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95
교랑의경 395화
5월 초, 강주부에 무더위가 찾아왔다.
준마 한 마리가 먼지를 휘날리며 거리 위를 내달렸다.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에 먼지까지 휘날리니, 행인들은 재빨리 한쪽으로 피했다. 말을 탄 병졸은 무척 급한 소식을 전하러 오는 듯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온 것으로 보였다. 성문을 지키던 관졸들은 말을 멈춰 세우기는커녕, 서둘러 주위에 있던 백성들을 밀치며 길을 터주었다.
“세상에,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급하게 오지? 우리 성은 군영 쪽 일과 아무런 상관도 없을 텐데.”
“그냥 지나가는 거 아닐까?”
관졸들이 나지막이 속닥이던 중에, 말을 탄 병졸이 말고삐를 휙 잡아당겨 말을 멈춰 세웠다. 성문 앞에 급히 멈춰 선 말이 앞발을 쳐들며 울부짖었다.
“강주부 정씨, 정씨 가문의 저택은 어디 있소?”
병졸이 큰 소리로 물었다.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관청을 찾는 것도 아니고, 정씨 저택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고? 그럼 관청과 관계된 일이 아닌가 보네?
관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한 방향을 가리키면서 길을 안내했다. 병졸은 관졸들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채찍을 휘둘러 말을 급히 출발시켰다. 거리에 있던 행인들은 돌진해오는 말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길을 비켜 주었다.
“아씨, 큰일 났습니다!”
조 집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저택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서찰 한 통이 쥐여 있었다.
마침 회랑 아래에서 대청 문을 열고 있던 반근과 그 안에 있던 정교랑이 조 집사를 쳐다보았다.
큰일이 났다고?
정 대노야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무슨 큰일인데?”
“무슨 일이 나든 우리와는 아무 상관 없어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고요.”
정 대부인이 정 대노야를 다시 눕히려고 손을 뻗으며 말했다.
“말이야 쉽지.”
정 대노야가 쓴웃음을 지었다.
“좋은 일은 당연히 우리와 관련 없겠지만, 나쁜 일이라면 또 모를 일이야.”
정 대노야가 집사에게 어서 말하라고 눈짓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병졸이 대문 앞에서 정가 교랑을 찾으러 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정교랑을 찾는다길래 남정에 있는 저택을 알려 줬죠. 혼자 보내기가 영 불안해서 저도 따라가 봤더니, 조 집사가 병졸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병졸이 건넨 서신을 읽더니, 손까지 덜덜 떨었고요.”
집사가 놀란 표정으로 정 대노야에게 말했다.
기고만장하던 조 집사 그놈이 그렇게 놀랄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닌가 보군.
“그 후로 조 집사가 집에 들어갔고, 집안에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집사가 말을 덧붙였다.
울음소리?
“그 바보가 울었단 말인가?”
정 대부인이 서둘러 물었다. 집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문이 닫혀서 누구의 울음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만, 아무튼 여인의 울음소리였어요.”
바보가 울었든 아랫것이 울었든, 아무래도 상관없지. 어쨌든 큰일이 터졌다는 건 확실하군.
정 대노야가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댔다.
무슨 일이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주육낭은 천막 안에 앉아 같은 말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전장에서 들려오던 북소리와 목숨 걸고 싸우는 병사들의 외침, 살갗이 찢기는 소리가 주육낭의 귓가에 맴돌았다.
주육낭은 반나절 내내 같은 자세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에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붓끝에서 언제 묻혔는지도 모를 먹물이 말라 갔다.
주육낭은 서찰에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주육낭은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분명 빠른 시일 내에 강주부에 부고가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다. 범강림은 아직 제정신이 아니지만, 말편자로 관직을 얻은 서사근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을 테니 부고를 보냈을 것이다. 다른 병사들의 부고라면 깜깜무소식이거나 한참이 지난 뒤에 집으로 도착하겠지만, 그들과는 달리 돈도 있고 관직도 있는 무원산 형제들의 부고는 분명 곧바로 강주부에 도착할 것이다.
부고에 적힌 말들 외에 내가 또 무슨 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이 비통한 일을 다시 적는 것? 그 여인을 위로하는 말?
위로? 지금 상황에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어.
주육낭은 옆에 놓인 붓을 집어 들었다. 그의 손에 힘이 점점 더 들어가나 싶더니, 결국 팍 소리와 함께 붓이 부러졌다.
정교랑 저택의 대청에서는 여전히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반근은 바닥에 엎드린 채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조 집사는 한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병풍 앞에 앉아 있는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정교랑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그녀의 시선은 아직 서신을 향해 있었다.
서신에 쓰인 내용은 몹시 간략했다. 무장 집안인 주씨 가문에서 일한 조 집사는 서신에 쓰인 내용을 눈을 감고도 외워낼 수 있었다.
몇 년 몇 월 며칠에 누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와 같은 말들.
정교랑은 손을 들어 서신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범석두, 서무수, 서납월, 범삼축, 서봉추.”
정교랑은 서신 위에 쓰인 이름을 천천히 내뱉었다. 반근의 울음소리가 통곡으로 변했다.
“아씨, 아씨,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슬픔을 거두세요.”
반근이 무릎을 꿇은 채 앞으로 기어갔다.
“슬프지 않아.”
정교랑은 손으로 서신 위의 이름들을 매만졌다.
“가서 알아봐. 어떻게 죽은 건지.”
반근은 우느라 정신이 없어 정교랑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조 집사는 정교랑의 말을 단번에 이해하고 밖에 있던 병졸을 불렀다.
부고를 전하러 왔던 병졸은 바깥마당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언제 일어난 일입니까?”
시종 하나가 병졸에게 물었다.
“4월 19일이오.”
병졸이 대답했다.
4월 19일? 오늘이 5월 3일이니까, 고작 열흘 남짓한 시간에 용곡성에서 강주까지 왔다는 말이잖아? 정말 빨리 왔네.
병졸은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의 시종들을 쓱 둘러보고는, 따뜻한 차를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갈증을 해소했다.
“서 관구께서 경비를 두둑하게 챙겨 주신 덕분에 오는 내내 말을 바꾸어 가면서 달려왔소이다.”
병졸은 평생 서신을 날라도 벌지 못할 돈을 한 번에 받았기 때문에, 밤낮으로 연이어 사흘을 달리고 하루 쉬기를 반복하며 짧은 시간 안에 강주부에 도착했다.
시종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무원산 형제들과 직접 가까이 지낸 건 아니었기 때문에 깊은 비통함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었기에 왠지 모르게 숙연해졌다.
죽었다는 것은 곧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니까.
병졸은 잔에 남은 따뜻한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오는 길이 너무 고돼서 그런가.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차는 처음 먹어 보는 것 같네.
병졸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 문간방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네. 장식들이 소박해 보이지만, 초라해 보이지가 않아. 마시라고 내준 차도 꽤 맛있고, 탁자에 놓인 과일도 무척 싱싱해 보여. 예전에 들렀던 가난한 집안처럼 인색한 분위기도 아니지만, 부잣집처럼 호화롭지도 않아.
이 저택은 크고 깔끔해 보이는군. 골목에 들어오면서 보니 새로 지은 것 같은 집은 몇 채 없고, 대부분 부서지고 낡아빠진 것들뿐이었는데.
병졸이 의아해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근데 그 사람들은 무원산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나? 근데 어떻게 이런 부유해 보이는 곳에 의남매를 맺은 누이가 있는 거지?
병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던 와중에 조 집사가 보낸 시종이 그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병졸은 늘 그랬듯 서신의 주인이 자신을 부를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방으로 들어가 쉬지 않고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병졸은 예의를 지키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사환을 따라 뒷마당을 지나쳤다. 뜻밖에도 부고를 받은 다른 집들과는 달리 이 집은 매우 조용했다. 병졸의 귓가에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통곡 소리는커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적막감만 맴돌았다.
핏줄이 아니라 의로 맺어진 관계라서 그런가?
병졸은 회랑 아래에 서서 예를 올렸다.
“앉아요.”
방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졸은 고개를 들지 않고 회랑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들이 어떻게 죽었죠?”
부고를 받은 집에서 항상 나오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병졸은 무원산 형제들이 죽었던 날의 전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보통은 사망자의 사인이 된 전술만 간단하게 요약해서 알려주는 편이지만, 서사근이 두둑하게 챙겨 준 돈을 생각해서인지 병졸은 조금 더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병졸이 이야기를 하던 중 여인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울어야지, 우는 게 맞아. 사람이 죽었는데, 우는 게 정상이지. 비록 피붙이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의남매잖아.
“이번 전투로 부상자와 사상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범석두 등 다섯 병사는 전장에서 장렬히 전사하였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병졸이 허리를 숙이며 상투적인 말로 이야기를 끝마쳤다.
“그 말인즉슨, 그들이 성보를 수비하며 싸운 것이 이번 전투의 승패를 뒤바꿨다는 말인가요?”
여인이 물었다.
울먹이는 목소리가 아닌데? 저 여인이 우는 게 아니었나?
병졸이 잠시 멈칫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원래는 후방에서 기습을 준비하던 부대였는데, 오랑캐 정예병 부대가 그쪽을 치는 바람에······. 그런데도 그들은 바로 도망치지 않고 봉화를 올리고 전령병을 보내 본영에 있던 부대가 재정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벌어 주었습니다. 수적으로 몇 배나 차이나는 병력임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맞서 싸웠으니, 가히 영웅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며 역경에 맞서 싸웠으니, 가치 있는 죽음이라 할 수 있지요. 공로를 인정받을 만하네요.”
여인이 말했다.
“네, 조정의 포상도 곧 내려질 겁니다. 소인이 급하게 오느라 어떤 포상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위로금도 같이 내려올 거고요. 조정의 위로금이 올랐습니다. 우리 병사들은 인당 돈 다섯 관에 비단 여섯 필······.”
집안의 분위기에서 부고로 인한 비통함이 묻어나지 않아서인지, 병졸은 저도 모르게 괜한 말을 덧붙였다. 병졸이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여인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병졸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입을 닫고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대청에 단정하게 앉아 있던 여인은 짙은 색 옷에 꽃을 수놓은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꽃처럼 아름다운 묘령의 소녀였다.
병졸은 병풍 앞에 있던 소녀를 감히 더 보지 못하고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소녀의 옆에 엎드려 통곡하는 시녀가 보였다.
울던 여인이 저 시녀였구나.
“그깟 돈이나 비단이 무슨 대수라고요! 도련님들의 한 달 치 임금만 해도 돈이 얼마고, 비단이 몇 필인데! 셀 수도 없이 많아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아이고, 하느님!”
하느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느님, 정말 이럴 수는 없습니다!
남정의 골목에 숨어 머리만 내밀고 정교랑의 저택을 몰래 쳐다보던 이가 갑자기 튀어나온 어린아이 때문에 깜짝 놀랐다.
“뭐 하는 거예요!”
어린아이가 소리쳤다.
사환이 어린아이를 흘겨보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썩 꺼져! 꺼지라고!”
사환이 일부러 더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다그쳤다.
예전에는 사환을 보기만 해도 무서워서 찍소리도 못 내던 어린아이가 이번에는 느닷없이 돌멩이를 주워 사환을 향해 던졌다. 사환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어린아이에게 욕을 해대며 도망쳤다.
“상을 치르고 있다고?”
정 대노야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예. 집에 있던 도부(桃符: 악귀를 쫓는 용도의 부적)도 전부 가려 놓았고, 사환들도 모두 허리를 매듭지어 묶었습니다.”
집사가 대답했다. 정 대부인이 화를 내면서 찻잔을 내려놓았다.
“지금 감히 누굴 저주하는 게야! 그 지경으로 난리를 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아예 우리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
정 대부인이 소리치자, 정 대노야가 부인을 흘겨보았다.
“그만 좀 하시오.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난리부터 피울 셈이오? 얼마나 더 피해를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요!”
정 대노야가 미간을 찌푸리고 호통쳤다.
“지금 피해 보게 된 것이 다 내 탓이라는 말이에요?”
정 대부인이 곧바로 따져 물었다.
여인네들은 역시 눈치가 빨라.
정 대노야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 짚었다.
“사낭을 시켜서 알아보게 해라.”
정 대노야는 대부인의 말을 무시한 채 집사에게 지시했다.
집사는 서둘러 알겠다고 대답한 뒤 물러났다. 집사가 마당을 벗어나기도 전에 안에서 말다툼 소리가 새어 나왔다.
“똑바로 말해요. 그게 어떻게 내 잘못이에요? 당신과 이방 내외의 잘못이잖아요.”
“부인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괜히 혼자서 난리를 치고 그러시오.”
“지금 끝까지 내 잘못이라고 하는 거잖아요! 더는 이 집에 못 있겠으니, 내가 집을 나갈게요!”
“나가? 어디로 나갈 건데? 당신 친정 말이오? 그 집으로 돌아갈 수는 있고?”
정 대부인이 울음을 터트리자, 집사는 서둘러 도망치다시피 마당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