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79
교랑의경 579화
“뭘 하고 싶은 겁니까?”
숨이 막힌 몸종들이 손으로 자신의 목을 감싸기 직전, 진호가 실내의 정적을 깨트렸다.
“낭자가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혹시 더 좋은 방법이 있는 거예요?”
진호가 애써 웃음을 짜내면서 물었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단지 혼사를 치르려는 거죠.”
정교랑이 대답했다.
저 말에는 분명히 다른 뜻이 숨어 있을 거야. 빨리 생각해 내야 해, 빨리.
진호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가 떼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혼사, 혼사를 치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죠. 적어도 이 소식이 퍼지면, 어쩌면, 아마도······.”
진호가 말을 더듬다가 대뜸 방 밖의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빌어먹을! 어쩌면은 무슨! 아마도가 어디 있어!
혼사가 소꿉놀이야? 광대놀이야? 오늘 한다고 했다가, 내일 다시 처음부터 얘기하자고 할 리가 있겠냐고!
이 소식이 퍼지면, 그때 가서 없던 일이 될 수 있겠냐고!
혼사는 인륜지대사라 부모나 중매인이 맺어준 인연을 따라야만 하고,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하는 일인데. 아무렇게나 말을 바꾸면 천하의 웃음거리밖에 더 되겠냐고!
실내에 다시 한번 정적이 흘렀다. 두 몸종은 숨 막히는 정적을 참지 못하고 몸을 떨기 시작했다.
“왜 그에게 시집을 가려는 겁니까?”
진호가 목소리를 낮춘 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물었다.
“진 공자, 이건 내게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누구와 혼사를 올리더라도 다 똑같을 거라고 누누이 말했었잖아요.”
정교랑의 담담한 목소리가 진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렇지. 정 낭자는 항상 저 말을 했고, 실제로도 여러 번 저 말을 지켰지.
왕십칠에게도, 고 관인에게도 시집갈 수 있는데, 진안 군왕이라고 해서 못 갈 건 없지.
“그럼 난 어떻습니까?”
진호가 몸을 돌려 앞으로 한걸음 내디디고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낭자, 나한테 시집와요. 나한테요.”
정교랑이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진 공자, 당신은 달라요.”
왜 이럴 때만 다른 건데요! 왜 이럴 때만 나는 똑같다고 하지 않는 거냐고요!
진호가 정교랑을 빤히 바라보다가 주먹을 쥐고 자신의 다리를 세게 내리쳤다.
낭자가 내 다리를 고쳐 줬으니까. 낭자가 내 다리를 고쳐 줬기 때문에 나는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겠지.
그 사람들과 다르고 모두와 다를 거야. 그래서 나와 거리를 두고, 나를 밀어내고, 나를 피하는 거겠지.
“그럼 나도 있잖아! 나도!”
방 안에 들어선 이후 진안 군왕이 그 일 때문에 온 거냐며 묻고는 줄곧 입을 다물고 앉아 조용히 듣기만 하던 주복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정교랑, 나한테 시집와!”
주복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정교랑이 주복을 쳐다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어제 이미 그 사람과 약조해서요.”
어제?
주복이 멈칫했다.
어제 내가 길가에 잠깐 멈춘 사이, 군왕이 말에서 내려 먼저 정교랑을 만나러 들어갔던 그때?
고작 그런 간발의 차로?
만약 어제 내가 그를 제치고 먼저 여기에 들어왔더라면, 만약 내가 먼저 청혼을 했더라면, 어쩌면 내가 이 여인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리 단순하게 결정했다고?
주복은 무슨 말을 하고 싶다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는 방 안에 들어와 진호를 통해 그 소식을 알게 된 이후로, 머리가 터질 듯이 복잡했다. 진호와 정교랑이 무슨 대화를 하든 간에 옆에서 눈만 끔뻑일 뿐,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다.
진호가 정교랑을 쳐다보면서 씩 웃었다.
“누가 먼저 왔냐를 따지는 거예요? 정방, 내, 내가 먼저 당신을 알게 됐잖아요.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먼저예요. 내가 먼저라고요.”
정교랑이 고개를 저으면서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내가 먼저 알게 된 건, 그 사람이에요.”
아니라는군. 낭자가 또 아니라고 했어.
– 그게 아니라,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요.
– 해결할 필요 없어요. 별일도 아닌걸요. 그리고 이미 내가 그 사람과 약조했어요.
– 아니요. 내가 먼저 알게 된 건, 그 사람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낭자는 계속 나를 부정하고 그 자식을 인정하고 있어. 낭자가 그 자식을 인정한다고.
진호가 아무런 미동 없이 앉아 있는 정교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세 사람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저택 본채의 대청이 아니라 정교랑의 거처였다. 정 대노야와 정 이노야는 강주로 돌아갔지만,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정교랑은 널찍한 본채로 옮기지 않고 여전히 다소 협소한 거처에서 생활했다.
세 사람에 몸종 둘까지 좁은 방 안에 있다 보니, 진호와 정교랑 사이의 거리는 고작해야 한 걸음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게다가 진호는 정교랑의 코앞에서 정교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교랑이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한 번도 가깝지 않았던 사람처럼, 단 한 번도.
진호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랬구나. 난 모르는 일이다 보니 낭자에게 웃음을 샀네요.”
“공자가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죠. 우습지 않아요.”
정교랑의 대답에도 진호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어떻게 우습지 않단 말입니까. 난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우스운걸요.
진호가 고개를 들어 문밖의 여름 경치를 내다보았다. 여인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 진짜예요, 진 공자님. 저희 사돈댁 일이 진짜 그렇다니까요?
– 저희 노부인께서 그 바보의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이름이 교랑이에요. 교교라고도 하고요.
교교. 병주에서 홀로 강주까지 돌아온 교교.
진호가 손으로 바둑판 위에 선 하나를 슥 그었다.
교교는 어떤 사람일까?
– 반근이 썼던 공책도 돌려보내고, 새로 들인 몸종의 이름도 반근이라고 짓다니.
진호가 연못 가득 뒤덮은 연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바보는 정말 속 좁고 뒤끝 있는 사람인가 보네.
– 아씨, 벌거벗고 있던 사람이 또 왔어요.
진호가 고개를 들자 문 안에 선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덧 제법 굵어진 눈송이가 흩날렸다. 새하얀 눈보라 속에서 품이 큰 옷을 입은 채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인의 모습은 더없이 눈부셨다.
이 사람이 바로 도관에 10년 가까이 버려져 있다가, 홀로 천 리 길을 돌아온 교교 낭자구나. 이 사람이 바로 날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뚝딱하면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 내는 교교 낭자구나.
이 사람이 바로 차와 음식에 까다롭고 언제나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교교 낭자구나. 이 사람이 바로 보기도 전에 소문으로 알 수 있다던 그 교교 낭자구나. 이 사람이 바로 일단 죽을 지경에 이르러야만 목숨을 살려 낸다는 그 교교 낭자구나.
– 아니요. 내가 먼저 알게 된 건, 그 사람이에요.
진호가 정교랑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젓다가 헛웃음을 보였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니야, 어쩌면, 사실은, 예전에······.
진호가 또 고개를 저었다.
예전 그때, 낭자가 보수사의 차를 맛보고 싶다기에, 내가 명해 선사와 바둑 한 판을 두고 얻어온 차나무를 선물하러 왔을 때······.
그때야. 맞아, 그때가 틀림없어.
내가 차나무를 선물하려고 저택 안으로 들어왔는데, 낭자의 앞에 다구가 놓여 있었고, 낭자의 반대편에 놓인 방석에는 사람이 앉았다 간 흔적이 있었어.
그때만 해도 낭자를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낭자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는데.
그때 그 손님이, 바로 진안 군왕이었구나.
– 낭자, 차를 마시고 있었군요?
진호가 킁킁 냄새를 맡으며 물었다. 여태 마셔왔던 차와 다른 향이었다.
– 이건 무슨 차예요?
– 그쪽이 마실 차는 아니에요. 용건 끝났으면 이만 가요.
진호가 실소를 터트렸다.
그때 나는 정 낭자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실 엄두도 못 냈는데, 그 사람은 이미 정 낭자와 마주 앉아 낭자가 직접 우려 준 차까지 마셨구나.
선착순이라, 선착순. 뒤늦게 낭자를 알게 된 사람은 나였구나.
늦은 사람은 나인데, 어떻게 그와 비교를 하겠어. 그자를 먼저 알게 됐다는데, 내가 어떻게 비교가 되겠어.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이길 수 있겠어.
정말 우습구나. 참으로 우스워.
“정 낭자, 그렇다면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진호가 허리를 숙이고 예를 표했다. 정교랑이 몸을 일으키고 답례하자, 진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만 해 줘요. 낭자는 한동안 혼례 준비로 무척 바쁠 테니까요.”
진호가 정교랑의 뒤에 있던 두 몸종을 쳐다보고는 정교랑에게 물었다.
“반근들이 다 바쁜가 본데, 몸종은 충분해요? 어머니께 몇 명 더 골라오라고 부탁드릴까요?”
“아니에요. 바쁠 게 없어서요.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정교랑이 다시 한번 예를 표했다.
“하긴, 혼사는 집안일이니까요.”
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복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웃었다.
“경성에는 사촌 오라비 일가도 있고, 집안에 사람도 많이 있을 테니, 혼사 준비에는 차질이 없겠군요.”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진호가 정교랑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정교랑이 다시 한번 답례했다.
몸을 돌리고 발걸음을 옮기던 진호는 갑자기 멈춰 서서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몸을 돌렸다.
“아 참, 아직 간식 안 줬어요.”
진호가 웃으면서 정교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간식?
주복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진호를 쳐다보았다.
“알겠어요.”
정교랑이 시녀들에게 과일 절임을 찬합 가득 채워 진호에게 주라고 했다.
“갈게요.”
진호가 찬합을 받아들고는 정교랑을 향해 씩 웃었다.
진호가 몸을 돌리고 대청 밖으로 나갔다. 느릿느릿 걷던 진호의 발걸음은 차츰 빨라졌고, 가림벽을 지나자 더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복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멀뚱멀뚱 서서 진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를 바라보았다.
갔어? 이대로 간다고?
주복이 고개를 돌리고 정교랑을 쳐다보자, 그의 시선을 느낀 정교랑도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 새카만 눈동자.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그윽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저 눈동자.
주복이 고개를 홱 돌리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육공자님, 조심히 가십시오.”
문 앞에서 웃고 떠들던 시종들이 밖으로 걸어 나오는 주육낭을 보고는 곧바로 예를 갖추어 그를 배웅했다. 주복은 시종들에게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대문을 나섰다.
대문 앞에 세워 두었던 말이 없어진 사실을 알아챈 주복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빠르게 걸어가는 진호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말고삐를 쥐고 있지 않았지만, 말이 말굽 소리를 내며 진호의 옆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십삼!”
주복이 외쳤지만, 진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두 팔로 무언가를 감싼 채 걸어가는 진호의 뒷모습을 보던 주복은 어쩐지 오늘따라 그가 더욱 왜소하고 쓸쓸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팔로 뭘 안고 있는 거지?
아, 간식이 담긴 찬합이겠군.
“십삼, 십삼.”
주복이 진호를 서둘러 쫓아갔다. 진호의 걸음걸이가 워낙 빨랐던지라 주복은 어쩔 수 없이 큰 보폭으로 뛰어가야만 했다.
진호 가까이 다가간 주복이 진호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진호가 앞만 보고 걷는 탓에 주복은 진호의 힘에 부쳐 두어 걸음 끌려가고 말았다.
“왜?”
진호가 주복에게 붙잡힌 게 영 언짢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주복은 입만 우물쭈물할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주복은 진심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머릿속은 새하얗기만 하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설마 이번에도 간식을 달라고 하지 않은 거야?”
진호가 웃으면서 찬합을 더욱 꽉 끌어안고는 한쪽 팔로 주복을 막으면서 재차 말했다.
“내 거 뺏을 생각은 마. 갖고 싶으면 자네도 낭자한테 달라고 해. 이건 낭자가 내게 고맙다는 의미로 준 거니까.”
진호의 말을 듣자, 새하얗기만 했던 주복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몇 년 전 그때도 그 여인의 혼사 때문이었어. 정씨 가문에서 혼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 여인을 아무한테나 시집 보내려고 했을 때도, 나와 십삼이 다급하게 그 여인에게 어울리는 신랑감을 찾아주려고 난리를 쳤지. 지금처럼.
옛날 생각에 주복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 난 일이 있어서, 두 사람과 놀아 줄 수 없어요.
– 저거 가져가서 먹어요. 마음은 고마운데, 다른 데 가서 놀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똑같구나.
주복이 진호와 진호의 품에 있던 찬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제나 똑같아.
“십삼.”
주복은 말을 하고 싶어 입술을 달싹였지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난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진호는 뭐가 그리 바쁜지,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주복은 더는 진호를 붙잡지 않고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점점 더 멀어지는 진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된 것도 나쁘지 않지. 그 여인의 마음속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건 무척 잔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쭉 어린아이처럼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사실 그게 잔인하다기보다는, 이 상황이 너무도 비현실적이야. 잔인한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