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82
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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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묘한 간파]를 켜고 날개 달린 뱀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놈에게 걸린 스킬이 보였다.
[지배의 ???] 사용자 : 알 수 없음사용 시간 : 매우 오래전
어라? 이상한 게 걸려 있군. 처음 보는 스킬이다.
[반격의 대가]를 얻은 덕에 내 [간파]는 SS랭크다. 여기에 행운도 99+를 달성하고도 주사위로 더 올려줬다.그런데도 [현묘한 간파]로도 스킬을 뜯어올 수 없는 데다 스킬의 이름을 다 표시할 수 없고 사용자도 알 수 없음이 뜨고 사용 시간이 애매하게 표기되다니. 아무래도 꽤나 랭크가 높은 스킬인 모양이었다.
“저걸 어떻게 뜯어낼 방법이 없을까?”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은 물론 주사위를 한 번 더 굴리는 것, 그러니까 반격가 스킬을 한 번 더 써보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이 목표에게 걸어놓은 스킬을 훔쳐오는 액티브 스킬은 현묘한 간파를 제외하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 그거 써야지.
나는 날개 달린 뱀에게 접근했다. 날개 달린 뱀은 내 접근에 반응도 못했다. 당연하지, 능력치 차이가 얼만데. 이제 필드 보스 급은 거의 내게 위협을 주지 못한다.
나는 그대로 뛰어올라 날개 달린 뱀의 몸에 손바닥을 대었다. 그리고 날개 달린 뱀에 걸린 [지배의 ???] 스킬을 목표로 [차단]을 사용했다.
– [차단] 실패
아니, 대체 얼마나 등급이 높기에 SS랭크 차단으로도 취소가 안 되지?
“샤악!”
나는 다소 당황한 탓에, 나는 날개 달린 뱀의 공격을 허용했다.
[간파] – [치명적인 조르기]사실은 일부러 허용한 거지만. [치명적인 조르기]는 슈퍼 레어 스킬이었다. 간파 한 방에 뜯어왔다.
잘 먹었습니다.
“선배, 괜찮아요?”
“체온 서늘하고 딱 좋아.”
날개 달린 뱀의 품에 폭 안긴 내게 안젤라가 걱정스러운 듯 외쳐 물었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묵묵히 날개 달린 뱀의 품에 안긴 채 다시 한 번 차단을 사용했다.
– [차단] 실패
[현묘한 간파] SS랭크의 보너스로, [차단]을 시도할 때마다 해당 스킬의 랭크가 떨어지는 효과가 새로이 붙었다. 즉, [차단] 가능성은 점점 올라가는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번 연속으로 실패하다니. 대체 얼마나 강력한 스킬이기에 이렇지?
[간파] – [맹독 샤워]“샤샤샤!!”
고민에 잠긴 내게 날개 달린 뱀이 스킬을 사용해 맹독의 소나기를 퍼부었다. 비록 높은 강건 능력치의 힘으로 독 상태 이상에 빠지진 않았지만, 맹독 자체가 지닌 강렬한 독성 때문에 내 생명력이 조금씩 깎이기 시작했다.
[맹독 샤워]도 당연히 단번에 뜯어왔다. 오, 이 스킬은 꽤 쓸모 있어 보인다. 일단 슈퍼 레어 등급이고. 비록 선제 조건으로 [독 생성]이 필요하지만 합성재료로는 좋아 보인다. 바로 갈지 말고 갖고 있어볼까?“선배, 진짜 괜찮아요?”
“이건 좀 더럽지만 괜찮아. 나중에 씻어야겠어.”
안젤라의 말에 다시 한 번 적당히 대꾸해 주었다.
그나마 [차단]의 쿨이 짧아서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 [차단]을 사용했다.
– [차단] 실패
세 번째 실패.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는다.
[차단]의 랭크 저하 효과는 계속해서 중첩되고 있으니, 언젠가는 성공할 테니까.칠전팔기다!
***
실제로는 차단에 성공한 건 10번째였다. 10번이나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배의 ???] 스킬을 뜯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당연한 결과였다.
랭크가 충분히 떨어져 [지배의 ???] 스킬이 대체 어떤 스킬인지 나도 뒤늦게나마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지배의 권능] – 등급 : 권능(Power)– 숙련도 : – 랭크
– 효과 : ???
[주의!] 이 스킬의 열람 및 이용에는 [자격]이 필요합니다.
무려 권능급 스킬인데 쉽게 뜯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반격의 대가는 무슨, 반격의 신이 왔어도 뜯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등급이었다. 뜯어내기는커녕 차단에 성공한 게 용하다. 아마도 높은 행운 능력치 덕이겠지. 굉장히 낮은 성공확률을 뚫은 결과였으리라.
“오, 오오오······.”
그렇게 내가 지배 스킬을 취소해 주자마자, 날개 달린 뱀은 내게 걸고 있던 [치명적인 조르기]를 풀며 신음 소리를 냈다.
“여기는······, 어디지?”
“뭐야? 너 말할 수 있는 거냐?”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그러자 날개 달린 뱀은 그 큰 뱀의 눈을 끔벅거리며 날 보았다.
“당신은?”
“내 이름은 이진혁이다. 너는?”
일단은 대화할 의사를 보였기에, 나는 대답을 해주고는 그렇게 되물었다.
“제 이름은······, 케찰코아틀. 날개 달린 뱀이자 한때는 신으로서 섬김을 받았던 몸. 하지만 지금의 제 몸에는 단 한 티끌의 신성조차 남아 있지 않군요. 그래요, 제가 말하는 걸 보고 놀랄 만도 하군요. 지금의 저는 한낱 파충류일 따름이니······.”
지배 스킬을 풀어주자마자 갑자기 달변이 된 날개 달린 뱀, 케찰코아틀은 아무래도 더 이상 우릴 적대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보다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듯 음울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떤 인간에게 지배당해 이곳의 생명체를 절멸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것 같은데······. 아니, 그래도 신이었던 저를 지배할 정도라면 보통 인간은 아니겠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영락해 버리다니, 이제는 어디 가서 신이었다는 말을 감히 입에 올리지도 못하겠군요.”
지배? 절멸? 케찰코아틀은 혼잣말처럼 탄식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소리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케찰코아틀과는 나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이진혁 님, 제게 걸린 [지배의 권능]를 풀어준 것은 혹시 당신인가요?”
“그래, 맞아.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당신께 감사 인사를 올렸어야 했는데······.”
케찰코아틀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워낙 큰 탓에 여전히 올려다봐야 했지만.
그나저나 이 녀석, 뱀치고는 예의가 너무 바르다.
“됐어, 그럴 수도 있지.”
“이 은혜를 어떻게든 갚고 싶습니다만······.”
“그런 건 됐고.”
사실은 안 됐지만, 이런 건 억지로 얻어내는 게 아니다.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하는데.”
그리고 정보 또한 훌륭한 보상이 될 수 있다.
***
“······세상 사는 게 만만치가 않군.”
나는 씁쓸히 중얼거렸다.
이번 일로 권능 스킬을 사용하는 적이 교단에 도사리고 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나도 사용하지 못하는 권능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명제가 가리키는 바는 꽤나 명확했다.
그 적의 정체는 신이거나 그에 준하는 존재다.
기억을 되새겨보면 이 세계에 오자마자 처음 만난 토착인류종족인 드워프들도 언급한 적이 있었다. 신이 강림해 불을 금지했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정도 이적을 벌이려면 권능급 혹은 그 이상의 스킬이 필요하리라. 고작 인퀴지터들에게 그런 짓이 가능하지는 않았을 테니, 교단에 도사린 거악은 꽤나 강대할 것이 빤했다.
“그래, 신 정도는 되겠지.”
아무리 만신전과 교단이 갈라섰다는 정보를 들었다고 한들, 정말로 교단 내에 신이 단 한 개체도 없을 리는 없다. 그리고 그 신이 ‘가나안 계획’을 주도했다. 별로 틀릴 거 같지는 않는, 하지만 내게 있어선 최악의 가설이다.
하긴 교단과 적대하기로 처음 마음먹었을 때 이미 각오했던 바 아니던가. 그때 나는 이미 신을 상대로 싸울 각오를 굳혔다. 필요하다면 나 스스로를 신위에 올리리라고도 결심했었지.
오래전에 주사위를 미리 던져둔 셈이다. 지금 와서 던져 버린 주사위를 다시 주워 올리려고 해봤자 승부의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선배, 퀘스트가 해결됐어요.”
생각에 잠겨 있던 내게 안젤라가 그렇게 속삭였다. 필드보스 처치 퀘스트가 클리어 처리된 걸 언급하는 것 같았다.
“그야 그렇지. 필드 보스인 케찰코아틀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없앴으니까.”
사실은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퀘스트 클리어를 처음 확인했을 때는 나도 놀랐었지만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굴었다.
그 놈의 선배가 뭐라고.
어쨌든 날개 달린 뱀은 굉장히 강력한 필드 보스로 판정돼서, 퀘스트 보상을 얻음으로써 내 야전 마법포병 레벨이 세 단계나 상승했다. 금화와 기여도 보상도 적지 않았으니 사실 포기하기엔 좀 아쉬운 퀘스트였는데 이런 방식으로라도 깰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 뱀이랑 무슨 이야기를 나누신 거였어요?”
“너, 못 알아들었냐?”
“그걸 알아듣는 선배가 이상한 거죠.”
“그건 그런가?”
케찰코아틀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인류의 말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내 종족 특성인 [모든 인류의 뿌리]는 인류의 언어라면 자동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니까.
어쨌든 내겐 케찰코아틀의 말을 안젤라에게 통역해 줄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통역해 주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귀찮아.”
유니크급 스킬을 내게 뜯겨준다면 또 모를까. 공짜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할 이유는 없다. 안젤라도 스킬까지 대가로 뜯겨가며 케찰코아틀의 이야기에 대해 알고 싶지는 않은지, 그 이상 내게 캐묻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케찰코아틀이 우리에게 보상으로 넘겨준 것들을 회수하러 갈 거야.”
케찰코아틀은 스스로의 입으로 과거 신성을 지녔었다 말했다. 그런 그녀의 말은 아주 거짓말인 것만은 아닌 듯했다. 권능 스킬인 [지배의 권능]에 걸려 있었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왜곡을 통해 결과적으론 명령을 거부해 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통 일은 아니었으리라.
“보상이요? 그게 뭔데요?”
이해한다. 보상이라는 건 가슴 뛰는 단어지. 그러나 나는 안젤라의 기대에 찬 시선을 피하며 건조하게 대꾸했다.
“사람들.”
“네?”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안젤라는 곧장 되물었다. 다시 대답해 주기는 귀찮았지만, 내가 대충 대답한 건 사실이었기에 할 수 없이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본래 이 정글에 살던 인류종족들이야.”
안젤라는 충격을 받은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 하지만 그런 흔적은 발견 못 했는데요. 식인 보아뱀을 사냥하느라 정말 이 정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잖아요. 그래도······.”
“응. 살아 있는 흔적은 발견 못 했지.”
살아 있는 흔적은 말이다.
곧 우리는 케찰코아틀이 말해준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커다란 바위 언덕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조금 달랐다.
“여기도 왔었어요.”
“그랬지.”
나는 바위를 들어 올렸다. 자연물처럼 보였던 그 바위는 마치 냄비 뚜껑처럼 생겼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들어 올릴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고, 이 바위 밑에 뭐가 있는지도 안다.
바위 아래는 마치 냄비처럼 움푹 파인 공간이 있었다. 칼로 잘 잘라 떠낸 듯한, 명백히 인위적인 공간이었다. 그 공간은 뜨거운 정글의 온도와는 상반된, 영하에 가까운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공간은 텅 비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꽉 차 있었다. 냉기에 의해 동면 중인 뱀들로 말이다.
더 명확하게 하자면 그것들은 뱀이 아니었다. 하반신은 뱀의 모습이었으나, 상반신은 인류 종족의 모습이었으므로.
“히익······!”
안젤라가 짧은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그 모습이 끔찍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끔찍하기는 했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떠올려 보자면. 그리고 안젤라는 그 이유를 능히 떠올릴 수 있으리라.
내가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으니까.
이 세계의 토착인류말살계획, 통칭 가나안 계획에 대해.
“이들은 아마조네안이다.”
“······네? 제가 아는 아마조네안이랑은 딴판인데요? 정글 엘프라고도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무엇보다 다리 두 개 멀쩡히 달린 데다 변온동물도 아니었어요.”
정정한다. 안젤라는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이런 모습이 되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야.”
“······아!”
이제야 알아챈 모양이군. 나는 쓴웃음을 흘리며 뱀인간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