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94
“······네놈 속셈은 알겠다. 내게서 뜯어먹을 걸 다 뜯어먹은 후에는 다시 죽일 셈이지? 내가 그걸 알면서 거래에 응할 거 같나?”
역시 브뤼스만이다. 눈치챘군.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다. 뭐, 자기도 비슷한 짓을 여러 번 했을 테니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거겠지만 말이다.
이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쯤해서 당근 하나쯤은 내밀어 줄 필요가 있을 거 같았다. 그러므로 난 내가 이놈에게 내밀 수 있는 최고의 당근을 하나 내밀어 주었다.
“거래에 응한다면 깔끔하게 죽여주지.”
브뤼스만의 표정이 요상하게 보였다. 기껏 내민 당근이 당근처럼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응하지 않는다면?”
그럼 당근처럼 보이게 만들어야지. 난 형량을 구형하는 검사처럼 엄숙히 선언했다.
“널 죽인 다음 비토리야나에게 네 영혼을 넘겨 백만 년 동안 핥아먹게 만들겠다.”
“비토리야나라고?! 그년 이름이 갑자기 왜 나와!?”
브뤼스만이 이상한 데서 화들짝 놀랐다. 뭐야, 알고 있는 거 아니었나? 아무래도 내가 브뤼스만의 정보력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또한 거래 대상이다, 브뤼스만.”
그렇다고 쉬이 알려줄 내가 아니다. 모든 정보가 다 거래의 자산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티끌 하나라도 다 팔아먹을 거다.
“큭······!”
“이제 좀 거래할 생각이 드나?”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걸 지켜보고 있는 것도 재미있지만, 시간낭비를 오래하고 있을 수는 없지. 당근을 던져줬으니, 이젠 채찍을 한 대 후릴 때다.
나는 놈을 죽이기 위해 [즉살의 권능]을 준비했다. 아직 연습 랭크지만 브뤼스만 하나 죽이는 데엔 딱 적절할 것 같았다.
아니, 이러면 안 되지. 채찍 치곤 좀 지나치게 무겁다. 거래고 뭐고 지금 당장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충동적으로 한 탓이다. 게다가 [즉살의 권능]은······, 안 된다. 고통 없이 한 번에 보내 버리는 스킬이니까. 기왕 죽일 거라면 최대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죽게 해야지.
다행히 내 충동적인 행동은 무의미하게 끝나지는 않았다. 흠칫 놀란 브뤼스만은 지레 쫄아서 결국 이렇게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살아남았지?”
질문이다. 즉, 거래가 시작되었다.
놈의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어쨌든 시간을 끌며 좋은 생각이 떠오르길 기대하는 거겠지. 그것도 괜찮다. 어쨌든 거래를 할 마음은 먹은 거니까.
나는 [즉살의 권능]을 거두고 환히 웃으며 대꾸했다.
“[레벨 업 쿠폰] 10장.”
브뤼스만 놈은 이를 득득 갈면서 시스템의 거래 창에 내가 요구한 [레벨 업 쿠폰]을 올려놓았다.
“거래 성립이다.”
나는 큭큭 웃으며 말했다.
브뤼스만이 이를 너무 갈아서 임플란트를 해줘야 할지 걱정스러울 정도가 되었지만, 놈의 강건 능력치도 그리 낮진 않은지 저렇게 잇몸에 피가 나게 이를 악물어도 이가 부러지거나 부서지진 않은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아무튼 거래는 성립되었으니 대가를 치러줘야겠지.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 말해 난 살아남은 게 아니다. 네 공격에 의해 죽었지. 네가 건 [봉인의 권능]에 의해 스킬과 아이템 사용도 막히고, [즉살의 권능]에 그냥 죽어버리고 말았어.”
거기서 일단 말을 끊고 힐끗 브뤼스만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얼굴이 시뻘게진 채 내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래는 거래다. 끝까지 대답은 해줘야겠지. 그래야 다음 거래도 성립될 테니까. 나는 고작 [레벨 업 쿠폰] 10장에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더 우려먹어야지.
“······네가 공격한 내 1/6이 말이다.”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봉인의 권능]은 진짜였다. 내가 지닌 모든 스킬과 아이템을 봉인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단 하나만큼은 봉인하지 못했는데, [봉인의 권능]보다 등급이 높은 초월 권능급 스킬 [기습하는 또 하나의 나]가 그거였다.
내 영혼, 내 정신, 내 존재의 1/6을 품은 분신은 그 자리에서 [즉살의 권능]에 의해 죽어버렸고, 다시는 부활시킬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만약 평범한 분신 스킬이었다면, 하다못해 [분신의 권능]이었더라도 [봉인의 권능]에 의해 분신 상태도 해제되고 내 본신 100%에 [즉살의 권능]이 꽂혀 죽었겠지.
하지만 [기습하는 또 하나의 나]는 [봉인의 권능]보다 등급이 높다. 따라서 더 낮은 등급 스킬인 [봉인의 권능]에 의해 해제되거나 봉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잃은 건 1/6뿐이었고, 나머지 5/6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나머지 분신을 써서 브뤼스만에게 반격을 가해 죽였다.
이게 나와 브뤼스만 사이에 일어난 전투의 전부였다.
“플레이어 사이의 전투는 스킬 하나, 상성 하나로 갈린다더니 정말이었어.”
나는 그렇게 소회했다.
“미친!”
그리고 브뤼스만의 감상은 이거였다.
“초월 권능?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어! 그런 게 존재하다니······, 말도 안 돼!”
상식적으론 말도 안 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한 사람 앞에 권능 스킬은 하나뿐이라던 놈의 말만 들어도 그렇다. 그런데 그 권능 스킬을 여러 개 모아 초월시켜서 초월 권능을 만들어냈다? 나도 이게 말도 안 되는 일인 건 알고 있었다. 할 땐 모르고 했지만 말이다.
“뭐, 네가 몰랐다는 건 알고 있었어. 네가 내 스킬에 대해 미리 알았다면 동시에 권능 세 개를 활성화시켜 가며 내게 모든 걸 다 퍼붓진 않았겠지.”
브뤼스만의 기습은 [봉인의 권능] A랭크로 모든 스킬을 다 봉인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시도할 수 있었던 과감한 한 수였다. 오만한 한 수였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그 오만이 전투의 결과를 확정지었다.
“이제 좀 덜 억울한가?”
전혀 억울함이 걷히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나는 굳이 그렇게 물었다. 당연히 억울하라고 하는 소리다. 그래야 다음 거래에 응할 테니까. 물론 그 목적보단 단순히 그냥 브뤼스만의 억울한 표정을 감상하며 통쾌함을 느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래.”
그러나 브뤼스만은 자기가 억울해 할수록 내가 좋아한다는 걸 간파하고 애써 감정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뭐, 이것도 이거대로 즐길 만하지만 나는 굳이 웃어 보이지 않았다.
“그럼 다음 거래. 뭐가 궁금하지?”
“······지금 죽음을 선택하면 그냥 죽여줄 텐가?”
거래는 한 번 성립했다. 그러니 이제 해방시켜 주지 않겠는가? 그런 질문이리라.
“괜찮은 질문이다. 그러니 이 질문에 대해선 공짜로 대답해 주도록 하지.”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형량을 선고하는 판사와 같이 대답했다.
“하나의 거래를 성립시켰으니 1만 년은 빼주지. 앞으로 99만 년간 비토리야나에게 네 영혼을 핥게 하겠다.”
마지막에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지만 말이다.
***
“크크크큭, 크하하하하!!”
이진혁의 사악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브뤼스만은 그의 웃음소릴 들으며 부들부들 떨었지만, 체념은 곧 찾아왔다. 솔직히 말해 이진혁에게 반격을 하기는커녕 여기서 살아나갈 방법이 있는지조차 전혀 떠오르질 않았다.
초월 권능이라니. 이진혁은 간단히 말했지만 분명 신조차 가지지 못할 영역의 힘이다. 이런 놈이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지? 브뤼스만은 새삼 궁금해졌지만, 그 궁금함을 풀기 위해선 적지 않은 티켓을 지불해야 하리라.
“······100개의 질문을 다 하면, 정말로 깨끗하게 죽여줄 건가?”
브뤼스만의 질문에, 이진혁의 웃음이 뚝 그쳤다.
“그건 약속하지. 그래야 네 소지품을 내 호주머니에 모조리 쓸어 담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정말 쓸데없이 솔직한 남자였다. 한편으로는 이진혁의 이러한 솔직함이 브뤼스만 본인에게 있어서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요소였다. 자신을 상대로 기만술을 쓰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이진혁이 자신을 얕보고 있다는 소리니까. 적어도 브뤼스만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체념하긴 아직 이르지.’
브뤼스만의 속내에서 다시금 생에 대한 집착이 끓어올랐다.
‘놈에게서 적절한 정보를 끌어내 살아나갈 방법을 찾는다. 아니라면 놈에게 아양이라도 떨어 목숨을 건지겠다. 중요한 건 목숨을 건지는 것! 살아만 있으면 얼마든지 반격의 기회는 생길 테니까!!’
그렇게 새롭게 각오를 다진 브뤼스만은 더 늦기 전에 다음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악마 황제, 알렉산드로스는 어떻게 됐지?”
“한 장.”
브뤼스만은 [레벨 업 쿠폰] 한 장을 이진혁에게 건넸다.
“내가 죽였다.”
이렇게 짧은 대답을 듣기 위해 쿠폰을 지불한 건 아니라고 항의하려 했지만, 이진혁의 입이 다시 열리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다.
“107번 죽였다.”
107번? 뜬금없는 발언에 브뤼스만은 잠시 멍하니 이진혁을 바라보았다.
“······뭐?”
“네가 참 제대로 키워냈더군. 놈은 달콤했고······, 대단히 맛있었다.”
물론 알렉산드로스는 브뤼스만의 걸작품이었다. 그런데 그게 달콤해? 맛있어? 브뤼스만은 영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놈을 세 자릿수에 가깝게 맛볼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놈은 기어이 부활해 그 횟수를 채우더군. 마지막엔 내게 울며 매달리는 바람에 흥이 좀 식긴 했다만······.”
그렇게 늘어놓는 이진혁의 두 눈에서 안광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눈에서 비치는 그의 순수하고도 진하고 깊은 욕망의 빛깔에 브뤼스만은 소름이 돋았다.
눈앞의 존재는 절대 정의로운 존재가 아니다. 당연히 선한 존재도 아니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자신과는 또 다른 방향의 악당일 뿐이다. 자비를 구해봤자 들어줄 리 없을뿐더러, 오히려 목숨을 구걸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곤 비웃으며 즐거워할 것이다.
“다음, 질문을 해라.”
동시에, 브뤼스만은 이진혁이 지금 갈등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았다. 놈은 자신의 인벤토리를 털어먹는 것도 이득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보다 당장 자신을 죽여 경험치든 카르마든 뭐든 얻고자 하는 욕망을 억누르고 있었다.
브뤼스만은 이진혁이 자신을 절대 살려둘 리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직감적인 깨달음이었으나, 틀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젠장.’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의 존재를 인지하면서, 브뤼스만은 1초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 다음 질문을 머리에서 짜내야 했다.
“여기가 어디지?”
“그 질문을 이제야 하다니. 2장이다.”
“여기는 구 만마전이다.”
“여기가 만마전이라고?”
“놀랍지? 중요한 정보지만 자랑하고 싶어서 싸게 줬다.”
이진혁의 말에 의하면, 만마전이 ‘혁명’에 성공하자 ‘창천군’의 악마들이 새로운 존재로 진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악마들에 의해 착취당해 죽은 상태였던 세계가 부활하여, 더 이상 만마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죽은 세계가 새로 태어났기에 이름을 새로 지어줘야 했지. 그리고 그 명명권이 내게 주어졌고 말이야. 내가 지은 새 이름은······.”
거기까지 말하고, 이진혁은 씨익 웃었다.
“알려주지 않겠어.”
놀리듯 그렇게 맺었다.
이진혁은 가볍게 말했지만, 세계의 이름은 중요한 정보다. 저 입에서 세계의 새 이름을 뱉게 만들려면 브뤼스만으로서도 꽤 많은 쿠폰을 뱉어내야 될 터였다. 그렇기에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자, 거래를 계속하지. 다음 질문.”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욕망에 푹 적셔진 이진혁의 눈동자에 브뤼스만은 전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