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87
교랑의경 487화
“목이 달아나? 누가 정 낭자의 목을 노리는데?”
진십삼이 손에 쥔 책을 내려놓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풍림이요. 귀판관 풍림 말입니다.”
시서가 곧바로 대답했다.
“풍림?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지?”
진십삼이 미간을 더욱 찌푸리고 물었다.
“태창로 전운사 횡령 사건을 조사했던 그 풍림이요. 이번에 폐하께서 풍림을 어사중승으로 임명하셨는데······.”
진십삼이 시서의 말을 끊고 물었다.
“풍림이 누군지는 당연히 알지, 이 녀석아. 풍림이 왜 정 낭자의 목숨을 노리냐고 묻는 거잖아!”
진십삼이 인상을 쓴 채 소리치자 시서가 아, 하고는 재빨리 대답했다.
“찻집에 있던 사람들 말로는, 귀판관 나리가 우연히 길에서 정 낭자를 스쳐 지나갔답니다. 정 낭자에게서 무시무시한 요기(妖氣)를 느끼고는 황제께 정 낭자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렸다고······.”
대답하던 시서가 진십삼의 발길질에 바닥에 엎어졌다.
“찻집에 있던 사람들의 말이라고? 네놈은 머리가 없는 게냐, 다리가 없는 게냐! 집에 가서 물어보고 올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진십삼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호통을 쳤다.
공자님께서 걱정하시는 걸 아니까 그런 거죠. 정 낭자에게 혹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바로 와서 알리라고 하셨잖아요. 초조해하고 걱정하실까 봐 한달음에 달려온 건데.
시서가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소인이 당장 가서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시서가 채 일어나기도 전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진십삼이 문밖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됐다. 내가 직접 가마.”
직접 가신다고? 하긴, 보통 큰일이 아닌데 직접 가셔야지.
시서가 서둘러 몸을 일으키고는 한쪽에 그대로 걸려있는 진십삼의 겉옷을 집어 들고 얼른 쫓아갔다.
“공자님, 옷은 입고 가셔야죠!”
진십삼이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말의 속도를 늦추고 한쪽을 바라보았다.
“공자님, 제가 가서 문을 두드리겠습니다.”
사환이 옥대교를 향해 가려던 찰나, 진십삼이 그를 불러 세웠다.
“정 낭자를 보러 가기 전에,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부터 알아봐야겠다.”
진십삼이 말에 박차를 가하자, 사환은 서둘러 그의 뒤를 쫓아갔다.
진 시강이 집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진십삼은 곧바로 진 시강을 찾아 관청으로 향했다. 진 시강은 진십삼이 올 줄 진작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참 빨리도 왔구나. 네가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사흘은 지나야 알 줄 알았는데.”
자리에 앉은 진십삼이 진 시강의 우스갯소리를 무시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아버지, 이번에는 무엇 때문입니까? 또 뒤에서 뭔가 바라는 자가 있는 겁니까?”
진 시강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누가 뭔가를 바라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진십삼의 표정이 굳어졌다.
“풍림은 그저 맡은 바 책임을 다했을 뿐이라고요?”
진 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일이 힘들어지는데.”
진십삼이 말했다.
풍림이라는 자는 자신에게든 남에게든 엄격한 사람이라는 말을 간간이 들었어. 게다가 지금은 어사중승 자리에까지 올랐다고.
워낙 강직한 사람이니, 사건을 사건으로만 대하지, 사람에 대한 악감정으로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이 아닐 거야.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에 책임을 다할 뿐,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라거나 무언가 바라는 게 있어 이번 일을 벌인 것도 아닐 테고.
쉽게 넘어갈 수 없겠는걸.
“그러게, 종친과 가까이 지내봤자 좋을 게 없다니까. 이 모든 게 다 그 말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들려주는 칠현금 연주가 아니라는······.”
진십삼이 무릎 위에 놓은 손을 세게 쥐었다.
스승님도 찾아내고, 병기를 만들기도 하고, 더 이상 치료도 안 하며, 신선의 제자니 뭐니 하는 헛소문은 잠재웠다고 생각했는데.
근래 들어 정 낭자는 글씨로 학자와 서생들의 인정을 받고, 문 앞에 자리를 마련하고 글씨를 가르치는 성인의 도를 따르고 있었거늘. 낭자에 관한 모든 일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아가나 싶었는데, 하필이면 지금 같은 때 갑자기 진안 군왕이 그런 말을 해서!
“군왕은 정 낭자가 신선하다고 여겼을 겁니다. 낭자에 대한 호기심에 편하게 우스갯소리도 한 거고요. 자신이 가볍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정 낭자를 얼마나 힘들게 만들지, 생각이나 해 봤겠습니까?
아마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 낭자를 그렇게 대한다고 해서, 낭자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낭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들을 신경 쓰지 않는 것뿐이겠죠.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사람은 이 무정한 일들을 전부 안고 갈 수밖에요.”
진십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십삼! 어디 가는 것이냐?”
진 시강이 외쳤다.
“풍림에게 가서 물어봐야겠습니다.”
진십삼이 대답했다.
“풍림에게 직접 묻겠다고? 네가 무슨 자격으로 물어?
넌 아직 수재도 아니다. 이 아비의 후광으로 이제 겨우 과거를 치르게 된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어사와 논쟁을 벌이겠다는 게야? 벼슬길에 나가기도 전에 조정의 기강을 흐린다는 죄를 뒤집어쓰려고 그래? 그리되면 평생 벼슬길은 꿈도 못 꿀 것이다. 정 낭자를 돕는 일은 평생 생각도 못 하게 될 거야!”
진 시강이 단호하게 말했다. 진십삼이 몸을 돌리고 물었다.
“그럼 아버지께서 정 낭자를 대신하여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정 낭자는 이런 일로 목숨을 잃을 사람이 아니야. 성가시고 골치 아픈 정도겠지. 기껏해야 경성을 떠나 강주로 돌아가는 선에서 끝날 게야.”
진 시강의 대답에 진십삼은 웃음을 지었다.
“정 낭자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쫓겨난단 말입니까? 떠난다면, 낭자가 떠나고 싶을 때만 떠날 수 있어요. 여태껏 낭자가 맞닥뜨린 골칫거리들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더는 안 됩니다. 그럴 순 없지요. 그러면 안 될 일이에요.”
“이 세상에 그러면 안 될 일이 어디 있느냐? 그만 돌아가 공부에 매진하거라. 정 낭자에게 그런 일이 닥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고, 정 낭자를 조금이라도 돕고 싶다면, 일단 네가 먼저 정 낭자를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네가 나서는 건 도리어 정 낭자에게 해가 될 수 있어.
이번 일은 예전과 달라. 누군가가 음지에 숨어 계략을 꾸미는 것이 아니니, 너희가 남몰래 뒤에서 행했던 그런 수법도 더는 통하지 않아. 이제 다들 환한 곳으로 나와 모습을 드러내고, 징과 북을 울리며 정정당당하게 싸우려 하고 있다. 결코 말 몇 마디로 사람들을 선동한다고 해서 끝날 싸움이 아니야.”
진 시강의 말에 진십삼은 조용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소자, 잘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진 시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십삼이 몸을 돌리고 관청을 나섰다.
이번에도 말이 옥대교 근처에서 멈췄다.
“공자님, 가 보시게요?”
사환이 물었다.
어차피 나를 먼저 찾아온 적은 없었으니, 내가 직접 찾아가는 게 더 낫겠지.
진십삼이 고개를 끄덕이고 옥대교 앞으로 말을 몰았다. 문을 지키던 사환이 얼른 문을 열고 진십삼에게 공손히 예를 표했다.
“진 공자님.”
“너희 아씨는?”
진십삼이 물었다.
“아씨께서는 출타하셨습니다.”
사환이 대답했다.
이 와중에 출타했다고?
잠시 흠칫하던 진십삼은 곧 웃음을 보였다.
역시 정 낭자답군.
“아씨께서는 큰아씨를 모시고 성 밖에 있는 태평거에 가셨습니다. 아마 밤이 되어야 돌아오실 거예요. 공자님께서 남기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아니면 아씨께 가서 공자님이 오셨다고 말씀드릴까요?”
사환이 물었다.
소란을 피해서 나간 건가?
하지만 이런 시기에는 아무리 태평거라고 한들, 태평할 리가 있나.
“풍 판관이 그러더군. 그 낭자는 검은 눈동자가 작고 흰자위가 큰 사백안이라 천하를 어지럽힐 관상이라고.”
“에이, 됐소. 정 낭자는 여인의 몸이라 관직을 얻지도 못하잖소. 장수나 재상이 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천하를 어지럽힐 수 있단 말이오? 그 귀판관이란 자가 귀신을 너무 많이 봐서 아무 일에나 깜짝깜짝 놀라는 거 아니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지금 정 낭자의 명성은 장수나 재상보다 더하잖소. 말편자와 신비궁을 만들 줄 아는 의형제도 있고, 비석에 새긴 글씨 하나로 학자와 서생들 사이에서 선생이라는 칭호도 얻었어. 게다가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비술도 알고 있잖소. 사람이 그리 대단할 수가 있나? 거의 요괴지, 요괴.”
“사람이든 요괴든, 아무렴 무슨 상관이오? 나는 정 낭자가 빚은 무원산 술을 딱 한 잔만 마실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요.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정 낭자가 시키는 대로 다 할 거라고!”
사람들의 우스갯소리 사이로 누군가가 손을 높이 들고 외쳤다.
“무원산 한 동이 주시구려.”
대청 안에 있던 점원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손님, 죄송하지만 여기엔 그 술이 없습니다.”
“아니, 태평거의 행수가 정 낭자 아니었소? 그런데 왜 무원산이 없단 말이오? 괜히 이리저리 숨기지 말고 까놓고 얘기해 보시오. 얼마면 되는지 말을 해 보라고.”
점원은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역시 괴이하고 수상쩍어. 이러니까 귀판관 나리가 자네들 주인어른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하시는 게지.”
무원산 술을 달라고 외쳤던 손님이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손님들의 대화에 잔뜩 화가 나 있었던 한 점원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행주를 팍 내팽개쳤다. 점원이 그 사람에게 가서 따지려고 하던 찰나, 다른 점원이 그를 막아섰다.
“관리인께서 당부하셨던 거 잊었어? 괜한 시비 걸지 마.”
“시비는 지금 저놈들이 걸고 있잖아.”
행주를 내팽개친 점원이 씩씩거리며 대꾸했다.
“관리인의 말씀을 잘 생각해 봐. 장사하겠다고 문을 열었으니, 손님더러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야. 손님들의 입을 막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고.”
점원이 목소리를 낮추고 그를 다독였다. 그때 새로운 손님이 대청 안으로 들어왔다. 점원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점원을 앞으로 밀었다.
“얼른 손님 맞이해야지.”
점원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들어온 손님을 맞이했다.
먼 길을 떠나온 듯한 행색의 키가 크고 젊은 사내 하나가 문밖에 서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 우선 사방을 살폈다.
“여기가 이렇게 많이 변하다니. 이젠 못 알아보겠네.”
사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내를 대강 훑어본 점원은 그의 신분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요즘 들어 경성에 많이 보이는,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경성으로 향하는 수재가 틀림없었다.
3년 전에도 경성에 왔었나 보네. 그러니까 저렇게 감탄하는 거겠지?
“예전의 취봉루를 말씀하십니까? 주인어른이 바뀐 지 꽤 됐습니다. 이제 여기는······.”
점원의 말이 끝나기 전에, 수재로 보이는 사내가 고개를 들고 편액을 올려다보며 읊조렸다.
“태평.”
“예, 예. 맞습니다. 여기가 태평거로 바뀌었습니다. 저희 가게 편액에 쓰인 글씨가 꽤 훌륭하지요?”
점원이 웃으며 말했다.
“글씨는 괜찮군.”
수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 동안 편액을 들여다보았다.
“더 좋은 글씨도 있습니다요.”
점원이 웃으면서 수재를 붙잡고 호객행위를 시작했다.
“수재, 일단 저희 태평거의 태평 두부와 과일 간식으로 입맛을 돋운 뒤에, 낙득자재를 한 솥 드시고 속 뜨끈하게 경성으로 가십시오.
가는 길에 살짝 방향을 틀면 차정사라는 사찰이 나오는데, 먼저 거기 벽에 쓰인 글씨부터 보시고, 사찰에 들른 김에 향불도 하나 올리시지요. 그다음에는 경성을 쭉 가로질러서 성문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화려한 경성이야 앞으로도 볼 날이 많잖습니까. 그러니 지금 당장은 급하지 않지요. 아무튼, 동문으로 나가서 십 리를 더 가면 거기 무원산 형제들의 무덤이 있는데, 비석에 새겨진 글씨가 얼마나 훌륭한지 모릅니다.
무원산 비석 글씨까지 다 보셨다면 다시 경성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그때쯤이면 아마 해가 졌을 테니, 시끌벅적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경성 저잣거리로 가셔서 신선거를 찾아보세요.
마지막으로 신선거에서 과로신선을 한 상 드시고 나면, 앞으로 경성에서의 날들도 후끈 달아오를 겁니다. 보양식 덕에 피로가 싹 가셔 정신이 번쩍 날 테니, 과거 급제는 따놓은 당상이지요.”
점원의 청산유수 같은 소개를 들은 수재가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