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57
356장. 스키타기 좋은 날 (2)
“저 자식 뭐야?”
“누구?”
“밥맛 없는 저 자식 말야?”
“와아! 존잘!”
제 90회 전국 동계 체육대회가 개최되는 강원도 알펜스 스키장.
관중은 거의 없었다.
본래부터 전국 체전은 선수들이나 대회 관계자들만의 축제였다.
그중에서도 동계 체전은 관중들로부터 더욱 찬밥이었다.
날씨도 춥고 비인기 종목들이 많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오늘따라 날씨는 더 지랄이었다.
어제 내린 눈 덕분에 사방이 미끄러웠다.
인공강설보다 일반 눈이 경기에 더 지장을 줬다.
선수들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서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체전은 2010년 동계 올림픽 대표 선발에 영향을 미치는 경기였다.
실내 스케이팅과 달리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설원에서 진행이 됐다.
동계 스포츠 종목에서 선수층이 가장 얕았다.
눈이 쌓인 설원 위를 스키를 타고 코스를 빨리 완주해 승패를 나눴다.
노르웨이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유래가 된 노르딕 스키의 한 종류였다.
1924년 제1회 동계 올림픽 종목으로 결정 났을 만큼 유서가 깊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위상은 달랐다.
올림픽 마라톤과 비견되는 크로스컨트리 스키였지만 찬밥이었다.
이렇다 할 국제 대회 성적이 없는 데다 동계 올림픽에 종목당 겨우 남녀 한 명씩만 올림픽 출전 선수로 배정됐다.
물론 올림픽 매달은 전무했다.
국제 대회에서 남자 주니어와 여자 클래식에서 겨우 한 번씩 메달을 목에 걸어봤을 뿐이다.
선수가 거의 없어 계주 종목은 출전 기회도 갖지 못했다.
체력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됐다.
동계 체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계 올림픽 종목으로 엄연히 올라있지만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15킬로미터 프리 경기.
각 시도를 대표하는 대학부 경기에 20여 명의 선수가 준비하고 있었다.
완주만 해도 대단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대부분 취미로 스키를 탔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 선수로 나왔다.
각 시도별로 6명씩 출전해도 되지만 대학부는 한두 명 채우기도 벅찼다.
그런 선수들 무리 중에 유독 눈에 띄는 한 남자가 있었다.
스키복 모델이 현장에 방문한 것처럼 포스가 남달랐다.
푸른색 스키복과 블랙 고글이 잘 어울리는 훈남이었다.
키도 컸고 운동으로 다져진 듯 몸도 탄탄했다.
긴장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여유롭게 스트레칭을 하며 웃고 있었다.
오늘 처음 보는 선수였다.
“아는 놈이야?”
“우리 학교 애들은 아닙니다.”
체육으로 소문만 성남대 학생이 시도를 달리한 선배에게 고개를 저었다.
스키 특기 자체가 대학교에 드물었다.
“한국대래요…….”
옆에서 듣고 있던 참가자 한 명이 속삭였다.
“한국대? 그 놈들이 왜?”
“이 새끼들이 스키가 책상에서 하는 건 줄 아나!”
“아우! 어쩐지 밥맛이더라.”
한국대라는 말에 선수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가끔 정신 나간 한국대 놈들이 참가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모두 하위권에 속하거나 기권하기 일쑤였다.
공부는 인정하겠지만 스포츠에서는 한국대가 무명이었다.
“그것도 법학과.”
“……젠장.”
“선배들 짱짱하겠네.”
한국대 법학과라는 말에 선수들이 더 쓴 입맛을 다셨다.
선배들 대부분이 판사, 검사라는 걸 모두 다 알았다.
괜히 건드려봤자 피곤할 뿐이었다.
[크로스컨트리 15킬로미터 프리스타일 출전자들은 준비하십시오. 곧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안내 방송이 울렸다.
선수들이 스키를 타고 자리를 잡았다.
이쯤 되면 새로 참가한 한국대 녀석은 경쟁자가 아니었다.
휘이이이이이잉.
맞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경기 시간 단축보다는 메달 획득이 문제였다.
메달을 따면 보너스를 받았다.
[1번 선수 출발선에 서 주십시오.]그리고 시작된 경기.
선수들이 힘차게 눈을 박차고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
“뭐라고 TS 그룹 하관우 회장님이 왔다고?”
“네. 방금 전 도착했습니다.”
“바쁜 양반이 무슨 일이래? 금일봉이라도 주려나?”
개막일이 지난 터라 대한체육회 회장을 비롯해 문체부 고위 관계자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그만큼 한가한 경기 운영 본부실.
대한체육회 대회운영부 고승표 본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림픽도 아니고 이런 평범한 동계 체전에 대그룹 회장이 친히 등장하는 일은 드물었다.
홍보용으로 사용하기에도 규모가 작았다.
그것도 동계 체전.
선수들을 다해 봐야 수백 명밖에 안 됐다.
잘나가는 쇼트트랙이나 스케이팅 선수들 정도가 관리 대상이었다.
피겨 스케이팅의 전설이 되어가는 눈꽃 여왕 한연지도 이번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사고 없이 체전이 마무리되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오늘따라 기온이 하강하고 바람이 불어 다들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자칫 사고라도 나면 이 자리도 내놔야 했다.
스르릇.
운영 본부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서들을 대동하고 하관우 회장이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대회운영 본부장 고승표입니다.”
고승표 본부장이 고개를 바짝 숙이며 손을 내밀었다.
대기업 회장들의 지원 없이는 스포츠는 발전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대한체육회 관계자들은 기업가들을 갑처럼 대했다.
줄 하나 잘 잡으면 잘릴 일이 없었다.
“하관우라고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TV에서 보시던 것보다 더 젊어 보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진짜 왜 온 거야?’
인사하는 중에도 고승표 본부장은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시간이 금인 대기업 회장이 그냥 방문했을 리는 없었다.
하관우 회장과 대한체육회는 아직 접점이 없었다.
“날씨가 춥습니다. 자리에 앉으십시오.”
고승표는 따뜻한 히터가 틀어져 있는 본부실 상석을 내줬다.
“크로스컨트리 15킬로미터 프리 경기 시작했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경기 스케줄을 물어오는 하관우.
“네? 크로스컨트리 스키요?”
“방금 시작했습니다.”
고승표 밑에 있던 직원이 빠르게 답했다.
“구경해도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뭐야?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출전 했어?’
비인기 종목 중에서도 상위권을 달리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본부장님 혹시…….”
그때 하관우 회장이 고승표 본부장을 불렀다.
“따로 궁금하신 게 있습니까?”
“스키 말고 크로스컨트리 스키만 따로 스폰해도 됩니까?”
“네? 스폰요???”
“제가 좋아하는 친구가 이번에 선수가 돼서 말입니다.”
“아! 그런 일이…….”
입이 찢어지기 일보직전인 고승표 본부장.
어떤 선수인지 몰라도 앞으로 체육회 최우선 협조가 결정 나는 순간이었다.
***
“후우 후우우우.”
이거 은근히 운동이 됐다.
스케이팅을 하듯 스키를 타고 달렸다.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면 안 됐다.
스키 주법도 변하면 탈락이었다.
“허억! 허어억…….”
지쳐서 숨을 헐떡거리는 한 선수를 제쳤다.
가장 뒤쳐진 20번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벌써 15명이 뒤로 물러갔다.
거리는 15킬로.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육체적 힘만 사용했다.
호흡법 덕분에 숨은 차지 않았다.
등을 적시는 땀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군 면제를 위해 2010년 동계 올림픽을 노렸다.
장주시장을 통해 도 대표로 선수등록을 하고 동계 체전에 출전했다.
올림픽에 출전해도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종목을 골랐다.
국민들 관심이 적은 동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가 제격이었다.
아시안 게임은 금메달을 따야 되지만 올림픽은 동메달만 획득해도 군 면제가 됐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무 장교로 근무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시간 낭비였다.
지난 생에 병장 제대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라에 보답했다.
선수층이 아주 얕았다.
한국에 배정된 티켓 덕분에 오늘 좋은 성적을 내면 대표가 될 수 있었다.
하관우 회장을 투입해 만일에 대비했다.
실력이 넘쳐도 협회 장난질에 대표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었다.
스포츠 종목도 정치력이 중요했다.
TS 그룹 이름이 가볍지 않았다.
현재 가진 권력과 재력으로도 충분히 면제가 가능했지만 합법적 방법을 택했다.
“후우 후우 후우.”
가볍게 숨을 쉬며 빠르게 스키를 타고 달렸다.
허벅지가 탱탱해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결승점.
오늘 한 판만 뛰어도 내년 동계 올림픽 대표가 되는 건 쉬웠다.
“헉……. 헉.”
앞서 가던 선수 한 명이 퍼졌다.
15킬로는 50킬로 종목보다는 짧지만 그렇다고 쉽지는 않았다.
사악 사아악 사악.
영하 10도의 차가운 날씨로 얼어붙은 눈 위를 빠르게 달렸다.
나를 달가워하지 않던 성남대 녀석들이 보였다.
각 시도 대표 대학부로 출전한 녀석들은 사이좋게 달렸다.
한국대 법학과라는 말에 입을 다물던 녀석들.
뒤에 출발했던 나에게 선두를 빼앗겨 금메달은 딸 수 없었다.
힘을 냈다.
휙휙 바람의 무게가 느껴질 정도로 스퍼트를 냈다.
“어!”
나를 스치는 바람소리에 뒤를 돌아보던 녀석이 놀랐다.
한국대라고 무시하던 놈들 중 하나였다.
콰다당.
멍청한 녀석이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호흡이 꼬여 옆으로 넘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아!”
쥐가 난 듯 비명을 질렀다.
진행요원들이 상황을 보고 달려왔다.
다음 목표가 눈앞에 보였다.
오늘 여기서 꼭 1등해야만 했다.
대회 기록을 찍어야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할 것이다.
발이 빨라지고 속도가 붙자 선두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하악 하아악!”
녀석들이 뱉어내는 거친 숨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그들을 빠르게 제치고 앞으로 치고 나갔다.
“으헛!”
나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놀라는 녀석들의 신음소리 들렸다.
엉덩이를 더 힘차게 좌우로 씰룩거렸다.
나름 그들을 약 올리는 퍼포먼스였다.
마지막 스파트를 올리며 힘차게 결승을 향해 달렸다.
***
“어? 벌써 들어오는 거야?”
크로스컨트리 15킬로 프리스타일 종목 기록관은 결승점에 들어오는 선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선수들이 결승점에 나타날 시간이 아니었다.
공식 시계를 봤다.
“뭐, 뭐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기록관.
무료하게 앉아 있던 심판들과 경기 관련자들도 깜짝 놀랐다.
한국 선수들은 15킬로 종목도 보통 50분이 훌쩍 넘겼다.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도 38분 시간대가 메달권이었다.
코스와 환경에 따라 40분 이내에 승부가 결정 났다.
더구나 동계 체전이라 빙질이 좋지 않았다.
코스도 험난했고 맞바람이 불어 기록이 더 엉망이 될 게 자명했다.
특히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50분대를 찍었다.
한국에서나 내놓을 만한 의미 있는 자신들만의 동계 체전 결과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선수번호 20번입니다!”
“뭐라고? 마지막 출발했던 선수가 선두라고? 출발 시간 체크해봐!”
당황한 기록관과 심판들이 분주해졌다.
그 와중에 여유롭게 결승점을 통과하는 선수.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37분 12초입니다! 37분요!]일제히 터지는 환호성.
“……말도 안 돼.”
“이거 실화야???”
입을 벌리고 눈만 껌뻑이는 기록관과 심판들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례적인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놀랍게도 일개 동계 체전에서 지난 올림픽 기록이 깨진 것이다.
말 그대로 올림픽 기록을 넘어선 한국 신기록이 세워졌다.
# 357
회귀의 전설