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37
교랑의경 737화
몹시 간소한 찻집이었다. 나무 막대기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차양막이 불어오는 눈바람을 막았고, 커다란 솥이 바로 그 옆에 있었다. 솥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은 한겨울에 길을 재촉하는 행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웠다.
찻집에 앉은 사람은 꽤 많았다. 대부분은 길을 재촉하는 보따리 상인이거나 성안으로 들어가 일자리를 알아보려는 평민이었다. 짐꾸러미와 보따리, 수레와 말이 찻집 밖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고, 사람들은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있었다. 참으로 어지럽기도, 시끄럽기도 한 찻집이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로, 한 사내가 고개를 숙이고 손에 쥔 종이 몇 장을 보고 있었다. 청색 장포를 입고, 나무 비녀 하나로 머리를 묶고 있는 사내였다. 그의 곁에서는 보따리 상인 서너 명이 침을 튀겨 가며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공자님?”
사환이 주복을 불렀다.
주복이 잠시 시선을 거두었다가, 다시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주복이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는, 보따리 상인들이 무언가를 보려는 듯 몸을 반쯤 일으킨 채로 손을 휘젓고 있던 통에 안에 앉은 사람이 시야에서 가려져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앞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면서 성문을 지키는 위병들이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길을 터주자, 관리 하나가 주복을 향해 질주해왔다.
“공자님.”
사환이 주복을 작게 불렀다.
“저들은 어쩌다 또 알게 된 거야?”
주복이 달려오는 관리를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공자님, 지금 공자님의 신분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눈에 띄지 않게 다닌다 해도, 공자님께서 용곡성을 나온 순간부터 소식이 쫙 퍼졌습니다. 오는 내내 저희를 지켜보는 눈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저 사람들이 국구에게 아부 떨 기회를 놓칠 리가 있나요.
“다른 일에도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참 좋겠네.”
주복이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사환이 헤헤 웃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공자님, 웃는 얼굴에 침을 뱉으시면 곤란합니다.”
주복이 눈을 부릅뜨고 사환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알려 주지 않아도 안다.”
사환이 헤헤 웃었다.
“주 대인.”
주복을 향해 달려오던 관리와 병사들이 말에서 내려와 주복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표하고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복이 말에서 내려 공수의 예로 답례했다.
살갑게 그를 맞이하던 사람들은 겉치레 말들을 늘어놓으며 주복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갔다.
말 위로 올라탄 주복이 저도 모르게 다시 찻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찻집에 있던 사람들이 주복 일행을 구경하느라 죄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안쪽에 있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저놈이 왜 여기 있지?
아냐, 내가 잘못 본 거겠지. 허풍 떨기 좋아하고, 깔끔한 걸 따지는 그놈이 저런 모습으로 저런 찻집에 앉아 있을 리가 없어.
새로운 황제가 등극한 뒤 조정에는 큰 변동이 있었다. 물론 진(秦)씨 가문도 당연히 그 안에 속해 있었지만, 최근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가세가 기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진 시강이 먼저 사직을 청했고, 황제는 그의 청을 윤허했다. 그리고 그의 고향인 천중(川中)에 있는 관직을 하사하여 온 가족이 함께 귀향했다고 들었다.
비록 조정에서의 벼슬길은 끝이 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간 진씨 가문은 여전히 명망 있는 귀족 집안인지라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주복이 시선을 거두었다. 큰길가에서 시끌벅적하게 주복을 에워싼 사람들이 말을 타고 그에게 길을 안내했다.
“저건 누구길래 추관 대인께서 직접 나와 마중하시는 거야?”
“나이도 젊고, 딱히 눈에 띄진 않던데.”
“어느 귀한 집 자식이겠지.”
길을 터주느라 물러났던 사람들이 다시 큰길 위에 몰려와서는 떠나간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수군댔다. 찻집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각자 자리로 돌아가거나 갈 길을 재촉했다.
“잠시만요. 길 좀 비켜주시오.”
주인장이 큰 소리로 외치며 따뜻한 차가 담긴 그릇을 들고 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의 얼굴을 가렸다.
“고맙소.”
김이 사라지자, 사내의 준수한 얼굴이 드러났다. 사내가 한 손으로 소매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릇을 들었다.
같은 탁자에 앉아 있던 보따리 상인은 사내의 가느다랗고 고운 손과 투박한 그릇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너무 대비된다고 생각했다. 사내의 세심한 동작을 본 상인은 모르게 숨소리가 작아졌다.
지극히 평범한 청색 장포를 두르고 대나무 가지로 만든 비녀를 한 사내였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에서는 점잖고 온화한 기품이 풍겼다.
상인은 어쩐지 사내가 그리 투박한 그릇에 담긴 차를 마시게 하는 것이 신경 쓰였다. 그런데 그 사내는 고개를 젖혀 가며 그릇에 든 차를 단숨에 비우고 다시 고개를 숙여 손에 쥔 종이들을 들여다보았다.
“젊은이, 그건 집에서 온 서신인가 보오?”
상인이 저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자리에 앉을 때부터, 사내는 계속 손에 쥔 서신을 보면서 이따금 웃음 지었다.
“공부하러 외지에 나온 거요?”
상인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상인의 등을 팔꿈치로 툭툭 쳤다. 상인이 화가 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를 찔렀던 사람이 턱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왜?
언짢은 표정의 상인이 입 모양으로 묻고는 그 사람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내의 뒤에 지팡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아, 절름발이구나.
저, 저렇게 준수한 젊은이가 절름발이라니.
상인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절름발이라면 공부하러 외지에 나온 게 아니겠군. 어차피 과거 시험을 보지 못할 테니.
이때, 사내가 고개를 들고 웃으며 상인에게 대답했다.
“네.”
상인은 순간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주인장, 한 그릇 더······.”
사내가 손에 쥔 그릇을 높이 들고 외쳤다. 사내가 말하던 도중, 상인이 갑자기 사내의 그릇을 낚아채고는 몸을 일으켰다.
“내가 가져다주겠소. 지금은 사람이 워낙 많아서, 주인장을 불러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거요. 내가 가서 받아오리다.”
사내는 기분 나쁜 기색 없이 빙긋 웃으며,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네, 고맙습니다.”
남에게 신임을 얻고 호의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상인은 웃으며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주인장을 재촉해서 차를 한 그릇 가득 받아왔다.
“대충 끓인 거긴 해도, 길을 재촉하는 행인들에게는 이런 차가 제일이지. 몸도 녹일 수 있고 말이오.”
상인이 말했다. 사내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혼자 나온 것이오? 부모님께서 걱정하지는 않으시고?”
상인이 이어서 물었다.
“예, 걱정하지 않으십니다.”
사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상인은 또 무슨 말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내가 고개를 숙이고 서신을 이어서 읽는 바람에 물어보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조금 전에 그를 팔꿈치로 쳤던 사람이 또 그를 치고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자네, 말이 왜 이렇게 많은가? 괜히 몸도 안 좋은 사람 붙잡고 늘어지지 말게나. 저런 사람들은 자기가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걸 꺼리거든.”
하긴, 그렇겠지.
상인이 민망한 듯 미소 짓고는 더는 사내에게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차를 마시며 사내를 훑어보았다.
이런 사람이 혼자 외지에 나오는 걸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는다고? 사환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보아하니 가난한 집안의 자식은 아닌 거 같은데, 부모님의 사랑을 못 받는 자식인가?
진호가 입꼬리를 올리면서 종이 한 장을 넘기고 다음 장을 펼쳤다.
지금쯤이면, 부모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 계시겠군. 보아하니 아버지의 기분도 꽤 괜찮으신 것 같네.
‘물론 폐하께서 인자하여 내려 주신 관직은 아니다.’
진 부인이 서신에서 말했다.
당연하겠지. 사실 그는 인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줄곧 흉악무도한 자였으니까.
황제는 아버지의 사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간악하게 웃으며 아버지를 경성에 묶어 두고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 아버지의 숨통을 천천히 조이려고 했겠지.
‘황후마마께서 우리를 보내 주신 거야.’
‘황후마마’라는 단어에 진호의 시선이 멈칫했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천천히 서신을 읽었다.
‘나도 나중에서야 알고, 황후마마를 뵈러 입궐했다. 마마께서는 황후의 침궁에 앉아 계셨어. 옷차림이며 장식은 예전과 변함이 없었지만 말이야.’
예전과 변함이 없었다고.
진호의 눈앞에 정방을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 같은 겨울이었지. 눈이 내리던 주씨 가문의 마당 안, 나는 주복이 친 사고를 수습하려고 일부러 취한 척하며 그 여인과 술잔을 기울였어.
천지가 새하얗게 뒤덮였고, 소매가 넓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던 여인이 어깨 아래로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고개를 돌리고 나를 쳐다보았지.
어떨 땐,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누군가와 단 한 번의 눈 맞춤을 위해, 단 한 번의 만남을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진호의 입가에 있던 웃음기가 더욱 진해졌다. 그는 다시 서신에 집중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주신 분이 황후마마냐고 여쭤봤더니, 황후마마께서 그렇다고 하셨어.
그때 나는 많이 놀랐단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가문의 말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거야. 어사대에 탄핵당하여 관직을 빼앗기고, 네 아버지가 하옥되어 죗값을 치르고, 네 어미는 체면을 지키고자 목을 매달고 자결했겠지. 그리고 너희는 아마 지금쯤 변방의 군영으로 보내졌을 테고.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뜻이야. 이렇게 될 거라고 우리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니?
폐하께서 우리 가문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때 우리가 연평 군왕을 태자로 옹립하려 했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사실, 그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아.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신하로서 각자 자신이 택한 주군에게 충성을 바칠 권리가 있으니 비난할 바가 못 되지. 기껏해야 우리를 경성에서 내쫓고 억압하는 정도에 그쳤을 거야.
하지만 황후마마께서는, 사실 우리를 단순히 싫어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셨을 게다.’
진호가 손에 쥔 서신을 잠시 내려놓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고 진호의 얼굴을 가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주복이 제 손에 거의 죽을 뻔했으니까요. 아니, 죽을 뻔한 게 아니라, 죽었었죠.
그 여인은 이미 죽은 주복을 살려내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았어요.
결국에는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지만, 그날, 저는 마음속에서 이미 그 둘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지요.
생사의 원한은 단순히 염증을 느끼거나 누가 누구를 싫어하는 감정처럼 단순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여인은 왜 그랬을까요?
혹시······.
추측하려던 찰나, 진호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뇌리에 스친 생각을 떨쳐냈다.
그 여인의 말이 곧 그 여인의 생각이야. 내가 생각하는 건, 내 생각일 뿐이지. 그 여인과는 아무 상관 없는!
진호가 그릇을 내려놓고 서신을 바라보았다.
‘황후마마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신에게 물을 먹여 줬던 은혜에 보답한 거라고 해.’
물을 먹여 줘?
진호가 흠칫 놀랐다.
어머니께서 그 여인에게 물을 먹여 준 적이 있었나?
아, 혹시 그때인가? 진소가 건넨 서신에 적힌 ‘넌 누구지’라는 한 마디에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때.
보름 가까이 누워만 있던 병자라면 더럽거나 냄새가 난다고 싫어할 법도 한데, 평생을 귀하게 살아온 부인이 그 여인을 일으키고 물을 먹여 주었다.
당시 진 부인은 마치 자신의 아이에게 물을 한 모금이라도 더 먹이고자 어르고 달래는 어머니 같았다. 사실 진 부인 같은 귀부인들은 친자식일지라도 이렇게 가까이서 다정하게 챙겨 줄 일이 없었다. 아이를 살뜰히 챙겨 주는 유모가 따로 있으니까.
진호의 코끝이 찡해졌다.
그 여인은 그런 사소한 호의까지도 잊지 않고 보답하는 건가?
진호는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서신을 바라보던 시야가 흐릿해졌다.
서신 위에 눈물이 번진 흔적이 있었다. 서신을 쓰던 사람이 이 대목에서 잠시 붓을 멈추고 눈물을 흘린 듯했다.
‘이런 황후마마께서 계시거늘, 진씨 가문이 무슨 걱정을 하겠느냐. 그러니 네 아버지도 마음이 놓이신 게지.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마음 편히 살아보려 한단다.’
‘참, 작별을 고할 때, 황후마마께서 내게 웃긴 이야기를 하나 해 달라고 하시더구나.’
진호가 다음 장을 넘겼다.
‘이번에는, 드디어 웃어 주셨어.’
진호가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