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65
1185장. 물주
“회, 회장님!”
유한동은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에서 전문구라는 이름을 밝히며 전화해 올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
과거 수술을 집도했던 인연으로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 연대자동차 회장.
늘 바쁜 일정을 보내는 사업가였기에 이렇게 직접 통화하는 일은 드물었다.
– 스마트폰은 왜 꺼놓은 거요?
특유의 두툼한 음색을 띤 목소리로 물어왔다.
“……사방에서 전화가 빗발쳐서 말입니다.”
유한동은 몹시 피곤한 상태였다.
김현재 대표의 입원 뒤 스마트폰에 불이 날 지경이다.
알고 지내는 의사들부터 시작해 국회의원, 기자, 심지어 국정원에서까지 전화가 빗발쳤다.
도저히 평소에 해오던 일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결국 스마트폰을 꺼놓게 됐다.
병원을 통한 직통 전화는 극소수만 안다.
안내데스크 팀과 병원 보안 관계자에게도 신분을 밝히지 않는 전화나 방문자는 차단하라고 지시해 놓았다.
김현재 대표의 사고로 아웅대 응급센터는 폭풍의 중심이 됐다.
– 거 참! 사람들이 양심도 없어. 다친 사람을 위해서 기도는 못 할망정 왜 그렇게 궁금해하는지. 쯧쯧.
전화기 너머에서 전문구가 혀를 찼다.
“그러게 말입니다. 생사를 오가는 분께 예의가 아니죠.”
유한동이 씁쓸한 목소리로 답했다.
김현재 대표를 떠나서 하루에도 몇 명씩 이곳에서 사망 선고를 내린다.
그러다 보니 목숨이 달린 문제를 가지고 뉴스거리로 삼는 이들을 특히 격멸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겨우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들어갔다.
수술에 미친 김국조와 쌍으로 또라이 소리를 들었다.
두 사람 다 집보다 병원 집무실이 더 편했다.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하며 24시간 응급상황에 대비했다.
환자를 위하는 그들의 태도와 생활방식은 도리어 병원으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바뀌는 병원장마다 응급센터를 곱게 보지 않았다.
외과수술에 들어가는 인건비나 자재비용들 모두가 고가인 것도 한몫했다.
그에 반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적었다.
어느 정도 국가에서 지원이 나왔지만 쥐꼬리만한 자금으로 충분하지 못했다.
더구나 의료수가는 해마다 줄어들었다.
반면 교통사고나 일상생활에서 사고를 당한 환자들은 증가추세다.
곧장 응급센터로 올 정도면 대부분 중상환자다.
병실도 많이 차지하다 보니 다른 과에서도 대놓고 좋아하지 않았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지 않았다면 못 할 짓인 건 분명하다.
다른 동기 의사들처럼 잘나가는 성형외과나 피부과를 개원했다면 돈도 잘 벌고 가장으로서 위신도 섰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피가 끓어 어쩔 수 없었다.
환자만 보면 김국조처럼 눈이 돌아갔다.
죽음 문턱까지 간 환자를 자신의 손으로 살려냈을 때의 행복감은 상상 이상이다.
– 바쁜 것 같은데 간단히 말하겠소.
“네. 회장님.”
유한동은 전문구 회장을 좋게 봤다.
자신이 레지던트로 근무했던 병원도 연대 그룹 계열사였다.
웬만한 재벌들은 하나씩 소유하고 있는 게 병원이지만 당시 대우가 나쁘지 않았다.
전문구 회장의 선친이 농촌과 어촌 같은 의료 취약 지역을 위해 설립한 병원이 모태가 됐다.
어린이 심장병원으로도 유명했다.
당시로서는 재벌의 획기적인 사회 환원 방법이었다.
– 요즘 센터 경영은 어떻소?
“네? 경영요?”
뜬금없는 질문에 유한동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김국조를 바라봤다.
돈 문제는 언제나 민감한 내용이었다.
센터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배 이상의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병원은 경영난을 이유로 매해 지원금을 축소시키려 한다.
특히 이번에 부임한 병원장은 유난히 더했다.
병원에서 오래 근무한 센터장을 대신해 은연중 김국조를 갈궜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불러놓고 은근히 사직을 강요하기도 했다.
다만 김국조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있어 뜻대로 쉽게 자르지 못할 뿐이었다.
– 돈 필요하지 않소?
전문구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거야…….”
유한동은 말끝을 흐렸다.
소크라테스 선서를 지키고 싶어도 그 또한 통장에 돈이 넘칠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남은 자존심이 있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 내가 돈 많은 물주 하나 아는데 관심 없소?
“물주요?”
정치판도 아니고 물주라는 말이 낯설게 들렸다.
어차피 병원에 기부해도 응급센터만을 위해 사용할 수 없었다.
가끔 치료를 받고 고마워하는 이들이 같은 목적으로 기부를 해오기도 했지만 그렇게 들어온 기부금은 병원 측에서 각 조직으로 나눠 분배했다.
– 끌끌. 기대해도 좋소.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와 정체 모를 물주를 언급한 전문구 회장이 묘하게 웃었다.
“지인이십니까?”
유한동이 눈치껏 물었다.
– 지인? 당연한 소리 아니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인인 물주를 우리에게 소개시켜 주겠다는 거야?’
유한동은 괜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전문구 회장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무슨 수수께끼 같았다.
“그분이 누구시기에…….”
돈 많은 기부자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나눠 가져도 큰소리를 칠 수 있다면 당분간 응급센터 운영에 차질이 없을 것이다.
– 그분?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전문구 회장이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웃음소리가 무척 시원시원했다.
빙빙.
옆에서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듣던 김국조가 검지손가락을 펴고 머리 부근에서 돌렸다.
전문구 회장이 미친 거 아니냐는 뜻이다.
– 곧 만나게 될 거요. 그러니까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면 좋을 거요. 그 녀석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돈이 생기니까 말이오.
그 녀석이라고 상대를 가볍게 호칭하는 전문구.
“아, 알겠습니다.”
유한동은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쁜 일은 아닌 게 확실했다.
바쁜 연대자동차 회장이 이런 일로 장난 칠 리가 없었다.
– 수고해요. 시간 나면 술 한잔합시다.
전문구 회장은 전화한 용건을 다 마친 것 같았다.
“항상 마음 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돈을 떠나 이것저것 도움을 많이 받아온 터였다.
– 나중에 나 쓰러지면 모르는 척하지만 말아요. 하하하하.
뚝.
웃음과 함께 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지금 뭐라는 겁니까? 돈 많은 아는 지인을 센터장님께 보내준다는 겁니까?”
통화 내용을 다 듣고 있던 김국조가 확인하듯 물었다.
“어.”
“도대체 누군데요?”
“나도 모르지. 녀석이라고 호칭하는 걸 보니 나이가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그 물주님 누구신지 정말 궁금하네요.”
“왜 돈 필요해?”
“당연하죠. 애들 저녁에 야식 사 먹일 돈도 부족하잖아요.”
언제나 병원 일이 1순위인 김국조.
집에는 기본 월급만 보내고 있었다.
수당이나 기타 등등의 수입은 모두 응급센터를 위해 사용했다.
“제수씨가 보살인 줄 알아라.”
“센터장님이 그런 말 할 자격은 없으시죠. 형수님이야말로 테레사 님 급의 성녀 아니겠습니까?”
“흐흐. 그래 맞다. 보살과 성녀님이 아니면 누가 우리 인생을 구제해주겠냐.”
유한동이 말끝에 웃음을 터트렸다.
띠이잇.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이번에는 뭐냐?”
전화와 다른 병원 내에서의 호출 방법.
“무슨 일이야?”
– 센터장님. 병원장님이 급히 찾으십니다.
병원장 비서의 연락이다.
“무슨 일인데?”
병원장이라는 말에 인상부터 구기는 센터장.
요즘 들어 계속 부딪치고 있어 큰일이 아니면 보고 싶지 않았다.
– 자세히는 모르지만 기부자가 오신 것 같습니다.
“기부자?”
유한동이 김국조를 바라봤다.
손짓을 하며 빨리 가보라고 말하는 김국조.
센터를 위한 돈을 준다면 어디라도 달려갈 수 있었다.
– 네.
“알았어. 바로 올라갈게.”
통화를 끝내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물주가 온 것 같은데?”
“진짜 왔나 봅니다.”
“누군지 몰라도 얼굴 한번 보고 싶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기부자라니……. 어젯밤에 내가 도깨비 한 마리를 품에 안았는데 그게 개꿈이 아니었던가 보다.”
“어! 센터장님도 도깨비 꿈 꾸셨습니까?”
“너도?”
“네! 도깨비 한 마리가 큼지막한 황금방망이로 뺨을 후려치는데……. 아우! 잠에서 확 깼다니까요.”
“오! 그거 대박이다.”
“그런데 도깨비가 보통 존재는 아니지 않습니까? 잘하면 대박이지만 마음에 안 들면 쪽박을 선물한다고 하던데…….”
김국조가 말을 흐렸다.
“쫄지 말자. 우리 여기서 더 쪽박 찰 것도 없어.”
유한동이 바쁘게 가운을 챙겨 입었다.
한눈에 보아도 봐도 낡고 헤진 가운.
이 가운을 입고 지금까지 수천 명의 목숨을 살려냈다.
비록 낡았지만 유한동의 수호신 같은 옷이었다.
유한동은 이 낡은 가운을 절대 버리지 않았다.
그간 거쳐 간 환자들의 피가 남긴 흔적이 부적처럼 힘을 줬다.
“누군지 몰라도 왕창 뜯어내십시오!”
김국조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걱정 마! 내가 땡길 때는 땡길 줄 아는 남자 아니냐.”
김국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밖으로 나가는 유한동 센터장.
그는 문밖을 나서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만나러 가는 존재가 진짜 도깨비라는 것을 말이다.
***
“저희 병원은 각종 언론에 보도되었다시피 지역 거점 병원을 넘어 국가고객만족도 병원 부분 3위, 권역외상센터 전국 1위, 보건복지부 의료질 평가에서 전국 병원 상위 5%에 들었습니다. 거기에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에서도 인증을 받았습니다.”
아웅대 병원장실.
이마가 벗겨진 병원장 오동수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병원 전실적에 대해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생각지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앞서 아웅대 총장의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대단한 투자자가 아웅대에 도움을 주겠다고 연락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병원장은 귀가 솔깃했다.
내심 한 번 더 병원장을 역임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모두가 인정할 만한 실적이 필요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투자금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
설명이 끝났는데도 커피잔을 앞에 놓고 상대는 아무 말이 없다.
겉으로 보아 나이는 한참 어렸다.
하지만 함부로 하대할 수 없을 만큼의 포스가 풍기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과 액세서리 등 눈에 띄는 모두가 보기 드문 최고급 명품이다.
한마디로 온몸에서 돈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게 웬 봉이냐! 흐흐흐.’
오동수 병원장은 기분이 한없이 좋았다.
탁자에 명함 한 장이 놓여 있다.
오동수도 얼마 전에 들어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다.
대한민국 재계를 들었다 놨다 한다는 거물 투자자.
앞에 앉아 있는 이의 이름은 바로 그 장태산이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