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38
교랑의경 738화
박장대소였을지 언제나 보이는 그 희미한 미소였을지 궁금하네.
“젊은이.”
귓가에 상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진호의 생각이 끊겼다. 진호가 고개를 들고 옆에 앉은 상인을 쳐다보았다.
“차를 좀 더 가져다줄까?”
상인이 다정하게 물었다. 진호가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손에 쥐고 있던 서신을 잘 접어서 품에 넣었다.
“괜찮습니다. 이제 성으로 들어가야죠.”
진호가 지팡이를 잡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좁디좁은 공간에 사람까지 많다 보니, 상인은 진호가 넘어질까 봐 걱정되어 서둘러 몸을 일으키고 그를 부축했다.
진호가 힘겹게 일어나서 양쪽 겨드랑이 아래로 지팡이를 집어넣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진호가 예의 바르게 말했다.
“괜찮소. 괜찮아.”
상인이 손사래를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제가 불구인 게 가엾어서 도와주시는 거지요?”
진호가 미소 띤 얼굴로 상인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허를 찌르는 질문에 상인은 온몸이 굳어버렸다. 곧이어 그는 민망한 듯 웃었다.
맞는 말이긴 하지. 절름발인 게 가엾어서.
하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은 상대가 자신을 가여워하는 건지, 경멸하는 건지 구분하기 힘들겠지.
이 젊은이가 괜히 나 때문에 기분이 상했나?
상인이 어색해하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던 그때, 사내가 그를 향해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가엾이 여겨 주시는 것 또한 선량한 마음이지요. 소생, 어르신께 감사드립니다.”
상인이 멈칫하고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유, 아니오, 아니외다. 사소한 것이오. 이런 사소한 것에 어찌 감사 인사를 받는단 말이오.”
상인이 연신 고개를 저으면서 진호를 위해 길을 터줬다.
“잠시 비켜 주시오. 길 좀 비켜 주시오.”
사소한 수고보다 얻기 힘든 것은, 남을 믿고, 그 사소한 수고를 받아들여 주는 것이리라.
사실 사소한 수고를 받아들이고, 남을 믿는 것은 쉬운 일일 수도 있다. 남을 믿는 일이 꼭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건 아니니까.
진호는 자신이 이렇게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아들이며 지내온 나날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진호가 웃으면서 지팡이를 짚고 상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진호는 차양막 아래에서 상인을 향해 다시 한번 예를 표하고 자리를 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안의 큰길 위에서 다급한 말굽 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탄 두 사람이 성 안쪽에서 성문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조금 전에 주복 일행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벌써 다 흩어진 터라, 사람들은 말을 탄 두 사람이 바로 조금 전에 관리들에게 둘러싸여 성안으로 들어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공자님, 잘못 보신 거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진 공자님이 왜 이곳에 계시겠어요?”
사환이 소리쳤다. 주복은 사환의 말을 무시한 채, 성문을 나가 찻집 앞에 멈춰 섰다.
내가 잘못 봤을 리가 없어. 절대로 잘못 봤을 리가 없다고.
성안으로 들어가 관리들이 준비해 둔 연회석에 앉았던 주복은 계속해서 불안한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동시에 성문 앞에서 잠시 스치듯 봤던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분명히 그놈이야! 그놈이라고!
그놈은 사람이 가득 찬 진흙탕 안에서도 가장 눈에 띌 놈이야.
“공자님, 뭘 좀 드시겠······.”
주인장이 찻집을 향해 달려온 주복을 보고는 서둘러 그를 친절하게 맞이했다. 그런데 주복은 주인장을 그대로 지나쳐서 차양막 아래로 들어갔다.
찻집에 앉아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소리가 순식간에 멈추고, 용맹해 보이는 사내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조금 전에 여기 앉아 있던 사람은 어디 있소? 젊은 사내이고, 천중 지역의 말씨를 가지고 있소만.”
주복이 한 탁자 앞에 멈춰 서서 물었다. 조금 전, 진호를 부축해줬던 상인이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나섰다.
“그 다리가 불편한 공자를 찾는 것이오?”
그러게 그 젊은이는 절대로 혼자 외지에 나올 사람이 아니라니까. 곳곳에 이렇게 친구들이 있으니 혼자 다닐 수 있는 거겠지.
주복이 흠칫 놀라고는 되물었다.
“다리가 불편하다고요?”
“그렇소. 지팡이를 짚고 있던데? 방금 막······.”
절름발이라는 말에, 찻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주복은 사람들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다리가 불편하다는 말만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럴 리가 없잖아!
“공자님, 관아에 도움을 청해서 같이 찾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진 공자님께서 이 성에 들어오셨다면, 아직은 떠나지 않으셨을 겁니다. 이곳이 아무리 크다 해도, 일단 성문을 닫으면 좀 더 빨리 찾으실 수 있겠지요.”
사환이 큰 소리로 외치며 눈 깜빡할 사이에 말을 타고 달려가는 주복을 뒤쫓았다. 주복이 갑자기 말고삐를 잡아당기면서 말을 멈춰 세웠다.
“찾을 필요 없다.”
주복이 한 방향을 내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저렇게 가면, 얼마 못 가니까.”
사환이 의아한 표정으로 주복의 시선을 따라가자,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서신을 대필해 주기도 하고, 서신을 쓰기 위한 종이와 붓을 대여해 주기도 하는 노점에 젊은이 하나가 바닥을 자리 삼아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발치에는 화폭 두루마리 한 개와 장궁 한 개가 놓여 있었고, 지팡이 두 개가 그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의 두 지팡이는 다른 그 무엇보다 훨씬 눈에 띄었다.
지팡이를 짚으면 빨리 걷지 못하니, 멀리 가지도 못하는구나.
사환의 시선이 다시 자리에 앉은 사내에게 향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내는 몸을 앞으로 살짝 굽히고 고개를 숙인 채 붓을 들고 종이 위에 글을 쓰고 있었다.
사환이 무언가에 집중한 사내의 준수한 옆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말 진 공자님이시네.”
정말 저놈이로구나! 그런데 저놈이 여긴 왜 온 거야?
주복이 앞으로 몇 걸음 가다 말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저놈을 봐, 말아?
“공자님, 글씨가 참으로 예술입니다.”
노점의 주인인 중년 사내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는 진호가 서신에 쓰는 내용을 감히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흘깃 보기만 해도 정갈한 진호의 글씨가 명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진호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과찬이십니다. 좋은 글씨라고 할 수는 없지요.”
중년의 사내가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진호가 고개를 들고 웃었다.
“겸손 떠는 게 아니라, 저보다 훨씬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있거든요. 저는 그 사람과 비교한 겁니다.”
중년의 사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산 너머에 또 산이 있다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법이지요.”
중년 사내가 말했다. 진호는 말없이 웃고는 고개를 숙이고 서신을 이어 써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호는 서신을 곱게 접어서 봉투 안에 넣었다.
중년의 사내는 종이 위에 쓰인 ‘부친’ 두 글자를 보고 그가 아버지에게 서신을 썼음을 알아차렸다.
그럼 이번에는 어머니께 쓰려나?
“공자님, 참 다정하시구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내에게 각각 한 장씩 써 주는 거로군요.”
‘아내’라는 말에, 진호가 붓을 멈췄다.
“저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습니다.”
중년의 사내가 흠칫 놀랐다가 진호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중년의 사내는 아차 싶은 마음이 들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장가갈 생각도 없고요.”
진호가 이어서 말했다.
“장가는 가셔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혼자 얼마나 쓸쓸하고 고독하겠습니까.”
중년의 사내가 진심 담긴 말을 하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진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분명히 좋은 처자가 나타날 겁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진호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진호가 표정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고독하고 쓸쓸한 것은 부인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년의 사내가 눈을 크게 뜨고 진호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없다고?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바로, 마음이 끌리는 사람을 마주치는 것이지요. 어떤 이들은 삶이 다하는 날까지도 그런 사람과 마주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을 마주칠 수 있다면, 그건 크나큰 행운이에요. 마음속에 그 사람이 있다면, 인연이 되지 못해도, 매일 아침을 같이 맞이할 수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마음속에 그 사람만 있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 그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왜 고독하고 쓸쓸한 마음이 들겠습니까?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인연을 맺어 매일 아침을 함께한다고 해도, 결국 쓸쓸하고 외롭기 마련인걸요.”
진호가 웃으면서 말하고는 손에 쥔 붓을 내려놓았다. 그는 서신을 잘 접어서 품에 넣고 중년의 사내에게 큰돈을 주어 값을 치렀다. 진호는 가장 먼저 두루마리를 등 뒤로 메고, 장궁을 한쪽 어깨에 짊어진 뒤, 두 지팡이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중년의 사내는 진호의 말을 듣고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넋을 놓았다.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라.
지기(知己)?
인생에서 가장 얻기 힘든 것이 바로 지기와 미인이라지 않던가.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없다면, 주위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오간다고 해도, 마음은 언제나 고독하고 쓸쓸할 테지.
중년의 사내가 멍하니 넋을 놓는 사이, 주복도 넋을 놓은 채 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진호가 몸을 일으키고, 능숙하게 지팡이를 짚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주복은 지팡이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진호가 지팡이를 짚으면서 걷는 모습이 어쩐지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했다.
저놈이 왜 다시······.
그때 네놈이 쐈던 화살 때문이냐?
그 화살 한 발로 내가 쓰러졌을 때, 네놈도 무너져 버렸던 거야?
이 빌어먹을 놈! 쓸모없는 자식! 화살을 쏘아서 나를 맞힌 사람은 넌데, 어째서 쏠 용기는 있고, 결과를 받아들일 용기는 없는 거야!
네놈이 이런다고 해서 내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 거 같아? 이런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다고!
나약한 자식. 내가 네놈을 제대로 잘못 봤구나. 내 눈이 삐었어!
주복이 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에서 까드득 소리가 났다.
그때, 누군가가 말을 탄 채 길을 비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길 위를 질주했다.
오후 무렵인지라 성 안팎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말 때문에 주위가 시끌벅적해지자, 사람들은 서둘러 길 가장자리로 물러나며 길을 터주었다.
그런데 어느 집 아이인지 모를 어린아이가 큰길 중앙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어린아이는 멀뚱멀뚱 제자리에 서 있었다.
주복은 자신이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아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 누군가가 주복보다 한발 빨리 달려가, 어린아이를 껴안고 몸을 돌리면서 가까스로 말을 피했다.
주복이 달려오는 말의 고삐를 홱 낚아채고, 온몸의 힘을 다해 말을 멈춰 세웠다. 말에 타 있던 사람은 갑작스럽게 멈춰 버린 말 때문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주복은 바닥에 나뒹굴면서 악 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무시한 채, 어린아이가 무사한지 앞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무언가를 본 그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호가 어린아이를 놓아 주고, 자세를 낮춘 채 어린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겨드랑이 아래에 끼워져 있던 지팡이는 저 멀리 내팽개쳐져 있었다.
저, 저 자식이 진짜!
지나가던 행인들도 놀라서 넋을 잃었다. 가까스로 말을 피한 어린아이 때문이기도 하고, 분명히 절름발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순식간에 멀쩡해진 게 놀라워서였다.
“공자님, 정, 정말로 감사합니다.”
어린아이의 가족이 몰려와서 감격스러운 얼굴로 진호를 향해 예를 표했다. 진호는 그저 웃기만 하고는 멈춰 선 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두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치자, 진호가 흠칫 놀랐다.
너는!
“공자님, 공자님 죄송합니다. 말이 갑자기 놀라는 바람에.”
말에서 굴러떨어진 사람이 울고불고하며 난리를 치고 있을 때, 뒤늦게 달려온 그의 시종들이 서둘러 말에서 내려 주복을 향해 연신 사죄했다. 주복을 에워싼 시종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다.
주복은 그들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죽을 듯이 앞을 노려보았다. 사람의 형체가 주복의 시야를 가렸다가 사라지자, 진호가 다시 주복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진호 또한 어린아이의 가족들에게 에워싸인 채, 미소 띤 얼굴로 주복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