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95
교랑의경 595화
“마마, 반강현에서 일식을 불러온다는 요승을 죽였던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장순이 눈썹을 치켜뜨고 말했다.
반강현 일식 요승 사건.
태후가 멈칫했다.
그 사건은 경성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지만, 정교랑의 명성을 따라 자연스럽게 경성까지 소식이 전해졌고, 후궁의 여인들도 당연히 알게 되었다.
작년에 일식이 일어났을 때, 정교랑이 반강현에서 일식을 빌미로 백성을 현혹하는 요승의 목을 벤 적이 있었지.
“사람들에게 대사라고 추종받던 승려는 목이 달아나자마자 요승으로 몰렸습니다. 그리고 그 요승의 목을 벤 정씨는 인간계에 내려온 보살이라는 명성을 얻었고요. 마마께 묻겠습니다. 백성들에게 보살이라고 추종받는 정씨가 아무런 연유 없이 마마께 벌을 받는다면, 백성들이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반강현의 스님은 요승이었기 때문에 정교랑의 손에 죽은 것이고, 그럼 정교랑의 손에 죽게 된 평왕은······.
태후의 표정이 급변했다.
“허튼소리 지껄이지 마시오! 그건 정씨가 백성들을 현혹했던 요사스러운 말이오! 정씨는 그런 요언을 퍼뜨린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어야 마땅하오!”
고능준이 목청을 높였다. 장순이 고개를 홱 돌리고 고능준을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정씨가 요사스러운 말로 백성을 현혹했다고 하였소?
그럼 평왕이 어찌 벼락에 맞아 죽었는지는 알고 있소? 평왕은 당시 하늘에 맹세컨대 만약 자신이 한 말에 한 치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기꺼이 하늘이 내리는 벼락을 맞을 것이라고 하였소.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쳤지.
황제, 문무백관, 내시, 금군 병사까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평왕의 말을 들었고, 벼락이 내리치는 광경을 지켜보았소. 평왕은 하늘에 맹세하였고, 그 맹세가 지켜지지 않았으니 하늘이 그에게 벌을 내린 것이오.
고 대인에게 묻겠소이다. 이보다 더 사실대로 정확하게 말할 수 있소이까?
그리고 태후마마께 묻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과연 평왕이 한 행동을 요괴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태후께서 정씨를 가두겠다는 것은, 정씨가 번개를 불러 평왕을 죽였다는 이유에서겠지요. 하지만 태후께서는 만백성의 눈에 보살인 정씨가 하늘을 대신하여 정의를 구현한 게 아니라고 설득하실 수 있겠습니까? 정씨의 손에 죽은 평왕이, 또 한 명의 요승이 아니라고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장순의 우렁찬 목소리가 침전 안을 가득 메웠다.
침상을 짚은 채 몸을 일으키려던 태후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태후는 불안한 기색으로 자신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거리를 좁혀오던 장순을 쳐다보다가 결국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설득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야.
애가의 손자가, 정말로 천벌을 받아서 죽게 된 걸까?
평왕이 용서받을 수 없는 십 대 죄악을 저질러서 천벌을 받아 죽게 됐다고 알려지면, 황릉에 안장될 수도 없어. 이리도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는데, 죽어서도 외로이 지내게 된다니.
태후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통곡했다.
안 된다. 우리 가엾은 평왕을 그렇게 둘 수는 없어!
“하지만 정씨는 번개를 불러올 줄 안다고 했소! 그건 정씨가 스스로 했던 말이고 세상 사람 모두가 아는 사실이오!
반강현에서의 일은 정씨가 그 요승과 아무런 원한 관계가 아니었지만, 이번 일은 다르오. 정씨를 우리 가문으로 시집보내자는 제안은 평왕이 먼저 꺼냈고, 그 말을 따라 태후마마께서 혼인을 명하시고, 황제 폐하께서 윤허하게 된 일이외다. 정씨는 이 혼사에 대해 불만을 품었고, 태후를 만나러 오지 못하게 집안 어른의 다리까지 부러트린 사람이오.
게다가 그 이전에는 사촌을 시켜 내 아들을 암살하려고까지 했지! 정씨의 불순한 의도가 이리도 투명하게 보이는데, 어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게요!”
고능준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고 장순을 노려보았다.
“물론 장 대인께서는 다르겠지요. 장 대인과 정씨는 같은 고향 출신이기도 하고, 정씨에게 큰 은혜를 입어 서로 시녀를 교환할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고능준이 다른 대신들을 훑어보았다.
“진 대인께서도 정씨에게 은혜를 입었다지요?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지금은 정씨와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지만, 언젠가 죽을병을 고쳐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잖소이까!”
“고 대인,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억지 부리지 마시오.”
진소가 격노했다. 고능준이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억지 부리는 게 뭐 어때서?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게 과연 낫다고 할 수 있나?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 맞지만,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사람이라면 다들 각자의 이득을 위한 사심이 있기 마련이니까!
태후가 울음을 멈추고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그래, 장순과 진소에게 있어서 저 여인은 은인일 테니, 그들은 저 여인을 위한 말을 할 테지. 다들 한통속이야! 한통속이라고!
“정씨, 이제 와서 번개를 불러오지 못한다고 할 수 있느냐?”
태후가 이를 악물고 물었다. 태후와 대신들의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던 정교랑이 태후를 향해 예를 표한 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덧붙였다.
“소녀, 번개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정교랑의 대답이 끝나자 침전 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정교랑에게 질문했던 태후조차 놀라서 흠칫했다.
뭐라고? 번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인정을 했어?
그럼 애가가 반나절 동안 대신들과 말씨름을 한 게 뭐가 돼?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이나?
태후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소녀가 불러오는 번개는 소녀 스스로에게만 불러올 수 있지, 남에게 불러올 수는 없습니다. 당시 소녀가 폐하께 약조했던 것도 소녀 스스로 번개를 불러 죽겠다고 한 말이었습니다.”
뭐라고? 지금 말장난하는 건가?
“허튼소리! 그럼 평왕이 스스로 번개를 불러와서 죽은 것이니, 천벌을 받았다는 뜻이더냐!”
태후가 호통쳤다.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평왕이 자신을 해친 것은 맞으나, 천벌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지?”
황후가 불쑥 끼어들었다. 고능준이 매섭게 황후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고입니다.”
정교랑이 대답했다.
사고?
“그럼, 평왕의 죽음은 천벌이 아니라는 것을 낭자가 증명할 수 있소이까? 평왕이 십 대 죄악을 저질러서 천벌을 받은 게 아니라, 사고로 그리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겠냐는 소리요.”
장순이 이어서 물었다. 고능준의 시선이 이번에는 장순에게로 향했다.
저놈은 지금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태후와 대신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야.
평왕의 죽음은 천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평왕이 십 대 죄악을 저질렀다는 오명을 벗을 수 있다고, 황실이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할 방법이 있다고.
엄청난 유혹이로구나!
정교랑이 장순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능합니다.”
“아무도 믿지 않을 거요!”
고능준이 악을 쓰면서 소리쳤다. 정교랑이 고능준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고 대인께서는 소녀가 명망이 있다 하셨지요. 그리고 소녀가 번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 모두가 알고 있다고 하셨고요. 그러니 소녀는 세상 사람들을 믿게 할 수 있습니다.”
명망이란 것은 참 좋은 것이야. 어떻게 쓰냐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니까.
“고 대인께서는 소녀가 번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아니면 소녀가 번개를 불러올 수 없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정교랑이 고능준을 쳐다보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세상 사람이 다 내가 번개를 불러올 수 있는 줄로 믿는다면서요. 그 믿음을 이용해서 평왕의 오명을 씻고, 황실의 체면을 지키고 싶지 않나요?
당신들은 평왕의 명성이, 황제 폐하의 명성이, 황실의 명성이 신경 쓰이지도 않나요?
엄청난 유혹이로구나.
고능준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딴 건 신경 쓰이지 않아.
평왕이 십 대 죄악을 저질렀다는 오명을 떨치든 말든, 천벌을 받아서 죽은 것이든 아니든, 나는 지금 그딴 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고.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건, 평왕이 죽었다는 사실뿐이야. 이미 벌어진 죽음이라면, 절대 허탈한 죽음이 되어서는 안 돼.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을, 정말로 죽어야 하는 사람들을 꼭 사지로 몰아넣어야 해!
하지만 고능준과는 달리, 누군가는 평왕의 명성과 황실의 명성을 신경 쓰고 있었다.
“정말로 가능하다는 말이냐?”
침상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태후가 정교랑을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태후가 물음을 던지자, 많은 사람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되었구나.
진소는 손바닥이 흥건한 느낌에 손을 살짝 문질렀다. 정교랑의 말이 끝난 뒤, 사람들은 질식할 것만 같은 적막을 느꼈다.
그나저나 저 여인······.
진소의 시선이 정교랑에게로 향했다.
침전 안에서 살벌한 말들이 쉼 없이 오갔지만, 저 여인은 무사태평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어. 분명 자신에 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꼭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처럼 흥미진진하게 남의 얘기를 듣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
물론, 오늘 같은 상황은 풍림이 저 여인을 탄핵했던 지난번 상황과는 완전히 달라. 이 자리에서 변명 같은 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변명 한마디 하지 않고 깔끔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어.
모든 일에는 좋고 나쁨이, 복과 화가 동시에 오는 법. 저 여인은 번개를 불러올 줄 안다는 말을 했기에 오늘 같은 죄를 뒤집어쓰게 됐지만, 바로 그 말 덕분에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구나.
어떻게 보면 참 단순한 일이었는데, 내가 괜히 긴장하고 장순까지 나서게 되었네.
저 여인은 항상 심장을 부여잡을 만할 일들에 휘말리지만, 항상 마지막에 나타나서는 한없이 단순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군. 꼭 우리를 바보 취급하는 것처럼 말이야.
아니, 아니, 우리가 바보 같은 게 아니라, 너무 똑똑해서 생각을 너무 복잡하게 하는 것일지도. 저 여인은 바보였던 시기가 있기에 뭐든 단도직입적으로 간단명료하게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거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라······. 사람은 저마다 품고 있는 사심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지.
“어떻게 증명할 테냐?”
태후의 목소리가 진소의 생각을 끊었다. 진소가 표정을 가다듬고 진지한 얼굴로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오는 날이면, 세상 사람들에게 소녀가 번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정교랑이 대답했다.
“그런 날씨가 한 해나 반년이 넘도록 없다면 어떻게 할 거요?”
고능준 쪽의 관리 한 명이 물었다.
고능준은 조금 전 광기를 보이면서 목청을 높이던 것과는 딴판으로 입을 다물고 잠자코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고능준의 침묵은 그가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라, 서슬 퍼런 눈빛으로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것임을.
“그래. 평왕이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느니라.”
태후가 말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닷새 이내로 또 그런 날씨가 올 거예요.”
정교랑이 말했다.
“정 낭자가 참 대단한 능력을 갖췄습니다. 비바람을 불러올 줄도 알고.”
어떤 관리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정교랑이 그 관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비바람은 어디에나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있어요. 그 비바람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아둔하기 때문이죠.”
누군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지만, 곧바로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웃음을 삼켰다.
지금 상황에서 웃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모든 사람의 이목이 정교랑에게 집중이 되어서 웃음을 터트린 사람을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정교랑에게 말을 건넸던 관리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씩씩대며 콧방귀를 뀌고,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누가 강주 사람 아니랄까 봐.”
그가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고능준의 편에 서지 않은 장순을 욕했다. 혼잣말보다도 작은 목소리인지라, 그의 말이 장순의 귓가에까지 닿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