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but the strongest in the dimension RAW novel - Chapter 170
게을러서 차원최강 170화
170 구출대(2)
다크 엘프 왕국의 수도 베랑카인.
베랑카인은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곳이다.
하늘은 잿빛으로 탁했고 해가 뜨지 않는다. 거기에 더하여 땅은 온통 검게 물들어 있었으니 이런 분위기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왕좌에는 여왕 리리스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연신 듣고 있는 중이었다.
“로함께서 전사하셨고, 적들은 일직선으로 각 거점들을 돌파하고 있습니다!”
“점령이 아니라 돌파더냐?”
“그렇습니다, 폐하!”
리리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카이샤를 잡아 인간들에게 노예로 팔았을 때만 해도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저들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적들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진격을 하고 있었다.
“적들의 위치는?”
“지금 라노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허어, 수도와 지척이 아니더냐!”
“죄송합니다.”
다크 엘프 장로들은 송구스럽다는 듯이 허리를 굽혔다.
그렇다면 희망이 없었다.
“본대는 전멸인가?”
“완전히 전멸입니다.”
적들은 완벽하게 아군을 척살하고 남은 자들을 포로로 잡아 후방으로 데려갔다.
병력은 완전히 열세였다.
“인간들이 끼어들 줄이야…….”
“폐하! 저희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오라고 해라. 마신께 드릴 제물을 준비하라! 그분께 기도를 드릴 것이다! 그분이라면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거다.”
리리스의 믿음은 확고했다.
애초에 마신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다.
마신이라면 분명히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것이다.
엘프들의 분쟁 지역에 들어온 지 정확하게 일주일 만에 적들의 수도까지 진군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가지고 아젠타는 분투하고 있었다.
“쯧쯧, 아젠타 자작. 실력이 부족했던 것 아니야?”
“그럴 리가요! 적들이 너무 뛰어났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파죽지세로 진군하는 건?”
“그건 각하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뭐 상관없겠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너는 수도로 들어가면 형벌을 받아야 해. 그런데 벌써부터 협박을 하면 뭐 하겠나?”
“…….”
아젠타 자작은 울상을 지었다.
그 역시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오래전 나와 함께했던 내기를 휘하 수뇌부가 지켰다는 것을 말이다.
명예를 걸고 약속한 일이었으니 지키지 않았다면 어마어마한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 수도 한복판에서 똥을 싸다니…….
새삼 베르체 추기경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제발 그것만큼은!”
“베르체 추기경도 한 일을 안 한다고?”
“크윽.”
“그래서 봐주는 줄 알아라. 나도 참 관대해졌지.”
“크흐. 크흐흐.”
아젠타 자작은 듣기에 매우 불편한 소리를 내더니 사라졌다.
수도를 포위하고 돌격할 준비를 마쳤다.
나는 천천히 말을 타고 앞으로 나왔다.
그래도 수도에는 성벽이 둘러져 있었는데, 검은 마기가 꿈틀거리며 매우 삭막한 느낌을 주었다.
“마신의 졸개들은 들어라!”
나는 목청을 가다듬고 외쳤다.
그러자 성벽 위가 술렁거렸다.
여기까지 파죽지세로 뚫고 들어온 내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인간 수뇌부들이야 내가 신위를 받은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크 엘프들은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전원 항복해라. 그리고 개종한다면 살려 줄 생각도 있다. 우리 자애로운 칼도나 여신이 그렇게 원하시니 말이야. 10분 주겠다. 그 안에 결정하지 않으면 다 죽는 줄 알아라.”
나는 그렇게 돌아서서 잠시 꿀물로 목을 축였다.
실비아가 손수건으로 흐르는 꿀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과연 적들의 여왕이 항복할까요?”
“안 하겠지.”
“그런데 굳이 그렇게 정비할 시간을 줄 필요가 있을까요?”
“뭐, 칼도나의 부탁이니까.”
어쨌거나 나와 칼도나는 동맹을 맺었다.
언제 마신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고, 나는 아직 절대신의 힘을 완벽하게 각성하지 못했다.
분명히 절대신의 조건은 마도 연합의 완벽한 멸망이었는데, 그것이 아직까지 끝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신이 강림하면 칼도나와 연합하여 놈을 죽여야 한다. 그러니 친분을 깊게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10분 정도가 흐르자 성벽 위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우리들은 항복하지 않는다!”
“와아아아!”
다크 엘프들은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때 카이샤가 다가오며 말했다.
“강제로 굴복시킬 수밖에 없어요.”
“이거 아쉬운데?”
나는 기지개를 켰다.
편하게 항복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저토록 완강하게 나올 줄이야.
뭐, 어쨌거나 상관은 없었다.
저따위 허접한 성벽으로 나를 막을 수는 없으니까.
나를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 마신이 강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과에 대한 문제 때문에 마신의 강림이 지체되고 있었으니, 그 전까지 최대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아젠타가 달려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각하! 돌격 준비를 끝냈습니다!”
“그럼 닥돌한다!”
“예! 진격하라!”
뿌우!
진격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나는 냅다 적들의 성벽을 후려쳤고 거대한 소리가 나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천군과 천사들이 적진을 헤집었다.
이번에는 저항이 꽤 완강한 것 같으니 내가 직접 움직여 주기로 했다.
다크 엘프 왕국의 왕궁 지하.
마신의 예배당에 순결한 처녀의 피 10명분을 바쳤다.
이 끔찍한 기도를 위하여 처녀들의 심장이 산 채로 꺼내졌다.
리리스는 마신의 석상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외쳤다.
“마신이여,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
하지만 응답이 없다.
분명 일전에 기도를 하였을 때에는 응답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엘프들을 멸망시키고 인간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라고 명령했었다.
그런데 응답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신이여!”
쿠아아앙!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이건 마신의 강림 때문이 아니라 적들의 공격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후두두둑!
지진으로 인하여 하늘에서 돌들이 떨어져 내렸다.
“폐하! 적들이 지천에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탈출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쉽게!”
리리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관문들이 있었고, 수도를 방위하는 병력도 정예들이었다. 그런데 힘도 못 쓰고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어찌 이런 일이…….”
“피해야 합니다!”
“어디로 도망을 간단 말이냐.”
쾅!
지하의 문이 박살이 나며 일단의 무리들이 쳐들어왔다.
제국의 기사들이었다.
리리스는 날카로운 손톱을 드러내며 전투에 나섰다.
이렇게 된 이상 제국의 기사 하나라도 지옥으로 데려간다!
퍼억!
“켁!”
하지만 리리스의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끝나고 말았다.
제국의 기사들에 앞서 한 남자가 그녀에게 돌멩이를 집어 던졌던 것이다. 돌멩이에 복부를 맞은 리리스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쯧, 저것도 여왕이라고.”
리리스는 남자를 바라보다가 기절하고 말았다.
대충 정리는 끝난 것 같았다.
내가 직접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정리하지 못하는 전장은 없었다.
그런 전장이라면 마신이 직접 강림을 한 경우라고 보아야겠지.
나는 옥좌에 앉아 바닥에 기절해 있는 리리스에게 물을 뿌리라고 명했다.
촤악!
“으으으.”
“깼냐?”
“이런 찢어 죽일! 감히 인간을 끌어들여!?”
“리리스!”
카이샤는 눈을 부릅떴다.
아무래도 그 둘의 사이가 꽤 좋지 않은 듯했다.
가능하면 리리스를 빨리 공개 처형하고 끝을 내야 할 것 같았다.
“다크 엘프 여왕, 네년과 우리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러니까 사형을 선고하겠다.”
“안 돼!”
리리스가 날카롭게 외쳤지만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리리스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꼭 이래야겠어?”
“언니?”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이샤를 바라봤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친자매라고 묻는 말에 긍정을 해? 그렇다면 이건 막장 집안의 일이라 볼 수 있었다.
주변이 술렁거렸다.
아젠타도 이건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친자매라고요?”
“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도대체 어쩌다가?”
“리리스는 왕실의 사생아였죠. 왕실에서 버림을 받아 떠돌던 중에 마신에게 신탁을 받은 걸로 추정되네요.”
“허어.”
“그럼, 카이샤 네 선택은? 저 여자를 죽일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