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00
교랑의경 200화
주 노야와 주 부인은 아들의 말에 다시 한번 경악했다.
잠깐만, 잠깐만, 정리 좀 하자. 정교랑, 태평거. 두칠, 신선거. 유 교리, 두칠의 양조부.
두서없이 얘기한 이 모든 게 실은 세 사람과 점포 두 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었다. 주거니 받거니 수많은 일이 벌어졌다. 언뜻 듣기엔 엄청난 격랑이 있었던 듯했지만 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진행됐다.
주 노야는 마침내 아들이 처음에 했던 말을 이해했다.
“아버지, 유 대인은 풍질을 얻으셨습니다.”
“어머니, 소원을 이루셨네요.”
관청에 갔을 때 예상과 달리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었던 게 그래서였군. 별일 없을 거라고 한 말이 이 뜻이었어. 엄중하다면 엄중하고 별일 아니라고 하면 별일 아닌 일이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질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문제였다.
이제 끝까지 물고 늘어질 사람은 풍질로 자리보전을 하고 누웠고, 아마 평생 일어나긴 힘들 것이다. 일어난다 해도 조정에서 쓰일 일은 없다. 제아무리 대단한 사람이고 황제의 신임을 받았다 한들, 쓰러지는 그 순간부터 조정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아무것도 아닌 폐인 따위가 무슨 위협이 되겠는가.
그랬던 게로구나, 그랬던 게야. 주 노야는 한숨을 토하고 자리에 앉다가 곧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러니까 네 말은…….”
주 노야는 등불에 비친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에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애가 그자를 해치웠단 뜻이냐?”
그 애는 누구고 그자는 또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주육낭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 애가 해치운 게 틀림없습니다. 그 애를 넘보는 사람은 모조리 해치워 버렸으니까요.”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주 노야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안 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어떻게 한 건지는 저도 모릅니다.”
주육낭은 곧 웃음을 지었다.
“남의 손을 빌려 무뢰배들을 쏴 죽였을 때나, 강주 소현묘관의 관주와 그 정부한테 벼락을 내리쳐 죽였을 때처럼 했겠죠.”
아무튼 그녀가 한 일이다. 아무도 모르게 소리 소문 없이.
강주? 강주 얘기가 왜 또 나와? 주 노야와 주 부인이 아들을 빤히 쳐다봤다.
“어머니, 어머니는 강주로 사람을 보내 교랑의 일을 수소문한 후 자세히 듣지 않으셨지만, 소자는 꼼꼼하게 캐물었습니다. 당초 교랑은 강주의 정씨 저택에서 쫓겨난 후 정씨 가문의 도관에서 기거했는데, 거기가 소현묘관이었습니다. 지금의 현묘관과는 다른 곳이죠. 그 소현묘관에는 관주가 하나 있었는데 바람기가 있어 사내들을 끌어모았답니다. 평판은 형편없었지만 그럭저럭 먹고살았죠. 그러다가 정교랑이 들어간 후 보름 만에 벼락에 맞아 죽었습니다.”
주육낭이 부모를 보며 물었다.
“아버지, 이 세상에 우연이 있다고 믿으십니까?”
주육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안 믿습니다.”
느닷없이 벼락이 내리쳐 사람이 죽고, 느닷없이 풍질을 얻어 폐인이 됐다. 세상에 이렇게 느닷없는 일이 많이 생길 순 없었다. 더구나 한 사람에게만은 전부 좋은 쪽으로 느닷없는 일이 벌어지다니.
주 노야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고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그 강주 바보가, 정말, 도조 이 진인의 제자라고? 비바람을 부르고 사람의 생사를 틀어쥐었다니…….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 애의 재물을 노리거나 그 애의 사람을 노린 이들은, 전부…….”
주육낭이 주 부인을 쳐다봤다.
“어머니, 그래도 그 애의 것을 빼앗고 싶으세요?”
벼락에 맞아 죽은 이야기를 듣고 이미 넋이 나간 상태였던 주 부인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떨어뜨렸다. 탁 하는 소리가 고요한 실내에 퍼지면서 귀를 찔렀다.
죽었다. 전부 죽었어. 다들 그 애와 싸우거나, 그 애의 재물을 노린 사람들이었다.
그냥 화근 정도가 아니다. 이건 액운이고 재앙이다. 재앙!
새벽빛이 밝아올 무렵, 유씨 저택. 조용한 실내에 갑자기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야께서 깨셨어요!”
몸종들의 외침에 곁에 있던 가족들이 기뻐하며 몰려들었다. 정 낭자는 병을 고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의식을 빨리 회복할수록 회복의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그래서 유 교리의 가족들은 서둘러 태의를 불러왔고, 예상보다 일찍 의식을 회복했다.
침상 위에 누운 유 교리는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유 교리를 에워싼 가족들은 그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호전의 기미가 전혀 없어…….
“노야, 절 알아보시겠어요?”
가족들은 유 교리를 에워싸고 눈물을 쏟았다. 유 교리는 흐릿한 눈빛으로 몸을 떨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 태의.”
유씨 저택으로 옮겨와 머물고 있던 이 태의가 소리를 듣고 옆방에서 건너왔다. 가족들이 이 태의를 에워쌌다.
“우리 노야를 살릴 방법이 없는 거죠?”
가족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본디 살릴 방법이 없다는 말은 고통스럽고 절망적으로 해야 하는 법인데, 가족들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환희가 섞여 있었다.
세상이 어쩌다 이리 괴이해졌는지! 이 태의는 잿빛이 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 망할, 곧 죽는단 말을 듣고 싶어서 날 불러온 거야? 그 말을 앞세워 신의인지 뭔지를 불러오려고?
“못 구합니다! 부르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부르십시오!”
이 태의는 불쾌한 듯 소리치고 옷소매를 뿌리치며 나가 버렸다.
다른 때였다면, 다들 벌벌 떨며 사과하고 서둘러 이 태의를 붙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둘러라, 어서. 어서 노야를 정 낭자께 모시고 가라!”
집 안은 금세 어수선해졌다. 서로 밀고 밀치며 우왕좌왕 소란이 일더니 곧 조용해졌다.
“사부님, 사부님.”
문 앞에서 약상자를 끌어안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사부를 찾던 아이는 병풍 옆에서 손으로 탁자를 짚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스승을 발견했다.
“사부님!”
아이가 달려왔다. 아이는 방금 전 소란 속에서 이리저리 밀쳐진 사부를 쳐다봤다. 머리를 고정했던 관이 떨어지면서 흰머리가 헝클어졌다. 이 태의는 관을 줍지 않고 도리어 웃음을 터뜨렸다.
“못난 놈!”
이 태의는 분을 참지 못했다. 아이는 얼른 이 태의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
“사부님, 다들 어디 간 거예요?”
“가자!”
이 태의는 비틀비틀 걸어 나가며 소리쳤다.
“유씨 일가에 대해 고할 것이다! 내게 치욕을 줬어! 치욕을! 이 길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농사나 지으면 그만이야!”
같은 시각 옥대교. 식사를 마친 정교랑은 실려 들어오는 유 교리를 쳐다봤다.
“난 못 고친다고, 말했잖아요.”
“정 낭자,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 태의가 못 고친대요.”
유씨 일가는 울며 매달렸다.
“괜한 걱정 마세요. 안 돌아가실 거예요.”
유씨 일가는 그 말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살릴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미칠 듯이 기뻐하더니, 안 죽을 거란 말에 비통해 어쩔 줄 몰라 하다니, 세상은 정말 알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대화가 오가는 사이, 들것 위에 누워 있던 유 교리의 눈빛이 차츰 또렷해졌다.
정 낭자, 제발 부탁드립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야? 정 낭자라면……. 정 낭자!
“나도 유 대인이 얼른 좋아지시길 바라요. 유 대인처럼 좋은 분이 계시면, 얼마나 든든하겠어요.”
뻣뻣하고 갈라진 여인의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오자, 유 교리는 안간힘을 다해 고개를 돌렸다. 꿇어앉은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움직임이 느껴졌는지 여인도 고개를 돌렸다.
유 교리는 이 여인의 얼굴을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본 것 같았다. 짙은 청색의 치마와 덧옷을 입고, 긴 머리는 뒤로 넘겨 하나로 묶었다.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의 미인, 아주 대단한 미인이었다.
전에는 재물 생각에 사람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 유 교리는 가진 것에 분수를 알고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지금 꼼꼼히 보니 재물을 손에 넣고 난 후 가능하면 사람도 남겨 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미인은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를 쳐다봤다. 미인의 두 눈은 크고 밝게 빛났다. 어찌나 하얗게 빛나는지 검은 눈동자가 깊은 늪이나 못처럼 보여 보는 이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경성에서 어렵사리 입지를 굳히게 됐는데, 이대로 모든 걸 잃을 순 없어요. 유 대인, 유 대인도 알고 계실 거예요.”
어렵사리 입지를 굳히게 됐는데, 절대 남에게 빼앗기진 않을 것이다. 나를 망치려 든다면 너부터 짓밟아 버릴 것이다.
저 여인이구나! 저 여인이야! 어쩐지 어딘가 이상하다 싶었다. 왠지 이상하다 싶었어!
일이 이상하다 싶을 땐 틀림없이 이상한 곳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상대가 어린 소녀고 일개 바보라 방심했다. 이 강주 바보가!
“강주…… 바보…….”
속으로는 미칠 듯이 외쳐댔지만 유 교리의 입가에는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을 뿐이었다.
“보세요. 대인께서 소리도 내세요.”
정교랑은 유 교리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대인, 이 병으로는 안 돌아가세요. 다행이죠, 다행이에요.”
다행? 다행?!
유 교리는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욕하고 울부짖으며 분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와 분노와 절망이 순식간에 엄습하여 질식할 것 같았다.
“죽여라!”
유 교리는 힘을 짜내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정교랑을 가리키며 말을 내뱉었다. 이번엔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모두 똑똑히 들었다. 유씨 일가 사람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교랑은 표정 변화 없이 천천히 자세를 바로 했다.
“노야께선 병으로 의식이 온전치 않으십니다.”
유씨 일가 사람들은 서둘러 정교랑에게 해명하고 다시 애걸했다.
“정 낭자, 정녕 고칠 방법이 없겠습니까?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돈을 벌 수 있는데, 나라고 안 벌고 싶겠어요?”
정교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시선을 거두고, 유씨 일가를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예를 표했다.
“다만, 운명에 없는 건, 억지로 바랄 수 없죠.”
유씨 일가는 실망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정교랑은 다시 고개를 돌려 유 교리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병을 고칠 순 없지만, 이 병에 대해 아는 건 있어요. 이런 병은 마음을 편히 가지고, 좋은 기분을 유지해야, 빨리 나을 수 있죠. 그걸 못 하면…….”
거기까지 말한 정교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병세가 점점 더 심각해질 거예요.”
마음을 편히 가져라? 유 교리는 여인을 쳐다보며 저주 섞인 욕을 웅얼거렸지만 뭐라고 하는 건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결국 유 교리는 손을 축 늘어뜨리고 정신을 잃었다.
감기에 걸리거나 열이 나는 일도 거의 없던 유 교리가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두 번이나 혼절했다. 차이가 있다면 처음엔 기쁨에 겨웠기 때문이고, 이번엔 분을 못 이겼기 때문이었다.
대청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지만, 이번에도 슬퍼하거나 비통해하는 이는 없었다.
“정 낭자! 이젠 돌아가시겠지요? 고칠 수 있습니까?”
소란한 와중에 사람들이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환희가 묻어났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마당에 있던 금가아는 저도 모르게 코를 비볐다. 경성은 정말 희한하고 기괴한 곳이야. 좋은 구경 많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