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94
교랑의경 594화
침전 안의 분위기가 기이해졌다. 정교랑은 의형제들을 위해 공로를 따지면서, 분명 황제 앞에서 스스로 번개를 불러 죽겠다는 선언을 했다.
당시 정교랑의 말을 두 귀로 직접 들은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정교랑의 명성이 날로 유명해지면서 정교랑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전설처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따라서 스스로 번개를 불러 죽겠다는 말도 자연스레 모두가 아는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러니 성패나 좋고 나쁨이 모두 한 사람에게 달렸다(성야소하패야소하成也蕭何敗也蕭何-성공하는 것도 소하에 달려 있고, 실패하는 것도 소하에 달려 있다’라는 뜻으로, 한 사람의 손에 성패가 모두 달려 있음을 비유)는 옛말이 있는 게지. 그때는 허무맹랑하고 요사스러운 말로 명성을 얻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그 말들이 칼이 되어 네 목을 노릴 것이야.
고능준이 정교랑을 쳐다보는 눈빛에는 음험함이 서려 있었다.
번개를 불러 죽겠다던 수단은 저 여인 스스로 말한 것이고, 번개를 불러오겠다고 한 이유 또한 그날 황제가 저 여인에게 직접 물어 알게 된 것이다. 이 자리에는 그날 저 여인이 한 말들을 똑똑히 들은 대신들이 수두룩해.
저 여인은 자신이 한 말에 제 발이 저려 서슴없이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람이야.
맞아, 바로 저 여인 때문이야! 오늘 벌어진 모든 일도 다 저 여인 때문이다! 저건 사람이 아니라 불길한 요괴가 틀림없어!
주위 사람들의 경악과 공포,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보라고! 저들도 틀림없이 저 여인을 요괴라고 믿는 것이야.
아니, 아니지. 저 요괴뿐만이 아니다. 제 입으로 요괴를 불러왔다고 한 황후도 있고, 진안 군왕까지 있어! 저 세 사람이 협심하여 평왕을 해치고, 황제의 목숨을 노린 것이야!
속으로 포효하면 할수록, 고능준은 몸이 점점 더 심하게 떨려왔다.
“고 대인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 거요? 어린 처자가 내기하며 홧김에 내뱉은 치기 어린 말을 곧이들었소?”
황후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치기 어린 말이라고요? 황후께서는, 그 말이 곧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는 뜻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고능준이 냉소를 보였다.
“무엄하다!”
황후가 눈썹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고능준, 어찌 그리 결례를 보이는 것이오!”
진소도 고능준에게 호통쳤다. 하지만 두 사람의 호통에도 고능준은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잘 보시게나. 여기 있는 사람들의 눈빛에 서린 꺼림칙함과 의심, 그리고 불쾌한 기색을. 의심의 씨앗은 이미 벌써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를 잡고 싹을 틔우기 시작했어.
저런 요괴를 이 자리에 계속 있게 놔두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저 요괴가 번개를 불러와 평왕을 죽이고, 황제의 분통을 터트려 쓰러지게 했는데, 그다음은 누가 될지 어떻게 알아?
“황후께 여쭙습니다, 태후마마께서는 어디 계신지요?”
고능준이 두 사람의 호통을 가뿐히 무시하고 물었다. 애초에 고능준은 반박하려고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 질문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는 굳이 길게 싸울 마음이 없다는 듯이,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질문 하나하나만을 내뱉었다.
“태후마마께서는 얼마 전 황자를 잃은 슬픔에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하고 계시오. 폐하와 평왕은 모두 태후마마와 가장 가까운 분들이지. 본궁은 아직 병상에 누워계신 태후마마께 이 일을 섣불리 알릴 수가 없었소.”
섣불리 알릴 수가 없었다고? 일부러 알리지 않으려던 거겠지.
저 기세등등한 모습 좀 보게나. 황후, 내가 정말로 황후를 얕봤구려.
고능준이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폐하와 평왕이 모두 태후마마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셨지요? 태후마마께서는 폐하의 모친이고, 평왕의 조모입니다. 태후마마께서 겪으실 슬픔을 감히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태후마마께서는 단지 누군가의 어미나 조모이기에 앞서, 일국의 태후십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태후께서 수렴청정하시어 나랏일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니 태후마마를 뵙는 것 또한 막아서는 아니 되지요!”
고능준은 마지막 한마디를 할 때 황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막는다는 표현을 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황후에게 향했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네. 저런 사람이라면 황제를 후궁으로 피신하게 만들 정도긴 하겠어. 저 사람은 침전 안으로 들어온 뒤, 고작 말 몇 마디로 뜻밖의 사고를 철두철미한 음모로 바꿔버리고, 나와 황후를 모든 사람의 적으로 만들었어.
정교랑이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뒤에서 정교랑의 어깨를 살짝 쳤다.
정교랑이 고개를 돌리자, 진안 군왕이 의아한 얼굴로 정교랑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웃어요?
별거 아니에요.
정교랑이 눈빛으로 답한 뒤, 입꼬리를 내렸다.
고능준의 외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감히 누가 막아서겠느냐고 물었소!”
고능준이 눈썹을 치켜뜨고 자리에 있던 대신들을 둘러보았다.
“진소, 대인이 막을 거요?”
태자가 있다면 태자가 대리청정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은 아직 책봉된 태자도 없을뿐더러, 그나마 남아 있던 유력한 황위 계승자마저 죽어 버렸다. 그리고 태자가 없을 때, 황제가 앓아눕는다면 관례에 의해서 태후가 수렴청정을 해야 한다.
진소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고능준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에게 향했다.
“그대들이 막을 텐가?”
고능준이 목청을 높여서 소리쳤다.
침전 안에 정적이 흘렀다.
“태후마마 납시오.”
문이 열리고 휘장이 들어 올려지자, 태후가 두 궁녀의 부축을 받으며 침전 안으로 허둥지둥 들어왔다.
고능준이 황후를 노려보았다.
내가 입궁한 순간부터, 후궁은 더는 황후의 관할이 아니게 됐습니다.
황후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고개를 숙인 채 태후에게 예를 올렸다. 고능준도 서둘러 몸을 돌려서 큰절을 올리며 울먹였다.
“마마.”
자리에 있던 대신들도 고능준을 따라 태후를 향해 큰절을 올렸지만, 태후는 그들을 무시한 채 황제가 누워있던 침상으로 곧장 달려갔다. 예를 올리고 있던 황후는 태후가 데려온 궁녀들에 의해 한쪽으로 밀려났다.
“황상!”
태후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고는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살벌한 대화에 찍소리도 못 내던 비빈들이 이때다 싶은 마음으로 태후와 함께 울음을 터트렸다.
“황후!”
통곡하던 태후가 잠시 뒤 눈썹을 치켜세우며 황후를 노려보았다.
“황후, 어찌 애가에게 알리지 않은 것인가!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왜 애가에게 말하지 않았느냔 말이야!”
황후가 두려운 기색 없이 다시 한번 예를 표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대답했다.
“신첩은 마마께 어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찌 저런 당당한 태도로, 저런 염치없는 말을!
태후가 눈을 부릅떴지만, 예상치도 못한 염치없는 말에 딱히 추궁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신첩은 마마께서 감당하기 힘드실까 봐 염려되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이 일로 화병을 얻으셨고, 귀비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들었는데, 신첩이 어떻게 마마께 말씀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신첩은 감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귀비가 광증을 보이는 바람에 고능준이 귀비를 기절시킨 일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지만, 황후는 침전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벌써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는 곧, 황후가 후궁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고능준이 황후를 쳐다보면서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태후가 황후를 흘겨보고는 고개를 돌리고 태의를 불렀다.
“황상의 용태는 어떠한가?”
태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태의들이 태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황제의 병증을 소상히 말했다. 황제가 언제 깨어날지 모르고, 깨어난다고 해도 지각이 있을지는 모를 일이라는 말에 태후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세상에나, 세상에!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지금 애가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마마, 마마, 슬픔을 거두시옵소서.”
고능준의 말에 태후는 당장이라도 혼절해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니야. 고능준이 보냈던 사람이 한 말처럼, 애가가 죽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절대로 그들의 뜻대로 되게 둬서는 안 되지!
“정씨!”
태후가 갑자기 소리쳤다. 정교랑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예를 표했다.
“죽을병이 아니면 못 고친다더니, 왜 지금 와서는 못한다는 말인가?”
태후가 물었다.
“폐하께서 깨어나시게 된다면 죽을병이 아니기에 소녀는 고칠 수 없습니다. 혹 폐하께서 깨어나지 못하시더라도, 풍질 같은 중증은 소녀가 고칠 줄을 모릅니다. 스승님이 제게 가르쳐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교랑이 대답했다.
황제가 깨어나든 깨어나지 않든, 나는 황제의 병을 고칠 수 없다. 아버지께서는 왜 중풍 치료법만은 가르쳐 주지 않으셨던 걸까?
정교랑이 침상 위에 누운 황제를 쳐다보았다.
이유야 간단하겠지. 아버지께서는 내가 황제의 병을 고치지 않길 바라신 거야. 꼭 일 년 후에 붕어해야만 하는 황제의 목숨을 구해 주지 말라고.
“황당하구나!”
태후가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당연히 고칠 수 없겠지. 네가 악한 마음을 써서 평왕을 해치고, 폐하를 해친 것이 아니더냐!”
태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일제히 경악했다.
“마마!”
진안 군왕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 입 다물라!”
태후가 단호하게 호통치고는 정교랑을 노려보면서 삿대질했다.
“여봐라, 당장 저 계집을 가두어라!”
침전 밖에 있던 시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정교랑을 매섭게 노려보는 고능준의 눈빛에 광기가 비쳤다. 고능준은 애써 억누르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손과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저 계집을 가둬라! 그리고 목을 베어라! 목을 베어!
“마마.”
시위들을 제지한 진소가 태후를 불렀다.
“무엄하다! 황상이 깨어나지 못하니 이제는 눈에 뵈는 게 없더냐! 애가의 말은 말 같지도 않아서 듣지 않겠다는 게야?”
태후가 격노했다.
“말도 들어줄 수 있는 말 나름이지요!”
누군가가 거침없이 소리쳤다. 침전 안에 있던 사람들이 흠칫 놀랐다.
누구야? 누군데 저런 말을 함부로 하는 거야?
사람들이 소리를 쫓아가자, 조용히 뒤에 서 있던 키 큰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장순! 또 네놈이로구나!
고능준의 심장이 더욱 빨리 뛰었다.
“지금 네, 네가 감히 애가의 말이 말 같지 않다는 소리를 하는 게냐!”
태후가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럼 마마께서 하신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장순이 가차 없이 대꾸했다.
“장순, 태후마마를 모독하고 조정의 기강을 어지럽히려 하시오? 어사는 어디에 있는가!”
고능준이 눈을 부릅뜨고 호통쳤지만, 장순은 고개를 젓고는 그의 말을 따라 했다.
“어사는 어디에 있는가! 저 잔챙이 놈이 조정의 기강을 어지럽히려 하는 게 보이지 않느냐!”
잔챙이 놈이라니! 저 빌어먹을 놈이 입을 열자마자 욕을 해?
창피한 줄도 모르는 놈이 사람 꼴을 하고는 입만 열면 욕지거리를 내뱉다니, 대유학자라는 칭호는 무슨 술수를 써서 얻은 건지 모를 일이군!
고능준이 뭐라 대꾸를 하기도 전에 장순이 고개를 돌려 태후에게 소리쳤다.
“마마께서 이리하시는 건, 천자와 평왕을 어질지 못하고 의롭지 못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신은 조정의 중신으로서, 폐하와 평왕을 대간대악한 자로 몰아세우는 마마를 제지해야만 합니다. 마마를 제지하지 않는 것이 바로 눈에 뵈는 것 없고 나라에 불충한 간신이 되는 것이지요!”
“허튼소리, 허튼소리! 애가는 폐하와 평왕을 위해 저 요괴를 가두려는 게야!”
태후가 반박했다.
평왕이 벼락에 맞았어, 벼락에 맞았다고!
하느님, 어떻게 평왕에게 벼락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천벌로 벼락을 맞아 죽은 자라는 오명이 천추에 남을 텐데, 그렇게 되면 평왕이라는 봉호도 남기기 힘들단 말입니다!
죽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죽인단 말입니까, 하느님!
안 돼, 절대로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할 수 없어!
평왕은 벼락에 맞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 저 요괴의 손에 죽은 것이야! 저 요괴가 평왕을 해쳤어! 그렇게 해야만, 그렇게 해야만 평왕의 명예를 지킬 수 있고, 황실의 체면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