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4
123장. 공대에서 (3)
“난 망했다. 하필이면 앱 개발이야……. 흑.”
자신감 빵빵하던 시은 선배는 고개를 처박았다.
눈시울이 빨개진 모습이 진짜 울 것 같다.
사티 교수는 똥을 던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투덜거리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거부하지는 않았다.
이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모두가 떠난 강의실.
폭망한 시은 선배와 나만 남았다.
“앱 개발이 힘들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2008년 태동하는 앱 개발은 컴공과 학생들의 난적이다.
자료가 너무 빈약했다.
“당연하지! 웹도 아니고 앱이라고! 아이펀은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전파인증 통과도 못해 해외에 있는 걸 내가 어떻게 구입해?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이제 초기 프로그램을 개발했어. 리눅스 체계라 쉽겠지만 그걸 굴릴 수 있는 기계가 없잖아!”
컴공과라고 최신정보는 빠삭하게 알고 있다.
“저 아이펀 있는데…….”
“뭐, 뭐! 아이펀!”
“친구가 선물로 줬습니다. 국내에서 사용은 못 하더라도 프로그램은 개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클라라가 홍콩에서 선물이라고 들고 왔다.
장식품으로 집에 있다.
“안 돼.”
“왜요?”
“아이펀 애들은 폐쇄적이야. 여기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보내고 그들이 통과시켜줘야 돼.”
“그냥 올리면 안 돼요?”
“당연하지! ios 프로그램은 개방형이 아냐. 그리고 아직 이렇다 할 개발 툴도 국내에는 없어.”
“그래요?”
“아이펀 애들 또라이라는 건 이쪽 업계에서는 유명해.”
“흐음……. 그렇구나.”
“차라리 오픈 소스를 사용하는 안드로이드 진영을 공략하는 게 편한데 가동할 기계가 없다. 들리는 정보에 의하면 아직 안정화가 이뤄지지 않아 곳곳에서 버그나 오류가 발생한대.”
4학년이라 뭔가 달랐다.
“그럼 포기해요?”
“안 돼애애애애! 나 이거 패스 못하면 졸업 못 해! 사티 교수한테 다시 발목을 잡힐 수 없어!”
“1학년 때 뭐 하셨어요? 1학년 전공필수잖아요.”
“……. 그 당시 교수가 개새끼였다.”
“개새끼요?”
단어가 아주 셌다.
전공 교수를 개새끼라고 말할 정도면 말 다했다.
“전산학과 시절부터 교수였는데 연구는 안 하고 랩실 선배들 연구비나 착복하는 쓰레기였다. 그런데 신입생 환영회 때 그 개새끼가 술 취한 척 허리를 쓰다듬고 엉덩이까지 만지려는 걸…….”
만지려는 걸?
그 다음을 말하려는 시은 선배 눈에 스파크가 팍팍 튀었다.
“어릴 적 배운 호신술로 그대로 팔을 꺾어 버렸다! 아우! 지금 생각해도 속 시원하네! 개새끼!”
이……. 여자 성격이 진짜 공대생 맞다.
건들면 무식하게 물어버리는 집요함의 표상 같았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그 다음날부터 수업 안 나갔다. 전공필수라고 강제적으로 들어야 했지만 학생이 싫다는데 어쩔 거야. 어차피 전공 선택 과목에서는 볼 일도 없다. 작년에 정년퇴직하니까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4학년까지 왔다는 게 기적입니다. 그 성격에.”
“그렇지? 흐흐. 내가 봐도 성격이 지랄 같아. 그런데 어쩌랴. 여자로 태어났다고 막 만져도 되는 건 아니잖아? 그것도 교수라는 작자가 말이야.”
“맞습니다.”
“그런데 너 어떡하냐?”
“뭐가 말입니까?”
“이 강의 패스 못하면 내 꼴처럼 된다. 사티 교수가 부교수지만 특별 프로젝트 때문에 초빙되어 당분간 갈 일 없다. 이 과목은 사티 교수 전담이야.”
“괜찮습니다. 저에게는 필수도 아닙니다.”
“무슨 헛소리야. 이 과목은 컴공과 필수야. 패스 못하면 졸업장 안 나와!”
톡톡 튀는 어감의 대화법이 확실히 특이한 캐릭터다.
그녀와의 대화가 유쾌했다.
“그건 컴공과 얘기죠.”
“컴공과? 와아. 너 컴공과가 아닌 것처럼 말한다.”
“맞습니다. 저 컴공과 아닙니다.”
“뭐! 커, 컴공과가 아니라고???”
여성의 눈동자는 확실히 커야 괜찮은 것 같다.
화들짝 놀라는 눈망울이 매력적이다.
안경에 가려졌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100만 불짜리다.
늙은 교수가 괜히 엉덩이 만지려고 달려든 게 아니다.
매혹적인 꽃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남자의 심장을 뜨겁게 만든다.
“신입생이라며!”
“네. 법학과 08학번입니다.”
“법학과라고!”
시은 선배가 벌떡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네~.”
“아아…….”
손으로 고개를 잡고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컴공과도 아니고 법학과 신입생과의 앱 개발은 죽어도 무리다. 그건 상식이다.
“선배님. 나가서 커피 한잔하시죠. 제가 쏘겠습니다. 머리 아플 때는 카페인이 최고죠.”
절망하는 온시은을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도움이 필요했다.
이제 막 태동하는 아이펀 애플리케이션 시장.
한때 아이펀 유저로서 죽여주는 앱들이 미친 듯 창의성을 자극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에게는 그 녀석이 있었다.
내 전용 외주 제작자.
블라드미르는 인건비도 안 드는 세계 최강의 가성비 갑 개발자였다.
* * *
“뭐라고? 블록체인 기술? 그건 또 뭔데?”
미끼를 던지자 온시은이 덥석 물었다.
“P2P 네트워크를 이용해 이중 지불을 막는 기술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P2P 서비스는 불법이잖아. 어둠의 루트를 이용하자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온시은이 달달한 캐러멜 마키아토를 마시다가 그대로 멈췄다.
컴공과 후배가 아닌 법대생이 이런 말을 하는 게 낯설었다.
‘내가 귀신에 홀린 건 아니지?’
날을 새고 오전까지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오후 강의실에 들어왔다.
어제 과사무실에서 1학기에 개설되는 전공필수 미이수자 통보를 받았다.
부랴부랴 수강정정신청을 마쳤다.
어쩔 수 없이 핏덩어리 같은 후배들과 수업을 받아야 했던 온시은.
중증 카페인 중독 환자 수준이라 커피를 사러 가다 후배 캔커피를 가로챘다.
공대에서 4학년은 하늘과 같은 선배다.
타 공대에 비해 군기가 빡세지 않지만 공대는 공대였다.
더욱이 커피를 들고 있던 녀석은 아주 핸섬했다.
남자에게 지금껏 한 눈 한번 안 팔았던 온시은이 놀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신입생을 놀릴 겸 옆자리에 앉혔다.
뒤에서 신입생들뿐만 아니라 동기나 선배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쌩깠다.
군대 다녀온 동기 녀석들은 1학년 때부터 온시은에게 술 한잔하자며 치근덕거렸다.
과락 맞아 재수강하는 녀석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시은은 교수를 비롯해 선배라는 작자들이 술만 먹으면 개가 되는 걸 몇 번 보고는 모든 술자리를 차단했다.
철벽 보안녀라는 별명이 붙은 온시은도 법대 신입생을 보고 뻑갔다.
한국대 역사상 저렇게 잘난 놈이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공대 여신급으로 추앙받던 온시은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태연하게 강의실에서 가장 예쁘다는 말을 서슴없이 날리는 신입생.
갑자기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얘기가 나왔다.
온시은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네트워크 방화벽과 보안이 주전공인 온시은에게도 생소한 단어였다.
“미래 공공거래장부 기술이라 축약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공공거래장부? 악의 축인 P2P로?”
“P2P 네트워크 서버를 이용해 똑같은 거래장부를 정해진 시간에 최신상태로 갱신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해. 도둑님 천지인 그곳에서 그만한 신뢰가 쌓일 수 있을 것 같아?”
“분산 컴퓨팅의 문제점을 해결하면 됩니다.”
“그게 무슨 뜻인 줄이나 알아?”
“가짜 파일 때문에 그렇습니까?”
“맞아. 토렌트에서 악의적으로 유포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냥 스톱이야. 법대생이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 공대 누나가 보는 관점에 의하면…….”
“비잔틴 장군의 딜레마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 그 말을 알아?”
과거 비잔틴 제국 시절 황제의 명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앞장서던 지역 장군들이 많았다.
그들은 서로를 믿지 못해 합동 공격을 하지 못한다는 말에서 파생된 용어다.
‘호오, 이 녀석 뭐지?’
온시은은 다시 한 번 법대 신입생을 봤다.
아무리 봐도 잘나기만 한 녀석이다.
법대생들이 괴물이라지만 공대생들도 만만치 않았다.
광기와 똘끼, 창조 정신에서는 법대생들도 따라오지 못했다.
그런데 눈앞의 녀석은 뭔가 다르다는 걸 온시은은 알았다.
“서로 믿을 수 없는 네트워크 사용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에이, 뻥치지 마. 그런 기술은 아직 없어.”
“제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올 가을에 발표될 예정입니다.”
“진짜?”
“proof-of-work-scheme.”
법대생 입에서 컴퓨터 공학 용어가 나왔다.
“작업증명체계?”
“신뢰의 확신을 위해 10분씩 걸려 풀 수 있는 수학 문제를 2시간 동안 연달아 풀고 여기서 도출한 12개의 답을 서로 검증하면 됩니다.”
“자, 잠깐 노트 좀 하자.”
서둘러 대학노트를 꺼내 온시은은 기본이론체계를 정리했다.
빠르게 용어들이 노트에 채워졌다.
‘이런 기술이 있다면?’
온시은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관통하는 짜릿함을 맛봤다.
오로지 컴공과 학생들만 맛볼 수 있는 지적 쾌감.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로 파생될 여러 가지 기술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름 천재 소리 듣는 온시은이었기에 확장 추론이 가능했다.
“장부를 조작하면 끝이잖아?”
“불가능합니다.”
“왜?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서버에 침투한다면…….”
“오류입니다. 이 기술은 P2P가 전제입니다.”
“그래도…….”
“블록체인을 수호하려는 세력이 51프로가 넘는다는 가정하에 실행되는 기술입니다. 선배 같으면 일개 개인이나 단체가 전 세계 네트워크 사용자를 상대로 덤빌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
경쾌한 해답에 온시은은 감탄사를 날렸다.
개인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수호하기로 합의만 된다면 전 세계 슈퍼컴퓨터로도 막을 수 없는 정보 처리량이 발생한다.
사실상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중앙 서버가 없어 해커가 공격할 수도 없습니다. 단, 거래 중계업자가 나타난다면 해킹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자식 뭐야? 나도 모르는 최신 이론에 왜 이렇게 해박해?’
온시은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법대생이 새롭게 보였다.
얼굴만 잘난 게 아니라 머리도 엄청났다.
“법대생들이 다 너 같은 건 아니지?”
“저만 특별합니다.”
“그래……. 그래야 나도 먹고 살지.”
블록체인 기술 하나로 온시은은 법대생을 인정했다.
랩 연구실에 특채가 예정된 온시은을 손들게 만든 타과생은 장태산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정보를 나에게 주는 이유가 뭐야? 아직 미발표 기술이잖아.”
“선배는 지금부터 개발해도 못 따라갑니다.”
“무시하는 거지?”
“그게 현실입니다. 이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독특한 알고리즘과 수학에 천재적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선배 수준으로 가능합니까?”
직설적으로 훅 찔러 들어오는 질문에 온시은은 입을 다물었다.
전 세계 네트워크 사용자를 아우를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은 불가능했다.
연구실 전체 연구원들이 달려들어도 장담할 수 없다.
“가슴 아프지만 그것도 인정.”
“전공이 보안이라고 하셨죠?”
“어. 다른 건 몰라도 네트워크 설계 보안과 방화벽에는 일가견이 있지.”
공대녀로 산 시간만큼 온시은의 말투는 남자다웠다.
“다른 말로 해커라고도 하죠.”
보안을 위해서는 해커 기술에 능해야 한다.
‘얘 정체가 뭐야?’
대화를 할수록 온시은은 법대생에 경악했다.
컴공과 대학원생들과 대화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그렇지…….”
“제가 아주 대단한 보안 프로그램을 알고 있는데 한번 뚫어보시겠습니까?”
“뭔데? 불법은 아니지?”
“해커에게는 방화벽을 뚫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거 아닙니까?”
“그래도 호적에 빨간 줄 올리면 그렇잖아. 우리 부모님 평범하단 말야. 나 시집은 가야지.”
“선배.”
법대생이 온시은을 불렀다.
이글거리는 뜨거운 눈빛이 온시은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얘……. 왜 이래. 심장 떨리게.’
대학에 들어와 처음으로 맛보는 멋진 남자와의 커피 타임.
온시은은 뛰는 심장을 달래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왜?”
“선배 인생 제가 책임지면 안 되겠습니까?”
“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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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