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5
교랑의경 75화
대청에 있는 주씨 부부는 좌불안석이었고, 함께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자리가 편치 않았다. 다들 속으로는 진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지만 재촉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진 사노야의 여정에 관한 일만 듣고 있을 따름이었다. 듣는 사람도 마음이 딴 데 가 있고 말하는 사람도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니, 내용이 엉망진창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를 상황이었다.
“여러 사람이 늑대의 다리를 물었죠.”
젊은 여인 하나가 풉 웃음을 터뜨리자 다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진 사노야 역시 정신이 딴 데 가 있었던 사실을 깨닫고 머쓱해했다.
“진맥은 어떻게 됐나 모르겠군.”
진 사노야가 화제를 돌렸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말입니다.”
주 노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고칠 수 있든 없든 일단은 겸손하고 볼 일이다. 문밖에서 여종 하나가 급히 들어왔다.
“침을 놨습니다. 정 낭자께서 늦어도 내일 아침이면 의식을 회복할 거라고 하셨어요.”
여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앞다투어 밖으로 나갔다. 진소 부부가 정교랑과 함께 오고 있었다.
“교교, 어떻게 됐어?”
주 부인이 다급히 다가서며 물었다.
“고칠 수 있니?”
“당연하죠.”
정교랑이 대답했다.
“침을 놨고 약도 처방했다. 이 태의가 지키고 있어.”
진소가 형제들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됩니까?”
진 사노야가 정교랑을 보며 물었다.
“기다려야죠.”
정교랑의 대꾸에 진 사노야는 코를 만지작거렸다. 이 여인은 참, 언제나 너무 직설적으로 말한단 말이지.
“그럼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돌아가자. 고단하겠네.”
주 부인이 정교랑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난 더 기다려야 해요. 깨어나면 약도 살펴야 하고요.”
주 부인은 곤혹스러웠다.
“낭자는 여기서 묵어요. 거처도 다 정리해 놨어요.”
진 부인이 얼른 나서며 말했다. 붙잡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차마 미안해서 말을 못 붙였는데, 여기 남아 약을 살피겠다니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그래요, 여기서 지내십시오. 그래야 다들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요.”
진소도 거들며 주씨 부부를 향해 예를 표했다.
“그게 좋죠, 그게 좋겠습니다.”
주씨 부부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늦었으니 그럼 어서 돌아가 쉬십시오.”
진소가 말했다. 이들까지 붙잡아 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집안에 병자가 있어 다들 초조하고 어수선하니 말이다. 주 부부는 시중들 여종 넷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주씨 부부가 자리를 뜨자 정교랑은 곧장 쉬러 가겠다고 했다. 진소의 부인이 사람을 시켜 안내하게 했다.
“아, 참.”
정교랑은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한밤중에 깨어날 경우, 약만 드시게 하면 돼요. 날 깨울 필요 없어요.”
진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곧 뭔가를 눈치챈 듯했다.
주씨 저택에는 불이 환히 밝혀져 있었다. 마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주육낭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다가섰다. 마차의 휘장이 올려지고 여종이 주 부인을 부축해 내리더니 휘장이 내려지면서 더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주육낭은 답답한 듯 콧바람을 내뿜었다. 거처로 돌아오자 대청에서는 진 공자가 화로에 술을 데우고 있었다. 방 안에는 술 냄새가 가득했다.
“어때? 괜히 나가서 기다렸지?”
진 공자가 옷을 걷어 올리며 자리에 앉는 주육낭을 보며 말했다.
“부모님을 마중 나가는 건 응당 해야 하는 일이야.”
주육낭이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우며 말했다. 진 공자는 웃으며 한 잔을 더 따라 주었다.
“진 노태야께서 오늘 밤에 깨어나실 수도 있다며 거기 남겠다고 했대.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라고.”
“긴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진 공자가 말을 이었다.
“그 여인은, 자네 집에 발을 안 들일 거야.”
주육낭이 비웃었다.
“들이거나 말거나.”
“백부님과 백모님께선 뭐라셔?”
진 공자가 물었다.
“별말씀 없으셨어, 그렇지 뭐. 고모님과 많이 닮았다고 하시더군.”
주육낭은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아, 자네 고모님은 미인이셨는데.”
진 공자가 웃었다. 주육낭은 술잔을 돌리며 멍하니 있었다. 부친은 당연히 별말씀 없으셨지만, 모친은 여느 여인들처럼 과장된 묘사를 늘어놓았다. 마차에 내릴 때부터 옷을 갈아입고 방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까지, 전 과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얘기했다. 어찌나 소상한지 그 여인이 눈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정씨 댁에서 한 번 봤을 때처럼, 밤마다 꿈속에 나타나는 그 모습처럼, 그 여인은 딱딱한 표정으로 주육낭을 쳐다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있었다. 그건 비웃음이었다. 주육낭은 술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조 집사를 불러서 오는 길에 있던 얘기를 들어보자고. 재미있을 거야.”
진 공자가 말했다. 옆에 꿇어앉아 있던 몸종이 얼른 대답하고 사람을 부르러 밖으로 나갔다.
“뭐 재미있는 게 있다고. 집에 안 가?”
주육낭은 진 공자를 보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오늘 밤엔 안 갈 거야.”
“그 애한테 뭐 재미있는 게 있다고 자네까지 우리 집에 눌어붙어? 그렇게 관심이 생기면 장가들어 데려가든가.”
그 말에 두 사람 모두 멈칫했다. 진 공자의 조모는 방녕공주였다. 이미 돌아가셨지만 혈통으로 따지면 지금의 황제와 가까운 사이였다. 부친 역시 풍류를 알고 글재주가 뛰어나기로 이름났으며 진씨 가문도 명문가였다.
진 공자가 불구라고는 하나 아무나 사돈을 맺을 상대는 아니었다. 주육낭의 말은 그 결함을 비웃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결함이 있는 바보나 짝으로 어울린단 뜻이 아닌가. 주육낭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나, 난 그런 뜻 아니었어.”
시무룩한 표정의 주육낭을 보며 진 공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뜻 아닌 거 알아. 그만한 미인이면 인연이 없는 게 걱정이지.”
주육낭이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데 몸종이 조 집사를 안내해 안으로 들어왔다.
“고생 많았네.”
주육낭은 조 집사에게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조 집사는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고생은 무슨요. 집으로 돌아와서 마음이 아주 편합니다. 피로가 씻은 듯 사라졌어요.”
조 집사가 꿇어앉으며 대답했다. 먼 길을 다녀왔으니 집 생각이 간절했겠지. 주육낭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진 공자는 피식 웃었다.
“왜? 정 낭자 때문에 꽤 애를 먹었단 말로 들리는군.”
진 공자의 물음에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렸다.
“괜한 생각 마. 무슨 일이든 그 애랑 엮으려 들다니, 걔가 무슨…….”
주육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 집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진 공자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다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조 집사는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하며 말했다. 주육낭의 목소리는 거기서 뚝 그쳤다. 답답하기도 하고 딱히 도리가 없다는 듯 술잔을 들며 입을 다물었다.
“내가 괜한 생각을 하는 게 아냐. 자네가 생각하기 싫은 거지.”
진 공자는 답답해하는 주육낭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이 같은 건 없어. 차이가 있다면 생각을 하려 드느냐, 하고 싶지 않느냐 정도지.”
“그냥 묻고 싶은 거 물어. 괜한 사람 엮지 말고.”
주육낭이 노려보며 말했다. 시선은 조 집사에게로 옮겨 갔다. 몸종이 조 집사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사실 정씨 댁 아씨께서 괴상하시긴 한데…….”
* * *
문을 닫아 초겨울의 한기를 막았다. 노야와 공자들의 방이 밝고 따스한 데 반해 아랫것들의 방은 어둡고 싸늘했다. 반근은 손을 비비며 등불 가까이 다가앉아 옷을 기웠다.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와 여종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문이 열리더니 여종들이 초겨울의 한기를 몰고 들어왔다. 그 바람에 등불이 꺼지려 하자 반근이 얼른 손으로 가렸다.
“소월이 서둘러 가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기는 건데.”
“이기긴. 소월은 경사를 앞두고 있어 재물운이 대단한걸.”
“소월은 참 운도 좋지. 부인께서 조 집사에게 주시다니. 조 집사가 얼마나 유능해. 나이는 좀 많아도 집안 안팎의 대소사를 다 관장하잖아.”
“이번에 돌아오면서 큰 공까지 세웠으니, 혼례를 올리고 나면 소월은 부인의 시중을 드는 집사 부인이 되겠네.”
몸종들은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으며 조잘조잘 떠들었다. 방 안은 웃고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다.
“조 집사가 돌아왔어?”
반근이 놀라 벌떡 일어나면서 물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손에 든 바늘이 손가락을 찌르는 것조차 지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몸종들은 그제야 반근을 쳐다봤지만, 대부분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힐끔 보고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래.”
그중 하나가 머리끈을 입에 물고 대답했다.
“저녁 무렵에 성으로 돌아왔어. 방금 노야와 부인께서 함께 돌아오셨고.”
“그, 그럼 우리 집 아씨도 오셨겠네.”
반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나 흥분했던지 눈물까지 왈칵 쏟아졌다. 이번에는 몇 사람이 웃었다.
“너희 집 아씨? 너희 집이 어딘데? 넌 누구 집 사람이고?”
그중 하나가 경멸한다는 투로 말했다.
“여긴 자기 집이 아닌가 보네? 우리 집에서 고생이 많네요, 낭자.”
방 안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반근은 무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나, 난…….”
반근은 한참 웅얼거렸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오밤중에 웬 눈물 바람이야?”
한 여종이 소리쳤다.
“그러게, 하루 종일 표정이 썩어 있어. 누구한테 돈이라도 떼먹혔나.”
또 하나가 소리쳤다. 방 안은 와글와글 소란스러워졌다. 주눅이 든 반근은 자신의 침상으로 돌아와 이불을 끌어당겨 눈물을 닦았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됐어, 다음에 어멈한테 말해야겠다. 남의 집 언니한테 좋은 곳 찾아 주라고. 여기서 우리 같은 사람이랑 어울리게 하다니, 미안해서 안 되겠네.”
반근은 고개를 숙이고 바느질거리를 허둥지둥 챙기며 몸을 떨었다.
“야, 바느질할 거면 다른 데 가서 해. 우리 이제 잘 건데 불 켜 놓으면 어떻게 자란 거야. 우린 너처럼 할 일 없이 빈둥대는 사람이 아니야. 낮엔 일하느라 바빠.”
방문이 닫히고 등불의 불이 꺼지자 안팎이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반근은 눈물범벅인 얼굴로 옷을 끌어안고 두리번거리며 몸을 떨었다. 아씨, 아씨…….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진 노태야의 방은 네다섯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팔걸이 책상에 기대 잠시 눈을 붙이는가 하면 팔짱을 낀 채 꼿꼿이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이도 있었는데, 이 태의만은 침상 근처에 앉아 수시로 손을 뻗어 맥을 짚어 보았다.
“침을 놓는 방법이 기이하던데, 그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이 태의가 중얼거렸다. 침상 위에 누운 진 노태야는 여느 때처럼 입을 벌리고 곤히 잠든 채로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이 태의는 창밖을 봤다. 동녘이 밝아오고 있었다.
“날이 밝아오는데, 늦어도 아침이면 깨어난다지 않았나? 왜 아직도 안 깨어나시지?”
이 태의는 잠시 중얼거리더니 발치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고 발로 차 아이를 깨웠다.
“얘야, 일어나라.”
아이는 비몽사몽 간에 일어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얼른 침상을 붙잡았다.
“사부님, 사부님.”
아이는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웅얼거렸다.
“몇 시예요?”
“곧 묘시다.”
이 태의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보며 대답했다. 소녀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소매로 입가를 닦은 후 바로 앉았다.
“묘시라니, 곧 날이 밝겠네.”
이 태의는 아이를 바라봤고, 아이도 이 태의를 바라봤다.
“넌 어떻게 입도 안 벌리고 말을 하느냐?”
이 태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부님, 사부님이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아이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삼낭, 삼낭?”
침상에서 들어 올려진 손 하나가 옆에 있던 아이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아이가 깜짝 놀라 비명을 내지르는 바람에 방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잠에서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