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1
130장. 선수는 달랐다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기숙사 학생이야?”
“우리 학교에 저런 미녀가…….”
기숙사 옆 농구장에서 뛰던 남학생들이 멍하니 온시은을 쳐다봤다.
도서관에 가거나 데이트를 위해 기숙사를 나서던 이들도 온시은에게 꽂혔다.
봄이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학교에 아이보리색 봄 꽃송이가 살아서 걸어왔다.
졸업식 사진을 위해 구입했던 원피스 정장을 차려입은 온시은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도 난생 처음 하는 데이트였기에 큰마음 먹었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2학년 여학생에게 화장을 배웠다.
7센티미터 굽 구두도 처음이었다.
오빠가 입학 기념이라고 사줬던 명품 핸드백도 들었다.
머리칼도 포니테일 형태로 깔끔하게 묶었다.
안경을 벗고 렌즈도 착용했다.
방 짝이 손뼉을 치고 시상식 나가는 여배우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학년 때 당했던 성차별에 꽁꽁 자신을 묶었던 온시은은 스스로 무장해제했다.
본인이 봐도 놀라운 자신의 모습이었다.
공부만 죽어라 팠고 4학년이지만 랩실 특혜를 받아 햇빛 받을 기회가 적었던 온시은의 볼은 아직도 젖살이 남았다.
누가 보면 신입생이라 해도 믿을 것 같은 동안이었다.
‘어디 있는 거야? 주차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남자들의 시선에 볼이 붉게 물든 온시은은 그를 찾았다.
살짝 무리해서 장만한 원피스 치마 끝단은 플레어스커트다.
그것도 무릎 위로 10센티미터쯤 올라와 뽀얀 살과 각선미를 그대로 드러냈다.
화끈거렸지만 온시은은 참았다.
오늘은 대학 생활 시작한 이후 첫 데이트다.
아니 인생 통틀어 처음이다.
한국대 컴공과에 오기 위해 청춘을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각별했다.
처음 만난 날 인생을 책임지겠다며 청혼한 1학년 법대생.
얼떨결에 데이트가 먼저 아니냐고 말하고 나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기숙사에 돌아와 저녁 내내 이불킥을 했다.
죽어버린 연애세포가 큰 사건을 만들었다.
“시은이 아냐?”
“오오오! 온시은 너 뭐냐? 설마 선보러 가는 거야?”
“몸매 착한 거 봐라. 진작 좀 그렇게 하고 다니지. 얼마나 좋냐. 얼굴도 착한 애가 왜 가리고 다녀? 흐흐.”
군대 다녀와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컴공과 껄떡 삼총사 선배들이 온시은 정면에서 다가왔다.
대놓고 온시은의 위아래를 훑었다.
끈적거리는 시선에 온시은의 인상이 구겨졌다.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기분을 맛봤다.
대학교에 들어와 공부 대신 놀기 바빴던 삼총사 선배들.
그들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기에 기분이 엉망이 됐다.
멋모르는 신입생들에게 수작질 부리기로 유명했다.
대충 생겼지만 한국대라는 학벌로 타학교 여학생들을 울린다는 소문도 있었다.
‘악질 바이러스 같은 새끼들.’
온시은은 간단히 그들을 무시했다.
한 학번 선배지만 굳이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저 실력에 연구실에 들어올 짬도 안 된다.
학교를 졸업하고 기업에 취직하거나 주제도 모르고 창업했다가 사라질 사람들이다.
또각또각.
온시은은 고개를 들고 앞만 보고 걸었다.
선배들을 쌩까며 스쳐 지나갔다.
약속 시간 1분 전.
그를 찾았다.
“야! 온시은!”
“얼굴 좀 반반하다고 오냐오냐했더니 코가 하늘을 찔러? 너 선배가 우습게 보여!”
“네가 그러니까 마녀 소리 듣는 거야! 싸가지를 밥 말아 먹고 다니니까!”
선배들이 뒤에서 험담을 퍼부었다.
온시은의 눈썹이 싹 치켜 올라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수모.
그래도 선배라 불같은 마음을 꾹 눌렀다.
그들 친구들이 연구실에 있기에 최소한 배려를 했다.
그런데 감히 성희롱에 이어 모욕까지 퍼부었다.
“이…….”
한바탕 욕을 퍼부으려는 그 순간.
“사과해라.”
선배들 뒤로 나타난 한 남자.
조용하고 차갑게 경고를 날렸다.
컴공과 복학생들이 화들짝 놀라며 등을 돌렸다.
멋들어진 스포츠카 문을 열고 그가 나타났다.
“너, 넌 뭐야!”
“나? 시은이 남자 친구.”
“!!!”
온시은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을 보고 씩 웃는 장태산.
그의 웃음이 햇살보다 더 강렬하게 온시은의 눈동자에 박혔다.
* * *
“집이……. 부자야?”
“먹고 살만 해요.”
“차 좋다.”
‘얘 정체가 뭐야?’
온시은은 운전하는 장태산을 보며 혼란에 빠졌다.
장태산은 선배들을 확 눌러 지려 밟았다.
스포츠카 탄 왕자님이 따로 없었다.
어디 남자가 할 짓이 없어 후배를 성희롱하냐며 준엄하게 꾸짖었다.
대들던 놈들에게 법학과 학생증을 내밀었다.
컴공과가 잘나가지만 한국대에서 법학과는 또 다른 영역이다.
학교에서 과 파워가 달랐다.
연예인들 중의 연예인 같은 존재가 법대생들이다.
선배들이 입을 다물었다.
공부 잘한다고 인성이 좋은 건 절대 아니다.
또라이들 평균 법칙도 한국대에 존재한다.
인간들 중에 일정 부분은 또라이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또라이 평균 법칙.
법대생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성희롱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학교 인터넷에도 올릴 거라 장태산이 밝혔다.
사색이 된 선배들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잠깐 실수였다고 사과를 했다.
강한 자에게 고개 숙이는 전형적인 소인배들이었다.
그리고 장태산은 보조석 문을 열고 온시은을 태웠다.
눈에 이글거리는 분노와 질투를 보이던 컴공과 남학생들을 대놓고 비웃었다.
정신상태가 썩은 선배들에게 이보다 좋은 복수는 없었다.
그런 장태산의 차에 탄 온시은은 정체가 궁금해졌다.
법학과 1학년이 스포츠카를 타고 다녔다.
부잣집 자제가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차 필요해요?”
“???”
“그럼 가져요.”
“…….”
온시은이 다시 한 번 놀랐다.
농담으로 던진 말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딱 봐도 1억은 훌쩍 넘을 것 같은 차를 거저 준단다.
말로만 듣던 부잣집 아들도 이렇게는 못할 것 같다.
“나에게 왜 그래?”
온시은은 바보가 아니다.
연애세포가 죽었지만 머리는 비상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신입생이 기분에 취해 고백했을 수도 있다.
누가 봐도 잘난 녀석이라 데이트를 허락하기는 했지만 의문점이 많았다.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는 건 온시은도 안다.
그래도 데이트 약속을 잡은 이유는 장태산이라는 이 겁 없는 신입생이 멋진 놈이라는 거다.
완전 이상형이다.
꿈에서나 그리던 외모를 떠나 편안한 말투와 남자다운 눈빛, 해박한 IT 지식과 견해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자신에게 왜 그러는지를 말이다.
“인생 책임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진짜 결혼이라도 할 거야?”
“진짜 저와 결혼하고 싶습니까?”
“…….”
훅 들어오는 질문에 온시은은 답하지 못했다.
무슨 신입생과 결혼이란 말인가.
미래가 창창한 법대생 훈남이 공대녀와의 결혼이라니 온시은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했다.
“그럼 나에게 왜 그러는데!”
“먼저 데이트하자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 그건.”
온시은의 입이 쑥 들어갔다.
“선배님이 토요일로 시간을 잡고 통보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왔습니다. 이런 봄날에 미녀의 부탁을 거절하는 매정한 놈은 되기 싫습니다.”
‘미녀…….’
여자에게 마력 같은 단어가 아름답다는 말이다.
온시은도 여자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자신의 옷차림.
말하는 와중에 잠깐 장태산의 시선이 무릎을 스치고 지나갔다.
평소 입지 않았던 원피스다.
무릎 위로 좀 더 야하게 올라가 있었다.
누가 보면 대놓고 남자를 유혹하는 모습이다.
서둘러 핸드백으로 치마를 정리했다.
“남자 친구라는 말은 네가 먼저 말했잖아.”
“그럼 그 자리에서 강의실에서 처음 본 법대 후배라고 할까요? 자격이 있어야 그런 놈들을 박살낼 수 있는 겁니다.”
논리적으로 법대생에게 밀렸다.
온시은은 이 상황이 유치했지만 나름 심각했다.
“그럼 어떻게 책임질 거야? 날 직원으로 종신 채용이라도 할 거야? 신입생인 네가?”
나름 생각하고 던진 한마디.
법대 1학년이 인생을 책임질 방법이 몇 개 떠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뭐라고?”
“온시은 선배님. 저와 함께 화끈한 꿈 한 번 꿔보지 않겠습니까?”
“뭐, 뭘?”
어느새 차가 멈췄다.
아옹다옹하는 사이 어느새 차는 강가에 도착했다.
봄날 초록을 힘껏 빨아들이는 버드나무 아래.
유유히 한강이 흘러갔다.
강에 반사되는 햇살이 차 안까지 스며들었다.
멋진 꿈을 꾸자는 이글거리는 장태산의 눈을 피해 온시은은 고개를 돌렸다.
“아!”
그렇게 고개를 돌리던 온시은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강이 흘렀다.
이런 풍경 얼마 만에 눈에 담는지 몰랐다.
어릴 적부터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왔다.
좋은 청춘 다 보낼 때까지 학교와 기숙사를 별로 벗어난 적이 없는 온시은.
봄 햇살이 흐르는 따사로운 강을 보는 것만으로도 환희에 젖었다.
딸깍.
장태산이 차에서 내렸다.
“내려요.”
예의 바른 모습으로 차 문까지 열어줬다.
그리고 내미는 손.
온시은은 잠시 갈등했다.
이 손을 잡는 순간 인생에 엄청난 전환점이 될 것 같은 예감을 강하게 받았다.
“오늘은 누가 뭐래도 제가 남자 친구입니다.”
‘나쁜 놈이 확실해! 나 어떡해!’
알지만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녀석의 멘트는 오글거렸지만 환장하게 귀에 맴돌았다.
“손이 부끄러워집니다.”
뻔뻔한 녀석의 말이 가슴 약한 온시은을 울렸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온시은.
감정적으로 이성보다 본능이 우위를 점했다.
가늘고 부드러운 녀석의 손은 따뜻하기까지 했다.
살짝 강하게 당기는 장태산의 손에 온시은은 차 밖으로 나왔다.
휘리리링.
갑자기 강하게 불어오는 봄바람.
치맛자락이 대책 없이 바람을 타고 춤췄다.
“앗!”
온시은이 놀랐다.
손을 잡힌 상황이라 수습하는 게 불가능했다.
경치 좋은 곳이라 주변에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온시은의 비명에 다들 고개를 돌리며 쳐다봤다.
난감하기 그지없는 순간.
그때.
나쁜 남자의 팔이 강하게 온시은을 휘감아왔다.
“!!!”
몸이 밀착되면서 치맛자락이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온시은은 그대로 몸이 굳었다.
아빠 말고 처음으로 다른 남자 품에 안겨버렸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쁜 남자는 향기도 좋았다.
이대로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스쳤다.
‘시은아! 정신 차려!’
마력의 덫에서 벗어나려 몸을 움직였다.
“가만있어요.”
나쁜 놈의 부드러운 주문에 몸이 다시 굳었다.
악마의 속삭임에 이어 허리를 가볍게 안아오는 예의 바른 손.
온몸의 피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선물 사드리겠습니다.”
선물? 갑자기 무슨?
온시은이 의문에 빠지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한 슈퍼컴퓨터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
온시은의 몸은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선수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컴공과에 입학한 온시은의 목표가 자기 손으로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고 완벽하게 틈새를 파고든 악마의 유혹.
온시은은 그물에 걸린 새처럼 나쁜 남자의 품에서 얕은 숨을 헐떡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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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