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61
교랑의경 361화
노야께서 장순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욕하신 적이 몇 번 있지. 강주, 강주라고.
“장강주 선생 댁 말씀입니까?”
진(陳)씨 가문의 사내가 불쑥 나서며 물었다. 그러자 진(秦)씨 가문 여인들도 몹시 놀란 눈치였다.
강주 선생 댁에서도 정 아씨한테 물건을 보내다니!
노복은 가타부타 대꾸하지 않고, 주씨 가문의 시종에게 말했다.
“우리 노태야······.”
그 말에 정씨 가문 집사를 비롯하여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숨을 참았다.
무려 장씨 가문 노태야의 신분을 꺼내다니. 두 진씨 가문에서 부인이나 노야의 명의로 온 것과는 격이 달랐다. 노태야라면 이들보다 더 윗대니 그럴 수밖에.
“······의 몸종 반근이······.”
장씨 가문의 노복이 느릿느릿 말을 잇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다 곧 헙, 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장 노태야의 몸종이면, 그건 곧 장 노태야의 뜻과 같다는 걸 의미했다.
정씨 가문의 집사는 어리둥절했다.
반근이라니,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은데.
문 앞에서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더욱 심란해졌다. 시끌벅적한 문 앞과 달리 정교랑이 있는 방 안은 조용했다.
“이건 단랑 아씨께서 아씨께 드리라고 따로 특별히 챙겨 주셨어요.”
진 상공 댁 여종이 웃으며 작은 함 하나를 내밀었다.
“아씨께서 가장 먼저 보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지요.”
반근이 웃으며 받아 함을 열자 토기 인형이 나왔다. 반근이 웃으며 정교랑에게 건넸다. 팔걸이에 기대앉아 있던 정교랑이 손을 뻗어 받았다.
“아씨를 닮았다고 하진 않을게요.”
여종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하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입을 가린 채 웃고 있는 미인 토기 인형을 보며 정교랑도 따라 웃었다.
진단랑······. 정교랑의 동생 중에도 단랑 또래의 여자아이가 여럿 있었지만······.
“그래, 고맙네.”
정교랑이 말했다.
진씨 가문의 여종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의아하다는 눈빛이 언뜻 스쳤지만, 얼른 표정을 수습하고 예를 표한 후 물러났다.
반근은 이들을 직접 배웅하며 밖으로 나왔다. 대문 앞으로 와서야 고개를 돌리고 안쪽을 쳐다봤다. 반쯤 열린 방문 사이로 정교랑이 팔걸이 의자에 가만히 기대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옆에 놓아 둔 토기 인형과 같은 모습으로.
대문 밖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는 뚝딱뚝딱 집을 고치는 소리도 들렸다. 활기 있고 생기 넘치는 소리였다.
문 하나를 두고 딴 세상처럼 한쪽은 더없이 고요하고 한쪽은 활기가 넘쳤다.
반근은 눈을 내리깔고 한숨을 내쉰 다음 가만히 예를 표하며 진씨 가문 여종들을 배웅했다.
선물을 보내고 난 두 진씨 가문 사람들은 묵을 곳을 마련해 주겠다는 조 집사의 뜻을 간곡히 거절하고 작별을 고했다.
“따로 안 챙겨 주셔도 됩니다. 저쪽의 반근 누이가 벌써 다 보내 줬어요.”
두 진씨 가문 사람들이 말했다.
조 집사와 반근은 웃으며 예를 표하고 성 밖까지 나가 배웅하며 거듭 감사를 표했다. 이들의 떠들썩한 행렬은 성 밖으로 나가는 내내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무슨 일인지 수군거리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역시 진소 상공 댁의 사람이었군.”
대청에 앉아 집사의 보고를 듣고 있던 정 대노야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집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뭐? 어서 말하게.”
집사가 뜸을 들이자 정 대노야가 재촉했다.
“장강주 선생 댁의 사람도······.”
집사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정 대노야는 또다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 댁에서도 사람을 보냈던가?”
정 대노야가 찻잔을 움켜쥐며 물었다.
장씨 가문까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두 진씨 가문과는 다릅니다. 장씨 가문에서는 몸종을 대신해 물건을 보낸 거라고 했습니다.”
집사는 밝은 목소리였지만, 정 대노야는 들고 있던 찻물을 집사의 얼굴에 끼얹어 버렸다.
“다르긴 뭐가 달라! 장씨 가문 몸종이 자네한테는 왜 아무것도 안 보내는데?”
정 대노야의 호통에 집사는 얼굴에 있는 찻물을 닦지도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정 대노야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청을 서성였다.
경성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수많은 이들이 그 바보를 아끼는 게야? 주씨 가문 때문인가?
퉤! 어림없는 소리!
정 대노야는 속으로 침을 뱉었다. 곁가지들이 돈을 노리고 친하게 구는 거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인이 주인의 명첩을 들고 먼 길을 달려와 보란 듯이 새해 선물을 바칠 정도라면 얘기가 달랐다. 주씨 가문은 관두고 주씨 가문 같은 집안 열 개를 합친다 해도 그 정도 대우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대체 경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한편 같은 시각 왕씨 저택.
정 대부인은 눈물을 훔치며 그 얘길 꺼내고 있었다. 대청에는 왕 부인 외에도 왕 노야, 왕 노부인이 함께 있었다.
“다 같은 식구가 아니냐. 네 누이한테 숨기는 게 있으면 냉큼 말하거라.”
왕 노부인의 말에 왕 부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더듬었다.
“딱히 숨기는 것도 없는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 대부인이 말을 끊었다.
“이만 갈게. 다시는 이 집안 문턱 안 넘어. 시집간 여식은 출가외인인 걸 내가 깜빡했네.”
정 대부인이 울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두가 황급히 말렸다.
“누님, 정말 숨기는 거 없습니다. 저희도 들어서 아는 정도인데, 정 낭자가 무슨 선술(仙術: 신선이 행하는 술법)을 익힌 것 같습니다. 병을 고치기도 하고 그런가 봐요.”
왕 노야가 말을 이었다.
“직접 본 건 아니고 노복한테 들은 겁니다. 진위 여부도 잘 모르는데 누님한테 섣불리 말할 순 없잖습니까. 그리고 말을 한들, 누님이 믿으셨겠습니까?”
선술을 익혔다고? 병을 고쳐?
정 대부인은 멈칫하며 눈물을 뚝 그쳤다.
선술을 익혔다면······.
예전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여기고 안 믿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정 대노야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그리고, 이제 진인이니 도사니 그런 얘기는 일절 하지 마시오. 그 여인네가 바보를 어찌 감당하겠소? 도사라는 그 여인이 바보한테 큰절까지 올리던 걸 내 눈으로 봤단 말이오.
더 고명한 선술을 익힌 사람이니, 큰절을 올렸겠지.
“믿어.”
정 대부인이 말했다. 그러자 도리어 왕씨 가문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이런 말을 정말 믿는다고? 믿는다니 다행이긴 한데.
왕 노야 내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또?”
정 대부인은 눈빛을 반짝이며 왕 노야와 왕 부인을 보고 다그쳐 물었다.
“그 일 때문에 마음이 동했던 거라면, 또 무슨 일로 혼사를 번복하게 된 건데?”
“십칠이 싫다잖아요.”
왕 부인의 말에 정 대부인은 냉소를 지었다.
“잊지 마, 나도 왕씨 가문 사람이야. 내 몸에도 왕씨 가문의 피가 흐른다고. 내가 왕씨 가문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를 것 같아?”
왕 부인은 머쓱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말씀드릴 테니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왕 노야가 입을 열었다. 정 대부인이 냉소를 지었다.
“더 놀랄 일도 없어. 어디 놀랄 일이 한두 번이었어야 말이지!”
“사람을 죽였어요.”
갑작스러운 왕 노야의 말에 정 대부인은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한 채 멍하니 동생을 바라봤다.
“뭐라고?”
정 대부인이 물었다.
“사람을 죽였답니다. 그것도 두 명이나.”
왕 노야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대답했다.
사람을 죽였다고······.
정 대부인이 퍼뜩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예전의 소동이 떠올랐다.
– 살인이에요, 살인! 활과 화살을 들고 절 쏴 죽이려 했습니다.
정말, 사람을 죽였다고?
“십칠이 제 눈으로 직접 봤답니다. 아주 깔끔하게 죽였대요. 두 사람 때문에 벌어진 일이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 선수를 쳐서 깔끔하게 죽여 없앴답니다. 죽일지언정 한 놈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거죠.”
왕 노야는 노복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이 직접 목격한 일인 양 생생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어두운 밤, 화재, 맹렬한 바람, 손에 활을 든 여인,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글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유성처럼 빠르게 내달리는구나.(颯沓如流星)
열 보에 한 사람씩 죽이며 천 리를 가도 멈추지 않네.(十步殺一人 千里不留行)
일을 마친 후 옷소매 훌훌 털고 떠나리라.(事了拂衣去)
– 이백의 중.
정 대부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정말로?”
왕 노야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큼, 아니지, 내 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왕 노부인이 염불을 했다.
“그래서 십칠이 돌아오자마자 놀라 그 꼴이 됐구나. 죽네 사네 하면서 이젠 죽은 목숨이라고 했지. 그런 여인을 들였다가, 언제 죽을지 누가 알아!”
왕 노부인이 말했다.
“그래서 방법이 없었어요. 형님을 난처하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십칠이······ 진짜로 두 번이나 목을 맸다니까요.”
왕 부인이 눈물을 훔치며 하소연하자 정 대부인의 표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그런 엄청난 일이 있었는데, 나한테 말도 안 해?”
왕 부인과 왕 노야가 눈을 마주쳤다. 언뜻 안도의 눈빛이 스쳤다.
“우리도 겁이 나서 그랬죠. 형님네 집에 일이 많기도 했고요.”
왕 부인이 말했다.
“너희도 어서 그 바보와 선을 그어라. 내쫓는 게 제일 좋아. 집에 두면 절대 안 된다. 화근덩어리야. 애초부터 불길한 아이였어. 남기지 말아야 할 걸 남겨 뒀으니, 그 애가 너희를 잡아먹을 거야.”
왕 노부인이 말했다.
“아휴, 어머님. 그런 말씀 마세요. 가뜩이나 형님도 마음이 안 좋을 텐데.”
왕 부인의 말에 정 대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된 사정인지 알았으니 서둘러 돌아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얼굴이 아주 반쪽이 됐구나.”
왕 노부인이 안타까운 듯 딸을 보며 말했다.
“며칠 머무르며 푹 쉬다 가거라.”
“벌써 이틀이나 나와 있었는데 쉬긴요. 집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정 대부인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왕 노야와 왕 부인이 직접 나가 배웅했다. 마차가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며 두 부부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형님을 이렇게 속여도 될까요······.”
왕 부인은 주저하는 표정이었지만 왕 노야는 단호했다.
“속이긴 뭘 속여? 다 말하지 않았소. 병을 치료한다는 일을 숨겼나, 사람을 죽였다는 일을 숨겼나?”
그러고 보니 다 말한 것 같기도 하고.
왕 부인이 미소를 지었다.
“형님네 집안일은 그만 걱정하고, 정 낭자랑 어떻게 협업할지나 생각해 봐요. 정 낭자가 어디에 관심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왕 부인의 말에 왕 노야도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길을 재촉한 정 대부인은 저녁 무렵 집에 도착했다. 먼 길을 달려온 탓에 고단했지만 쉴 새도 없이 정 대노야에게 말을 전하러 갔다.
“선술을 익혀 병을 고친다고? 길에서 사람을 죽이고?”
정 대노야는 무척 놀란 눈치였다.
“그렇다니까요. 그 일로 여러 사람이 놀랐나 봐요.”
정 대부인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뭐 딱히 드문 일도 아니죠. 전에도 그런 소문이 있었잖아요. 누구네 집 바보랑 누구네 집 벙어리가 갑자기 신선을 만났다나 하는 얘기요. 병도 고치고 앞일도 내다보고 못 하는 게 없죠. 그 애도 바보였으니 그런 일이 생길 만도 해요.”
정 대노야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정 대부인을 쳐다보았다.
“이틀이나 가 있었으면서 그런 말에 속아 돌아온 거요?”
정 대노야는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혈육의 정도 외면할 정도니 당신 아우도 참 독하구려. 앞으로는 그 집에 걸음을 끊는 게 좋겠소.”
정 대부인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정말 선술 덕에 병을 치료한 거면, 그 사람들이 혼사를 추진하려 했겠소?”
정 대노야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