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24
교랑의경 324화
“지, 지금 뭐 하는 것이야!”
정 대부인이 소리쳤다.
“체통을 지켜야지, 체통을!”
정 대노야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소매를 홱 털고 호통쳤다.
“이러고도 학자 집안 출신이라고 할 수 있소? 이게 당최 무슨 꼴이오!”
정 이부인은 추태를 멈추기는커녕, 아예 아이처럼 바닥에 누워 뒹굴기까지 했다.
“꼬드기는 말이나 전하는 말이나 천하의 요부 취급을 하고선, 학자 집안 출신이라니 당치도 않죠. 여보, 날 내쳐요. 날 버리라고! 수치스러워서 더는 여기서 못 살겠으니까!”
정 이부인이 목놓아 울었다.
“아니지. 이런 수모를 당하고선 내가 어디로 돌아가겠어. 차라리, 차라리!”
바닥에서 뒹굴던 정 이부인이 갑자기 땅을 짚고 일어나더니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차라리 죽고 말지! 정씨 가문에 흠이 되지 않게 차라리 죽어 버릴게요!”
정 이부인이 소리를 지르며 문가 기둥을 향해 달려갔다. 근처에 있던 정 대부인이 기둥을 향해 달리던 정 이부인을 재빠르게 안았다.
화가 난 정 대부인이 다급한 마음에 정 이부인에게 호통을 쳤다.
“자네, 지금 이 무슨 미친 짓인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 대부인이 정 이부인의 뺨을 후려쳤다. 뺨을 후려치는 소리 때문에 대청 안은 일순간 다시 조용해졌다.
옷차림이 흐트러지고, 머리가 산발이 된 정 이부인은 손으로 뺨을 감싸며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정 대부인을 쳐다보았다. 따귀를 후려친 정 대부인도 자신의 손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동서의 따귀를 통쾌하게 후려치는 건 꿈에서 수십 번도 더 해 본 일이었지만, 실제로 동서의 뺨을 때리는 날이 오다니.
“이, 이 꼴을 좀 봐!”
정 대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애써 멀쩡한 척하며 외쳤다.
그 바보의 혼사를 망치는 것은 우리 내외의 미래를 망하게 하는 것이고, 칠랑의 혼삿길을 막는 것이야! 우리 칠랑의 혼삿길을 망치려 드는 자가 있다면, 그게 누가 됐든 내 기필코 죽기 살기로 싸울 테다!
맞아. 그러고 보니, 그게 바로 이 여인이야. 온화하고 착한 맏며느리인 척은 다 하면서, 노야와 내가 누려야 할 것들을 모조리 빼앗아가고 당연하다는 듯 우리에게 공경을 요구했어.
정작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건 자기 기분 좋을 때 적선하듯 나누어 준 것들뿐이지. 그마저도 잔뜩 생색을 내고, 우리는 과한 것을 받았다는 듯이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만 하잖아! 그렇지 않으면 세상 도리도 모르고 버르장머리만 없는 사람이 되니까!
이런 숨 막히는 생활을 평생 해야 해! 한평생을 남에게 빌붙어서!
왜? 내가 대체 왜 이런 설움을 당해야 하는데!
“왕십랑, 네가 뭐라고 날 때려!”
정 이부인이 악을 쓰며 대부인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정 대부인이 재빨리 피하는 바람에, 정 이부인은 대부인의 머리카락만 세게 내리친 꼴이 됐다. 정 대부인의 머리카락에 꽂혀 있던 비녀와 장신구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청 안에서 비명이 들려오자, 문밖에 서 있던 여종과 몸종들은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안으로 우르르 뛰어 들어가 머리채를 잡고 몸싸움을 벌이려는 부인들을 말렸다.
눈앞의 광경에 정씨 형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청 안의 모든 것들이 엉망이었다. 탁자는 발길질로 인해 뒤집혀 있었고, 찻잔은 바닥에서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대청 안은 온통 울고불고하는 여인들의 소리로 뒤덮였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정 노부인의 방에서 걸어 나오던 부 어멈이 마당에서 몰래 귓속말을 주고받는 여종들을 보았다. 부 어멈이 큰 소리로 마른기침을 하자, 여종 몇이 서둘러 자리를 비켰다.
“뭔데 그리들 속닥거리는 게야.”
부 어멈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여종들은 쉬이 대답하지 못하고 불안한 기색으로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부 어멈.”
여종 하나가 먼저 운을 뗐지만, 쉽사리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말해라.”
부 어멈이 미간을 찌푸리고 다그쳤다.
“대부인과 이부인 사이에 싸움이 난 것 같습니다.”
여종이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싸움이 났다고?
부 어멈은 귀를 의심했다.
농담인가?
“정말이에요. 지금 저쪽이 난리도 아니래요. 노부인께 귀띔이라도 하는 게 어떨까요?”
여종이 말했다. 부 어멈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뒤에서 말했다.
“무슨 귀띔?”
깜짝 놀란 여종들이 노부인의 방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언제부터 나와 있었는지 모를 노부인이 그릇 하나를 쥔 채 회랑 아래에 서 있었다.
노부인의 나이는 벌써 예순이 넘었다. 백발로 뒤덮인 머리에 검붉은 옷을 입고 있는 노부인의 얼굴은 매우 수척했다.
노부인은 어두운 표정으로 마당에 서 있던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손에 쥐고 있던 탕을 조금 마셨다.
부 어멈과 여종들이 잰걸음으로 노부인 앞으로 걸어갔다.
“별일 아닙······.”
부 어멈이 입을 열자마자 노부인이 말을 끊었다.
“말해라!”
노부인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호통쳤다.
“대부인과 이부인께서 싸움이 나셨다고.”
부 어멈이 곧바로 이실직고했다.
“그 무슨······.”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던 노부인이 손에 쥐고 있던 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노부인은 양손으로 뒷목을 잡고, 눈을 크게 뜨면서 입을 벌린 채 신음을 내며 뒤로 쓰러졌다.
“노부인!”
“빨리! 빨리 의원을 불러오거라!”
“노부인, 노부인!”
정 대노야의 거처에 이어, 노부인의 마당도 아수라장이 되었다.
언제나 조용하고 예의를 지키던 정씨 가문이 혼란에 빠졌을 때, 항상 시끌벅적했던 남정 동네에는 전무후무한 고요함이 찾아왔다.
허름한 초가집 앞 나무 그루터기를 자리 삼아 앉은 소녀를 향해 한 노인이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아씨, 정말 죄송합니다. 아직 그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노인이 불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돌아오지 않은 건가요?”
정교랑의 물음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골목과 거리라고는 죄다 찾아보았는데,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요. 며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죠.”
주위 사람 중 하나가 거들자 정교랑이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맞아요, 맞아. 그 사기꾼, 아니 정평이 옛날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요. 사고를 쳐 놓고 한동안 숨어있다가, 다시 여기로 돌아왔습죠.”
다른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덧붙였다.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원래는 정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었다면서요.”
정교랑이 물었다.
“정씨 가문의 사람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그자는 일 년 전쯤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인가, 할아버지인가가 강주 정씨 가문의 사람이라면서요. 또 자신은 한곳에 정착해 잘 살고 있었는데, 향수병이 너무 심해서 강주로 돌아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자가 정 대노야께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대노야께서 별 의심 없이 믿어주시며 이곳에 살도록 남겨 두셨지요.”
노인이 말했다.
“그 사람은 어디서 온 사람이죠?”
정교랑이 물었다.
남정 사람들은 타지에서 온, 같은 성씨를 가진 이 여인에 대해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정평이라는 자의 내력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어제 이 여인이 내건 거액의 현상금 탓에 노인은 아주 철저하게 준비를 해 두었다.
“촉주(蜀州)입니다.”
노인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정교랑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대꾸하지 않았다. 정교랑이 입을 열지 않자, 주위의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 골목 안이 조용해졌다.
“알겠어요.”
한참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찰나의 순간이 지난 것 같기도 한 시간이 흐른 뒤 정교랑이 대답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참았던 숨을 내쉬면서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그럼······.”
노인이 말끝을 흐렸다.
“그럼 계속 찾아주세요. 천천히 기다릴게요.”
정교랑이 그의 말을 이어서 대답했다. 정교랑이 말을 마치자, 조 집사는 곧바로 앞으로 한 걸음 나가 허리춤에서 돈주머니를 빼냈다.
“이건 수고비요.”
또, 또 돈을 주다니.
노인의 손이 떨려왔지만, 차마 돈주머니를 받을 수 없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 사람을 찾아낸 뒤에 받겠습니다.”
조 집사가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정교랑이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조 집사는 더는 강하게 권하지 않고 돈주머니를 도로 챙겼다.
“좋소이다. 소식이 있으면 그때 같이 드리겠소.”
노인은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정교랑은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씨, 혹시 더 분부하실······.”
노인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좀 앉아 있다 가려는데, 방해가 되진 않겠죠?”
정교랑이 고개를 들고 노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노인은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속으로 외쳤다.
앉는 게 대수입니까, 아예 여기서 사셔도 됩니다.
주위의 구경꾼들이 서서히 흩어졌다. 잠시 고민하던 조 집사는 시종들에게 손짓하여 그들이 뒤로 한걸음 물러나게 했다. 누추하고 비좁은 골목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를 자리 삼아 앉아 있는 정교랑을 위해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이다.
“아씨께서는 괜찮으신 겁니까?”
궁금함을 참다 못한 누군가가 조 집사에게 조용히 물었다. 조 집사는 석상처럼 미동도 없이 제자리에서 앉아 있는 소녀를 쳐다보았다.
소녀는 좀 전에 몸종이 씌워 준 두모를 쓰고 있었다. 나무 그루터기가 낮아 어두운색의 두봉이 바닥까지 끌렸다. 따스한 햇볕이 드는 시간이었지만, 소녀의 몸에 드리운 햇살에서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저렇게 앉아 있겠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저렇게.
괜찮냐고? 괜찮은 게 이상한 거지!
조 집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바다만큼 깊은 속을 가진 저 소녀의 생각을 어떻게 헤아리겠나. 아씨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게 두어야 해.
조 집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서서 허리를 곧추세웠다.
조 집사의 예상과는 달리, 정교랑은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만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저 아씨, 정평한테 크게 당했나 봐.”
“아니, 얼마나 사리 분별을 못 하길래 정평한테 사기를 당해. 바보 아냐?”
소녀가 시종들의 호위를 받으며 골목을 떠나자, 긴장이 풀린 남정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정씨 저택 안으로 들어서면서, 정교랑은 바쁘게 뛰어가던 두어 명의 여종들과 부딪힐 뻔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서둘러 예를 표하고 다급하게 지나가는 여종을 본 반근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고개를 든 반근의 눈에, 온 저택 안의 여종들이 한껏 긴장된 얼굴로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정교랑은 그 광경이 눈에 보이지 않는 듯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맞다. 이 집안사람들이 뭘 하든 우리 아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반근은 홀가분한 듯 싱긋 웃고, 정교랑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아씨, 오늘 저녁은 뭐로 하시겠어요? 아까 부엌에서 보내온 생선이 꽤 신선해 보이던데, 어탕을 끓일까요?”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고 쪽잠을 자고 일어난 왕 부인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정씨 가문의 여종 때문에 깜짝 놀랐다.
“노부인께서 어떻다고?”
왕 부인이 소리쳤다. 이제야 좀 좋아지나 싶었던 왕 부인의 안색이 다시 창백해졌다.
“지금은 괜찮으세요. 부인께서 요 며칠간은 정신이 없을 테니 혼서를 쓰는 것을 좀 미루시자고······.”
여종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왕 부인은 사색이 되어 여종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여종이 눈을 크게 뜨고 서둘러 입을 다물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왕 부인이 좌우를 살폈다. 주위의 여종들이 모두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네.”
왕 부인이 여종을 향해 어색하게 미소짓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노부인께서는 무슨 병이시더냐? 심각한 건 아니고?”
왕 부인이 노부인에 관해 상세히 묻자, 여종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큰 병은 아니시고요. 대추를 드시다가 목에 걸리셨어요.”
사레가 들렸다고?
연세가 많긴 하지만 꽤나 정정해 보이시던데, 어떻게 대추를 먹다가 목에 걸린담? 설마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나?
“어쩌다가?”
왕 부인이 놀라서 물었다. 여종은 더욱 표정이 일그러져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그냥, 잘못 삼키셔서요.”
정 대부인과 정 이부인 사이에 싸움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쓰러지신 거라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