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17
교랑의경 317화
금가아를 알아봤던 점원은 범가원의 문 앞에 계속 쭈그려 앉아 있었다. 손님이 와도 못 본 체하는 통에 몇몇 손님들에게 혼이 나기도 했지만, 그는 손님들의 꾸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혹여나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칠세라 끈질기게 문가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금가아는 한참이 지난 뒤 사지 멀쩡하게 범가원을 걸어 나왔다. 금가아가 흠씬 두들겨 맞고 돈도 없이 밥을 먹으러 왔다고 삿대질 당하는 꼴을 기대했던 점원은 의아한 얼굴로 일어섰다. 심지어 관리인은 환하게 웃으며 금가아 일행을 친절하게 문 앞까지 배웅해 주기까지 했다.
“공자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음에 또 찾아주시고요.”
관리인이 웃으면서 금가아의 구겨진 옷깃을 조심스럽게 펴 주었다.
금가아 일행은 즐겁게 웃으면서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말을 돌보는 점원은 문가에 그대로 서서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저건 누구네 공자님이래? 손이 참 크시네.”
“맞아, 맞아. 나한테 주신 돈이 내 한 달 치 품삯이랑 맞먹어.”
식당 안에 있던 두 기녀가 기쁜 목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기생한테 웃돈을 그만큼이나 얹어 줬다고?
점원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게. 뉘 집 공자님이실까? 왜 이전에는 본 적이 없지? 돈 참 시원스럽게 쓰시네.”
관리인도 옆에서 감탄했다.
뉘 집 공자님?
“공자님이 아니에요! 쟤, 쟤는 북정 가문의 사환이라고요.”
듣다 못한 점원이 외쳤다.
사환이라고?
범가원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정씨 가문의 사환이라고? 세상에! 북정 가문에 돈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사환 하나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백 관을 쓰고 갔어!”
바깥의 한기를 몰고 온 정칠랑이 정 이부인의 대청 안으로 쪼르르 뛰어 들어왔다. 정칠랑은 곧바로 난로 앞에 앉아 손을 녹였다.
“네 언니는?”
정 이부인이 바깥을 내다보면서 자신의 손난로를 정칠랑에게 쥐여 주었다. 문가에는 여종과 몸종 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걘 진짜 바보예요. 바보랑 바깥 구경하기 싫다고요.”
정칠랑이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얘! 전에 어미가 뭐라고 당부했어? 걔는 바보니까 네가 잘 구슬려야 한다고 했잖아. 넌 바보 하나도 제대로 구슬리지 못하니?”
정 이부인이 눈썹을 치켜뜨고 정칠랑을 혼냈다.
“제 말을 아예 듣지도 않는다니까요? 내가 동쪽으로 가자고 하면, 걘 서쪽으로 가겠다고 하고.”
정칠랑이 대들며 말했다.
“누가 걔더러 네 말을 듣게 하래? 네가 걔 말을 따르면 되잖아!”
정 이부인이 정칠랑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말했다.
“걔랑 냄새나고 더러운 남쪽 동네에서 걷기 싫단 말이에요! 걘 정말 바보라고요! 이상해 죽겠어요!”
정칠랑이 한마디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정 이부인은 더 이상 정칠랑을 상대하지 않고, 여종들에게 정교랑이 어디 갔는지 물었다.
“남쪽 거리에서 좀 걷다가 강가로 갔어요. 부인,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칠랑 아씨께서 춥다고 하셔서 먼저 돌아왔고, 그쪽에는 다른 사람을 붙여 두었습니다.”
정 이부인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난로를 내밀었다.
“손난로를 가져다주거라.”
이때, 갑자기 여종 하나가 마당 안으로 황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부인, 부인.”
“또 뭔데?”
정 이부인이 미간을 찌푸린 채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소인이 좀 전에 강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에게서 들은 건데, 누가 교랑 아씨의 혼담을 넣으러 찾아왔다던데요.”
여종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혼사는 이미 다 정해지지 않았더냐.”
정 이부인이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대부인 집안의 사람이 아니라, 경성에서 온 사람이 여러 가문의 사주단자를 들고 왔대요.”
정 이부인은 응, 하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가 곧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뭐라고?”
여종이 정 이부인 가까이 다가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방금 전 일입니다. 대문 밖에 있던 사람들이 다 봤는데, 혼담을 넣으러 온 사람이 바로 공주부 진씨 가문의 사람이래요.”
“공주부!”
정 이부인이 목청을 높여서 외치고는 여종의 팔을 꽉 쥐었다.
여종 두 명이 다급하게 문을 넘어서자, 좌불안석하며 대청 안을 서성이고 있던 이부인은 서둘러 그들을 맞았다.
“어떻게 됐어?”
정 이부인이 물었다.
“소문대로입니다. 경성에서 온 여인 둘이 대부인을 뵈었답니다. 그리고 이건 문밖 회랑 아래에 있던 여종이 직접 들은 얘기라는데, 그 두 여인이 혼담을 넣으러 온 것이 확실하대요. 여러 가문의 사주단자를 다 가지고 왔답니다.”
정 이부인이 멍해진 표정으로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정말로 그 바, 아니, 교랑한테 혼담을 넣으러 온 게야?”
정 이부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예, 부인. 틀림없습니다. 그 여종의 말로는, 경성에서 온 여인들이 입을 열자마자 정교랑의 이름 석 자를 댔고, 정교랑의 가장을 찾아왔다고 했답니다.”
여종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때 왕 부인께서도 자리에 계셨대요.”
다른 여종이 덧붙여 말했다.
이 모든 게 주씨 가문의 계략인 건 아닐까? 그런데 주씨 가문이 공주부 진씨 가문을 움직일 수 있다고?
정 이부인은 꽉 쥔 주먹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잠시 생각을 하다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쾅 내리쳤다.
“가장? 교랑의 집안 가장은 바로 여기 있거늘, 큰어머니 주제에 어딜 가장 행세를 하며 우기려 들어! 우리 교랑의 일생일대의 중요한 혼사를 제멋대로 망치려 들다니!”
분노, 분노해야만 해. 만약 누군가가 칠랑의 혼사를 망쳤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그 사람의 입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겠지! 내가 그 사람과 죽기 살기로 싸우겠지!
“왕십랑, 그 여자를 내 그냥!”
정 이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치며 방을 뛰쳐나가려 했다. 다행히 문가에 있던 여종들이 재빨리 정 이부인의 팔을 붙잡고 뜯어말렸다.
“부인, 부인. 정확히 알아본 뒤에 움직이셔도 늦지 않습니다. 진씨 가문의 사람들이 아직 강주성에 있어요.”
“맞아요, 맞아요. 그 사람들이 가져온 가문이 어떤 가문들인지 보신 다음에 생각하세요. 공주부의 명성만 앞세운 별 볼 일 없는 집안일 수도 있잖아요. 그럼 괜히 우리만 손해예요.”
여종들이 한마디씩 거들면서 이부인을 잡았다.
그건 맞아,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무모하게 일을 벌일 수는 없지.
“노야께 어서 집으로 돌아오시라고 전해라!”
정 이부인이 문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그 바보가 집으로 돌아온 일 따위로 노야를 부를 필요는 없지. 하지만 그 바보를 더 좋은 집안에 시집보내야 우리 칠랑의 앞길이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그건 노야를 당장 불러야 할 만큼 중요해!
“내가 곧 죽을 지경이니, 당장 오늘 밤에 출발하시라고 해라. 내일까지 꼭 집에 당도하셔야 한다고!”
정 이부인이 여종을 밖으로 떠밀면서 재촉했다. 여종이 떠나자 정 이부인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진씨 가문에서 온 여인들은 어디에서 묵고 있느냐?”
“성안에 있는 열래거(悅來居)에 있다고 합니다.”
이부인은 잠시 실눈을 뜨며 고민하다가 다른 여종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너희는 그쪽에 우리의 뜻을 넌지시 알릴 방법을 생각해내거라.”
정 이부인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종은 정 이부인의 의중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정 이부인은 넋을 놓은 채 방 안에 잠시 서 있었다.
“교랑은?”
정 이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강가에 계세요. 좀 전에 부인께서 제게 이걸 전해 주러 가라고 하셨잖아요.”
손난로를 손에 쥐고 있던 여종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서 대답했다.
“그럼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게야! 우리 교랑이 추워서 감기라도 걸리면 네가 책임질 테냐?”
여종은 서둘러 알겠다고 대답한 뒤 밖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잎이 다 진 버드나무 가지가 강바람에 흔들거렸다. 한겨울임에도 강가에 있는 버드나무의 자태는 요염했다.
“아씨, 추우세요?”
반근이 물었다. 말없이 강 위를 바라보던 정교랑은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에 왔을 땐 저 다리 위를 지나갔는데, 그때는 저녁이라 깜깜해서 여길 자세히 보지도 못했네요.”
반근이 웃으면서 정교랑의 시선을 따라 강 위를 내다보았다.
겨울이라 그런지, 혼탁해 보이는 강물이 잔잔하게 흘렀다. 반대편 강가에서 빨래하며 웃고 떠드는 여인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강물이 있어선 안 될 자리인데.”
정교랑이 말했다. 반근은 정교랑의 말을 제대로 못 듣고 되물었다.
“네?”
반근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자리가 좋긴 한데, 강물이 흘러선 안 될 자리야.”
마침 골목 하나를 지나고 있던 정교랑과 반근은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골목길에 동그랗게 모인 아이들 무리가 바닥에 앉아 있거나 쭈그려 앉아 있었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청량한 목소리는 또렷이 들렸다. 아이들 사이로 곧게 세워진 대나무 막대기에 달린 화려한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집 사이에 강을 둘 필요는 없어. 당초 이 강을 만들 때는 고명하신 분이 이렇게 하라고 시켰겠지만, 이런 위치에 강물이 있는 건 곤란해. 처음에는 자손이 번성해서 좋겠지만 나중에는 집안의 복(福)도 강물을 따라 새어 나가게 되거든. 그러니까 네가 나중에 크게 성공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강을 메우는 거다. 끝. 자, 내가 점괘를 봐 줬으니 돈 일 문 다오.”
“나 돈 없거든요!”
아이가 깔깔 웃으며 외쳤다.
“그런 게 어딨어? 점쟁이는 빈손으로 가지 않아.”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반근이 쿡 하고 웃었다.
“아씨, 점쟁이가 아니라 ‘도둑은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아니에요?”
정교랑이 말없이 미소짓고는 시선을 거두고 걸음을 옮겼다.
“돈 없어? 돈이 없으면 너희 집에 있는 찐빵을 하나 줘도 되고.”
젊은 사내의 멋쩍은 웃음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얼마나 게을러 빠진 놈이길래 어린애들 코 묻은 돈이나 공갈칠까?
반근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는 서둘러 정교랑의 뒤를 따라갔다. 이때 반대편에서 사내 여섯 명이 두리번거리면서 뛰어오더니 정교랑과 반근을 지나쳐갔다.
“형님! 여기 있습니다!”
사내의 외침 소리가 뒤쪽에서부터 들려왔다. 반근이 고개를 돌려보자, 좀 전의 사내들이 골목길 앞에 멈춰 서서 골목 안을 가리키며 말하고 있었다.
“저 사기꾼 놈이 여기 있었구나!”
사기꾼? 찐빵 좀 가져다 달라고 조르던 한심한 사내 말인가?
“정평(程平)! 어딜 도망가려고!”
골목은 금세 난리 통이 되었다. 반근은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한 발 내딛다가 바로 앞에 있던 정교랑과 부딪히고 말았다.
“아씨?”
반근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정교랑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멈춰 서 있었다.
“정평.”
정교랑은 천천히 입술을 움직이며 두 글자를 뱉고는 몸을 홱 돌렸다. 반근은 정교랑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고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아씨, 왜 그러세요?”
정교랑은 반근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갔던 골목 쪽으로 뛰어갔다.
정평!
“아씨!”
정교랑이 뛰는 것을 처음 본 반근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동이 불편하여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정교랑이었지만, 차차 몸이 나아지면서 천천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몸이 다 나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늘 단정하고 걸음을 천천히 옮기던 정교랑이었다.
평소에는 종종걸음조차도 보이지 않던 정교랑이 갑자기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뛴다는 것은 반근으로서는 상상도 해볼 수 없던 일이었다.
무슨 큰일이 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