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52
352장. 빨대꾼
“영주님. 상단 구입 목록입니다.”
하룻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자 바크셔가 상기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거침없이 내미는 한 장의 종이.
대박!
종이에 적혀 있는 숫자에 입술이 씰룩거렸다.
코펠을 비롯해 그릇 세트까지 1,000개가 넘었다.
아공간에 있던 놈들까지 모조리 꺼내 팔아야 할 양이었다.
순식간에 재고 땡처리가 완료됐다.
시계는 200개를 원했다.
아공간에 시계는 재고가 많아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무, 무슨 문제라도 있는 지요?”
“시계 물량이…….”
“고위 귀족들이나 마법사들에게 팔 수 있는 물건입니다. 이번에 가져온 재화로는 그 정도가 한계입니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내 생각은 달랐다.
“귀 상단이 나에게 보인 신뢰와 호의를 봐서 외상으로 200개를 더 주도록 하겠다.”
“허엇! 그, 그래도 되는지요? 그런 진귀한 물건을 외상으로…….”
시계 한 개당 금화 100개짜리였다.
그릇 팔아서 남는 이윤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구 환율로 개당 3억짜리를 그냥 남겨둘 수 없었다.
“왜 팔 자신이 없는가?”
“아닙니다! 외상을 주신다면 가격을 더 쳐 드리겠습니다!”
외상으로 시계를 더 넘겨주겠다는 말에 바크셔의 얼굴이 상기됐다.
상단도 이번 상행에서 얻는 이윤이 엄청날 것이다.
상인 바크셔가 봐도 시계와 그릇은 없어서 못 팔 게 분명했다.
“그대와 사비나를 믿겠다.”
“영광이옵니다. 영주님!!!”
기다렸던 대박이 터졌다.
사비나가 가져왔던 금화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형 상거래였다.
“황금은?”
“아래층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금액은 보석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바크셔는 계산이 빨랐다.
내가 제시했던 가격에 맞춰 총 재화를 투입했다.
옆에 있던 큼지막한 가죽 주머니를 들어서 나에게 건넸다.
“대륙 시세대로 계산했습니다. 여기 보석들은 감정을 마친 제품들입니다. 감정서가 상단에 등록되어 있어 어느 때라도 제출하시면 현 가격으로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제국 금화로 약 10,000개 정도의 가치입니다.”
금화 10,000개!
찢어지려는 입꼬리를 절대 열지 않았다.
그저 이 정도 거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범한 표정으로 주머니를 받았다.
그리고 무심하게 주머니를 열었다.
파아아아앗!
눈부신 광채가 보석에서 뿜어져 나왔다.
묵직한 주머니에는 각종 보석이 50여 개 정도 들어 있었다.
“드워프들이 가공한 보석들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상품들입니다.”
핑크 다이아몬드다!
지구에서 끝내주게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다이아몬드가 몇 개 보였다.
다들 큼지막했다.
보석상이 본다면 환장할 물건들이었다.
이곳도 보석 유통이 활발하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사비나가 좋은 정보를 알려줬다.
질 좋은 보석 생산이 많다고 했다.
특히 드워프들이 채굴한 보석은 품질 상태가 좋다고 했다.
드워프를 만나고 싶었다.
보석은 지구에서도 요긴했다.
모조리 쓸어 담고 싶었다.
욕망으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대들을 믿겠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꾸벅 고개 숙이는 상인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행복했다.
땡처리 시계로 벌어들인 엄청난 금과 보석.
단 한 번의 거래로 1,000억이 훌쩍 넘는 이득이 발생했다.
세상에 이만한 현물 거래 이익은 드물 것이었다.
– 대형 상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험치가 듬뿍 부여됩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마나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 칭호가 ‘핫! 이계 졸부’로 변경되었습니다.
머릿속에서 터지는 격한 알림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마음속으로 광소를 터트렸다.
단 몇 달 만에 이룩한 엄청난 레벨업과 경험치, 그리고 돈.
세상에……. 이보다 더 꿀 빠는 알바 터는 없었다.
***
“각하. 베르샤 백작령을 빼앗아야 합니다. 그 영지만 차지할 수 있다면 각하께 엄청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루벡 남작은 강변을 토했다.
‘베커! 네 이놈! 내가 영혼을 팔아서라도 네놈을 찢어죽이리라!’
베커라는 놈은 강도와 다를 바 없었다.
세상에 남작 성에서 돈 될 만한 물건은 씨가 말랐다.
영지민도 수만 명을 끌고 갔다.
루벡 남작과 기사들의 꼴을 보고 참았던 민심이 폭발했다.
베커 영주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자기들이 알아서 성을 뒤졌다.
그리고 개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챙겨서 성을 떠났다.
루벡은 베커 영주가 떠난 뒤에도 한참을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성에 남아 있는 자들이라고는 기사들의 식솔과 루벡을 따르던 악독한 관리인들 일가뿐이었다.
루벡은 빈털터리가 되어 성에서 망연자실했다.
대대로 꿍쳐놨던 마법 금고가 텅 비었다.
기사들이 사용할 변변한 무기 하나 없었다.
그릇에 포크 하나까지 싹 긁어가는 바람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루벡은 베커 영주가 영지를 털어서 성을 떠나자 쪼로로 보호자인 아라돈 후작가로 달려왔다.
부릴 말 한 필이 없어 가까운 마을에서 망아지 한 마리를 빼앗아 타고 왔다.
그렇게 거지꼴로 루벡은 아라돈 후작과 대면했다.
그리고 아라돈 후작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당장 베르샤 영지를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벡 남작.”
집무실 의자에 몸을 묻고 있던 아라돈이 루벡을 조용히 불렀다.
아라돈 드 쥬넨 후작.
사십 대 후반의 사내였다.
크지 않은 키에 인상은 차가웠다.
웃고 있지만 전신에서 흐르는 사늘함은 마주한 누구라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네, 네. 각하.”
같은 귀족 신분이었지만 아라돈 후작 앞에 루벡이 고개를 조아렸다.
계산이 정확하고 냉정한 아라돈 후작은 언제 봐도 무서웠다.
“경은 내가 바보로 보이는가?”
툭 던지는 아라돈의 한마디.
“각하! 그 무슨 그런 안 되는 말씀을 하십니까!”
루벡은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주제도 모르고 사냥에 실패했으면 자숙해야지. 날 끌어들여 사냥감을 처리하겠다는 심산인가? 흐음……. 날 우습게 보는 게 맞군.”
‘모두 알고 있다!’
루벡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갑옷과 무기도 없는 기사만 남은 영주라……. 루벡 남작. 이 위기를 극복할 자금은 있는가?”
툭툭 던지는 아라돈의 차가운 말투에 루벡은 다리의 힘이 풀렸다.
“가, 각하…….”
“영지민도 없고 재화도 없는 영주라……. 후후.”
아라돈 후작이 비웃듯 피식 웃었다.
진작 루벡 성에 있던 첩자를 통해 모든 걸 파악하고 있었다.
루벡이 베르샤 백작성을 노리고 병력들을 이끌고 나섰을 때 루벡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있던 루벡은 아라돈을 무시했다.
베르샤 성을 허락도 없이 처먹을 심보를 암암리에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루벡이 대패를 당했다.
‘멍청한 새끼.’
아라돈은 이 순간이 더없이 즐거웠다.
루벡의 실수로 두 개의 성을 얻을 수도 있는 기회를 잡았다.
“루벡 경. 마지막 남은 명예를 지킬 기회를 주겠다.”
한껏 비웃으며 아라돈은 미끼를 던졌다.
툭.
루벡 앞에 떨어진 가죽 주머니 하나.
“마력석이 들어 있다.”
“???”
루벡은 아직 아라돈의 뜻을 파악하지 못했다.
“성과 기사를 넘겨라. 경의 복수는 내가 해주겠다.”
“가, 각하!!!”
루벡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심장이 옥죄는 분노를 맛봤다.
성과 기사가 없는 영주는 더 이상 귀족이라 할 수 없었다.
마력석 따위로 넘길 것들은 더더욱 아니었다.
“왜 언짢은가?”
느릿하지만 차가운 아라돈의 비수 같은 말이 루벡을 또 다시 후볐다.
“크으.”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처박는 루벡.
아라돈 후작의 뜻은 명확했고 더 이상 부인하거나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아라돈 후작이 마음만 먹는다면 힘없는 자신의 목 따위는 소리 소문도 없이 베어버릴 것이다.
‘베커! 네 이놈……. 네놈이 죽는 꼴을 반드시 보고 말 것이다!’
루벡은 복수만을 생각했다.
자신을 이런 치욕으로 몰아넣은 놈만 죽일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수모도 참을 것이다.
“너, 넘기겠습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 루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당연하다는듯 아라돈이 바라봤다.
죽여 버리고 빼앗을 수도 있지만 데려올 기사들을 불명예스럽게 만들기 싫었다.
예전 주군을 죽인 자와 함께한다면 기사들은 평생 치욕 속에 살아야 했다.
“현명한 결정이다.”
아라돈은 이제 루벡을 경이라고도 부르지도 않았다.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그놈의 목을 잘라 저에게 보내주십시오! 각하의 이름으로 약조해 주십시오!”
한으로 이글거리는 루벡의 눈동자.
“내 가문과 이름으로 그놈의 목을 선물할 것을 약조한다.”
아라돈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 없는 베르샤를 차지한 건방지고 근본 없는 놈.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목숨으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
퍼어어엉!
“오오오!”
진심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히이이이잉.
옆에 매여 있던 말이 놀라 울음을 토했다.
4서클 파이어 스톰이 드넓은 벌판에서 폭발했다.
네 개의 불기둥이 서로 합쳐지며 공간을 빨갛게 불태웠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거대한 불의 폭풍이었다.
마법이 터지고 순식간에 지름 100미터 정도가 지옥불 밭이 됐다.
6서클 마법사가 펼치는 4서클 마법은 차원이 달랐다.
지상에 있던 모든 풀과 생물체들이 재로 화했다.
숨죽이며 타오르는 마법의 불길을 노려봤다.
파아앗.
눈알은 마법을 담기 위해 쉬지 않고 굴렀다.
마법……. 진짜 죽이는 수법이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불길만 보이겠지만 내 눈에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분열 폭발하는 마력의 용트림이 보였다.
붉은 마력이 3D 그래픽처럼 투영되었다.
처음 보는 4서클 공격마법의 끝판 대장인 파이어 스톰.
마법을 그토록 갈망했던 나에게는 세상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 4서클 파이어 스톰의 마력 흐름을 관조했습니다.
– 고룡 하루케우스의 축복으로 4서클 파이어 스톰을 습득하였습니다.
– 4서클 화염계 마법을 마스터했습니다.
– 화염계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대폭 증가되었습니다. 불의 정령과의 친화력이 상승했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칭호가 ‘여자 마법사 빨대꾼’으로 바뀌었습니다.
구우웃!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연속되는 알림음에 심장이 노곤노곤 따뜻해졌다.
칭호는 평소 때처럼 가뿐하게 무시했다.
보고만 있어도 마법을 습득할 수 있는 엄청난 특혜는 너무나 근사한 스킬이었다.
고룡 하루케우스는 죽어서도 복 받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난 천하의 사기캐가 됐다.
“하아 하아.”
마법사 아린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오후부터 나와 벌써 4서클 마법을 10여 개나 펼쳤다.
마력 지팡이의 도움을 받았지만 강력한 공격 마법은 고 서클 마법사에게도 벅찼다.
마력 홀이 텅텅 비었을 것이다.
“힘들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린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지만 아린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고마워요.”
아린은 손수건을 받아 땀을 닦았다.
“제가 더 고맙죠~.”
“아니……. 그게…….”
고맙다는 말에 아린이 얼굴을 또 붉혔다.
이 마법사 참 착했다.
뭐만 해주면 감동에 젖었다.
나 또한 아린의 순수한 행동에 감동했다.
용병들도 몇 수 접는다는 용병 여자 마법사였지만 나에게는 친절했다.
아무리 영주라 해도 6서클 마법사는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충분히 있었다.
같이 동행해 왔던 용병단과 함께 떠나지 않았다.
아린은 성에 머물며 나의 청을 들어줬다.
매일 나와 함께 밖으로 나와 마법을 펼쳤다.
1서클부터 시작해 오늘 4서클 화염마법까지 벌써 이십여 일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잘 보셨나요?”
“네~ 아주 확실히 봤습니다.”
보았을 뿐만 아니라 내 것으로 만들었다.
솔로몬 왕이 건넸던 마법과 약간씩 달랐다.
좀 더 풍부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아린의 정통 마법.
그녀가 갈수록 예뻐 보였다.
씨이익.
입가에 번지는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
아린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나의 칭호가 새삼 떠올랐다.
여자 마법사 빨대꾼.
알파닥 그 녀석……. 보는 눈이 참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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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