긴다니까. 그러게…….”
혀를 차던 주 노야가 돌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주육낭을 쳐다봤다.
“뭐라고? 쏴 죽여?”
주 부인 역시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벌건 대낮에 모두가 보는 가운데, 그 자리에서 쏴 죽였습니다. 도합 다섯을, 활로 쏴 죽였죠.”
주육낭은 손으로 활을 쏘는 시늉까지 해 보였다.
다섯을, 대낮에, 그 자리에서, 쏴 죽였다. 사람의 목숨을, 다섯이나! 주 노야는 하마터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뻔했다.
“그런 일을 벌여? 그다음엔?”
주 노야가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그다음은 없습니다.”
그다음이 없다고? 주 노야 부부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 무뢰배들이 태평 두부의 비법을 훔치려 했으니, 죽을죄를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수사가 나서서 증언을 해 주었습니다. 무뢰배들을 사주한 주오는 처벌이 두려워 자결했고요. 증거가 명확하니 태평거는 무죄일 수밖에요.”
주육낭이 말했다.
그리 간단한 일이라고? 보수사가 나서서 도울 정도라면 주씨 가문의 체면을 봐서 한 일은 아닐 터였다. 주 노야 내외는 얼떨떨한 얼굴로 도로 앉았다.
“간단하게 해결했죠.”
주육낭이 말했다.
“운이 좋았구나. 별일 없었으니 됐다.”
주 노야가 천천히 말했다. 무장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부친을 따라 전장을 돌며 살육을 행한 주 노야였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쿵쾅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쨌거나 여긴 전장도 아니고, 상대 역시 오랑캐가 아니었다.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 한들 그리 쉽게 죽일 수는 없었고, 감히 그런 짓을 행할 사람도 없었다.
“누가 죽였는데? 그 애가 고용한 호위더냐?”
주 노야는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부정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주육낭이 주 노야를 쳐다봤다.
“아버지, 아버지도 아시잖습니까. 주인의 명이 아니라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는 일로 사람을 죽일 이는 없습니다.”
주 노야는 흠칫한 표정으로 잠자코 있었다.
“무슨 소리죠? 그 바보의 명을 받고 죽인 거라고요?”
주 부인은 뭐가 뭔지 모르겠는 얼굴로 물었지만 주 노야는 딱히 대꾸하지 않고 주육낭을 보며 말을 이었다.
“계속해 봐라.”
주 노야는 복잡한 표정이었고 차츰 눈빛이 굳어졌다.
“무뢰배를 죽이고도 무사했으니, 태평거를 노리던 이들이 뜨끔했을 겁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태평거의 배후에 엄청난 뒷배가 있다고 믿게 됐죠.”
주육낭의 말에 주 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지의 적이 가장 무서운 법이지. 하지만 작정하고 알아보고자 하면, 막긴 힘들어.”
“네, 그래서 태평거의 진짜 주인은 정교랑이라는 사실이 곧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씨 가문의 존재도 알게 됐죠.”
주 노야가 주육낭을 쳐다봤다.
“그랬던 게로군!”
주 노야가 허벅지를 탁 내리쳤다. 주 부인은 너무 놀라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 했다.
“내가 대신 표적이 됐어!”
주 노야가 분통을 터뜨렸다.
“내가 뭐랬느냐. 평소에 딱히 밉보인 사람도 없었고, 밉보였다 한들 내가 대비도 안 했겠느냐?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기습을 당하다니! 이제 보니 그런 내막이 있었군!”
주 부인이 그제야 이해했다.
“하여간 화근덩어리!”
주 부인은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 오랫동안 전전긍긍하며 애태운 일이 뜻밖에도 그 여인이 불러온 화 때문이었다니! 벌써 내쫓은 지 오래인데, 그 불운이 달라붙어 아직까지도 안 떨어졌구나!
주씨 저택에서 병을 치료한다고 소동을 벌일 때와 상황이 똑같았다. 좋은 소리는 그 바보 차지고, 불평과 원성은 주씨 가문에게 돌아왔다.
“그러게 진작 내쫓고 강주로 돌려보내라고 했잖아요! 내 말을 안 듣더니만!”
주 부인은 손에 든 쥘 부채를 쾅 내리치며 분을 못 참고 눈물을 쏟았다.
“그 애가 무슨 일을 벌이겠냐고 했죠? 좀 보세요.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건지! 집안을 멸문으로 몰아넣을 일을 꾸몄어요!”
대청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고, 마당까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회랑 아래에 서 있던 여종들과 몸종들은 얼른 마당 문 밖으로 물러났다.
“아버지, 어머니. 제 얘기 아직 안 끝났습니다.”
주육낭은 굳은 얼굴의 부친과 분을 못 참고 눈물을 흘리는 모친을 보며 언성을 높였다.
“더 들을 게 뭐 있어!”
주 부인은 주육낭의 말을 끊고 부채로 주육낭을 가리키며 호통을 쳤다.
“넌 진작 알고 있었지? 네 부친한테 일이 생겼는데 초조해하기는커녕 허구한 날 밖으로 나돌더니, 이제 보니 진작 알았던 거였어! 그러고도 우릴 감쪽같이 속여? 이제는 그 바보의 편을 들려 하고? 분명히 말하지만 어림없어. 내가 가서 따끔하게 혼내 줄 거야. 무서운 게 뭔지 보여 줘야지!”
“가만히 계십시오, 어머니!”
주육낭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던 주 부인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진짜 무서운 게 뭔지 모르십니까? 그 무뢰배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막다른 길에 몰려 자결한 주오와 풍질에 걸린 유 교리도 생각해 보시고요. 진짜 무서운 게 뭔지 모르시겠습니까?”
대청이 고요해졌다. 주 노야와 주 부인은 멍한 표정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주 부인이 물었다. 왜 알아듣지도 못할 일들을 한데 엮는 거지?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주육낭은 한숨을 토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육낭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의 속도를 높였다.
“작정하고 조사한 끝에 정교랑이 태평거의 주인이라는 걸 알아낸 이가 있었습니다. 우리 주씨 가문에 대해서도 파악했고요. 그래서 은밀히 수를 쓴 겁니다. 우선 부친을 좌천시켜 따끔한 교훈을 주고, 세상 사람들한테도 경고하려 했죠. 자신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고, 분풀이도 한 겁니다. 동시에 태평거 숙수의 손도 잘랐습니다.”
손을! 여인인 주 부인은 그 말에 놀라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대체 누구 짓이야? 그게 대체 누군데? 어찌 그리 무시무시한 짓을 해?”
“신선거의 주인 두칠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악연이었죠.”
그랬구나. 그런데 일개 식당의 주인이?
“두칠은 어떤 자더냐?”
주 노야가 물었다. 두칠에게 관심이 없는 주 부인은 주육낭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됐는데? 그깟 과로신선이 뭐라고 이렇게 성가신 일들이 줄줄이 생겨?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지?”
“이미 수습했습니다. 전과 마찬가지로 그 애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그 애의 재산을 탐하려던 자는, 전부 죽거나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게 됐죠.”
주 노야와 주 부인은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어떻게 수습했다는 게야?”
“유 교리가 풍질에 걸렸잖습니까.”
이게 대체 뭔 소리야! 얘기가 왜 또 유 교리로 돌아가?
“두칠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두칠에게는 양조부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 교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